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손에 넣은 카르텔 인원과 구출한 수련자, 하유진을 리프라소에게 맡기자 리프라소는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페소타 지역에 넘어간 지 얼마나 되셨다고….”
“자세한 이야기는 유진이가 해줄 겁니다.”
내가 다시금 페소타 지역으로 넘어가겠다고 말하자 리프라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을 내비쳤다.
하유진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나연과 함께 다시금 페소타 지역으로 넘어간다.
“설마 가자마자 그런 이들을 찾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냥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상황이 막장이라는 뜻일 수도 있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응.”
내 말에 담긴 뜻을 읽었는지 나연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뽑을 대상은 손에 넣었다. 더는 뭘 발견하든 무시하고 조사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이쪽에서 모은 정보와 저쪽에서 뽑아낸 정보를 비교하게 될 테지.
나와 나연, 사샤는 미리 생각했던 루트대로 움직이며 여러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발견한 장면이 무척이나 흔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연은 페소타 지역의 비참한 현실을 볼 때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어느 순간 표정이 사라졌다. 선을 그어버린 듯 사무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 같았다.
“여기도 똑같네.”
“…젠장.”
되려, 사샤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더러운 꼴을 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 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럴 만했다.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대부분의 정찰을 해내고 있었고 가장 먼저 그 꼴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관계없는 인간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사샤라고는 하지만 지금 페소타의 상황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페소타 지역의 상황은 끔찍하고 비참했다.
카르텔의 조직원들 중 나름 지위가 있는 이들은 무능력자나 약자들을 핍박하고 갖고 놀았으며 누구도 그런 카르텔 인원에게 항의하지 못했다.
생각 보다 도망치거나 반항하는 자들은 없었다. 처음 봤던 도주자가 특이한 케이스인 모양.
마을 중앙에는 처형된 이들이 전시물처럼 놓여 있었고 일부는 산채로 묶여 실시간으로 본보기가 되고 있었다.
본보기가 된 이들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목에 팻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더러운 배신자입니다.
지나가는 이들은 의무적인 모습으로 그들에게 욕설과 함께 침을 내뱉었고 혹여라도 그냥 지나치려다 걸리는 이들은 붙잡혀 추궁을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
이미 죽은 이들의 시신에도 온갖 배신자를 저주하는 말이 상처로서 새겨져 있었다. 죽어버린 인간의 시체마저 그냥 버리지 않고 공포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마을을 지나다니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카르텔 단원들 옆에는 몬스터를 몰아오는 미끼들이 꼭 몇씩 붙어 있었다. 그들은 적당수의 몬스터들을 몰아오고 고기 방패가 되었으며 조금만 위험하거나 조직원들이 원하면 버려진 채 몬스터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살기 위해 카르텔을 찬양하고 조직원들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항의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저걸 다 말소해야 하는 걸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연도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너무 답답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흘린 혼잣말 같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성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외곽과 내곽으로 나뉜 성의 모습은 마치 선 하나를 경계로 빈민가와 부촌이 나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카르텔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은 주지육림이더라. 손은 그냥 장식이야. 먹는 거, 씻는 거, 하물며 옷을 갈아입는 것까지 제 손으로 하는 것이 없어. 그에 반해 빈민가는 그런 조직원들에게 입도 벙긋 못해. 나라님이 없는 곳에서는 욕도 한다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 심지어는 제집에서조차 불만 한 마디 안 내뱉더라.”
주기적으로 카르텔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순찰을 돈다고. 말만 순찰이지 그냥 패악질을 부리러 돌아다니는 모양새라고.
계층이 완벽하게 나뉜 모습이다.
“일부는 어떻게든 그 계층에 들어가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던데.”
“그렇겠지.”
사샤의 말에 짧게 대답한다.
어느 국가, 어느 시기에나 있는 일이다.
나는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드 씨 말이 오히려 축소된 수준이었네.”
나연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여긴 답이 없어. 저들은 무법자, 그것도 최악의 무법자야.”
선고를 내리는 듯한 말. 나 또한 동의했다.
‘저런 짓을 당했으면, 그렇게 복수할 만하네.’
