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오크 정찰대는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정찰을 위해 파견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상당히 빈틈 투성이었다. 자신들의 영토, 그것도 전선에는 붉은 갈기 오크들이 있는 이상 여기에서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나마도 전선에 가까워질수록 정신을 차리겠지만 아직까지는 조금 풀어진 모습이었다. 아무리 오크라도 어쩔 수 없는 모습이다.
“이거 사샤가 아니라 내가 직접 움직여도 안 들킬 것 같은데. 쟤들 그냥 허수아비 수준이야.”
나연의 말에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애초에 방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먼저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방치했다.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지금쯤이라면 예상한 대로 우리들이 발견한 위치에서 짐을 풀 테니까.
임시 진지의 위치를 무척이나 고심한 덕분인지 아니면 오크 정찰대의 기강이 해이하기 때문인지 우리 진지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에 거리가 제법 있는 만큼 반나절 거리만 정찰하는 오크들이 발견하기는 힘들다. 네임드가 작정하고 넓은 거리를 꾸준히 정찰하지 않는 이상 들키지는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하유진이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정찰대들을 피해 내부로 스며들었고 조심스레 확인한 정보를 알려왔다.
“그 장소에 짐 풀었어요. 예상대로예요.”
“잘 됐네. 이번 기회에 상급 마법이나 퍼붓고 튀자고.”
이전 붉은 갈기 부족 때처럼 대놓고 들어가기에는 저들의 네임드 숫자도 부담스러웠고 진지와의 거리도 무척 멀었다.
원거리에서 상급 마법을 퍼붓고 도망칠 셈이었다.
네임드들의 위치 파악이 중요했다.
그 점은 마스터에 도달한 하유진이 손쉽게 해결했다.
상급에 들어간 네임드가 둘씩이나 되어 조심할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하유진 또한 마스터. 그것도 어쌔신 마스터다. 존재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 하유진이 들킬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대부분 중앙에 집중되어 있어요.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외곽 쪽을 노리면 반응하지 못할 것 같아요.”
“고생했다. 경계는 늦추지 마. 밤이 될 때까지 최대한 조심히 움직인다.”
“네, 형.”
밤까지 거리를 두고 저들의 동태를 살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완전한 밤이 되고 불침번을 제외한 오크들이 잠들었을 무렵 우리는 행동을 개시했다.
하유진이 먼 거리의 불침번들을 지워버렸고 오크들의 외곽 지역을 아멜리아와 나서윤의 사거리 안쪽에 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캐스팅 속도는 고속 영창이 있는 나서윤이 조금 더 빠른 만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멜리아가 먼저 시작했다.
처음에는 은은한 마력의 유동이 캐스팅이 지속될수록 그 덩치를 불려간다.
이어서 나서윤의 캐스팅이 시작되었고 마스터쯤 되면 아무리 거리가 있더라도 느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덩치를 부풀렸다.
어마어마하나 마력의 유동.
이쯤 되면 마스터가 아니더라도 이상 현상을 느낄 수밖에 없을 정도가 되었고 오크의 주둔지가 급격하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늦었다.
네임드들이 반응했지만 기습적으로 행해진 공격이었다.
“파이어 레인.”
먼저 아멜리아가 시동어를 읊었고, 이어 나서윤 또한 같은 마법의 시동어를 내뱉었다.
파이어 레인 2연발.
그 자체로도 넓은 범위와 살상력을 자랑하는 파이어 레인이 두 개나 발동되었다.
이미 발동된 상급 마법일지라고 하더라도 마스터 둘이 나서면 마법 자체를 부술 수 있었다. 다만 몇몇 범위 마법은 이야기가 다르다.
아이스 코어나 파이어 월 등이라면 시작된 이후 시간이 제법 지나도 부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만, 템페스트나 파이어 레인 같은 경우에는 범위가 넓어지기 전에 깨부숴야 한다. 마스터의 공격 범위는 마법사에 비하면 무척 협소한 범위에 불과했으니까.
괜히 이 둘이 파이어 레인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불행하게도 기습적으로 행해진 마법이었고 위치 선정조차 네임드들에게 불리하게 외곽 쪽에서 발동되었다.
오크들의 주둔지가 순식간에 밝아진다.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불꽃의 빗방울에 어마어마한 혼란이 찾아왔다.
“마, 법?”
“피, 피하라! 피해라아!”
“늦었어.”
오크들의 비명이 천지를 울린다.
“끄아아아악!”
“무슨, 이게 어떻게 된…!”
몇몇 네임드가 마법이 발동된 근원지를 향해 달려온다.
그리고 우리를 발견했다.
“인, 간? 어째, 서….”
