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설마 대공이 직접 나를 마중하기 위해 나왔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미리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대공이 직접 맞이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보통 휘하의 다른 사람이 맞이하지.
아무리 명목상의 공국이라고 해도 나름 대공의 지위에 있는 이다. 게다가 황제가 내심 경계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가진 이인데, 그런 그가 직접 성문까지 나와 맞이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에실디아 다이딘 대공. 다이딘 공국의 지배자이자 30대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대공가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다.
게다가 휘하의 인재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린 사람으로도 유명하고.
‘남편이 열둘이었지, 아마?’
이전 남은주에게 장난삼아 했던 발언인 남편 한 다스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전 초대 때는 안 와줬으면서 아르테인 공작이 부르니 이렇게 바로 오다니, 솔직히 조금 서운하네요.”
언제 봤다고 서운하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만, 그때는 무척 바빴습니다. 서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농담이었답니다.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던 대공은 정말 장난이었다는 듯이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말투조차 대공이라는 작위치고는 무척이나 가볍다. 수련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것일 테지.
‘저런 거에 넘어갔다는 말이군.’
30대라고는 했지만, 대공은 무척이나 동안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20대라고 봐도 무방할 외모였고, 덕분인지 수련자들 중에서는 대공을 동경하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었다.
오죽하면 대공에게 반해 공국에 투신한 수련자들을 모으면 천인대가 하나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실제로 대공과의 결혼에 성공한 수련자가 없지는 않았다. 열네 번째, 열여섯 번째였던가?
덕분에 중국 쪽 문파들을 모조리 잘라낸 후에도 대공의 휘하에 수련자는 무척이나 많았었다. 물론 모두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만으로 공국에 투신한 것은 아니고, 나름 대귀족 중 하나인 덕분에 그 세력에 반해 들어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다.
‘…그런 것치고는 남자가 무척 많았지만.’
다이딘 공국.
인간이 하나의 국가로 뭉칠 필요성을 느끼고 당시 가장 큰 왕국이며 인류 국가의 통합을 주도했던 오바엘도 가문을 중심으로 뭉쳤을 당시 나름 왕국이었던 가문이다.
다만 이대로 가다간 인간이 멸망당할 상황이었고, 대부분의 국가가 통합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스러져가자 어쩔 수 없이 인류 국가 통합에 찬성하고 제국의 이름 앞에 충성을 맹세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은 왕가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다이딘 왕가는 대공가로 그 이름을 격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공국도 명목상 공국이지 사실상은 공작령과 큰 차이는 없었다. 자치권? 이름만 공국이고 자체 법률이지 사실상 제국법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전 왕가에 대한 예우로 공국의 지위와 대공이라는 이름을 허락했을 뿐이다.
그 증거로 전 왕가가 몇 가문 있었지만, 현재까지 대공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은 다이딘 대공가문 뿐이었다. 공국이 망하고 단순한 영지로 격하된 것. 심지어는 멸망해버린 가문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 잔재가 아예 없지는 않아서 대공이 현재의 강한 세력을 이루는 것에는 전 왕가라는, 비록 오래전 일이기는 하나 그 전통성의 영향이 없지만은 않았다.
역대 대공들은 하나같이 현명한 편이었기에 과거의 봉신가들과 연을 끊지 않았고 제국의 역사 속에서도 다이딘 대공가는 지금처럼 전성기는 아닐지언정 만만히 볼만한 세력이었던 적은 없다시피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제국 내에서도 황가를 제외하면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었고.
제국의 태생이 힘으로 타 국가를 완전히 병합했다기보다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황가의 권력이 황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수준인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현 황제, 아니 대대로 황제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황가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나름 기회가 온 편이기는 하지만.
“피곤할 텐데 오늘은 푹 쉬어요. 최고로 좋은 방들을 준비해 놓았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연회는 꼭 참가했으면 해요. 마침 내일이 마지막 세 번째 무공을 공개하는 자리랍니다. 아, 무공은 알죠?”
“물론입니다. 대공 전하 휘하의 수련자들이 성과를 내었다고 들었습니다.”
“알고 있었군요. 연회에 관심이 없는 듯해서 걱정했는데….”
“관심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휘하의 길드원을 보내지도 않았겠지요. 다만 저 자신이 무척 바빴습니다.”
“그렇다더라고요.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닌다던데.”
빙긋 웃는 대공. 그러나 눈만큼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연회 도중에도 내 행적을 조사했군.’
뭐,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었다. 나름 신흥 귀족이자 신흥 세력의 우두머리이니까. 아마 꽤 오래전부터 내 정보가 여러 귀족들에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게다가 연인은 있지만 정식으로 혼인도 하지 않았고, 영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
비록 내가 수련자고 지금껏 보여왔던 행보는 귀환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렇더라도 한 번쯤 찔러보고 싶을 정도로 크기는 했다.
대공의 입장에서는 열세 번째 남편으로 맞으면 최고고, 아니더라도 대공 휘하로 끌어들일 작은 틈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다. 성공하면 아주 대박이고.
