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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01화 (201/317)

# 201

내가 먼저 보낸 연락에 황제는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황제 입장에서는 내가 수인 쪽 전선을 맡아 주기를 바랐을 거다.

상대가 수인뿐만이 아닌 무법자도 포함된 만큼 가장 무법자들을 잘 상대하는 우리들이 가장 효과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장소라는 점도 있었지만, 내가 그쪽으로 이동하면 황제와 협력해 비밀리에 괜찮은 무법자들을 회유할 발판이 되기도 하니 황제 입장에서는 내가 오크 쪽 전선으로 가겠다는 말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었다.

게다가 수인 쪽 전선은 오크 쪽에 비해 대비가 조금 부족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럴 뿐이다. 사방이 적인 제국의 특성상 기본적인 방비는 되어 있었다.

다만 수인들과 큰 전투를 치른 지가 제법 된 상황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미흡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 정도만으로도 사실 엄청난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무법자들과 연합한 수인들은 모든 수인이 아닌 과격파에 속하는 이들뿐이었으니까.

‘호(虎)족, 랑(狼)족, 저(猪)족 이었던가?’

호랑이와 이리, 멧돼지. 이 셋이 과격파에 속하는 수인들 중 가장 큰 세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인 자체는 수십 종류고 저들 말고도 많은 수인족이 과격파에 속하기는 하지만 저 셋이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전체 세력 중 절반이 조금 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모든 수인이 전투에 참가했다고 해도 오크보다는 떨어지는 편인데 과격파만 참가한 이상 내가 그쪽에 갈 이유가 없었다.

무법자들이 있기는 하나 그들은 가장 약한 세력이고 황제는 생포를 원할 테니 가 봐야 귀찮기만 했다.

물론 이번에는 1회차와는 다른 이유로 수인들이 준동한 만큼 과격파뿐만이 아닌 중립에 해당하는 수인들이 추가로 참전할 수도 있었다.

‘무공이 마법을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

인간의 마법사나 엘프의 정령사, 오크의 주술사. 이들은 하나같이 이적을 행사할 방법을 갖고 있었지만, 수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가 극히, 아주 극히 적었고 그 수준마저 형편없는 만큼 저런 기술의 등장이 상당히 위협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오크 쪽 전선은 크게 셋으로 분리된다.

가장 치열한 중앙 전선, 북서부에 가까운 지노가드 요새를 중심으로 한 지노가드 전선, 수인과 인접한 남서부의 애슐란 전선. 중앙에서 멀어지면 여러 자잘한 전투가 일어나는 변방이 있었지만 과거라면 모를까 현재 내 길드 수준으로 변방에 가는 것은 낭비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남서부의 애슐란 전선은 이름에서도 알다시피 애슐란 변경백이 영주로 있는 영지였다.

그쪽 전선은 수인들과 무법자들의 합류로 조금 넓어질 터였다. 그 외에도 수인과 인접한 남부 곳곳이 전쟁터로 변할 거다. 그런 만큼 이번 지원은 애슐란 전선과 남부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남쪽은 피한다.

‘중앙 또는 지노가드.’

가장 치열한 중앙과 변방에 비할 바는 아니나 중앙에 비하면 비교적 덜 위험한 지노가드 요새.

‘중앙은… 힘들어.’

대전사를 비롯해 다수의 주술사들이 포진한 가장 막강한 지역이다. 버틸 수는 있겠지만 상층과 다르게 중층에서 죽는다면 개죽음이다.

목표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성장하는 것이지 제국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었다. 공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보다는 경험치를 획득해 3차 전직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설령 패배하더라도 제국이 망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1회차보다 일찍 일어난 전쟁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국이 일방적으로 패배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내 호출에 일행과 정예 길드원, 마지막으로 마법 병단까지 집결했고,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무법자들이 사고를 쳐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알고 있을 겁니다.”

어차피 이쪽 동네에 크고 작은 전투는 흔하다. 그런 만큼 길드원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감돌기는 했으나 과한 당황이나 심각한 공포심은 보이지 않았다.

“저희 길드도 이번 전쟁에 참가합니다. 전쟁 자체는 위험하나, 동시에 레벨을 올릴 기회니까요.”

내 말에 정예 길드원들이 가볍게 웃음 지었다.

“하기야, 그렇기는 합니다!”

