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96화 (196/317)

# 196

“…어린 계집아이의 입이 참으로 더럽구나.”

“…….”

왕춘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서윤을 비난했고, 야마모토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서윤을 노려보았다.

물론 말이 없을 뿐 무척이나 분노한 기색이다.

“왜, 사실을 말하니 찔려?”

평소 나서윤이 내게는 무척이나 살갑게 굴고 가끔 애교도 떨긴 한다만, 그건 나나 직속 파티원들에게나 하는 행동이다.

같은 길드원들에게도 거리를 두는 나서윤인데, 아예 타인이라면 얄짤 없었다.

“마탑의 기린아로군.”

“아아, 천재 소녀는 무척이나 유명하죠. 아, 이제 소녀는 아닌가?”

공작과 대공이 무척 흥미롭다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빠, 아니 길드장 님이랑 싸우고 싶으면 나부터 이겨. 물론, 그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나서윤은 어느새 상쾌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로군. 확실히 백작에 비하면 내 제자가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

“하기야 백작 휘하에 마스터가 둘이나 있는데, 바로 백작과 싸우는 것도 실례겠죠.”

공작과 대공의 반응에 왕춘과 야마모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와 싸워 이름을 날릴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정말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건가?’

내심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백작 각하, 만일 저 소녀를 이긴다면 각하께 도전할 수 있게 해 주시겠소?”

왕춘이 기묘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막 대꾸하려는 찰나 나서윤이 끼어들었다.

“꿈도 크네. 당신은 나 절대로 못 이겨, 늙은이.”

‘…진짜 열 받았나 본데?’

아무리 나서윤이 타인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막 나가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나를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는 것에 쓰려 한 것을 눈치채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연 씨. 저도 나서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한바다 씨?”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바라보았다.

“일단 제가 하얀 씨의 수호 기사니까요. 허락 정도는 받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차가운 얼굴로 대답하는 한바다.

일행을 쳐다보자,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군요. 뭐, 백작 각하께 도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야마모토는 나서윤과 한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만만한 모습.

‘공작가의 검술을 크게 믿는 모양이군.’

주변이 웅성거린다.

연회의 주인공을 비롯해 제국 제1검, 최초의 성자이자 새롭게 등장한 고위 귀족, 대장군 등 연회장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사가 모인 곳에서 갑작스레 싸움이 일어나자 주변의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내 일행이나 왕춘, 야마모토가 생각보다 적극적인 모습에 대공은 무공의 공개보다는 대련을 우선하기로 결정했고 연회장에서 뜬금없는 대련이 성사되었다.

귀족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쪽을 관찰했다.

“공작, 연회장이다 보니 마스터들의 싸움에 주변이 크게 상할까 걱정이 되네요.”

“걱정 마시지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대공 성의 연회장답게 공간적인 문제는 크게 없었다. 주변의 피해야 공작이 막아주기로 한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대공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주변이 정리되었다.

공간이 확보되기 무섭게 즉시 왕춘이 나서윤을 지목하며 앞으로 나섰다.

“나오거라. 오늘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나서윤은 그런 왕춘을 비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흐음… 뭐 상관없겠지.’

내가 나서서 왕춘을 자폭시키는 것만 아니면 된다. 어차피 갓 만들어진 신생 기술로 떠오른 강자. 나서윤에게 진다고 해도 타인이 보기에 무공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지는 않는다.

신생 기술인 만큼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하겠지.

나서윤 왕춘 앞에 서더니 장비들을 모조리 벗어 인벤토리에 수납해버렸다.

그리고는 평범한 검 두 자루를 꺼내 손에 쥐었다.

“…무슨 짓이냐?”

“당신을 상대하는 데는 이거면 충분해.”

아이템의 도움 없이, 순수한 자신의 능력으로 상대해 주겠다.

나서윤의 선언에 왕춘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다.

얕보는 수준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마스터에 올랐다는 자부심이 있던 왕춘을 취급조차 해 주고 있지 않았다.

‘…아예 평판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릴 셈인가?’

왕춘의 장비는 나서윤에 비하면 떨어지기는 했다만, 그래도 대부분이 슈퍼 레어급이었고 검은 전설급에 해당하는 무기다.

경지 또한 서로 초급 마스터로 같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서윤은 장비의 이점을 가져다 버렸다.

“덤벼.”

아마 나서윤이 무협지 좀 읽어 봤다면 3초를 양보해주겠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왕춘은 선공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본인이 도전자인 이상 어쩔 수는 없었는지 곧바로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촤악!

