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으음….”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나서윤은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잘 잤어, 오빠?”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보이는 나서윤. 먼저 일어나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꽤 오래전부터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나서윤 성격에 성인이 된다고 해도 그 마음이 변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심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질투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구에서의 관계를 탑에서 강요할 생각은 없었고 독점욕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크게 드러내며 내 주변을 엉망으로 만드는 짓 또한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관심을 받고 싶어 했고, 조금 더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 정도.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만을 내게 보였을 뿐이다.
‘사랑한다… 인가….’
나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았고, 나서윤은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는 것을 내게 필사적으로 알렸을 뿐.
내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자 나서윤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왜 그래? 뭐가 이상해?”
“아니, 그냥. 신기하다 싶어서.”
“…헤헤.”
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오빠랑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
그럴 것 같았다.
“좋다아.”
나서윤이 내 몸에 달라붙었고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잠시 아침의 여운에 젖어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기에 나서윤을 몸에서 떼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가벼운 세안과 준비를 마친 이후 나서윤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들어가기 무섭게 일행의 미묘한 눈초리가 쏟아진다.
“좋은 아침이에요, 형!”
하유진만을 제외하고.
“그래. 좋은 아침.”
“…나서윤 소원 성취했네.”
“…뭐 본인이 그렇게 원한 거니까.”
사샤의 말에 나연이 조금 떨떠름한 기색으로 대답한다.
“후우… 각오하기는 했지만….”
“힘내요, 언니.”
주하연의 중얼거림에 남은주가 기운 내라는 듯 대답하자, 그런 남은주를 한 번 쳐다본 주하연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주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이미 설명을 했다고는 하지만, 주하연은 부정하는 모양이었다.
이미 음식은 한창 나오는 중이었고, 나와 나서윤이 도착하기 무섭게 우리 몫의 음식이 차려진다.
나와 나서윤이 늦은 식사를 시작하자 주하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예의 그겁니까?”
성자와 성녀 발표.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맞아요.”
주하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다 씨의 수호 기사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절의 말은 없었어요. 조건부이긴 하지만 수락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하던데요?”
“그렇군요.”
역시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조건부라고 하는데, 어떤 조건일 것인지 궁금했다.
‘별거 아닐 가능성이 높겠지만.’
거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걸지는 않을 거다. 나도 어지간한 것이라면 받아들일 생각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쪽이나 나나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그냥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나았으니까.
내 직접적인 요청이기도 하니, 교단도 무시하기는 힘들 터. 억지 조건으로 막을 생각은 그쪽도 없을 거다.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겠다는 답변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어요. 바로 조치할게요.”
중요한 이야기는 그것뿐이었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나서윤은 식사가 끝난 이후 웃는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남은주는 내가 혼자 있는 틈을 노려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됐어요?”
“표정 보면 알 텐데. 별일은 없었어.”
“…서윤이가 굳은 표정으로 나가서 무슨 일 일어날까 봐 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앞으로 없었으면 하지만, 그럴 일 있으면 진작 언질 좀 해 놔요. 연인 사이에 뭐 그래요?”
언질한다는 것부터 엄청난 뻔뻔함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그렇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몇 년 더 탑에서 지나면 신경도 안 쓰게 될 테지만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아, 아닌가. 이 속도로 성장하면 몇 년 안 걸릴지도 모르겠군.’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탑을 나갈지도 모른다. 미래는 까 봐야 아는 거기는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빨리 돌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아무리 지구의 시간이 멈췄다고 한들, 우리들 수련자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으니까.
예를 들어 하유진의 가족이 기억하는 하유진은 8살 어린 아이인데, 지금의 하유진은 이미 12세다. 하유진의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어색하지 않다면 그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 보았던 주하연의 모습에 대해 언급했다.
“거절하겠다고, 위장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고 하던데, 하연 씨는 별로 믿는 기색이 아니던데?”
