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85화 (185/317)

# 185

거래가 끝나자 나는 일행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전에 배정받았던 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말이 휴식이지 늘 그렇듯 다음 경지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었지만.

일행은 보상을 받기 위해 황실 창고로 향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니었다.

-당장은 구하지 못했네. 자네가 일을 빨리 끝낸 것도 있지만, 조건이 쉽지만은 않으니 말이야. 그래도 최선을 다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게.

황제의 말을 이해했다. 이해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그만큼 내가 요구한 조건은 쉽지 않았으니까. 쉬운 조건이었다면 내가 황제에게 대가로 요구하지도 않았을 거다.

애초에 자신의 기둥뿌리를 뽑아 넘기라는 말과 다름없으니까.

황제의 말대로 내 일 처리가 빠른 탓도 있었고.

시간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성자로 인정받고 백작이 된다면 한층 더 쉽겠지. 늦어도 작위를 받고 한 달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몇 달 후에 대가를 받는 건가?’

아쉽기는 했지만 일단 희망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 외에 챙길 것들은 무사히 챙겼으니까.

“오빠!”

“오래 기다렸죠?”

“형! 형! 끝내주는 아이템 찾았어요!”

대략 3일. 내가 걸렸던 시간과 같은 시간이었다. 이들 또한 3일의 시간이 제한 시간이었다고. 아주 꽉꽉 채워서 일일이 확인한 모양이다.

“거기 진짜 끝내주더라. 뭔 그런 보물들이 쓰레기마냥 산처럼 쌓여 있던데?”

“쓰레기는 조금…. 그래도 전설급 이상의 아이템들은 제대로 진열되어 있었잖아? 역사나 효능도 대강은 적혀 있었고. 쓰레기 취급은 아니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그런 거 적혀 있으면 뭐 해? 수련자들은 그냥 정보 창 열면 그만 아닌가?”

“그래도 거주민들은 그런 거 없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

“아무튼 대단했어. 뭔 정령과 관련된 것들이 그리 많은 장소는 처음 봤다니까? 덕분에 쫄따구도 얻었으니 대만족이지.”

“…조심 좀 하자. 사샤 네가 사고 칠 뻔한 것은 알지?”

“그래그래 그건 미안. 조심할 테니까.”

사샤가 나연에게 사과하는 것은 정말 드문 광경인데,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

“다들 선택은 만족스럽게 하셨습니까?”

“”네!””

그들은 하나씩 내게 자신들이 선택한 아이템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한바다와 남은주는 영약을 선택했다. 의외기는 했지만 이해는 간다. 한바다는 최상급에 가까운 상급이고 남은주는 비록 하층에서 기연을 통해 강해지기는 했지만 본래 잠재력이 하에서 출발한 사람이다. 영약을 먹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둘 모두 이미 영약 섭취를 끝냈다고 하는데, 남은주의 영약은 신체 능력을 상승시켜 주었고, 한바다의 영약은 전신의 노폐물을 한차례 정화하며 회로를 강화시키는 것을 도왔다.

그 결과 한바다의 잠재력이 최상급에 다다랐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아마 한바다를 점찍고 지원하고 있는 관리자는 한바다가 나를 따라 지구로 가 버리면 상당히 배가 아플 거다.

히든 클래스와 스킬을 주었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을 줄 틈도 없었다.

아이템이 필요하면 내가 구해줄 수 있고, 이번에 영약을 얻을 기회도 가져다주었다. 본인이 부족함을 채울 기회를 준 것.

거기에 필요한 스킬도 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고. 관리자가 끼어들 틈 따위는 없었다.

선택의 때가 올 때 한바다가 나를 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지원해 준 규모부터가 다른데 본인도 어쩔 수 없겠지.’

내 휘하로 들어온 이상 간접적인 지원으로 내 지원을 뛰어넘는 것은 요원하다고 볼 수 있었다. 자연스레 마음은 이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게다가 지구도 시간이 멈춰있을 뿐 구할 가능성이 있으니 더더욱 그럴 거다.

‘그래도 지구가 멸망하면 다시 한번은 기회가 있으니까.’

그쪽은 지구의 멸망을 기원할지도 모르겠다.

“저는 생존기가 필요해서, 이걸로 정했어요.”

