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90화 (190/317)

# 190

다이딘 대공

성녀 임명식의 당일. 주하연은 화려한 복장을 한 채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하얀 신관 복장은 실제 입는 옷보다는 예복에 가까웠기에 금실과 황금으로 만든 장식품들이 화려하게, 하지만 과하지는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고, 동시에 은은한 신성력이 옷 자체를 감싸고 있었다. 덕분에 단순히 화려함만이 아닌 신성한 느낌까지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복장과는 다르게 주하연은 무척이나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런 주하연의 모습을 보며 마리에다 추기경이 가볍게 말했다.

“어디까지나 요식 행위에 불과합니다. 주하연 성녀님과 유신후 성자님은 이미 성흔을 멀쩡히 활용하고 계시기에 이런 요식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자와 성녀가 아니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국 전역에 그 사실을 알리고 교단 내에서 제대로 된 대우와 권한을 드리고자 하는 일일 뿐입니다.”

권한과 대우를 위해 하는 거라면 이미 요식 행위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주하연을 위해 최대한 가볍게 말하는 모양이다.

“그, 그렇군요.”

그렇다고 해도 황실과는 조금 다른, 묘하게 신성하고 거룩한 주변의 분위기에 되려 불안해진 감정이 멀쩡해지지는 않았다.

성녀 임명식은 여러 절차가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중간부터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 내내 주하연은 긴장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주하연의 손을 가볍게 잡아 주었다.

“그냥 몇 번 듣고 연습했던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별거 없어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주하연은 조금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곧바로 진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모습이다. 그런 우리를 마리에다 추기경이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쪽 종교에서는 딱히 결혼이나 중혼을 금하지 않으니 우리의 이런 모습이 무척이나 기꺼운 모양이다.

앞 순서들이 끝나고 곧이어 선대 성녀들과 성인들을 추모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여기서부터는 주하연이 참여해야 한다. 본래라면 나 또한 같이 가는 것이 간단하고 편했지만, 대신전 측에서는 시선이 분산되는 것을 막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성녀 임명식에 둘이 동시에 서는 것 자체가 전례가 없기도 했고.

“그럼 성녀님을 모시겠습니다.”

요도림 추기경의 말에 주하연이 조심스럽게 입장했다.

웅장한 찬송가와 함께 사방에서 강한 신성력의 파도가 일어난다.

여러 신관들이 신성력을 내뿜으며 주하연이 가는 길을 축복했다. 그 수가 열이 넘었고 하나같이 주교급에 이르는 이들이었다.

현재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귀족들과 신관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이다.

곧바로 기다리던 교황의 앞에 주하연이 멈춰 섰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진다.

천천히, 교황의 입이 열렸다.

“역사상 최초로, 한 세대에 두 명의 성녀가 등장했습니다.”

교황의 입이 열리고 천천히 주하연이 성녀가 된 과정이 하나씩 밝혀진다.

티드린드 영지에 도착했던 일, 그들의 의뢰, 놀의 성지를 발견했던 일, 7대 성녀를 만나고 본인은 7대 성녀로부터 성흔과 힘을, 남은주는 성녀의 수호자로 불리는, 수호 기사의 힘을 계승한 일, 그리고 놀들에게 걸려 목숨을 걸고 빠져나갔던 일들이 교황의 입에서 하나씩 흘러나온다.

물로 이쪽이 성녀 후보라고 속였다거나, 남은주가 처음부터 성기사라고 말했던 거짓은 교황도 모르는 사실이기에 적당히 각색된 상태로 전달된다.

과정히 낱낱이 밝혀질 때마다 사제와 귀족들은 놀랍다는 얼굴을 해 보인다.

“사라졌던 7대 성녀님의 흔적을 알게 되었군요.”

“당시의 놀이라면 인간들에게 재앙 중 하나였지. 그 숫자는 정말….”

“역시 성녀님답군.”

사제들은 감탄했고.

“…수련자들이 성녀라는 이름마저 얻는가. 그나마 가이아 길드인 게 다행이로군. 적어도 패악질은 안 할 테니.”

“그래도 폐하 쪽 사람이 아닙니까?”