물론 이 모든 것을 황제가 두고 보기만 하지는 않을 거고 아마 타 세력이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면 황제로부터 제법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공은 지금 그런 것을 다 감수하고 저러는 것이었다.
무공이라는 좋은 카드를 얻었으니 황제도 일방적인 압박을 하기가 힘들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한 번 찔러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나도 한 번 정도는 제안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 봤자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무공이 있더라도 그러한 접촉은 한계가 있으니까. 과하게 귀찮게 할 수는 없다.
아르테인 공작이라는 변수 덕분에 이 시점에서 얼굴을 보게 된다는, 뜬금없는 일격을 당해버렸지만.
“그래도 한숨 돌리기도 했고 두 분이 같이 부르시니 차마 거절하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요. 피곤할 텐데 너무 오래 붙잡았네요. 캠볼? 백작을 쉴 곳으로 안내하도록.”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전하.”
“그래요. 내일 보도록 해요.”
대공을 향해 고개를 숙인 나는 일행과 함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에 들어오기 무섭게 주하연이 불만을 내뱉었다.
“…저거 뭐죠? 대공이라는 사람이 뭐 저런….”
“와… 신후 오빠, 진짜 저게 대공이라고요?”
“…마음에 안 들어.”
“대공 맞아. 진짜 마음이 있어서 찔러보는 것은 아냐. 예상하고 계실 텐데요. 그냥 제 세력이 탐나서 그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럴 거 같기는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네요.”
“이해합니다.”
주하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만 해도 중요한 멤버이기는 하나 일개 파티원이었던 남은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인 이성훈이 나타나자 빠르게 손을 썼을 정도였으니까.
‘천의 얼굴.’
에실디아 다이딘 대공을 뜻하는 수식어다. 저 수식어는 외모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대공이 상황에 따라 보이는 태도. 그것을 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내 앞에서는 저런 모습을 보였지만 다이딘 대공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적과 아군, 이성과 동성, 이용할 수 있는 자,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자, 거래 관계인 사람, 호감을 얻어야 할 사람, 미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 등 대상에 따라 대공의 태도는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순식간에 변한다.
이는 일행들도 알고 있는 사실일 거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정보기는 하지만 황실 정보 단체의 도움을 자주 받았던 내 파티원들의 특성상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다. 다만 그녀가 내게 보인 태도가 무척이나 거슬렸다는 표현일 뿐이다.
나는 그런 일행을 적당히 달랬다.
대공이 내어준 숙소는 본인의 장담대로 무척이나 편했다. 숙소도 숙소지만 나와 일행의 시중을 들어주는 이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는지 상당히 세심하면서도 과하지 않는 선을 지키며 최대한 우리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
이윤형을 불러들여 그간의 정보를 확인했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자신의 제자를 연회에서 발표해버린 공작은 이후 연회에 꾸준히 참석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행동은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얻은 정보라면 야마모토는 공작의 딸 중 하나와 약혼을 했다는 것과 야마모토와 왕춘 노사가 별로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는 것 정도다.
실제로 결투 내지 대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신경전 정도는 하는 편이라고.
대공의 배려로 하루를 푹 쉰 덕분인지 다음날 연회에 참석한 일행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린 모양이었다.
내가 연회장에 입장하기 무섭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분이….”
“얼마 전에 성자가 되었다고… 옆에 계신 분이 성녀인가?”
“아니, 다른 분이야. 그 옆은 최근에 그… 있지 않은가. 수호 기사지만 그, 왜 새로운….”
“아, 새로운 애인.”
“마스터인데 역사상 최초의 성자까지 된 덕분에 백작위에 올랐다지?”
“수련자가 제국에 나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수련자 출신 고위 귀족이….”
사방이 웅성거린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나오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인지 시선이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두 명의 대귀족이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었으니까.
“어젯밤은 잘 지냈나요? 백작.”
천의 얼굴, 다이딘 대공과.
“처음 보는군. 반갑네, 백작.”
제국 제1검, 아르테인 공작. 둘은 내가 등장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다가왔다. 아르테인 공작은 중년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노화가 상당히 억제될 텐데도 불구하고 저런 모습이라는 것은 본인의 나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 시점이면 70을 넘겨 80에 가까워지고 있을 터다.
본래 연회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다이딘 대공과 제국 제1검이라 불리는 아르테인 공작이 이렇게 일찍 연회장에 나와 있다는 것도 신기 한데, 나를 먼저 찾아왔다. 그만큼 둘의 몸이 달아올라 있다는 뜻이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것이 조금 짜증 나는데.’
다이딘 대공도 그렇고, 아르테인 공작도 마찬가지다. 다이딘 대공은 임명식 때부터, 아르테인 공작은 기술 교류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나를 유혹했으니까. 결국 이렇게 대면까지 하게 되었으니 얼마 안 있어 밝히기는 하겠지만.
“대공 전하와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과한 예는 괜찮답니다. 수련자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배려 감사드립니다. 전하의 배려 덕분에 어제는 푹 쉬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아르테인 영지에도 들르게.”