“뭐, 오크들과 싸우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던전만 돌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잘된 일 아닙니까?”

“최근 레벨이 잘 안 오르기는 했지. 장비나 스킬은 잘 챙겼지만.”

수성전이었지만 1년 이상 전쟁에 참가했던 이들이다. 그때부터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니 오히려 익숙하다면 익숙할 수도 있었다.

“다만, 이번에 갈 지역은 변방이 아닙니다.”

내 말에 길드원들이 침묵했다. 그들도 알 거다. 지금 우리들이 변방으로 가기에는 너무 커졌다는 것을.

“우리가 갈 지역은 북서부의 지노가드 요새.”

길드원들 또한 아는 곳이다. 비록 수성전이지만 전쟁에 참여해보았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가장 치열한 중앙과 북서부와 남서부의 핵심 지역인 지노가드 요새와 애슐란 성을 모를 수는 없었다. 건너건너 한 번쯤은 들어봤던 지역일 거다. 특히 애슐란 지역은 변경백 덕분에 상당히 유명하니까.

“우리는 그쪽에서 전투를 치를 겁니다.”

***

황제는 내가 지노가드 요새로 가겠다고 하자 그에 맞춰 북부 쪽 지원을 줄여버렸다.

내가 가는 이상 지원이 과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대신 교단 측에 연락해 일부 사제를 지노가드 요새에 더 파견하기를 요청했다.

교단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교단 또한 제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니 당연히 사제 자체는 여러 곳에 파견될 터였다. 다만 내가 성자고 주하연이 성녀인 점을 고려해 내가 가는 장소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지원자가 상당히 많을 테니까.

일반 길드원들과 산하의 길드원들이 변방 쪽에 참가하는 것은 허가했다. 단, 애슐란 지역이나 지노가드, 중앙 쪽은 당연히 참가를 금지했지만.

내가 지노가드 요새쪽으로 가게 되자 중앙 지역에는 아르테인 공작 본인이, 애슐란 전선과 남부에는 공작의 제자인 야마모토와 공작 휘하의 수련자들, 거기에 더해 무법자라면 이를 가는 대공 쪽 지원이 몰려들었다.

사실상 주 전선이 애슐란 전선과 남부가 되어버린 셈. 황제 또한 자신 휘하의 수련자들을 남부로 보냈으니 단숨에 다수의 전력이 몰려들었다 할 수 있었다.

지노가드 요새에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는 만큼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보다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웅성웅성.

우리가 이쪽을 지원한다는 소식은 이미 받았을 거다.

“성, 성자님이다.”

“성녀님도 계셔….”

“그 유명한 가이아 길드인가? 타 수련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던….”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마중을 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백작 각하. 지노가드 성의 책임자이자 사령관인 레이즈 지노가드입니다.”

책임자. 타 귀족들의 영지와는 다르게 북서부의 지노가드 요새와 중앙의 아라시안 성은 황제의 직할령으로 황제가 임명한 사령관이 임시로 성을 부여받는다.

본래 성이 있는 귀족이라도 이곳의 책임자가 된다면 자신의 성을 당분간 사용할 수 없었다.

레이즈 지노가드는 콧수염을 기른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하지만 마냥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마스터인가.’

중급. 나서윤이나 한바다보다 한 끗발 위로 보였다.

본신의 무력이 마스터에 달한 전사였으며 동시에 몸 이곳저곳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동시에 깊은 두 눈은 나와 내 일행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사령관. 유신후 백작입니다.”

“저희 지노가드 요새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와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말과는 다르게 레이즈는 별로 반가운 눈초리가 아니었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내 전력은 분명 성의 방어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가 이 성에 지원을 옴으로써 황제의 지원이 상당히 깎여버렸다. 게다가 나는 레이즈 휘하에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독립작전권.’

나는 내 멋대로 길드원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복잡한 전쟁터에서 하나의 명령체계에 따라 움직여야 할 군대가 둘로 나뉜다는 뜻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쪽이 메인이기는 하지만 내 쪽의 병력은 질이 무척이나 높았고, 동시에 그 귀하다는 마법 병단까지 갖고 있었으니 이곳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저쪽 못지않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단승위이기는 하나 고위 귀족인 백작이며 현 황제의 가장 큰 신임을 받는다고 알려진 수련자이고 동시에 성녀를 애인으로 둔 성자다.