“…후우. 오빠 말대로더라고요. 그럴 필요 없다고, 너라면 괜찮다고 말하긴 하는데… 그 표정이 어떻게 괜찮은 표정이에요?”
“탑은 그런 장소니까. 만약 내가 너희 연인이 아니었다면 너희도 어지간한 남자를 한 다스씩 데리고 다닐 수 있었을 거다.”
그럴 능력은 있으니까. 대부분의 평범한 거주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일처가 보편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귀족이나 능력 있는 용병들, 기사급쯤 되면 배우자가 둘 이상인 경우는 흔하며, 문어발식 연애 짓은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개인차가 심하지만.
“그건 제가 싫은데요. 남자 한 다스라니… 징그러운데….”
남은주는 그런 취향이 아닌 듯했다.
“애초에 지금은 누구 사귈 생각 없다니까요. 아무튼, 잘 넘겨서 다행이에요.”
남은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하연 언니랑도 이야기하는 거 잊지 말고요.”
“그래. 알았다.”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남은주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는 김에 오해도 조금 풀어달라고 했지만, 이미 본인이 설명까지 한 마당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그럼 일단 신전에서 허락하면 제가 신후 오빠의 수호 기사가 되는 건가요?”
“그래. 대외적으로는 연인쯤 되는, 특별한 사이로 알려질 거야.”
“위장 연애네요?”
재밌겠다는 듯이 웃는 남은주를 바라보며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싫다더니?”
“신후 오빠가 싫은 건 아니에요. 단지, 그런 관계가 된다고는 생각도 안 해봐서… 하연 언니 남자친구였으니까. 이제는 서윤이랑도 사귀지만. 아무튼, 진짜 연애는 아니잖아요. 그냥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이런 일을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흥미가 돋는 것뿐이에요.”
본인이 그렇다는 데 별수 있나. 나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리고 네가 내 수호 기사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으니 이상훈에게 조금이지만 지원이 갈 거다. 네 의견대로 길드로 받아들이지는 안되, 길드의 이름으로 조금 지원 정도는 해 줄 거야.”
“…괜찮을까요? 그걸 이용해서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겠죠? 차라리 그냥 방치하는 것도….”
남은주는 외부가 아닌 오히려 이성훈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짧은 시간 동안 보인 태도가 남은주의 기억에 깊숙이 남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남은주가 수호 기사를 받아들인 이상 보상 정도는 해 주는 것이 좋았다. 본인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도 있었고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적은 지원으로 이 정도 효과면 해줄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미리 경고는 할 생각이야. 너와의 인연 때문에 조그마한 지원은 해 주지만, 선을 넘을 생각은 말라고.”
접근하는 사람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게 큰 위험이 되어 돌아오지는 않을 터다. 상황 파악 정도는 금방 끝나겠지. 이성훈에게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은 금방 드러날 거다. 남은주가 이성훈보다 길드와 일행을 우선한다는 것을 확신한 이상 내가 그를 대할 태도는 확실해졌다.
길드 산하의 파티원과 비슷하거나 그 아래. 딱 그 정도다.
내가 걱정되었던 것은 남은주가 흔들리고 중국발 영입 전쟁에 내 길드가 휘말리는 거였지, 이성훈의 안전 따위는 큰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냥 가능하면 지켜주는 정도? 그가 자초했든, 자초하지 않았든 위험을 불러들이거나 남은주와의 인연을 이용해 길드 이름에 먹칠을 한다면 그마저도 사라질 예정이다.
남은주는 그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더는 별말 없었다.
“휴가 겸 며칠 쉬고 바로 신전으로 찾아갈 생각이야. 휴가니까 그냥 푹 쉬어라.”
“네. 알겠어요. 오빠도 괜히 뭐 하지 말고 푹 쉬세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남은주는 할 말이 남았는지 잠시 우물쭈물거렸다.
“왜? 더 할 말 있어?”
“…그게….”
잠시 망설이던 남은주는 곧 결심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번에는 죄송했습니다!”