주하연이 선택한 목걸이는 3가지 스킬이 저장되어 있는 전설급 아이템이었다. 하루 세 번 블링크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고, 블링크 사용 시 자동으로 실드가 생성되며 동시에 마력 은폐가 발동한다. 마력 은폐가 발동하더라도 마스터 최상급 정도 되면 순식간에 발견할 수 있고, 나도 약간 늦지만 찾아낼 수 있기는 하다. 다만 내 감각에 걸릴 때쯤이면 이미 이동이 끝난 뒤일 거다.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이 세 가지 스킬이 달려있을 뿐 부가 효과는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현명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제가 자체적인 생존력을 갖추면 분명 도움이 된다.

“좋은 선택입니다.”

주하연이 싱긋 미소를 지었고, 나서윤이 즉시 끼어들며 팔에 낀 팔찌를 들어 올렸다.

“오빠, 이거 봐봐!”

나서윤이 보여주는 팔찌 또한 당연하게도 전설급 아이템이었는데, 무려 액세서리 형태의 마법 지팡이였다.

하층에서 얻었던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쪽에서 얻은 아이템들은 사실상 스킬을 건넴으로써 효용이 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킬이 빠져나가고 나자 아이템의 성능이 그리 좋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된 아이템을 맞춘 모양이다.

“마력 회복 증가랑 마법 위력을 증폭에 캐스팅 시간 감소, 거기에 메모라이즈 기능이라고, 세 개의 마법을 저장할 수 있는 스킬까지 있어!”

지팡이의 기본적인 성능인 마법 위력의 증폭과 캐스팅 시간의 감소. 그 증폭률과 감소율도 어지간한 지팡이를 누를 정도에 마력 회복 증가와 메모라이즈 기능은 과연 저 팔찌가 왜 전설급 아이템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제 검만 개방시키면 무기는 완성인가?”

“기대하는 중이라구요, 오빠.”

말을 놓았지만 적당히 존대를 섞어 말하는 나서윤의 모습은 무척이나 쾌활했다.

“형! 저는 무기로 골랐어요!”

하유진이 선택한 단검은 생존기와 다양한 부가기능이 붙은 무기치고는 특이한 스타일이었다.

틈새의 단검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아이템이었는데, 주인으로서 인정을 받은 뒤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단검이 있는 위치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거리는 100m가 한계기는 하지만 보통 능력은 아니다. 생존기이기도 하지만 강력한 공격 기능이기도 했다. 이건 그냥 블링크와는 다르게 기척조차 못 느낀다. 정말 비장의 한 수가 될 수가 있었다. 게다가 공격 시 일정 확률로 저주가 걸리고 암흑속성 공격력까지 붙은 단검이라 전설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의 오염된 그림자 단검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니까 필요할 때마다 스위치 할 수 있어요!”

“잘했다.”

나는 가볍게 하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나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어때?”

“나는 이거. 원래는 무기로 할까 싶었는데, 뭐, 엘프목 지팡이가 아직까지는 쓸만하기도 하고, 이름부터가 엘프목이라 그런지 사샤가 상당히 아까워하는 모양이라 당분간 더 사용하기로 했어.”

그렇게 말하며 나연이 보여주는 것은 귀걸이였다.

평범한 귀걸이는 아니다. 무려 중급 바람의 정령이 잠든 귀걸이니까. 하지만 정보 창에는 훼손된 상태라고 표시되었다.

“이거 왜 이래?”

“그게, 사샤가 망가뜨렸어.”

“야, 그렇게 말하면 리더님아가 오해하잖아!”

“하지만 사실인걸?”

나연이 가볍게 사샤를 놀려대었다. 둘의 관계가 마치 친한 친구를 보는 듯했다.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리더님아, 오해하지 말라고. 이거 기능이 망가진 대신 정령력만 공급하면 바람의 정령을 마음껏 부릴 수 있게 된 거니까. 바람의 중급 정령과 계약한 거나 다름없는 거라고!”

그 말 대로라면 상당한 이득이다. 다른 파티라면 모를까 우리 파티에게 전설급 아이템은 나중에라도 얻을 수 있는 거다. 그에 반해 바람의 중급 정령은 쓸모가 여러모로 많다. 나연이 사샤와 계약하며 타 정령과는 계약할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웠는데, 간접적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정령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중급 정령이라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거다.

“나처럼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정찰이라던가 나를 보조하는 용도로 충분히 쓸모가 있을 거야. 이게 다 저 녀석을 내 쫄다구로 만든 덕분이라는 말씀! 원래라면 기능이 망가진 시점에서 저놈은 자유를 찾았어야 했다고!”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사샤가 뭔 수를 쓴 것인지 바람의 중급 정령은 망가진 귀걸이를 둥지 삼아 그 안에서 쉬고 있었다.