단순히 사회적 위치만 보았을 때는 레이즈가 아래에 두기보다는 위로 모셔야 하는 입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단시간에 내가 얻은 명성이 크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의 사령관은 그인 만큼 실제로는 그럴 수 없었지만.

사회적 위치나 신분을 다 차치하더라도 지휘 체계의 양분은 저쪽이 나를 환영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수성전에 가깝긴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수성전이기에 더더욱 달갑지 않을 거다. 나는 레이즈의 입장에서 계륵이었다.

레이즈는 우리가 사용할 건물로 안내해 주었다.

“…별로 환영받지 못하네요.”

주하연이 조금 어색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대강 이유는 짐작하지만.”

사샤의 말에 대부분의 일행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부는 이런 분위기에 불만을 품은 모양이었지만 내가 가만히 있는 모습에 함부로 나서지는 않았다.

나는 일행과 길드원들에게 휴식을 명령한 뒤 곧바로 레이즈를 찾아갔다.

레이즈는 내가 찾아올 것을 짐작한 모습이었다.

도착하기 무섭게 이루어진 독대. 레이즈는 침착한 모습으로 손수 내게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나는 그런 차를 받는 대신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레이즈는 동요하지 않았다. 하기야, 내가 최상급이기는 하나 그도 중급에 해당하는 마스터. 동시에 지노가드 요새의 사령관이다. 고작 눈빛에 스러질 사람은 아니었다.“내가 달갑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희 지노가드 요새는 백작 각하를 환영합니다.”

“제가 독립 작전권을 손에 쥐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그래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니 말입니다. 특히 수성에 있어 마법 병단의 존재는 큰 힘이 되지요.”

게다가 성자와 성녀이시기도 한 만큼 사기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교단 쪽에서 사제와 그들을 지키기 위한 성기사 일부가 추가로 파견될 겁니다. 후방에서 회복에 전념할 테지만요.”

대부분의 사제가 그런 역할을 하는 만큼 이 점에 대해서 레이즈는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큰 힘이 될 겁니다.”

일종의 선물이다. 어차피 사제는 내 휘하에도 충분히 존재했다. 교단에서 파견되는 사제들은 순전히 지노가드 요새의 병사들을 위한 조치다.

나는 차를 조금 마시고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미안하지만, 이쪽이 독립 작전권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따로 행동합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어떻게 행동하실지 정도는 통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백작 각하도 아시겠지만,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군대는 무척이나 비효율적입니다.”

아마 내 움직임에 맞춰서 병력의 배치를 새롭게 짤 생각일 거다.

“물론입니다.”

레이즈는 조금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허락한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절반이라도 좋습니다. 마법 병단을 조금이라도 나눠 성 여러 곳에 배치하고 싶습니다. 철저하게 보호해 드릴 것은 약속드립니다.”

레이즈의 말은 상당히 무리한 부탁에 가까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쪽의 작전권에 개입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절반, 아니 100명이라도 좋습니다. 100명의 마법사가 성 이곳저곳에 배치된다면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아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성전의 효율이….”

레이즈는 조금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나 또한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가 괜히 마법 병단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실제로 마법 병단의 위력과 효용성은 지난 헬모사 지역 반파 이후 일어난 전쟁에서 충분히 겪어 보았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역… 네?”

“두 명의 마법사를 제외한 나머지 마법 병단은 애초에 사령관에게 넘길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조건은 있을 겁니다.”

레이즈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어갔다.

설마 모든 마법 병단의 지휘권을 넘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건이라는 말이 떠올랐는지 곧바로 입을 열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 행동 방침을 알려 달라 하셨었던가요. 그 또한 말씀드리죠.”

나는 아직 당황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레이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성 밖으로 나가서 오크들을 상대할 예정입니다.”

레이즈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오른 것도 잠시 곧바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게 무슨 미친…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이십니까?”

내가 애초에 지노가드 전선에 지원한 이유는 최대한 경험치를 벌기 위해서였다.

큰 위험은 피하면서도 최대한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지역으로 택한 곳이 이곳이었다. 그러나 수성전에 있어서 전사 쪽 인원은 하나같이 경험치를 얻기가 까다롭다.

그에 반해 마법사는 안전하게 무척 다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효율.

나는 천천히 내 계획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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