“감사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와중 또 다른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결국 왔군. 기왕이면 나와 함께 가는 것이 좋았을 텐데.”
“큘리스 장군님.”
큘리스 대장군. 그 또한 내가 대공, 공작과 인사를 나누자 곧바로 내게 접근해왔다.
덕분에 내 주변에 대공, 공작, 대장군이라는 대단한 인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게 되어 버렸다.
덕분에 어지간한 귀족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슐란 변경백까지 왔으면 1회차의 3대 대귀족이 몽땅 모였겠군.’
애슐란 변경백은 아쉽게도 연회에 참석하는 대신 휘하의 대리인만을 보낸 상태였다.
1회차와 다르게 변경백은 하층 중 하나를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하고 황실과 반을 나눈 덕분에 수련자들의 수가 부족한 상황이었고 무법자들을 한 번 받아들여 영지에 큰 피해를 입고 무법자들이 제국에 자리 잡는 것에 최초로 일조한 덕분에 지금 연회에 직접 참석할 상황이 아니었다.
황실의 견제를 견디는 것만 해도 벅차다. 그 때문에 여기에 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대가 이곳에 참석했다는 것은 이윤형 경을 통해 알려온 대로 기술 교류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봐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무공도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제국 제1검께서 수련자를 제자로 받아들여 짧은 시간 만에 마스터의 경지에 올린 방법이 무척 궁금하더군요.”
“더 짧은 시간 만에 스스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네가 할 말은 아니군.”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기에 더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요.”
“후후. 그렇겠지.”
가볍게 웃는 공작을 바라보며 나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랜드 마스터.
그 힘의 깊이가 제대로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건 못 이겨.’
1회차 시절, 괜히 랭커들이 그 앞에서는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않았는지 알만했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가끔 보이는 동작이 반 박자 늦게 인식된다. 사소한 행동에도 저절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저것에 별다른 의미가 있지 않다는 것은 안다.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다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인식이 늦는 것일 뿐.
게다가 분명 몸이 단련되어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느낌이 조금 이상한, 희미한 기척의 평범한 인간이 서 있는 감각만이 느껴진다. 그런 주제에 눈으로 보면 딱 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 그 괴리감이 엄청나다.
마력과 같은 특유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마치 텅 빈 인간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한바다와 나서윤 또한 그러한 것을 느꼈는지 한껏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공작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나 말고 마스터에 도달한 수련자가 둘이나 더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나만을 향해 있었다.
“흐음… 과연. 보통의 수련자는 아니로군. 확실히 달라….”
“공작.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기술 교류는 같이하기로 했는데, 백작을 홀로 독차지하다니요.”
“이런. 실례했습니다. 대공 전하. 저도 무인인지라 수련자들 중 가장 뛰어나다는 백작을 보니 저절로 흥미가 일어나지 뭡니까.”
“이해는 하지만 소외된 기분이라 기분이 좋지 못하네요.”
“하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뼈 있는 대공의 말을 공작이 가볍게 흘려 넘긴다.
그 사이에서 큘리스 대장군은 말없이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마 모든 대화와 행동은 그를 통해 황제에게 그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대공과 공작은 그딴 것은 예상했다는 듯이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본격적인 교류를 하지 않는 이상 보이는 것은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니 보여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기술 교류라고 하긴 했지만, 각자가 가진 것이 다르죠. 먼저 가진 것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먼저일 거라고 생각하네요.”
빙긋 웃으며 말하는 대공.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전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공작.
“물론입니다.”
나 또한 동의를 표했다.
만약 내가 힘이 없었다면, 황제와 연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대공의 세력은 황제보다 아래일지언정 무시받을 수준은 아니다. 공작의 무력은 홀로 내 길드를 부술 수 있을 수준이며 동시에 수많은 무인들의 지지를 받는 이였다.
내 길드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제국에서 손꼽히는 저 둘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랐다.
‘황제의 비호가 아니었다면 기술 교류라는 명목하에 동등한 입장에 서지도 못했겠지.’
내가, 그리고 수련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기는 했다만, 수백 년 동안 제국에서 힘을 축적해온 귀족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괜히 정치판을 피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빨리 강해져서 챙길 것만 챙기고 중층을 벗어나는 것이 베스트였지만, 강해질수록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번뿐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더 이상의 교류는 피해야 한다.
내가 명성을 쌓고 세력을 이룬 것은 내 목표를 방해하려는 이들이 내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지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끼어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번 일은 충분히 끼어들 가치가 있었지만.
“전하의 세 번째 무공은 잠시 후 공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맞아요. 곧 있으면 증명이 되겠죠. 앞서 두 무공은… 원한다면 따로 보여 드리도록 하죠, 백작.”
“감사합니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내가 무공에 관심이 아예 없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었기에 조용히 감사를 표했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보여 드리죠. 직접 보는 것이 나을 겁니다.”
대공은 곧바로 휘하의 기사에게 명령했다.
“야마모토를 데리고 오도록.”
야마모토 하지메.
‘잘 되었군.’
직접 본다면 능력치와 스킬을 살필 수 있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