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08화 (208/317)

# 208

예상치 못한 위력에 네임드 들의 얼굴에 당혹이 어렸다.

그들의 예상이 아주 빗나가지는 않았다.

확실히 마법 병단의 폭격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오크들의 수는 여전히 인간 측 병사들보다 많았으니까.

‘5천 정도 인가….’

다만 네임드들이 예상했던 수치보다는 훨씬 많은 수준이었다.

“…정말 인간들이 작정을 했다는 말인가? 마법사를 수백 명이나 보내왔다고?”

상급 마법사 둘만 해도 어마어마한 전력인데 그들을 보좌할 마법사가 수백 명이다.

2천 내지는 3천 정도를 예상했을 거다.

“붉은 갈기 부족이 패배한 이유가 있었군. 전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었어. 저 정도 차이라면 살아남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겠군.”

실제로는 당시 습격한 병사는 3천에 마스터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지만, 저들이 알 필요는 없었다.

“인간 놈들이….”

이렇게 되면 다음 마법은 저들이 막을 수밖에 없을 거다. 이제 와서 도망치기도 늦었다.

퇴각하는 적만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적은 없었다.

자신들의 땅에서 도망친다는 굴욕에 이어 살아남는 숫자도 얼마 되지 않을 거다.

오크들의 기세가 주춤한다.

아무리 미쳐 날뛴다고 해도 이 정도 위력의 마법을 직접 겪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생명체일 수가 없었다.

그와 반대로 아군 병사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러대었다.

돌진하던 오크들이 한 줌의 핏물이 되어버렸다. 잔혹한 광경이기는 하나 오크와의 전투는 늘 일상인 병사들이다. 마음 한구석에는 마법에 대한 공포가 생겼을지는 몰라도 아군의 공격에 오크들이 떼거리로 죽어나간 거다. 싫어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예 길드원들이 한차례 주춤한 오크들 일부를 긁어나가며 또다시 피해를 주었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그러자 네임드 오크들이 재빨리 달려든다. 오크들의 야성과 드높은 신체 능력 자체가 그들의 전략이자 전술이다. 이런 경우 오크들의 선택은 강자들이 앞장서 적들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전략이나 전술을 못 쓴다는 것에 가까웠다. 오크들이 바보가 아니나 전투에 있어서 야성과 본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만큼 대규모 전략이나 전술은 사용하기가 힘들다. 그나마 사용하는 경우는 나를 막았을 때처럼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오크들이 모였을 때나 드물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수준이 높아져도 가장 효과적인 전투법은 스스로의 본능과 강대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정면 돌파라는 것이 아이러니였지만.

당연히 우리 쪽도 예상을 했기에 나를 비롯한 가이아 소속 마스터들이 즉시 마중을 나갔다.

“서윤이는 틈을 봐서 다음 마법을 준비해! 레이즈 사령관! 마스터 전력의 반을 전방으로!”

레이즈는 즉시 일부 마스터를 전방으로 보내주었다. 상대 네임드 오크는 총 열다섯. 상급 마스터 둘은 내가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열셋이나 되는 마스터를 내 휘하의 마스터만으로 막아내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나서윤도 빠진 상황이다.

전원 전사나 다름없는 저쪽보다는 궁수 마스터인 조연은과 어쌔신 마스터인 하유진, 이윤형이 있는 이쪽이 조합상 앞서기는 하나 숫자 차이가 많이 난다.

그렇기에 거주민인 제국민 마스터 넷을 지원받았다.

레이즈를 비롯한 마스터는 병단을 지켜야 하는 만큼 전원을 빼낼 수는 없었다.

최정예 오크와 정예 오크는 마법 병단과 내 휘하의 길드원들이 주하연의 보조를 받아 상대할 터. 주하연은 마스터들에게 축복만 걸어준 채 정예 길드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주하연이 없다면 정예 길드원들의 피해가 심각해질 거다.

우리가 마중을 나오기 무섭게 네임드 오크들 중 둘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전 나를 막았던 갈다르, 거기에 더해 상급 수준의 네임드 오크 하나가 더 붙어있었다.

‘이전에 없던 놈이군.’

아무래도 우리의 습격 당시 본진에 남았던 네임드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병사들까지 다수 있어 이전처럼 최정예 오크들이 자신들을 보조해 주지 못하는 만큼 상급의 네임드 둘이서 나를 막을 속셈으로 보였다.

그 외의 네임드들은 개인 혹은 몇몇 단위로 쪼개어져 아군들과 전투에 접어들었다.

