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06화 (206/317)

# 206

2차전

“대, 대단하십니다 백작 각하. 지원이 오기 전에 본 전력을 모조리 지워버리시다니….”

브리앙 아인모가 자작. 지원군의 사령관으로 본래는 몰락 귀족 출신으로 밑바닥 용병부터 시작해 다시금 가문을 일으킨 입지적인 인물이라고 들었다. 현재는 모든 지휘권을 레이즈에게 넘겼지만, 어찌 된 건지 그 스스로는 자유를 보장받았다고 한다.

가문의 검술을 재정립해 마스터가 되었다고 했던가?

그가 할 말이 있다며 갑작스레 나를 찾았을 때 의아한 감정이 들었다. 특히 오자마자 찬양을 해 대는 모습에 용건이라는 것이 줄을 타는 것인가 싶었을 정도다.

“그냥 운이 좋았지. 이렇게 전쟁이 일어날 줄은 몰랐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여러 상황이 겹친 덕분이었으니까.

사방이 적인 이상 대대적인 전쟁은 제국이 원치 않는 상황이나 이번에는 저쪽이 아예 대놓고 연합까지 하며 먼저 전쟁을 건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침 나는 나름 소수인 정예 세력으로 전장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고.

대게 방어를 위해 대규모 병력이 도보를 통하는 반면 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했으니까.

게다가 이정도의 정예 세력이 중앙도 아닌 북쪽에 온 것부터가 없다시피 한 일이었다. 애초에 수련자라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 오래된 일이 아니다 보니 저쪽도 방심한 면이 있었고.

“…이번에는 아예 야전을 하실 생각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병력은 이쪽이 우위가 되었으니까.”

레이즈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적은 전사 2만에 네임드가 열다섯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병사가 8천에서 모자라는 수준이기는 하나 마법사가 500에 마스터는 제국 측 8명, 내 길드의 마스터는 이번 전투를 통해 9명이 되어 합계 17명이라는 고급 전력은 이쪽이 훨씬 강한 상태가 되었다. 특히 하유진이 마스터에 들어간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제 어지간한 마스터도 하유진을 찾기 위해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야 발견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멜리아 그레이가 상급 마법사에 도달함으로써 상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둘씩이나 되었다는 점도 무척 고무적이었다.

‘영약을 준 보람이 있었지.’

과거 랭커였던 만큼 투자를 하면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빠르게.

게다가 이연솔 또한 아멜리아를 보며 더더욱 마법에 매진하고 있었다. 현 상급 마법사인 아멜리아와 나서윤이 이연솔은 상급 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은 미래에 내 길드가 보유한 상급 마법사가 셋이 될지도 몰랐다. 그녀는 1회차에서 본 적도 없었던 만큼 순수하게 내가 회귀함으로써 얻은 인재라고 볼 수 있었다.

상급 마법사 셋. 황제를 제외한 세력 중 상급 마법사를 셋이나 지닌 세력은 없었다. 대공조차 휘하의 상급 마법사는 둘 뿐이었으니까.

이정도 전력이라면 사실 야전으로 붙어도 승산은 이쪽이 훨씬 높았다. 희생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병사들일 터였고. 주하연이 있으니 희생이 많이 줄어들기는 할 테지만 그래도 천 단위로 죽어 나갈 거다.

한 번 이겨먹었다고 자만할 생각은 없었다. 병사들의 목숨을 가볍게 볼 생각도 없었고. 다만 실제로 승산이 높았고 이렇게 북서쪽을 초토화 시켜버리면 수성 때보다야 더 많은 희생이 나오겠지만 남은 병력을 중앙으로 돌리거나 오크들의 영역을 휘저어 더 많은 병력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면 가장 중요한 중앙이 더더욱 안전해진다. 그렇게 된다면 최근의 주전장이기도 한 남쪽에 더 많은 지원을 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레이즈는 상당한 고민을 했었다. 이대로 수성전에 임해도 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것이었다. 절대 뚫릴 일은 없어졌으니까. 아주 낮은 가능성이지만 저들이 공성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피해는 제법 생길지언정 저들과 정면으로 붙어버리면 크게 봤을 때 이쪽의 이득이다.

무엇보다 적들은 아직 정보가 모자라다. 지원군은 붉은 갈기 부족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를 테니까. 우리와 조우하는 순간 깨닫겠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앞서 말했듯 제국이 먼저 오크를 쳐 그들을 전멸시켰던 적이 없었던 만큼 어떻게 본다면 전쟁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미리 준비해 적들의 선발대와 정찰대를 지워버리고 길목을 차지한 채 먼저 공격해 버리면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을 거다.

브리앙은 조금 꺼리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즈 사령관님께서 허락하신 이상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겠지요.”

정확히는 황제의 허락이다.