“어떻게 가이아 길드와 접촉할 방법은 없나?”

귀족들은 실질적인 상황과 이득에 대해 조용히 의견을 나누었다.

“역사적인 순간에… 쯧. 하여간….”

내 옆에 서 있는 마리에다 추기경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아마 사제들의 감탄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 터. 귀족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점은 저들 중에는 애슐란 변경백, 다이딘 대공, 아르테인 공작가에서 보낸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주하연을 보며 눈을 빛냈지만 황제 측에서 보낸 황자를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두 곳과는 다르게 다이딘 대공 쪽 사람은 그러는 와중에도 집요할 정도로 주하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선대 성녀들과 성인, 여신께 자신이 성녀가 되었음을 알리며 성흔을 증명했다.

주하연은 자신의 성흔이 있는 곳을 보이며 성흔을 증명하고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성역 선포.”

자신의 신성력을 모조리 때려 부었는지 이전 십수 명의 주교가 축복했던 신성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엄청난 신성력의 파도가 일대를 뒤덮었다.

“이럴 수가….”

“진정 성녀 님이로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전쟁에서도 엄청난 수의 사람을 구하겠군… 역시 성녀….”

성역 선포의 시간은 제법 길었고 사람들은 그녀의 뛰어난 신성력을 찬양했다.

“이로써 교황의 이름으로 주하연 성녀의 직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찬송가와 큰 박수가 이어졌다.

그러나 임명식은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수호 기사를 임명할 순간이 왔고, 교황은 곧바로 주하연에게 의향을 물었다.

이제껏 임명식을 지켜본 이들은 주하연이 당연하게도 남은주를 선택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주하연의 선택은 달랐다.

“한바다 경을 선택하겠어요.”

“한바다…?”

“성녀의 수호자는 남은주라는 이름이 아니었던가?”

“갑자기 그게 무슨….”

곧이어 한바다가 입장했고, 몇몇 사람들이 신음한다.

‘보는 눈이 있네.’

몇몇 수준 높은 이들이 그녀가 심상치 않은 실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그들 중 한 명이 중얼거린다.

“마스터….”

“마스터?”

“그녀는 수련자가 아닌가? 마스터라니? 최근 마스터가 된 이는 가이아의 나서윤 아니었던가? 그 마검사라는….”

새로운 마스터의 등장에 귀족들이 당황한다.

마스터의 숫자는 제국 전체에서도 많은 것이 아닌데 벌써 가이아 길드에 셋이나 되는 마스터가 있었다.

영지를 가진 귀족 가문 중에서도 마스터급 강자 하나가 없는 것이 흔한 일이다. 즉 가이아 길드는 어지간한 영지보다 강한 세력이라는 뜻이 된다. 거기에 그 세력에는 마법 병단이 존재하고 성녀까지 소속되어 있으니 어지간한 고위 귀족들도 만만히 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한바다가 주하연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주하연은 한쪽 손을 내밀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허락의 뜻을 내비쳤다. 한바다는 그런 주하연의 손등에 가볍게 이마를 댐으로써 정식으로 주하연의 수호 기사가 되었다.

“그래도 뭐… 확실히 마스터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지. 특히 저렇게 젊은이라면….”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 상징성을 그리 쉽게 포기한다는 말인가? 왜? 더군다나 둘은 같은 길드일 텐데….”

그러나 웅성거림은 사라지지 않았고, 교황이 입을 열었다.

“7대 성녀님으로부터 성녀의 수호자로서의 힘을 계승 받은 남은주 경이 지킬 이는 따로 있습니다.”

그 말에 소란스러움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럼 성녀 임명에 이어, 역사상 최초의.”

다시금 나오는 역사상 최초라는 말에 일대가 다시금 웅성거린다.

“성자(聖子) 임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드디어 시작이군요. 그럼 들어가시지요.”

마리에다 추기경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란스러운 현장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시선이 집중된다.

지시에 따라 찬송가가 나오지만 이전처럼 웅장한 느낌은 부족했다. 동시에 이전과 같은 축복은 아예 없었다.

나는 입었던 사제복의 일부를 찢어 성흔을 드러내 보였다.

