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78화 (178/317)

# 178

페소타

[상태 창]

-이름 : 프레드 워커

-나이 : 24

-직업 : 전사(일반)

-LV. 46

-신체 능력

근력 : 59 민첩 : 51 체력 : 55 마력 : 48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강철의 육체(슈퍼 레어)

스킬 목록

-육체 재생(전설)

-근력 강화(레어)

-무투술(레어)

-육체 단련술(레어)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허.’

나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갓 중층에 올라온 인간의 레벨이 46. 게다가 능력치도 어마어마하다.

과연 미래의 랭커라고 해야 하나? 어째서 그가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레벨이 높은 이유는 손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사람을 사냥했군.’

멕시코 카르텔과 싸웠다고 했으니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아마 인간과 자주 싸웠을 거다.

리더로서의 입지를 굳힐 만큼 싸워댔으면 뻔하다.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또 싸웠을 터. 4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싸워왔는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스킬 들의 등급도 만만하지가 않다. 하기야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데 수련을 게을리했다면 진작 죽었을 터.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앞서 행동하는 모습이나 저 성실성만 봐도 충분히 미국의 대표가 될만한 자질이 있었다.

“프레드 워커라고 합니다. 프레드라고 불러주십시오.”

“유신후 입니다.”

“음…? 유신후… 님이라고요? 설마….”

그는 아까 내게 말을 걸었던 한국인 남성을 바라보았다.

“성훈 씨와 같은 국가 출신이십니까? 대한민국의?”

“맞습니다. 그쪽 출신입니다.”

“이럴 수가! 하기야 미국과 멕시코가 소환되었으니… 게다가 지구도 그 꼴인데 저희만 소환되었을 리가 없죠!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 또한 거인을 직접 목격했거나 확인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한국 시간과 LA의 시간은 대략 8시간, 뉴욕과는 12시간 차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쪽은 대낮이었을 테니 하나라도 나타났으면 금방 소식이 알려졌을 터다.

한참 기뻐하던 프레드는 내가 바라만 보고 있자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흠흠. 실례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해합니다.”

“그, 대강 사정은 들었습니다. 중층은 제국이라는 국가에 의해 통치되고 있고 연결된 하층이 제법 많다고….”

“맞습니다. 중층에 연결된 하층은 현재 6개. 국가로는 7개입니다. 이제는 7개의 하층에 국가는 9개가 되었군요.”

나는 대화를 하며 프레드의 반응이나 모습을 관찰했다.

수많은 전투를 겪은 사람치고는 제법 순박한 모습들이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의외였다. 게다가 상황 파악을 잘하는 것인지 상당히 저자세였다.

“멕시코 쪽 인원이 카르텔이라는 주장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기왕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레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다.

튜토리얼을 끝내고 미궁에 도착할 무렵에는 상당한 수준의 카르텔이 뭉친 상황이었다고.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그 아래에 들어가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 쪽 사람들은 그 정도 크기의 단일 집단이 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행동했고, 그에 반해 멕시코 쪽은 카를로스라는 놈을 대표로 똘똘 뭉친 상황이었죠. 자신들의 세력 아래 들어오지 않는 수련자들은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며 공포로 군림했습니다.”

동시에 쓸모있는 이들과 없는 이들을 잘 구분했다고.

“미국 시민들은 그 꼴을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뿔뿔이 흩어졌던 세력들끼리 뭉쳐서 카르텔에 대항했죠. 덕분에 그쪽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력이 비슷했거든요. 뭉친 덕분에 여러 정보들을 공유했고, 하루라도 빨리 지구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나눴었습니다. 잠시지만 희망찼던 때입니다.”

그러나 말의 내용과 다르게 프레드의 얼굴은 어두웠다.

“저희가 뭉치자 카를로스는 우리를 견제할 뿐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멕시코에서 실제로 그쪽 계통에 소속되어 있던 건지 상당히 탑에 적응이 빨랐고, 동시에 사람들의 공포를 다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련자들이 강해짐에 따라 하나둘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카를로스가 실력 다음으로 보던 충성심을 첫 번째로 보기 시작한 것은요.”

프레드는 참담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온갖 선동은 다 당했습니다. 멕시코가 힘든 것은 미국 때문이라거나, 미국이 멕시코를 망가뜨렸다, 미국이 카르텔이 생기도록 지원했다, 거인조차 미국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면서 저희를 죽여야 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였습니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저희도 저들도 알았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명분이었습니다. 저희를 공격하기 위한 핑계죠.”

프레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뒤로는 충성을 증명하라는 명목이나 배신자들에게 저희를 어느 정도 이상 죽이면 살려준다는 핑계 하에 저희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납치는 기본이었고 사냥 중 습격, 뒤치기, 안전 구역 포위… 결국 버티지 못한 저희 쪽 인원 중 일부는 살기 위해, 혹은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저희를 습격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희의 미궁 개척 속도는 늦어졌고,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였다.

차이가 벌어지자 점점 카르텔의 크기는 커졌고, 그들이 먼저 하층에 진출했다.