결국 레이즈는 본인이 전권을 가진 사령관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에게 연락을 한다는 선택을 취했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게다가 일반 병사의 손실이 클 가능성이 높은 이상 마음대로 결정하기가 부담스러웠던 듯했다.

“첫 번째 대승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한 번 더 하겠다고? 그러도록.”

황제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고 판단했고, 덕분에 야전이 결정되었다.

“…사실 제가 찾아온 목적은 폐하의 명 때문이었습니다.”

“흠?”

황제의 명.

‘따로 전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의문을 느끼기도 잠시 브리앙이 말을 이었다.

“각하께서 검술의 비전과 경험, 깨달음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원하신다 들었습니다.”

이전 내가 황제에게 원했던 보상. 워낙 내가 요구한 것이 어렵기도 했고 여러 일들이 겹침으로써 이제서야 받게 될 모양이었다.

“그대였나. 거래 상대가.”

“그렇습니다. 비록 몰락 귀족이나 저희 가문의 검술과 수많은 기록, 마음가짐이나 선조분들의 깨달음 등을 전부 전수해 드리려 합니다. 검술은 비록 최근에야 복구, 아니 사실 제가 거의 만든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 과정에서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원하실 것이라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런 것을 원했다. 비록 몰락하며 한 번 검술을 유실했던 가문이기는 하나 그 과정에서도 많은 자료를 잃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한 것은 맞지만 타 용병들과는 다르게 선조 덕을 많이 본 모양이었다.

“본래 검술이었다면 모를까 어차피 당대에 제가 복원한 검술입니다. 선조분들의 흔적이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면 또다시 부평초가 될 수 있기에 과거 선조의 영지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모든 것을 각하께 전수하게 되었습니다.”

선조의 자료와 당대 복원한 검술 및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조의 영지를 얻는다. 아주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다.

들어 보니 아인모가 가문은 상당한 역사를 지닌 명망 있는 무가였던 모양이다. 한때는 고위 귀족인 백작까지 올라갔을 정도. 하지만 검술이 유실되며 천천히 가문이 쇠락했고 2대 전에는 완전히 몰락했다고 한다.

그걸 당대에 되살린 것이 눈앞의 브리앙이었다.

“본래라면 전쟁 통에라도 천천히 전수해 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2차 공격을 계획 중이시니….”

어떻게 하겠냐는 듯한 물음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시간이 날 터. 그때 바로 배우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는 나에게 평소에도 흠모해 왔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 또한 백작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작위 까지는 올라왔지만 아직 영지도 없다고 한다. 이번 거래가 끝나야 과거의 영지를 되찾는다고.

“전수가 끝날 때까지 저는 백작 각하 소속이 될 예정입니다.”

애초부터 지휘권을 넘기고도 자신이 레이즈 휘하에 들어가지 않고 자유로운 몸으로 남은 이유가 나에게 소속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황제의 명령이라고.

레이즈에게 양해를 구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대게 인간 측 지원이 더 빠른 편이고 그 차이는 보통 열흘 근처라고 한다. 그런 만큼 하루라도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3일 안에 조금 부족하나마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성을 나섰다.

먼저 보낸 정찰대 인원들이 오크족의 동태를 살폈지만 아직까지는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무척 높았다.

그도 그럴 게 이전 전투에 참가했던 인원들은 이미 승리의 맛을 보았고,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 또한 소식을 들어 사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승리의 주역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물론 수성전은 아니고 이번 전투는 오크들의 영역에서 벌어질 예정인 만큼 이전처럼 지형의 이득을 보기는 힘들었다.

다만 변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처 소규모 부족은 어디쯤 있습니까.”

“적어도 닷새 거리 이내의 소규모 부족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워낙 근처에 부족이 없기도 하고 그나마 있던 이들도 사실상 붉은 갈기 부족이 모조리 끌어모아 자신의 부족으로 흡수했었다고 하니까요. 애초에 저희들과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있기도 했으니까요.”

지노가드 성과 맞서는 부족인 만큼 일대의 모든 오크들은 붉은 갈기 부족이 흡수했던 모양이다. 그걸 우리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모조리 살해하는 바람에 일대에 오크들이 씨가 말라버렸고.

“형, 그러면 이 근처 땅은 완전히 빈 거 아니에요? 제국이 먹어도 되는 거 아닐까요?”

하유진의 물음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불가능해. 괜히 과거 제국이 포기한 땅이 아니야. 오크들은 자신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꾸준히 병력을 보낼 텐데, 여기는 전부 평야에 가까운 지역이라 방어가 힘들어.”

성을 쌓을 시간도 안 줄 거다.

지금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오크와의 야전은 최악의 선택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손해가 막심하다. 비록 지금 비었다고 하더라도 제국은 결코 이 지역을 수복하려 하지 않을 거다.

하유진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우리는 올라가야 하는 입장이다. 하유진도 그냥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하루 거리 안에 존재했던 붉은 갈기 부족의 주둔지를 지나쳐 오크 영역 안쪽으로 향한다.