1회차에서 왜 프레드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했다. 그는 강한 만큼 더 많은 치욕과 모욕을 겪었을 거다.
더 많은 견제를 받았겠지.
육체 재생이 전설이 아니었다면 그는 탈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거다.
처음부터 전설 등급이었을지, 아니면 이런 일들을 겪으며 등급이 빠르게 상승했을지는 모르겠다.
“돌아간다.”확인은 끝났다. 나와 나연은 빠르게 페소타 지역을 빠져나갔다.
***
닷새 정도에 걸쳐 꼼꼼하게 페소타 지역을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하나같이 무법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나연과 사샤의 담담한 보고에 리프라소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이쪽에서 확인한 정보와 일치하는군요.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그나마도 축소한 거였습니다.”
“…제가 조금 미숙했나 보네요.”
“아, 아닙니다. 하유진 님께서 미숙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 하하하… 다 제가 말린 탓이죠. 말릴 가치가 없는 놈들이었는데….”
하유진의 말에 리프라소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급하게 말한다.
“프레드를 다시 만나볼 필요가 있겠군요. 미국 쪽에 가해진 통제 정도를 조금 낮춰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개별 면담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죠.”
리프라소는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복수할 기회를 주려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청산은 해야 할 거 아냐?”
“반대하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솔직히 나도 찬성이거든. 그들은 선을 넘었어.”
사샤의 말에 나연이 차갑게 대꾸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이 걸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하유진이 닷새간 뽑아낸 정보는 조직원들이 했던 행동들보다는 프레드가 겪었던 일들을 중점으로 정보를 뽑아냈다.
내가 요구한 것이기도 했기에 하유진은 무척이나 충실하게 일을 처리했다. 뭐, 덕분에 페소타의 전체적인 환경에 대한 정보가 조금 부실해지기는 했지만 그건 나와 나연이 해결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정보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 예상대로 프레드가 한층 더 잔혹한 일을 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1회차 시절 복수자의 잔혹한 행동이 이해가 되었고 그의 행동은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프레드와 독대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고, 프레드는 내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내 부름에 달려온 프레드의 표정은 긴장으로 얼룩져 있었다.
내 손에 자신을 비롯한 미국의 수련자들의 운명이 달라질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침묵을 견디지 못한 그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페, 페소타 지역에 다녀오셨다 들었습니다.”
“예.”
“……그 꼴을 보셨겠군요. 제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사실 제가 말재주가 부족해 오히려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
“본인이 당하셨던 일들을 숨기셨더군요.”
흡.
프레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페소타 지역에 들어가서 카르텔 조직원 몇을 잡아 왔죠. 그중 라몬이라는 자가 있더군요.”
라몬의 이름을 들은 프레드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익숙한 얼굴이다. 복수자 프레드. 그가 멕시코의 잔당을 바라볼 때의, 그 표정이다.
“그렇, 습니까.”
그러나 그런 얼굴도 잠시. 프레드의 얼굴이 수치로 일그러졌다.
“험한 꼴을 많이 당하셨더군요.”
“…….”
“어지간해서는 이런 말씀을 드리는 편은 아닙니다만, 솔직히 동정이 갈 정도였습니다.”
프레드가 잠시 나를 노려보았다. 상당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모습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고개를 다시 숙여버렸다.
입술을 앙다문 프레드는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제 처지를 동정하신다면… 부디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페소타 지역은 말소될 겁니다.”
흠칫.
내 말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프레드가 급격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예. 아마 피해자들 대부분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어째서!”
나는 담담하게 현재까지 앞선 하층들이 열렸던 과정과 그로 인해 무법자들이 어떤 짓을 해 왔고, 제국이 무법자들에게 갖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담담하게 풀어냈다.
동시에 제국이 할 우려 또한 알려주었다.
“피해자들 사이에 무법자라도 하나 끼어 있다면 제국에 큰 피해를 끼칠 겁니다. 제국은 작은 생채기마저 원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프레드의 입이 벌어져갔다.
“게다가 피해자라고 뭉뚱그리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동조한 전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것은 살기 위해서…!”