나서윤을 향해 검기가 날아든다.

‘비검기. 장비의 힘인가?’

나서윤은 철검에 강기를 두르고는 가볍게 비검기를 잘라버렸다. 왕춘 또한 이것이 나서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닐 거다.

검기를 날리는 것 정도는 마스터가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걸 쓰는 마스터는 없다시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의 소모가 너무 심하고 효율이 형편없었다.

검기를 날리는 기술의 살상 범위는 5m 정도에 불과하다. 강기와 다르게 검기는 허공에서 손쉽게 흩어진다. 허공에 마력을 방사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

그런데 방금 공격은 검기가 전혀 흩어지지 않았다. 온전한 위력을 보인 것.

그 사실을 눈치챈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좋은 검 쓰네.”

나서윤 또한 장비의 힘임을 알아챘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도 다시 장비를 들어라. 시간을 주마.”

왕춘이 차가운 얼굴로 나서윤에게 권했다.

“그러니까, 필요 없다니까? 너 정도 상대하는 데는.”

“…꼭 벌주를 마시겠다면 그렇게 하거라. 오늘 톡톡히 망신을 당할 것이야.”

나서윤은 대답 대신 마력을 끌어올림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나서윤은 오려와 마력을 동시에 다루는 마검사다.

오러와 마력의 장점만을 취한 특이 케이스인 셈.

‘검술은 왕춘이 위다. 능력치는 나서윤이 위. 하지만 나서윤은 마검사. 그것도 전투 중에 얼마든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숙련된 마검사다.’

장비는 왕춘이 위지만 왕춘이 장비한 아이템들 중 그나마 쓸만해 보이는 것은 저 검뿐이었다. 그 정도라면 나서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경험은… 나서윤이 위.’

마스터와의 대련 경험은 나서윤이 압도적일 터다.

대공가에 마스터는 제법 된다. 다만 왕춘이 마스터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마스터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연회가 열렸다.

마스터와의 대련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대공가의 마스터가, 마스터도 아닌 수련자와 자주 대련을 해 주었으 리도 없으니까.

그에 반해 나서윤은 비록 최근에 마스터가 된 것은 맞지만 왕춘보다는 명백하게 빨랐고, 마스터가 되기 이전부터 나와 많은 대련을 해 왔다.

파티원들을 팀으로 뭉치게 하고 대련을 한 적도 있었지만 개인으로 나와 대련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많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 자체는 나서윤이 확실히 앞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나서윤의 우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예상은 빗나갔다.

나서윤은 마법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순수한 검술로 왕춘에게 달려들었다.

안 그래도 왕춘 보다 높은 신체 능력을 내공보다 효율이 좋은 오러로 증폭한다.

거기에 마력을 동시 운용해 두 개의 검에 강기를 덧씌우고는 왕춘에게 달려들었다.

왕춘 또한 내공을 이용해 자신의 신체 능력을 증폭하고는 검에 강기를 뽑아내었다.

그리고는 나서윤의 공격을 차례로 막아내기 시작한다. 가벼운 탐색전.

움직임은 확실히 나서윤이 빨랐지만, 왕춘은 무척이나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나서윤의 공격을 막아냈다.

‘풍운보.’

분명 나서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하지만 왕춘은 검 한 자루로 두 개의 검을 무차별적으로 휘둘러오는 공격을 모조리 막고 피하고 흘려내었다.

검술이 앞선 것도 있었지만 나서윤이 예측하기 힘은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낸 횟수가 만만치 않았다.

“특이한 움직임이군.”

“보법이라고 하더군요. 그 또한 무공의 일부라고 들었답니다.”

아르테인 공작도 잘 아는 사실일 거다. 무술의 기반은 하체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무기술 스킬을 배우면 그 안에 포함되므로 따로 익히는 경우가 없다시피 했지만 슬롯이 남는 경우 배워 놓는다면 무척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공격 패턴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그쪽과 관련된 스킬은 직접 전수받지 않는 한에야 따로 배우는 방법이 없다시피 했다.

‘솔직히 크게 필요하지도 않고.’

어디까지나 왕춘의 움직임이 뛰어난 것이지 나서윤의 움직임이 지리멸렬한 것은 아니었다.

나서윤의 이도류 스킬도 전설이 코앞인 상황이었으니까.

“마법은 안 쓰는 게냐?”

차분하게 공격을 막아내던 왕춘이 묻는다.

나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빠르게 옆으로 회전하며 검을 옆으로 베고 연속으로 내리그었을 뿐.