오크의 영역에, 그것도 제법 깊은 곳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마어마한 분노를 토해낸다.
“인간! 감히 겁도 없이…!”
피식.
나는 우리를 찾아온 네임드들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후퇴.”
우리는 즉시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두 상급 마법사는 아직 한 번의 상급 마법을 더 사용할 수 있었지만 네임드들이 우리를 가만히 둘 것 같지 않았기에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흘낏 본 주둔지의 상태는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력을 품은 불꽃은 일정 수준 이하의 오크들을 모조리 태워버렸고 나름 정에 전사라는 칭호를 받은 B급 오크들조차 쉽게 견디지 못했다.
‘최소 2천. 많게는 4천까지도 손실이 일어나겠군.’
내가 마법사를 지원했던 이유다.
고작 마법사 둘이 그것도 단 한 번씩의 마법만으로 이루어낸 성과다. 심지어 여기서 마법 위력을 더 올릴 수 있었다. 단순히 아이템을 더 구하는 방법이나 버프를 통한 능력치 상승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런 것 없이 진지에서 준비했던 것처럼 마법 위력을 증폭하기 위한 보조 마법진, 타 마법사들의 같은 계통이나 상호 작용이 있는 계통의 마법을 통한 마법의 보조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기습으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 냈다.
우리가 도주하자 네임드 오크들이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우리를 쫓았다.
그들도 우리가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찾아온 네임드가 두 자릿수였기에 덤벼든 모양이었다. 여기서 싸우면 안 된다.
“조연은 씨.”
“네!”
내 지시에 조연은이 도망치면서도 꾸준히 몸을 돌려 네임드 오크들을 방해했다.
나 또한 검강을 마구 쏘아대었다.
“영웅, 그것도 끝에 다다른 이인가!”
그런 내 모습에 내가 최상급 마스터임을 깨달은 오크가 경악했다.
이대로 우리를 놓아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는지 한층 더 속도를 끌어올렸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 도망친 순간 나서윤이 하늘을 향해 마법을 쏘아 올렸고, 높은 지점에서 폭발했다.
“갑자기 무슨 짓을….”
그리고 곧바로 저 멀리에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훅, 훅, 훅!
네임드 오크들은 하나같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먼 거리다. 오크의 진영에서 제법 멀리까지 도망 온 상태에서도 고작 점으로나 겨우 보일 정도의 거리. 그나마도 밤에, 불이 켜졌기에 발견되었을 뿐.
하지만 마스터의 신체 능력은 보통이 아니다. 그들은 저 멀리서 보이는 우리의 임시 진지를 제대로 인식했다.
“설, 설마….”
곧바로 드러나는 인간의 진형에 한 네임드 오크가 아득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인간이… 인간 따위가 신성한 우리의 대지를….”
“붉은 갈기 부족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그러나 곧바로 저 정도 인원이 들어오는 것을 그들이 방치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했다.
“설마 붉은 갈기 부족이…!”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맞아. 모조리 죽여버렸지. 아, 그리고 신성한 대지는 무슨. 여기 원래 인간의 영역이거든? 한동안 잘 썼으면 이제 주인에게 돌려줄 때도 되지 않았어?”
“이곳은 우리의 오크의 신성한 대지다! 감히 인간 따위가…!”
“그건 이전 얼마 전까지의 일이고. 이제는 다시 인간의 영역이다.”
제국은 결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보이는 바로는 우리가 충분히 땅에 욕심을 내고 있다고 생각할 만했다.
붉은 갈기 오크를 모조리 지워버렸고 평원에 군대가 진출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네놈, 네놈이!”
“멈춰라, 갈다르! 지금은 후퇴해야 한다!”
“지듀카시여, 저들을 두고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혈기를 가라앉혀라. 로드께 보고가 우선이다!”
“하지만!”
“보고에는 전사 셋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내일, 직접 나서서 부숴버릴 것이다!”
원하던 바다.
우리 진지에서 만약을 대비해 여덟의 마스터가 이미 출발했을 거다. 수십 km는 떨어진 거리지만 마스터는 말보다도 훨씬 빠르다. 한 시간도 안 되어 도착할 터. 그 정도 버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은 더이상 우리를 쫓지 않았다. 나 또한 저들의 진형과 더 가까운 이곳에서 싸울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혼란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지금쯤이면 이미 파이어 레인의 지속 시간도 끝났을 테고 남아 있던 이들이 혼란을 수습했을 시간이다. 그들이 진격해 온다면 우리가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저들의 방관하에 임시 진지로 복귀했고 우리의 전과를 들은 레이즈는 엄청나게 기뻐했다.
“최소 2천의 피해라니… 병사 수백은 목숨 건지겠군요.”