최전방에서 마스터들 간의 싸움이 벌어지자 전장 곳곳에 여러 공터들이 생겨났다.

일반 병사들은 끼어들 수도 끼어들어서도 안 되는 그들만의 리그. 그러나 일반 병사나 평범한 오크의 싸움 또한 가볍게 볼 수는 없었다. 어느 한 세력이 승리해 마스터 주변을 포위하게 된다면 아슬아슬한 승리를 용납할 수 없게 되고 A급에 해당하는 강자들처럼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끼어들 수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 쪽에는 마법사들마저 즐비하다. 당장은 몰라도 타이밍을 봐 나서윤과 아멜리아가 움직인다면 네임드들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샤난드, 상대는 끝에 다다른 영웅이오!”

갈다르의 경고에 샤난드라 불린 상급 네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술(禁術)을 사용하겠소.”

“샤난드!”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듯한 반응.

금술이라는 말에 문득 이전 카바락이 생각났다.

“왕자님 이후로 많이 개선되었소. 걱정 마시오. 내 비록 부족하나 망가지지는 않을 터이니.”

‘가지가지 하는군.’

곧바로 샤난드의 몸이 부풀어 올랐고 동시에 그의 존재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단순한 상급 네임드로 보기는 어려워진 상황. 그렇지만 나 또한 이전과는 다르다.

모든 능력치도 100. 이전처럼 시간제한이 있지도 않았으며 극한 활성화 또한 하지도 않았다.

‘뭐 이제는 슬슬 극한 활성화 부작용도 견딜 만 해 졌고….’

슬슬 바리치의 문신을 극한 활성화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즉시 무형강기를 뽑아 올렸고 샤난드라 불린 이 또한 무형강기를 뽑아냈다. 다만 딱 봐도 수준이 나보다 떨어졌다.

“카바락 만큼은 안 되나 봐?”

“…그분과는 같을 수 없지.”

상대는 내 정체를 대충 짐작한 듯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럼 안 된다는 것도 알겠네.”

당시의 극한 활성화한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강하다. 시간제한도 없고. 상대 또한 그 사실을 눈치챈 모양인지 얼굴이 굳어버렸다.

“너만 막는다면 다른 영웅들이 마법사들을 찢어발길 것이다. 그러한 마법을 바로 연속해서 쓸 수는 없을 터. 영웅의 경지에 들었다고 한들 다 같은 영웅이 아니다. 하나같이 갓 영웅의 경지에 발을 디딘 자들. 보아하니 좋은 장비들을 믿는 모양이지만 그게 얼마나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는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시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상급 마법은 마법사의 회로에 제법 무리를 주는 편이니 회로를 가다듬고 잠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둘은 비약을 바탕으로 회로를 변형시켰기 때문에 그 시간이 타 상급 마법사에 비하면 무척 짧다. 게다가 한 명은 미래에 대마도사의 칭호를 받는 랭커고 나서윤은 아예 마스터에 들어 회로 자체가 튼튼한 마검사다.

솔직히 나서윤은 곧바로 상급 마법을 한 번 더 사용이 가능하지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멜리아를 기다릴 것이다.

‘미래의 아멜리아라면 상급 마법을 동시에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아쉽군.’

괜히 대마도사라 불렸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오산은 하나 더 있었다. 이쪽 마스터들이 하나같이 초급 수준이라 장비만 믿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냥 좋은 장비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스킬 빨도 있었다.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다. 아니, 어쩌면 되려 승리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나 또한 최선을 다할 생각이고.

애초에 전제가 틀렸다. 이 둘로는 나를 못 막는다.

피식.

나는 가볍게 웃음 지으며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

쾅! 콰앙!

“커헉!”

“…이전에는 힘을 숨겼었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자리에서 네임드를 모조리 죽여버렸다면 이들이 2만의 병력을 데리고 그대로 후퇴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술을 사용했다는 샤난드의 무형 강기는 카바락만큼 위협적이지 못했다. 극한 활성화를 하지 않아 마력의 눈동자를 사용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공격은 모조리 내 눈에 읽혔고 반대로 샤난드는 내 공격의 허와 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갈다르는 아예 내 공격의 반도 제대로 방어해 내지 못했다. 샤난드가 없었다면 전투는 순식간에 끝나버렸을 거다. 샤난드가 매혹에 한 번 걸릴 때마다 갈다르의 생사가 한 번씩은 갈릴 정도. 샤난드가 걸리는 시점에서 갈다르가 매혹을 버텨낼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 갈다르의 선택은 이전에 내가 했었던 대로 모든 공격에 전력을 다하며 달려드는 것뿐이었다. 샤난드 또한 비슷하다. 간간히 파악하기는 하나 갈다르보다 나은 수준에 불과했으니 그들의 마력 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전의 나와 카바락의 대결과는 다르게 이 둘의 신체 능력은 나보다 떨어진다. 부딪칠 때마다 늘어나는 손해를 이들은 얼마 감당할 수 없을 터다.