왕춘은 회전해오는 검을 쳐내고는 내려긋는 검은 가볍게 피해내었다.

“그게 다라면 실망이구나. 입만 살았어.”

몇 차례 공방을 주고받았던 왕춘이 실망했다는 말과 함께 수세를 단숨에 공세로 전환시켰다. 나서윤은 순식간에 흐름을 빼앗겼다.

나서윤은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다.

긋고 찌르고 휘두르는 동작에 맞춰 나서윤이 두 개의 검으로 빠르게 막아낸다. 분명 속도도 느리고 검이 한 자루임에도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 공격에 나서윤은 좀처럼 반격의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흠.”

아르테인 공작의 눈에 작은 감탄이 어린다. 아직 숙련도가 부족한지 여러 곳에 빈틈이 보이기는 했지만 금세 매워질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보기에도 무척 괜찮은 검술이었다.

‘팔선무로군.’

도교의 팔선을 따 만들어졌다는 무공. 그중 1장인 검선의 장일 거다. 왕춘이 지구에서 수십 년 동안 익혔다는 검술의 정체다.

나머지 7장은 검술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기술들이기는 하지만 위력 하나만큼은 대단하긴 하다고 들었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저기 보이는 빈틈들도 마스터에 올라 아직 적응이 덜 끝났고 마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 시절의 습관들 때문에 보이는 것일 뿐 충분히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다.

검술 자체의 완성도는 괜찮았다.

‘저 수준으로 내게 덤비려 했다라….’

어이가 없었다.

아쉽게도 내 눈에 보이는 틈을 나서윤이 공략하지는 못했다. 막아내기에 급급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도 우월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반응하기에 큰 피해는 입지 않고 있었다. 검술이 부족해 연신 밀리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왕춘 또한 자신의 공격이 치명적이지 못한 것을 깨달았는지 표정이 조금 굳었다.

이렇게 밀어붙이다 보면 상대가 마법을 쓸 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조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나서윤은 연신 밀리는 와중에도 왕춘의 공격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었다.

‘흐음….’

정말 마법을 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법과 장비까지 사용했다면 상당한 우위를 바탕으로 찍어 누르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왕춘의 자존심을 뭉개버릴 요량인지 끝까지 검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자신감의 근원을 짓밟고 싶은 모양이었다.

왕춘의 표정이 조금의 동요가 스친다. 상대는 마검사다. 그런데 마법은 전혀 쓰지 않았고 심지어 장비마저도 평범한 철검 두 자루만 든 채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 유리한 것은 맞았지만, 그게 다다. 상대는 검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모조리 차단해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막아내기 급급하던 나서윤이 어느 순간부터인지 간혹 자신의 공격에 반격하고 있었다.

충분히 익숙해져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녕, 끝까지…!”

왕춘이 분노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화악.

왕춘의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몸이 약간 늘어나기 시작했다.

속도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빨라졌다.

내공을 폭발적으로 운용하는 모습이었다.

나서윤의 눈이 빛난다.

“흐읍!”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윤이 허공에 검을 찌른다.

“헛!”

‘정확하네.’

왕춘이 움직일 장소를 선점해 버렸다. 아마 그대로 움직였다가는 왕춘의 몸이 두 동강이 났을 거다.

공격의 맥이 끊겼다.

그간 왕춘의 공격을 관찰하며 빈틈을 상당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왕춘이 내공을 폭발시키며 보인 작은 틈을, 나서윤이 놓치지 않고 공략했던 것.

순식간에 흐름을 가져온 나서윤은 한층 빨라진 왕춘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의 공격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왕춘의 움직임을 모조리 읽었다는 듯이 대응한다. 절반 가까이 회피하며 나서윤의 공격을 막았던 왕춘은 현재 마치 발이 묶인 것 마냥 모든 공격을 검 하나로만 막아내야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왕춘의 손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공을 폭발적으로 운용하는 왕춘이었지만 나서윤 또한 오러를 최대한 운용하는지 이전과 마찬가지로 왕춘보다 되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게다가 왕춘의 보법이 반쯤 묶이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근력 또한 나서윤이 우위다.

쾅! 쾅! 쾅!

이전에는 반쯤 흘려내던 공격을 발이 묶이자 완전히 정면으로 대응하게 된 왕춘.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마검사에게 검술만으로 진다는 위기감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손해를 감수하고 내공을 거칠게 운용했고, 동시에 그의 검강이 일순 타올랐다.

나서윤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크게 휘둘러오는 왕춘의 공격을 피했고, 곧바로 반격하려는 찰나였다.