내 사제복은 주하연의 복장처럼 예복이 아닌 밋밋한, 단순히 하얀색일 뿐인 평복이었기에 그다지 부담은 없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성흔.

동시에 마력을 집중해 성흔을 활성화, 주하연을 뛰어넘는 신성력이 일대에 퍼진다.

정말 있는 마력을 태운다는 심정으로 모조리 쏟아붓는 상황이었고, 신성의 오라는 그 크기를 끝없이 확장했다.

“성흔!”

“남자가 성흔을 가졌단 말인가!”

귀족들과 사제들이 경악한다.

동시에 일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가이아의 유신후?”

“그 마스터 말하는 건가?”

“주하연 성녀의 연인이라는….”

“그런데 그가 어떻게 성흔을? 그가 신성력을 쓴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 신성력이 추기경에 모자라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헛소문이 아니었나?”

엄청난 동요가 퍼진다.

그러는 사이 나는 교황 앞에 도착했고 교황은 싱성력을 담아 단호하게 말했다.

“조용.”

교황다운 어마어마한 신성력이다. 그 양만으로 따지면 나보다도 많을 거다. 능력치로 환산하면 99~100 정도 아닐까 싶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교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역사상 최초의 성자 임명식입니다. 후일 다른 성자가 나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어찌 이리 소란스럽단 말입니까?”

한차례 소란스러운 상황을 꾸짖은 교황은 침묵이 한동안 이어지자 그제서야 임명식을 이어갔다.

“유신후 성자님은 이전 대신전에 처음 방문하셨을 때….”

내가 신탁을 받은 일, 내가 요양을 끝내고 성지를 찾은 일들과 곧이어 거기서 천사를 만나고 성흔을 받은 일들이 차례로 교황의 입 밖으로 나온다.

신탁, 성지, 천사, 성흔. 무엇하나 만만히 볼 수 없는 단어들의 향연이다.

사제와 귀족들의 입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성흔과 신성력을 등장하며 증명하였기에 2차로 증명하는 과정은 생략했다. 앞서 했듯 주하연처럼 선대 성녀들과 성인, 여신에게 기도를 함으로써 빠르게 과정을 끝내버렸다. 내가 성자로 공식적인 임명을 받았음에도 주변은 고요했다.

이전과 다르게 찬송가도, 박수도 없었다. 노래를 불러야 할 사제들부터가 얼이 빠진 상태였으니까.

‘진짜 정보 통제 제대로 했나 보네.’

“이어서 유신후 성자님의 수호 기사를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은주 경으로 하죠.”

곧바로 긴장된 표정의 남은주가 나타나고 내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이전처럼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그런데 남은주 경이 유신후 성자를 지킬 수 있나?”

“오히려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일 텐데….”

“남은주 경이 약하지는 않지만… 대상이 그 유신후라면….”

당연한 의문이다.

“차라리 한바다 경이 유신후 성자의 수호 기사가 되었다면 납득이 가겠다만 저건 좀 아닌 것 같군. 상징성까지 포기하며 왜 저러는 것인지….”

그러나 그런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내가 남은주에게 수호 기사의 자리를 허락하며 손등을 내미는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아 되려 그녀의 손등을 내 이마에 대었던 것.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손을 빼앗긴 남은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은주가 가볍게 얼굴을 붉히자 주변에서 이런 상황이 왜 나왔는지 이해했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군. 고작 저런 이유 때문에….”

“왜요? 충분히 멋진 그림인 거 같은데. 가이아의 마스터가 나름 로맨틱한 성격이네요.”

“허,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저런 선택을….”

“하지만 성녀의 수호자라고 하지 않소. 아마 그리 약하지는 않을 거요.”

“그래 봐야 마스터도 아니지 않은가?”

“본인이 강해서 곁에 연인을 두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공과 사는 구분 해야….”

아무리 주변에서 뭐라고 해 봐야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 파티는 대부분 붙어 다니고 이런 것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대부분 잠잠해졌다.

우리 파티가 거의 붙어 다닌다는 것은 나름 잘 알려진 이야기니까.

