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93화 (193/317)

# 193

체스토크 아르테인 공작. 제국 제1검. 그랜드 마스터에 들었다고 알려진 제국 제일의 검사이며 오크족 대전사와 1:1로 겨룰 수 있는 인간의 탈을 쓴 재앙이다.

1회차 시절, 그는 내가 상층에 진출할 때까지 살아 있었고 제국 제일의 검으로써 그 자리를 유지해왔다.

그런 그에게 수련자 출신의 제자 따위는 없었다. 확실히 기억한다. 그런 자가 있었다면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랭커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세 괴물 중 하나였고 황제가 경계하면서도 쉽게 쳐낼 수 없는 존재였다.

황제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제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도 없었다. 사방이 적 내지는 잠재적 적국인 마당에 함부로 전력을 잘라내기 시작했다가는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수련자라는, 자신의 다른 세력을 키워 자연스럽게 그를 완전히 제 휘하로 둘 방법을 준비했을 거다.

애시당초 무에 목숨을 건 아르테인 공작이 황제가 경계하는 세 대 귀족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를 흠모하고 추종하는 자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고 그 세력에 가담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싶었던 기회주의자들이 그 아래로 끼어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자들만 처리한다면 아르테인 공작은 자연스럽게 황제 휘하의 그저 그런 귀족이 될 거다. 본신의 무력이 뛰어나니 타 귀족들과 차별화는 될 거고 중히 쓰이기는 하겠다만 지금처럼 황제가 견제하는 귀족은 아니게 될 테지.

‘1회차에서는 수련자들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 이전 나를 초대했던 행동이나 수련자들을 끌어들이는 모습은 공작 본인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1회차 시절 수련자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잘 써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르테인 공작 본인이 한 것이 아닌 그 휘하의 우수한 기회주의자들의 작품이었다.

‘딜리드 자작.’

그의 공적이었다.

아르테인 공작은 수련자들에게 흥미를 갖지 못했고 그들을 제자로 삼기는커녕 휘하 기사나 가끔은 병사들에게도 베풀었던 가르침을 수련자들에게는 단 한 조각 베푼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 그가 제자를 들여?

심지어 그 경지가 마스터? 이 시기에?

미래가 변할 수는 있었다. 그간 내가 한 짓들이 한둘이 아닌데 어떻게 아예 안 변할 수가 있을까. 그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마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나처럼 재능있는 이들을 골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며 키운 것도 아니고, 그저 제자로 받아들여 1년 남짓 가르쳤을 뿐인데 마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경우다.

‘도대체 왜?’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왜 그런 제자를 굳이, 다이딘 대공의 연회장에서, 심지어 직접 나타나 밝혔는지 의문이었다.

기껏해야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견제 정도인데…. 아르테인 공작이 갑작스럽게 수련자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를 모르겠다.

단순히 세력의 이름으로 아르테인의 이름을 쓰는 거라면 모를까, 그를 직접 움직이는 것은 공작 스스로가 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제국 제1검이라고 하더니, 대단하긴 하네요.”

“그러게요 하연 언니. 마스터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닌데… 우리 길드 내에서도 바다 언니까지 포함해 겨우 세 명만 되었을 정도인데 말이죠.”

“당황스럽네. 무공이니 뭐니 하면서 마스터가 나왔다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공작의 제자라니….”

“그래도 신후 오빠가 황제에게 요구한 것이 도움이 되기는 하려나 봐요. 거주민에게 가르침을 받아 마스터가 된 경우가 등장할 정도니까요.”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기는 하지만.”

그건 그렇다. 게다가 수련자의 방식이 아닌, 거주민의, 그것도 전통적인 방식인 만큼 오래 걸릴 것이라 예상했고, 수련자의 방식과 섞어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라 다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간도 무척이나 짧았다. 물론 제대로 확인을 해보기는 해야 하겠다만, 가르친 사람이 그랜드 마스터인 아르테인 공작이고 아마 가르친 기술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가 제자라 칭한 만큼 어쩌면 공작가의 비전을 가르쳤을 가능성도 0은 아니었다.

진짜로 가문의 비전을 배웠다면 가문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나름 천재로 알려진 인간인데… 잘도 가르쳤군.’

천재가 가르치는 것 또한 잘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을 텐데, 특이하다. 무엇보다 제자가 수련자다. 시스템의 보조를 받기에 강해지는 방식이 거주민들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스터로 만들어 냈다.

“그 제자의 이름이 뭐죠?”

“야마모토 하지메… 라고 했습니다.”

‘잘도 찾아냈군.’