과거 기록으로나 보았던 영역이자 정찰대조차 거의 들어가지 않는 장소다.

“정말 하나같이 평원이군요.”

옛 지도를 바라보며 레이즈가 조금 아쉽다는 듯이 말한다.

“애초에 이 지역이 버려진 이유가 그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지형이 평원이고 대부분의 병사가 보병인 만큼 그나마 할 수 있는 기습이라고는 야습(夜襲) 정도였다. 대부분이 수성전을 전제로 한 보병 위주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궁병의 비율이 높은 것은 그나마 가진 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야습 효과는 일회성이고 최정예 전사 오크와 네임드 오크가 있는 이상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정예 길드원들을 통한 소규모 야습 이후 진지를 구축해 야전을 할 계획을 세웠다.

지형적 이점은 거의 없으나 진지를 구축하면 훨씬 나은 전투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쪽에는 마법 병단이 존재한다.

지노가드 성으로부터 약 2일 거리. 우리는 오크 지원군이 지나갈 길목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고 곧바로 임시로 사용할 진지를 구축했다.

위치 선정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저들이 야영할 위치를 예측해야 했으니까. 거리가 제법 되어 저들의 정찰병들이 우리를 발견할 수 없는 거리이면서도 나를 포함한 정예 길드원들이 한차례 야습 이후 후퇴가 가능할 만한 거리여야만 했다.

“여기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주기적으로 붉은 갈기 부족을 지원하던 오크들이 주로 중간 쉼터로 사용하던 위치를 정찰대가 미리 발견해둔 덕분에 적당히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동시에 마법사들이 하나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약 닷새의 시간이 남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진 자원을 아낌없이 전장에 사용했다.

궁병들을 위한 화살 탑을 지어 올린다. 장기간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전투는 한 번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높게 지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눈에 너무 띄어 버린다. 애초에 아주 높게 지을 시간도 없었고.

이전 매복과는 다르다. 그때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잡았지만 지금은 준비 기간만 5일에 가까운 만큼 더 많고 다양한 준비가 가능했다.

수많은 보조 마법진을 준비하고 마법사들끼리 뭉쳐 서로의 화력을 극대화할 포격 순서를 맞춘다. 마법사들이 올라가 싸울 망루라도 지으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집중 포격을 당해버릴 거다. 화살 탑만 해도 위험한 마당에 망루라면 네임드들이 작정하고 부수려 할 터. 하다못해 수많은 무기들이 투척되겠지. 그렇기에 피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증폭할 마법을 고르고 주력으로 사용할 마법들을 상의했으며 그들을 지키기 위한 병사들을 더 꼼꼼하게 배치한다. 괜히 처음 레이즈가 100명이라도 마법사의 지휘권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준비된 마법사는 정말 무서운 위력을 자랑한다.

제국의 마스터들은 되도록 마법사들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이쪽 길드원들은 경험치를 위해서라도 방어보다는 공격을 할 예정이었으니까.

절대 오크들이 마법사들을 비롯한 후열에 닿을 수 없도록 단단한 방어를 구축한다.

마법사들의 마법을 극대화할 여러 보조적인 준비를 마치고 동시에 함정까지 최대한 파 놓았다.

닷새 동안 쉼 없이 이어지는 방비에 남은주가 내게 물었다.

“신후 오빠, 차라리 이렇게 할 거면 성에서 막는 게 낫지 않아요?”

“우리 목표는 저들을 전멸에 가깝도록 만드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수성전은 추격도 불가능하고 무척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해. 하지만 이렇게 외부에서 준비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비록 임시 진지라고 부르기에는 무척이나 거대해져 버렸지만 근본적으로는 야전이다.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추격도 할 수 있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물러날 수도 있었다.

물론 이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상 승리는 거의 예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승리할 경우 추격할 계획까지 짜 둔 상황. 목표는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며 동시에 최대한 많은 수의 오크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기는 오크들의 영지야. 너도 알겠지만, 이 장소에 자리를 잡고 저들이 우리를 발견하는 이상 저들은 물러나지 않을 거야.”

어찌 본다면 그들의 영토에 대한 집착을 이용한다 볼 수 있었다. 병력이 몇 배나 차이 나는 것도 아니다. 겉보기에는 저들이 되려 우세하게 느껴질 거다. 중앙 전장도 아닌 곳에 마법사가 500이나 차출되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드니 물러나기보다는 전투를 택하겠지.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오크들 접근 중!”

길목을 감시하는 정찰병으로부터 정보가 도착했고, 이 소식은 곧바로 아군 전체에 퍼졌다.

나는 곧바로 레이즈를 만나 계획했던대로 움직인다는 통보를 하고는 마스터에 달한 길드원들과 나연 자매, 아멜리아를 데리고 오크들이 나타날 방향을 향해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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