“연화(蓮花)”

팔선 중 하나인 하선고의 연꽃.

곧바로 왕춘의 몸 주변에 강기로 이루어진, 일그러진 꽃봉오리가 생겨나 왕춘을 감싸 안았다.

“연꽃은 무슨. 무지하게 못생겼어.”

나서윤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왕춘은 반응하지 못했다.

한껏 집중을 하는 모양새. 나서윤 또한 비웃기는 했지만 강기로 이루어진 꽃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저 틈으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왕춘의 모습이 완전히 강기 속에 파묻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연꽃이 그대로 펼쳐지더니 천천히 부서지기 시작한다.

“이런….”

공작의 얼굴이 굳는다. 강기의 파편이 사방에 퍼진다. 주변에는 무력이 없다시피 한 귀족들이 즐비했다. 그들에게는 강기 파편의 일부라도 치명적일 수가 있었다.

공작이 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리는 기척이 느껴진다.

“미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마력이 일대를 짓누른다.

일정 거리를 벗어나는 강기의 파편이 그대로 소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압도적인 마력의 운용이 나서윤과 왕춘의 대결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둘은 마치 아르테인 공작이 내뿜는 마력의 여파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왕춘은 그 강기 파편 일부를 끌어들이더니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수많은 강기의 파편이 나서윤을 공격해 들어갔다.

“쯧. 뭐 이런 쓸데없는 기술을….”

겉만 화려하다. 실속은 없었다. 낭비의 극치. 아마 이번 공격이 막힌다면 왕춘은 그대로 내공이 바닥나서 쓰러질 거다.

‘이런 기술이었나?’

솔직히 기대했었는데, 실망이었다.

나름 공방일체를 만들겠다고 나선 기술인 것 같기는 한데, 실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특정 형태의 호신 강기와 그 호신강기를 재활용해 강기의 파편을 형성, 반격의 재료로 삼는다는 방식인 것 같기는 하다만, 정말 쓸데없어 보였다.

마법을 끌어내기를 포기하고 오직 승리만을 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법을 쓰지 않는 나서윤에게 위협적이기는 하다. 전방위에 흩날리는 강기의 파편은 무척 위험하기는 하니까.

나서윤은 즉시 마력을 극도로 운용, 강기의 면적을 최대로 키웠다.

그리고는 사방을 향해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펑, 퍼펑!

부딪친 강기가 터져나간다.

왕춘이 최대한 조절한 강기의 파편이 연신 나서윤을 향해 날아왔지만 나서윤은 빠르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허공의 강기 파편을 지워나갔다.

왕춘은 생각보다 파편의 조정이 쉽지 않은지 연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 차라리 그냥 싸우는 것이 나았을 거다. 과거, 최고의 랭커라고 불렸기에 기대했거늘, 아직 한참 멀었다.

하기야 지금 시점에 과거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부터가 무리기는 했다.

다만 확실히 가능성은 엿볼 수 있었다. 그의 검술은 분명 4년 차 수련자라고 보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으니까. 나처럼 미래의 정보가 있는 것도, 내 일행들처럼 내 도움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이룬 결과다. 충분히 대단하기는 했다.

초조함에 패배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것만 아니었다면 평가가 더 좋았을 터다.

공작 또한 그 사실을 알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간 쓸모없었던 기술이 뛰어남을 알고 이름을 날리고 싶은 기분은 이해한다만… 멀었네.’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이 보였다. 보통의 수련자라면 그 뛰어남을 알 수 있겠지만, 비교 대상이 좋지 못했다.

어느새 파편은 나서윤이 대부분 처리해버렸고, 탈진한 왕춘은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승부가 나 버렸다.

그런 왕춘을 향해 나서윤이 차갑게 말했다.

“명성을 원하는 것은 알겠지만, 주제는 알아야지. 내가 마법 하나 쓰지 않아도 못 이기는 주제에 오빠에게 도전을 해?”

왕춘의 얼굴이 수치로 일그러졌다.

피식.

그런 왕춘의 모습에 야마모토가 비웃음을 흘렸다.

“나이 처먹고 명성에 목숨을 걸더니 꼴이 좋군.”

사이가 나쁜 왕춘이 망신을 당하자 그 틈을 노려 더한 수치를 주려는 모양이었다.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왕춘이 찢어 죽일 듯한 시선으로 야마모토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닐 텐데요?”

한바다가 그런 야마모토를 향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서윤이처럼 봐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나오세요. 당신 또한 교육이 필요한 듯하니까.”

야마모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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