“제국이 그걸 이해해줄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제 선택이라기보다는 제국의 선택입니다.”
솔직히 막으려면 막을 수도 있었다. 책임자는 나고 내가 그들을 구제하기로 선택했다면 황제도 뭐라 하지는 않는다.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겠지만 믿는다고 말하겠지. 다만 후일 이쪽 출신의 수련자가 사건을 일으키면 책임을 질 수도 있었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런 선택을 할 뿐이다.
그리고 이미 굴복해버린 이들은 무법자들이 접근해 온다면 다시금 굴복할 뿐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에게 구제되어 강해진 이후 적극적으로 동조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들의 처지가 이해는 가지만 현 제국의 상황이나 무법자들에 대한 여론을 본다면 제국이 내게 원하는 것은 뻔했다.
애초에 황제도 무법자들을 구분하고 처리하기 위해 나를 보낸 것이니까.
여기가 인명을 중히 여기는 현대 지구도 아닌데 인간의 생명을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하지는 않는다.
내 설명에 프레드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의 무력함에 실망하는 눈치다.
“당신을 비롯해 탈출자들에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제국 입장에서는 환영하겠지. 목숨을 걸고 그들에게서 탈출했다는 것은 무법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역으로 무법자들을 증오할 가능성이 한없이 높은 이들이니까.
게다가 페소타 지역의 현재 상황까지 안다면 그들의 유능함에 군침을 흘릴 거다.
물론 내줄 생각은 없지만.
내 말에 프레드는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애인 때문입니까?”
“…약혼녀입니다. 아직 살아있을 겁니다.”
“당신을 배신했다고 하던데, 아직도?”
미련이 남았느냐는 말에 프레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황이 그랬을 뿐입니다. 오히려 지켜주지 못한 저를 탓하면 탓했지 그녀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피식.
‘대인배 납셨군.’
하지만 그만큼 편한 존재다. 1회차에서는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
1회차에서의 제국은 현재와 다르게 이 정도로 극성이지 않았고, 제국은 피해자들을 구제하려고 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법자들을 놓쳤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전력을 건진 것으로 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카르텔의 조직원들이 다수 빠져나갔고, 자신들에 대해 증언할 수많은 거주민과 수련자들을 살해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프레드의 약혼녀 또한 죽었다고.
“멀쩡히 살아 있다고 하더군요.”
“정, 정말입니까?”
“네. 라몬의 증언입니다.”
프레드는 기쁜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절망은 충분히 주었다. 이제는 희망을 줄 차례다.
“살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말에 프레드의 표정이 일변한다. 이제껏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던 모습이 천천히 사라져간다. 동시에 냉정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프레드는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무척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그는 충분히 영입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당신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
“저는 제국에서도 상당히 인정받는 사람이죠. 제가 원한다면 상당수의 피해자들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잘만 하면 거의 전원에 가까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당신 밑으로 들어가면 됩니까? 당신이 시키는 대로, 개처럼 복종한다면 그들을 살려주시겠다, 그런 말씀을….”
“그러면 제가 카르텔이랑 다를 바가 뭡니까?”
움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대신하자 그가 주춤했다.
인질과 협박을 통해 영입한다.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쉽지. 그러나 나는 이제껏 그 쉽고 좋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 왔다. 광진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는 지구를 위해, 전력으로 삼으려고 끌어들인 케이스가 아니었다.
내 목적은 거인을 몰아내고 지구를 구하는 것. 그걸 위해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할 사람이 필요하지,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 이를 믿고 등 뒤를 맡길 수는 없었다.
어딘가 조금 냉소적인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이 굳는다.
“제가 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당신을 영입하려고 하는 것, 맞습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꼭두각시는 필요 없어요. 제 목표는 지구로 돌아가 거인들을 쫓아내는 것이고, 그걸 위해 당신을 영입하고자 하는 겁니다. 영입의 대가로 피해자들을 구제해주겠다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그 방향이 조금 다를 겁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미소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프레드의 얼굴에 조금씩 공포가 차올랐다.
그의 두려워하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목소리를 조금 낮춘 채 입을 열었다.
“프레드 씨,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