“그러나 이번 전투가 끝나면 곧바로 요새로 복귀해야 합니다. 우리가 침공한 사실을 오크 로드에게 알리겠다 하였으니 그들의 특성을 보아할 때 엄청난 군대가 찾아올 겁니다. 이번이 끝입니다.”
레이즈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밝기 무섭게 오크들은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어제의 야습으로 인한 피해, 붉은 갈기 부족에 대한 복수,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땅을 침범한 우리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까지.
도착한 오크들의 기세는 엄청나게 흉흉했다.
우리 쪽 병사 몇몇이 싸우기도 전부터 기세에 눌릴 지경이었다.
“더러운 인간 놈들! 신성한 우리의 땅을 잘도 더렵혀 놓았구나!”
어제 갈다르라 불렸던 오크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고작 그 정도 세력으로 감히 침공을 운운해? 가만두지 않겠다!”
그의 외침에 오크들이 광기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몇몇은 아예 전투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워 크라이를 사용할 정도. 우리의 세력을 조금 얕보는 모양이다.
어제 갈다르를 말렸던 지듀카라는 오크 또한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저들의 집착이 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 수준일 줄은….”
한바다가 당혹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연 또한 동의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언니. 헬모사에서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게 보통의 반응이야. 특히 이곳은 격전지 중 한 곳인 만큼 자존심까지 제대로 건들여 버린 거지.”
땅, 정확히는 영역에 대한 집착. 거기에 중앙보다는 덜 하다고 해도 나름 3대 격전지 중 한 곳에서 밀렸다는 상처, 거기에 더해 이쪽의 세력이 해볼 만 하다 싶으니 한층 더 광기에 불을 지펴버린 것이었다.
“모조리 죽여버려라! 저 더러운 지역을 깨끗이 치워, 버려!”
“크아아아아!”
“흐아아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크들이 임시 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설마 저들끼리 소리를 질러대고 분노를 표출한 뒤에 그대로 돌진해 올 줄은 몰랐는지 레이즈마저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을 정도였다.
“미친 새끼들….”
“씨발, 저게 뭐야….”
나름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병사들이 그 기세에 눌려 동요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어차피 진형은 이미 갖출 대로 갖춘 상황이다.
우리가 꿇릴 것은 없었다.
“서윤아, 아멜리아.”
“네! 오빠!”
“바로 시작할게요, 길드장 님.”
내 지시에 맞춰 곧바로 둘의 캐스팅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마법 병단 또한 약속했던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즈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외쳤다.
“전원 사격 준비!”
쫘아악.
다수의 궁병이 활을 당긴다.
지상에서도, 몇몇 화살탑 에서도 마찬가지.
두두두두두.
어제의 피해로 2만에는 한참 못 미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 단위의 군대다. 피해는 대략 2천 정도였던 모양으로 대응을 나름 잘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광기에 차 돌진해오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크아아아아!”
그러나 이성을 잃은 덕분에 인간의 준비가 빛을 발했다.
쿵.
“끄아아아!”
단순한 함정에 선두의 오크가 빠진다. 수십 개의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선두가 엉키며 애초부터 없다시피 했던 진영이 완전히 붕괴된다.
“발사!”
레이즈의 지시에 수천 개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나서윤의 마법이 1차로 적을 공격한다.
“어스 웨이브!”
“랜드 스피어!”
“흐아아아!”
국지적인 지진을 일으키는 어스 웨이브.
“…안 막아?”
그러나 네임드 오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전혀 막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저들의 내심을 눈치챘다.
어제 보인 마스터가 나를 포함해 9명이다. 브리앙도 데려갈 수 있었지만 만약을 위해 데려가지 않았기에 저들이 인식하는 마스터는 초급 8명에 최상급인 나 하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마스터가 8명이나 더 추가된 상황.
거기에 상급 마법사가 둘.
여기서 상급 마법을 막기 위해 네임드들을 리타이어 시켰다가는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무방비로 당했음에도 피해가 2천으로 그쳤다. 전사들이 상급 마법에 쓸려나가도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저들이 착각한 것이 있었다.
지금의 상급 마법은 어제와 차원이 다르다.
나서윤의 마법이 전사들을 유린한다. 이전과는 위력이 다르다. 보조 마법진과 거기에 더해 나서윤의 마법에 맞춰 마법 병단의 추가적인 마법 세례가 이어졌다.
그게 끝이 아니다.
“템페스트!”
“윈드 스피어!”
“윈드 커터!”
전장에 아멜리아의 상급 마법이 추가로 작렬하고 덤으로 그녀를 보조하는 마법 병단의 마법까지 말 그대로 마법이 한차례 적들의 진형을 쓸어버렸다.
단숨에 전장이 오크들의 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