최상급 네임드와 상급 네임드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상대를 노골적으로 압도하자 주변 인간의 사기가 크게 오르고 오크들이 투지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거다. 네임드들이 패배하면 다음에 또 올 마법의 습격에 자신들이 녹아내릴 것이라는 사실을. 한 번 그런 장면을 본 이상 아무리 오크라도 아예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을 터. 그 정도로 마법 폭격은 인상이 강했다.

게다가 나뿐만이 아니었다.

타 마스터들의 전투 또한 크게 밀리지 않았다.

한바다와 조연은, 이윤형이 과거 동료였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연스럽게 네임드 다섯을 묶어버렸고 남은주와 하유진은 아예 둘이서 네임드 넷을 상대하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였다.

마스터에 오른 남은주는 반격을 반쯤 포기하기는 했으나 네임드 넷의 공격을 어떻게든 버텨냈으며 하유진은 네임드들조차 제대로 인식하기 힘든 은신을 발휘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남은주가 거의 하지 못하는 반격을 대신해 주었다.

덕분에 다른 쪽은 오히려 인간 측 마스터들이 숫자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 네임드 오크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리한 것은 우리 쪽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서윤과 아멜리아가 이어서 다시금 상급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강한 마력의 유동이 대기를 흔들고 네임드 오크들은 하나같이 그 기척을 눈치 챘다. 시간이 주어졌지만 네임드 오크들은 인간의 마스터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상상 이상으로 빠른 상급 마법의 준비에 네임드들이 동요했다.

“크아아아아!”

네임드 오크들이 하나같이 어떻게든 마법을 막기 위해 인간 측 마스터들을 돌파하려고 했으나 시간만 끌어도 유리한 인간 측 마스터들이 그걸 용납할 리가 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오크들이 어떻게든 밀어붙이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제국의 병사들은 애초부터 방어 일변도였던 지시사항을 어길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네임드 오크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린다.

그러던 중 전투에 균열이 일어났다.

우습게도 전투 내내 압도했던 내가 낸 균열이 아니었다.

첫 네임드를 죽인 것은 하유진이었다.

네임드 넷을 상대하는 남은주를 버려두고 주변에 있는 척 네임드들을 견제하며 그 사이 한바다 쪽 인원들 사이에 숨어들어 이윤형이 모습을 드러내 방심하는 네임드의 목을 하나 따 버린 것.

그렇게 다섯을 상대하던 수가 넷으로 줄어들자 한바다를 비롯한 셋이 미쳐 날뛰었고 그쪽 전장이 무너진 이후 타 전투에 관여하기 시작하며 네임드들이 한꺼번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덤으로 샤난드와 갈다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너뜨리고 타 전장에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하유진의 기지로 되려 간접적인 도움을 받아버린 셈.

무너진 둘을 처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고 마스터들이 무너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한 2차 마법 폭격이 전장을 강타했다.

쐐기를 박는 공격이 작렬하고 수천의 오크가 다시 한 차례 핏물이 되어버렸다.

승부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

“…붉은 갈기 부족이 멸족을 당하고 지원군이 모조리 쓸려나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카바락 님.”

“그걸 한 것이… 가이아 길드라… 하기야 수련자 놈들이 전쟁을 피해갈 이유가 없지. 특히 가이아 길드는 어지간한 싸움에 다 끼어드는 족속들이니 말이야. 북쪽이라….”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셔야 하지. 나는 아직 벌을 받는 중이 아닌가?”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충분히 대가를 치르셨다고 판단, 로드께서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크하하하하하!”

수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바락이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가. 드디어 그렇게 되었나?”

“그간 세우신 공과 금술의 진전에 큰 기여를 하셨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북쪽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카바락이 유신후와 싸우고 싶어하며 그를 평생의 적수라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놈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싸울 만큼 싸웠으니 아마 다른 전장으로 자리를 옮기겠지. 중앙인가, 남부인가. 아니면 수인들과의 경계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카바락이 기대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이아 길드의 움직임을 주시하도록.”

카바락의 지시에 수하 오크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얼마나 강해졌을 것인가. 다음번 만남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군.”

카바락이 사나운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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