“…뭐?”
“그게, 말이 조금 심했던 것 같아서… 제가 너무 나섰습니다. 죄송합니다, 신후 오빠.”
무슨 소리인지 의아했던 나지만 곧바로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다.
‘아아, 그 쓰레기.’
나는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뭐, 됐어. 나도 잘못한 거 맞았고, 네 입장도 있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사적인 자리이기도 했고.”
아마 남은주의 길드와 일행에 대한 속마음과 태도를 보지 못했다면 그때 선을 그을 수도 있었을 거다.
남은주가 보기에 쓰레기 짓을 한 거긴 했지만 그건 나와 주하연, 나서윤 사이의 일이었고 남은주가 끼어들 일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남은주 본인도 거취와 여러 요인 때문에 상황에 휘말린 상태였고 내가 꺼낸 말 때문에 그들 사이에 낄 수도 있는, 특이한 경우였다.
거기에 더해 길드를 위해 옛 인연을 배척하는 것까지 선택한 상황이다. 그리 모질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같이 지낸 시간도 길었는데,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
“…사과받아주시는 거에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남은주는 한결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끝?”
“…네.”
“그럼 가라. 나도 쉬련다.”
“넵. 푹 쉬세요, 신후 오빠.”
나는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했고 남은주는 곧바로 방을 나섰다.
남은주에게 한 말대로 나는 진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기에 그녀가 나가기 무섭게 침대 위로 널브러졌다.
오늘은 최대한 쉴 생각이었고 일행들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기에 나는 홀로 조용히 휴식할 수 있었다. 다만 사람을 보내 주하연과 저녁때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주어진 휴식.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절반의 휴식이었다.
침대에 널브러져 있기는 했다만,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더 강해질 방법에 대한 생각이 강박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쉬는 것도 훈련이다. 그렇기에 육체는 휴식을 취하지만, 머릿속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그걸 불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게는 당연한 행동이다.
적당히 점심을 방으로 가져오도록 주문해 먹고 뒹굴고 먹고 뒹굴고 하며 하루를 날리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주하연과의 약속을 위해 침대에서 벗어났다. 오랜만의 휴식이기 때문인지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었음에도 몸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아, 신후 씨.”
약속대로 주하연은 본인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편한 차림이기는 했지만, 이것저것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주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기다렸어요?”
“아니에요.”
작은 탁자로 향하자 식사와 마실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둘이서만 만날 예정이었기에 이렇게 따로 저녁을 주문했다.
연인 사이가 된 지 가장 오래된 만큼 상당히 편한 상태였다.
나는 주하연과 마주 앉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길드원들이….”
어떻게 된 것이 대부분 업무 이야기였지만. 말을 하면서도 주하연은 별로 즐겁지 않은 눈치였다. 기껏 얻은 휴가 비스무리한 상황에 일 이야기는 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을 적당히 끊고 일행들의 이야기로 대화의 방향을 바꾸었고, 차츰 주하연의 표정이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 바다 씨가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더라구요. 하기야, 관심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기는 한데….”
“그렇군요. 쌓인 돈도 제법 될 텐데….”
“근데 사 봐야 어차피 쓰지도 못한다고 아쉬워해요. 반지는 장비 끼는 데 방해 돼서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기능이 좋다면 모를까, 아무 기능도 없는데 껴 봐야 의미도 없고, 어차피 나가는 것보다 종일 수련과 사냥, 의뢰로 점칠 되어 있어서 낄 시간도 없다고….”
“그래도 그런 것은 자기만족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서 결국 사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최근 차산미 씨의 파티가 황도를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네. 나연이를 만나러 왔더라고요. 나연이도 무척 반기는 눈치였어요.”
나연은 그들과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헬모사 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크들을 막으며 바쁜 시간을 보낼 때도 그들과는 여전히 친분을 유지했었으니까.