그렇게 수많은 말과 충격이 전해진 성녀 임명식이 끝났다.

임명식이 끝나기 무섭게 수많은 사람들이 마탑을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 소식이 제국 전역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아니, 거기서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거야 갑자기 생각났으니까.”

“은밀하게 흘린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왠지 나쁘지 않은 것 같길래.”

사실 정확히는 다이딘 대공 측에서 이상할 정도로 주하연과 남은주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황실을 대표해 나온 황자가 애슐란 변경백과 아르테인 공작가에서 나온 이들을 잘 압박하긴 했지만 다이딘 대공은 그런 압박에 물러날 법한데도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식이 끝난 이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보냈을 정도였다. 웃긴 게 주하연과 나에게 찾아온 것으로 모자라 길드 쪽에도 따로 연락을 보냈다고 직접 말했다. 아예 공식적인 만남 요청인 셈.

자신들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황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슨 배짱인지 궁금했다.

대충 짐작 가는 것은 있었지만.

‘슬슬 완성 단계인가 보군.’

무공. 그게 완성 직전인 모양이었다.

자신들이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을 텐데도 이러는 것을 보면 무공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이해는 간다. 나도 진실을 몰랐다면 엄청나게 끌렸을 테니까.

그래도 내심 황제 때문에라도 세 가문이 우리 쪽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다. 남은주와의 관계를 거짓이라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공표했으니 우리 길드 쪽에는 크게 접근할 이들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다이딘 대공 쪽에서 관심을 보일 줄이야….

‘뭔가 있군.’

예상외의 무엇인가가 있는 모양이다.

“은주 계탓네. 나도 못 받아본 것을….”

“아, 아니에요, 언니! 신후 오빠가 갑자기….”

“부럽다.”

“서윤아, 그런 거 아냐.”

“하지만 주변에서는 멋진 그림이라고 난리였다. 저 장면은 그림으로 남겨야 한다나? 신후 님 외모도 갈수록 진화해 가는 중이고… 레벨이 오를수록 왠지 피부에서 광이 나시던데, 거기에 신성력으로 후광까지 더해지니까 확실히….”

“아, 바다 언니까지… 진짜 오해라니까….”

파티원들이 남은주를 한창 놀리던 와중 교황과 황자가 우리를 찾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신후 님, 하연 님.”

“아닙니다, 성하.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1황자 오리언 오바엘도라고 합니다.”

자신을 1황자라 소개한 남자는 무척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하기야 최초의 성자이자 황제의 협력자다. 그가 쉽게 나를 대하기는 힘든 위치였다.

게다가 이제는 곧 백작까지 될 몸이다.

‘1황자인가….’

제 1황자 오리언. 미래의 황태자. 나는 이제껏 황실에 몇 번 다녀왔지만 황자를 비롯한 황족을 만난 것은 황제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황제가 의도적으로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게 만들었었다. 황제는 그런 사실을 내게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경쟁에 끼어들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어차피 떠날 이들이다. 황제와는 계약 관계. 그렇기 때문인지 황제는 자신의 후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순간에 우리들과 접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1황자가 여기 온 것은 상황이 워낙 특수하기도 했기 때문일 거다.

‘아니면 내심 1황자를 이미 황태자 감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리언의 태도를 보면 황제에게 단단히 이야기를 들었던 듯 일정 선 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는 나와 주하연에게 축하를 건넸고, 가이아 길드가 뻗어 나갈 것이 보인다며 덕담 몇 마디만 건넸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1황자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다이딘 대공 측에서 저희에게 상당히 관심을 갖는 모양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폐하의 심기가 무척 불편하실 겁니다.”

나는 다이딘 대공이 나와 주하연, 길드 쪽에까지 공식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어차피 금방 황제의 귀에 들어갈 이야기니까.’

나는 굳이 황제와의 관계에 불편을 만들 생각이 없었기에 숨김없이 사실을 말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1황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쩌면 자신이 대놓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폐하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진짜 권한을 엄청나게 제한한 모양이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것을….”

나는 황태자가 전하는 두루마리를 받았다.

“이건…?”

“폐하께서 약속했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가볍게 두루마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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