그 또한 1회차의 랭커다. 하기야 그 정도 재능이 없었다면 아무리 스승이 공작이라고 한들 이 짧은 시간에 마스터가 될 수는 없었을 거다.

‘하나씩, 튀어나오기 시작하는군.’

오롯이 나와 내 길드만이 중층의 수련자를 대표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제법 재능있는 이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도 내가 독보적인 것은 여전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휘하에 미래의 랭커 중 충분히 함께할만한 이도 둘이나 끌어들였고 나와 내 휘하의 파티는 여전히 모든 수련자들 중에서 최강이며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다만 이제는 하나둘 쫓아오는 이들이 생긴다는 것일 뿐.

충분히 예견했던 일이다.

‘일본 쪽까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예상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그건 일행들도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이윤형이 조심스럽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아르테인 공작이 길드장 님께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아르테인 공작이 말씀입니까?”

“네. 용건도 한꺼번에 말씀해 주셨는데… 그게….”

어색한 얼굴의 이윤형. 그가 조금 얼떨떨하다는 듯이 말했다.

“기술 교류를 하고 싶으시다고….”

“…기술 교류?”

“네. 그렇습니다. 아르테인 공작이라는 분은 수련자들에게 깊은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 가이아 소속 수련자들, 대공 휘하 수련자들이 새로 만들어낸 기술인 무공 등을 모두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술 교류를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다이딘 대공 쪽은 뭐라고 합니까?”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자신의 연회에서 오롯이 다이딘 대공 쪽이 받아야 했을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셈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좋아한다고?

‘이상한데….’

성녀 임명식 때의 일이 생각나 조금 찜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기술 교류라는 말이 무척이나 끌린다.

무공에는 관심 없었다. 하지만 아르테인 공작이 야마모토를 빠른 시간 안에 랭커로 만든 비전이나 방식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건 잘만 하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방법일 테니까.

이번에도 무시하기에는 미끼가 너무 컸다.

‘게다가 장비도 조금은 챙겼고.’

전부를 챙기려면 한참 멀었다만, 그래도 근시일 내에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곳은 털었다. 아주 급한 불은 끈 셈.

게다가 이런 식으로 수련자들의 이목이 이쪽에 크게 집중된다면 되려 던전들은 안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애초에 발견만 되지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타 귀족들이 던전을 발견하고 접근을 막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독립 작전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접경지도 아닌 곳을 영지의 주인이 틀어막으면 내가 그 던전을 찾아갈 명분이 부족하다. 한두 번이라면 모를까 계속은 불가능. 독립작전권이 그 정도로 만능은 아니었다.

그렇게 발견되어 통제만 되지 않는다면 클리어 당할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던전을 클리어할 수준이 되는 것은 우리 길드와 지금 저쪽에서 온갖 이목을 끌고 있는 마스터 둘 정도다.

물론 그들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많은 지원과 엄청난 길드원들의 희생이 뒤따라야 가능할 터다.

일행은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기다려 주었다.

“…가봐야겠네요.”

고민을 거듭해 보았지만 가는 것이 좋아 보인다. 무엇보다 갑자기 왜 아르테인 공작이 수련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는지도 궁금하고 기술 교류라는 명목으로 어느 정도의 정보를 풀지는 모르겠지만 밑져도 본전이다.

아마 아르테인 공작은 나에게도 상당히 관심이 있을 거다. 그러니 초대했겠지. 애초에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마음을 변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어찌 되었든 나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내가 회귀함으로써 1회차와 2회차가 달라진 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내가 알려줄 기술의 교류라고 해 봐야 수련자의 특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놓는 정도다. 이건 시간만 지나면 결국 알려질 사실들이다. 그걸 조금 더 빨리 알리는 것이 다일 뿐.

그에 비해 아르테인 공작이 가진 정보는 시간이 지난다고 알려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의 제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테고 비전 기술이 그리 쉽게 유출될 리도 없었다.

무공이 대부분 쓰레기임이 차차 밝혀진다고 생각했을 때 이번 기술 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아르테인 공작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 쪽 정보를 내줘야 하기는 하지만, 궁금하기는 하네요. 아르테인 공작 쪽은 무공과는 다르게 검증이 된 비전으로 키웠을 거 아니에요?”

수련자들이 만들어내 실질적인 역사도 짧고 그 증명이 부족한 무공과는 다르게 아르테인 공작가는 역사도 깊고 체스토크 아르테인 공작을 포함해 여러 뛰어난 전사를 다수 육성해낸 가문이다. 신뢰성이 달랐다.

“오빠가 원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네. 그게 우리랑 길드에도 결국 도움이 되니까. 나도 오빠가 모아온 정보랑 시행착오 덕을 많이 봤고.”