“그냥 제가 할 일 시킬 부하가 필요했던 거면서.”

“…파티에 도움이 되니 상관없잖아!”

“동기가 불순해.”

사샤는 동기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파티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은 없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일행의 자랑이 끝나고 나는 황제와 있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그럼 저는 백작 부인이 되는 건가요?”

“나도?”

주하연과 나서윤의 눈이 빛난다.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한데….”

둘은 약간 흥분한 기색이었다. 남은주나 한바다, 나연도 그런 둘을 조금 부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귀족 부인이라는 것에 묘한 동경이 있는 모양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광진에 대해 알리자 일행은 별로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아니, 오히려 사샤는 무척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전직 무법자인 놈의 배때지에 기름 둘러가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속이 시원하네.”

신랄한 사샤의 평가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행은 곧바로 아이템을 사용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익숙해질 시간 정도는 필요했다.

나와 일행은 황제가 내어준 궁에서 휴식을 취했다. 황제는 우리의 편의를 봐 주며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일행은 오랜만에 느끼는 황실의 호화로움에 마음을 놓고 푹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나는 남은주를 따로 불러냈다.

***

“부르셨다고 들었어요, 신후 오빠.”

“응.”

남은주는 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그녀에게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아, 고맙습니다.”

남은주가 음료를 홀짝이는 사이 나는 천천히 용건을 꺼냈다.

“내가 부른 이유, 알아?”

“…성훈이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요즘 이성훈 씨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하연 씨에게 듣기로… 너에게 상당히 집착한다던데?”

“…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그간 고생이 심했나 보더라고요. 거기 상황을 생각하면… 대충 짐작은 했지만요.”

“지구에서 많이 친했나 봐?”

“정확히는 부모님이 친하셨어요. 덕분에 제법 잘 알고 지냈다고 할까요….”

남은주가 조금 민망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하연에게 들었던 대로였다.

“그렇다면 신경이 쓰이기는 하겠네.”

“네, 뭐. 아무래도 그래요.”

“길드가 이성훈 씨를 받아들이기를 바래?”

“…솔직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성인이니까 본인 일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탑으로의 소환은 불가항력이기도 하고… 조금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해요. 나름 알고 지낸 지 오래되기도 했고, 지구로 돌아갔을 때 아저씨랑 아주머니 보기가 어색해지고 싶지는 않아서요.”

아무래도 이성훈 본인에게 큰마음이 있거나 그를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강한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딱 지인 정도의 느낌이랄까?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남은주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구로 돌아간 다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이 당장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드에 받아들이는 것은 조금… 성훈이가 실력이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 길드에 잘 적응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건 신후 오빠 권한이니까요.”

딱 선을 긋는 듯한 말투. 지인이 힘든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제를 넘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정말 별거 아닌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성훈이 매달리는 것을 상당히 잘 받아주었었다.

“네가 원한다면, 한 명쯤 받아주는 것이 힘들지는 않아. 알 텐데? 프레드 씨도 같은 조건으로 영입되었어.”

“하지만… 저는 프레드 씨랑 다르게 받은 것이 많은 걸요?”

“그래도 상관없으니 마음 편하게 말해. 신경 안 쓰니까.”

“…….”

남은주는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성훈이는 오고 싶어 하겠지만… 역시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래? 흠… 그런 것치고는 이성훈 씨를 상당히 신경 쓰는 것 같던데….”

“…그거야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여서 그랬어요.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복수에 미쳐 날뛸 줄은 몰랐다고 할까… 이대로 두면 무너질 것 같았다고나 할까….”

“지금은 괜찮아 보여?”

전혀 아니다. 오히려 심해졌지.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어쩌면….”

남은주가 걱정어린 표정을 짓는다. 잠시 우물쭈물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금 변한 것 같았어도. 4년이 지났으니 그럴 수 있기는 한데… 조금 심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제가 뛰어나다는 것을 아니까 은근히… 빌붙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더욱 길드에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생각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상상 이상으로 길드를 아끼고 있었다.

자신의 옛 지인보다 길드를 아끼는 모습이 이상하여 물어보자 남은주가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당연하죠. 자주 말씀드렸지만, 저는 정말 살고 싶고,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요. 처음에는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조금 살만해지니까 엄마도 보고 싶더라고요. 오빠의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그러려면 길드가 중요할 수밖에 없죠. 제가 안전하도록 도와주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그런 곳인데, 어떻게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나는 침묵했다. 과거의 남은주와 지금 보이는 남은주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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