“사냥터의 독점과 마을 진출을 끊임없이 방해받았습니다. 저희는 강해질 기회를 박탈당했죠. 구역에 막혀 어디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전력의 격차는 커졌고, 미국 쪽 집단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문제는 거기에 더해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자 그들이 거주민에게도 이빨을 들이밀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미국과의 차이가 심해질대로 심해지자 오히려 그들에게 신경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더 큰 먹잇감인 도시 자체를 노렸다고.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수련자들. 심지어 몇천에 이르는 세력을 이룬 카르텔은 집요하고 잔인했다.

3년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그들은 도시와 싸웠고, 끝내 승리했다고 한다.

“그사이에 저희는 뒤늦게 성장을 시작했습니다. 도시와 협력하기는 했지만 저희의 힘은 미약했으니까요. 저희가 제법 성장하고 끊임없이 카르텔과 싸웠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도시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저희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중층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며 지금 페소타는 완전히 망해버렸다고 말했다.

“확인해보시면 압니다. 거기는 이미….”

페소타의 상황을 말하는 프레드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증오가 엿보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프레드의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공적으로는 이들의 주장을 책임자인 내가 직접 듣는다는 의미 정도밖에는 없었다. 어차피 1차로는 리프라소가 이미 조사했던 내용일 거다.

단지, 사적으로는 목적이 있었기에 한 번 더 들었을 뿐.

리프라소를 찾아가자 자신들에게 했던 이야기와 일치한다는 말을 해왔다.

“결국은 그쪽은 답이 없다는 말의 반복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페소타 지역의 지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본래 지도와… 저들로부터 받은 지도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드리겠습니다.”

나는 리프라소로부터 지도를 건네받고는 내일 페소타 지역의 실태를 조사하고 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하던 대로 외부의 침입을 막고 저들을 보호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고생해 달라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1회차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확실히 저들을 증오했고 모조리 몰살시키기를 원했다. 아마 중간중간 생략된 이야기들이 있을 거다.

‘그의 연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지.’

1회차에서는 나름 유명한 이야기였는데도 말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말해준 모양.

듣기로는 그 외에도 1회차 시절 상당히 구차하고 비참한 일을 많이 겪은 것으로 안다. 그는 그것들을 그대로 돌려줬고 덕분에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가 몇 개 있을 정도였으니까.

카르텔이 더 좋은 먹잇감을 얻었기에 미국을 방치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들은 미국인들을 조롱하고 비참한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살려뒀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가 모욕을 주었었지. 1회차 시절, 카를로스를 비롯한 멕시코 카르텔 일부는 꽤 오래 살아남았고 몇 년에 걸쳐 그런 모욕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다. 그러나 프레드는 그런 사실을 숨겼다. 뭐, 이해를 못 할 것은 아니지만.

대충 그가 1회차에서 카르텔 잔당들에게 했던 짓들만 살펴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집요할 정도로 몸과 정신을 망가뜨리려고 했었지.

일화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페소타 지역은 말소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대부분이 죽겠지. 살아있더라도 제국은 살려주지 않을 거야. 이미 동조할 대로 했을 테고, 상황이 그렇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한들 여기가 현대의 지구도 아닌데 살려줄 턱이 없어.”

특히 제국의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그가 카르텔에게 보이는 증오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했다.

어차피 무법자들은 처리해야 하고, 과정은 내게 일임되었으니 그를 끌어들이기는 어렵지 않았다.

카르텔을 제물로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복수자는 내가 영입하려고 하는, 수련자 중 마지막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프레드라고 했던가? 괜찮아 보이던데? 하층에서 갓 나왔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강해 보였어.”

“맞아요 형. 옛날 형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수련자들에 비하면 압도적인 것 같았어요.”

“확실히 보이는 움직임이나 느껴지는 마력이 보통은 아니었어. 저런 사람이 앞장섰다면 탈출이 불가능하지는 않겠던데?”

“거꾸로 생각하면 저 정도 실력이 있어도 도망쳐야만 했던 환경이라는 거지.”

“…그건 그렇네.”

“그래도 심성은 나빠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어. 그 실력이면 혼자서도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하기야. 답답한 게 딱 네 취향이기는 하네.”

나연의 시선이 슬쩍 나에게 향한다. 무슨 뜻인지 짐작은 간다.

“뭐, 사실로 판명되면 도와주기는 할 거니 그렇게 보지는 마라.”

“아, 티 많이 났어?”

“어. 어차피 카르텔이 무법자인 것은 가 보면 금방 확인될 테고 사실로 판명되면 결과적으로 돕게 될 테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이쪽에 영입하면 더 좋고.”

“…형의 인재 욕심은 정말 끝이 없네요.”

“지구가 그모양이니까.”

지구가 그모양이라는 말에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에게 배속된 천막에 모여 내일 있을 확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연과 하유진, 사샤와 함께 받은 지도를 살피며 확인할 장소를 살폈다. 미국 쪽 수련자들이 작성한 지도 덕분에 어렵지는 않았다.

“그럼 이쪽부터 시작해서… 여기가 원래 마을이 있던 장소라고?”

“원래 지도에는 없는데… 새로 생긴….”