가벼운 잡담이 이어지고 분위기가 괜찮아져 슬슬 본론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괜찮아요.”
“…네?”
“저는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은주랑 이야기하신 거 같은데….”
“…….”
“뭐, 거기서 오해를 풀어주지 않은 것은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저도 반쯤 받아들였던 거기도 하고….”
주하연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은주도 말하더군요. 너무 과민하다고.”
“…은주 얘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그렇기는 해요. 은주 본인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니, 그게 확실히 본심이기는 하시겠지만….”
“그대로 말해 봐야 어차피 다른 핑계나 댄다고 생각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랬을지도요. 어쩌면 실망했을지도? 제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그것도 은주를 반대할 거 같냐고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주하연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섭섭하긴 해요. 그래도 내게 말해 줬으면 어땠을까… 과한 망상이라고 해도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있다고 말해 줬으면 싶기는 했어요. 과한 망상이지만, 저를 믿으니 말해준다는 말이 듣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저는 하연 씨를 충분히 믿고 있습니다.”
“은주는 별로 안 믿는 것 같던데….”
“아뇨, 믿습니다.”
‘이제는.’
“그냥, 주변 환경이, 그리고 은주가 이성훈 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그래서 노파심에 그리 움직였던 것뿐입니다. 과하긴 했죠.”
물론 한 번 짚고 넘어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내 직속 파티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으니까. “…그렇군요.”
이내 식사가 끝났고 사람을 시켜 테이블을 정리했다.
테이블이 완전히 정리되고 다시금 둘만 남자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은주랑은….”
“본인이 싫다더군요. 지금은 그럴 정신 없다고. 자신을 성장시키기도 바쁘다고 합니다.”
“…신후 씨는요?”
“본인이 싫다면 그걸로 끝 아닙니까?”
“은주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게 궁금한 거에요.”
“독점욕 정도는 있습니다. 다들 망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생기니 곧바로 수를 쓴 거고, 하연 씨에게는 미안한 일이기는 하나 그런 오해를 하셨을 때 변명하지 않은 것도 영향이 없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먼저 접근하신 이유가… 독점욕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훈의 등장이 불을 지폈다고 볼 수도 있다.
“뭐랄까, 조금 저열하기는 하지만 이제껏 함께한 일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뺏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무척 더러웠습니다.”
그게 이성훈이 되었든, 그를 시발점으로 타 세력에게 넘어가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 손에서 벗어난다.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래요. 그렇군요. 일행을 뺏길 것 같으니 기분이 더러웠다라….”
주하연이 묘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왜 그런….”
“그거 그냥 일행 전부를 손에 넣겠다고… 아 유진이는 예외인가?”
듣지 말라는 듯, 작은 소리로 무엇을 중얼거린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었어요. 하기야, 그렇겠죠.”
“…무슨 말입니까. 또 무슨 오해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어디까지나 일행으로서 다른 세력에게 제 일행을 뺏기는 것이 기분 더러웠다는 뜻으로….”
“아아, 그래요. 그쪽으로는 사심이 없으시다? 사심은 없지만 뺏길 바에야 자신이 손에 넣겠다?”
“앞뒤가 안 맞고 제멋대로에 이기적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뺏기는 것은 싫군요. 제가 보기보다 욕심이 많은 편이라.”
대놓고 하는 말에 주하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그래요. 신후 씨 답네요. 제사람 챙기는 건 진짜… 물욕이나 권력 같은 건 도구에 불과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사람 욕심 하나는 진짜 끝내줬죠. 하긴 준 게 얼마인데 이제 와서 뺏기고 싶지는 않겠죠. 그게 어떤 이유에서라도요.”
한참을 웃은 주하연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내게 말했다.
“알겠어요. 일단 알아는 둘게요. 후훗.”
의미심장한 미소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주하연의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기에 더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서윤이가 자랑하던데….”
“…네?”
아무래도 진짜 공유하는 모양이었다.
그날 내가 내 방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