“확실히 신후 님이 그간 해온 일들 중 쓸데없는 것은 없었죠.”

내가 무공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게, 거주민들의 비전이나 기술은 상당히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행들은 내 선택에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이 미뤄지는 것은 조금 아쉽네. 최근 흐름 엄청 탔었으니까. 신후 오빠랑 나연 언니는 아직 제대로 뭘 얻지도 못했는데….”

“나는 괜찮아. 레벨도 올랐고… 그리고 이대로 아예 끝난 것도 아니니까.”

나연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대공과 공작에게 제가 기술 교류에 참석할 의지가 있다고 말을 좀 전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찾아가겠다는 말도 함께.”

“알겠습니다.”

나는 이윤형에게 전령 역할을 시켰고 아르테인 공작의 동태도 꾸준히 확인하라는 말을 남겨 놓았다.

황실 정보 길드를 통해 알아보기는 하겠지만 현장에서 믿을만한 이에게, 게다가 확실히 우리 길드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로부터 받는 정보도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이윤형을 떠나보낸 뒤 일행에게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이번 휴식을 끝으로 던전행은 잠정 중단하겠습니다.”

내 선언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이야기를 들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하연 씨는 바로 황실 정보 길드를 통해서 정보를 좀 모아주세요. 아마 그쪽도 아르테인 공작 관련 정보를 최우선적으로 수집하고 있을 겁니다.”

꾸준히 그쪽을 통해 정보를 얻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수련자가 아르테인 공작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했다는 뜻이다. 황실 정보 길드도 급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후환이 남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황제를 찾아 이야기를 전하자 되려 황제는 무척이나 반기는 눈치였다.

“그대가 이번에도 가지 않겠다 했으면 무리해서라도 부탁할 작정이었네. 되려 가겠다고 해 줘서 고마울 정도군.”

황제는 내가 그들과 교류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다이딘 대공의 무공도 모자라 이제는 아르테인 공작의 제자 육성까지. 수련자들의 세력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그쪽에서 얻은 것들이 있다면 도움을 받고 싶군. 최근 페소타 쪽에서부터 나온 수련자들이 노력하고 있긴 하다만 그대들에 부족하면 아직 많이 모자라니 말이야.”

아직 무법자들의 전향은 받지 못했지만 페소타 쪽에서 흘러나온 수련자들은 하나둘 황제 휘하에서 성장하는 와중이었다.

게다가 황제 휘하에는 독일의 수련자들마저 있으니 이런 정보가 더더욱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금씩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모든 정보를 푼 것은 아니니까.

나는 황제의 요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이들이 커지면 황제에게 힘을 실어주긴 해야 하니까. 균형을 생각하면 적당히 도와줄 필요는 있었다.

내가 성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황제가 여러 역할을 하게 될 테니까.

물론 공짜로 도와주지는 않겠지만.

황실 정보 길드를 통해 얻은 야마모토 관련 정보들은 아쉽게도 많지 않았다. 일본 쪽 수련자들을 휘하로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야마모토를 제자로 받은 것 같다는 ‘추측’과 몇몇 재능있는 이들은 정예병 훈련이나 기사단 훈련에 가끔 ‘참관’시켰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그나마 전체적인 평가 정도는 있었는데, 아르테인 공작령에서 일본인 수련자들의 평가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법자들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기도 했고 크게 공작령에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던 덕분인 듯했다.

일본 쪽의 길드가 두 개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나름 서로 잘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일단은 가 봐야겠군.’

그쪽이 적극적일 때 빼먹을 수 있는 것은 빼먹는 것이 좋았다. 무공이 생각만큼 엄청나지 않다는 사실이 당장 밝혀지지는 않겠지만 아르테인 공작이 직접 본다면 혹시 모른다. 가능성은 낮겠지만.

받은 정보를 확인한 이후 나는 일행과 함께 곧바로 다이딘 공국으로 이동했다.

***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반가워요 백작. 생각보다 미남이네요.”

“…….”

“아, 백작보다는 성자님이라고 부르는 걸 원하나요?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 수도….”

“아닙니다. 대공 전하. 백작이라고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성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가이아 길드의 유신후 백작입니다.”

“나도 만나서 반가워요. 유신후 백작. 그간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답니다.”

다이딘 대공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에실디아 다이딘 대공.’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30대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

어린 나이에 대공의 작위를 받았음에도 흔들림 없이 공국은 운영하고 나아가 수많은 귀족을 휘하로 받아들여 제국 내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세력을 지닌 대귀족.

그런 그녀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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