내일의 정찰 루트를 확정한다. 그 뒤로 여러 의견들을 나눈 뒤 하루를 쉬고 우리는 곧바로 페소타 지역으로 진입했다.

***

페소타 지역은 대부분이 숲으로 이루어진 장소였다.

사냥터의 몬스터는 슬라임이고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들은 홉고블린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우리가 하층에 진입하는 즉시 비명이 들려왔다.

설마 하층에 진입하자마자 비명을 들을 줄은 몰랐기에 일행들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일행들은 잠시 시선을 맞추는 듯하더니 곧바로 비명이 들린 장소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일체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나연은 사샤가 바람의 정령화하며 정령 마법을 사용 자신의 소리를 죽여버렸고 하유진은 직업 특유의 움직임으로 일체의 소음이 생기지 않았다.

나 또한 소리를 죽여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우리들의 움직임은 격렬한 가운데서도 무척이나 조용하고 은밀했다.

“푸하하! 그러니까 왜 배신을 하나! 한 번 형제는 영원한 형제다!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봐라!”

“잘못했어! 잘못했습니다! 제발, 흐아아악!”

“……허.”

장소에 도착함과 동시에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 남자가 전신에 슬라임이 붙은 채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피부가 녹아내리며 붉은 근육이 엿보인다.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며 남자는 목숨을 구걸했지만 그를 둘러싼 이들은 그런 남자의 꿈틀거림에 침을 뱉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미 남자의 팔꿈치와 무릎 관절은 박살 난 상태라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 이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 네놈이 프레드라도 되는 줄 알았나? 그 개새끼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는 몇 개월간 우리에게 복종하며 준비를 해야 했다고! 그런데 네놈이 뭐라고 감히 배신을 해!”

“우리는 형제다!”

“형제를 배신한 놈은 살아남을 수 없어!”

“이 배신자!”

프레드라는 이름에 일행이 움찔한다.

‘역시 숨겼군.’

주변을 둘러싼 이들이 끊임없이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몇몇의 얼굴은 혐오나 증오가 아닌 공포로 일그러져있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저주를 내뱉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행동의 주동자로 보이는 남자는 공포에 질린 채 악다구니를 써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저거 뭔가 이상한데?”

“공포로 장악한다는 게 저런 뜻이었나 보네. 하….”

사샤가 그 기괴한 장면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고, 나연은 표정을 구겼다.

그러나 둘과는 다르게 하유진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완전히 무감정한 모습.

“어떻게 할까요? 형. 무시할까요?”

하유진의 물음에 나연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마 이대로 돌아가자고 해도 나연은 아무 말 하지 않을 거다. 그녀는 혐오스러운 얼굴로 저들을 바라보면서도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생포해. 단, 조용히.”

“사샤!”

“알았어.”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하유진의 모습이 흐려졌고 동시에 나연과 사샤의 정령 마법이 작렬한다.

조용히 처리하라는 내 지시에 나연이 선택한 것은 대지 계열의 마법이었다.

사샤가 갈색으로 물들고 동시에 바닥이 갈라진다.

그리고 고문받는 남자를 둘러싼, 카르텔 소속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땅에 파묻어버렸다.

중급 정령사인 나연의 마법이다. 고작 하층에 존재하는 수련자들이 대응할 수는 없었고,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그들은 그대로 땅에 파묻혀버렸다.

일단 산 채로 생포했으니 잠시 후 꺼내면 그만이다. 아마 숨이 막혀 기절해 있을 거다.

그사이 하유진이 고문을 받던 남자 곁으로 이동해 슬라임을 베어버린다.

촤악!

검기가 솟아오른 단검은 물리 저항력이 있는 슬라임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스르륵.

죽어버린 슬라임이 녹아내린다.

“끄허어어… 흐어어억….”

고통을 숨기지 못한 채 남자는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하유진은 허락을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유진은 즉시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들었다.

하급 수준의 포션. 응급 처치를 하기에는 충분하다.

하유진은 포션의 절반을 상처에 뿌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컥! 컥!”

망가진 관절은 몰라도 녹아내린 피부 정도는 치료가 될 거다. 관절은 지금 고치려면 상급 이상의 포션을 부어야 할 텐데 그렇게까지 포션을 투자할 이유는 없었다.

그사이 사샤가 의식을 잃은 카르텔 단원을 차례차례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고문을 받던 남자에게 접근했다.

“허억, 허억….”

“정신이 드십니까?”

“살, 살려주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쯧.

남자는 아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나를 향해 살려달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흠….”

본래라면 목숨을 구해준 김에 정보나 캐낼 생각이었는데 그럴 정신은 없어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일행에게 말했다.

“잠시 돌아갔다 온다.”

“리프라소에게 맡기려고?”

“어. 카르텔 인원들에게 정보도 뽑아내고 이 남자는 나름 피해자니까 현지 정보도 제대로 뱉어내겠지. 그리고 저놈. 프레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눈치던데, 제대로 정보를 뽑아내야겠어.”

“제가 할까요?”

“음?”

하유진이 나섰다.

“정보를 뽑아내는 것도 배우긴 해서요.”

“…리프라소와 함께 해. 혼자 하지는 말고.”

“알겠어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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