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나는 우선 받은 영약을 아멜리아에게 전달했다.
“고난의 신전은 못 쓰게 되었으니 일단 이것으로 참아달라고 말 해줘.”
“…아멜리아 언니는 오히려 이걸 더 선호할 거 같은데….”
내가 건네준 영약을 받은 나서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황제에게 요구한 것들 중 하나였다.
“이번 일 끝나면 파티원들은 전부 황실 창고 한 번씩 들어갈 수 있을 거야. 하나씩이기는 하지만 2등급 이하 아이템 하나 챙길 수 있으니 잘 생각해두라고.”
“…황실 창고면 예전에 신후 씨가 들렀던….”
“네. 거기입니다. 2급 이하 아이템 하나 들고 나올 수 있게 허락을 받아 두었으니 필요한 게 뭔지 잘들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길드원들은 포상금이나 다른 아이템을 통해 보상을 받을 거다. 차이가 크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많은 길드원들까지 황실 창고에 들어가 장비를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사실 일행들이 황실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이번에 맡은 일의 보상과 1년간 전선을 지킨 포상이 합쳐진 결과였다.
길드원들은 이번 일에서는 빠지고 1년간 해온 일에 대한 공적만 계산하는 거니 어떤 의미로는 맞는 것이기도 하다.
1년간의 공적만 생각해도 파티원들이 압도적인 만큼 포상의 차이가 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주하연이나 남은주는 성녀 선언 이후 성유물들을 얻기 위한 시험을 시작할 테지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저 영약은 착수금 명목으로 미리 받은 거였다. 참고로 나는 황실 창고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다른 것을 요구했다.
훨씬 까다로운 요구였지만 황제는 수락했다.
‘역사가 깊고 수준이 높은 검술에 관련된 비전.’
그리고 그 비전을 익힌 검사의 직접적인 가르침이라는, 어지간해서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했지만,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수락했다.
나에게나 어려운 것이지 황제에게는 아주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황제에게도 쉽기만 한 요구는 아니었다. 제자도 아닌데 기술과 비전까지 다 토해내라는 거니까. 충성의 대가를 그런 식으로 치루면 황제에게 좋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기사에 따라 가능하기도 한 요구다. 제국의 상황이 좋지 못해 어쩔 수 없다는 명분도 있겠다, 상황에 따라 대가만 주어진다면 받아들일 기사가 없는 것은 아닐 테니까.
경지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후 1년간 어떻게든 노력을 해 봤지만 마스터 최상급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내 현재 경지는 마스터 상급. 능력치나 스킬의 숙련도, 레벨과 같은 시스템과 관련된 스텟들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역시 그놈의 경지였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제껏 행동해온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의 수련은 거의 모른다.
황실 정보 길드나 용병을 통해서 갖가지 정보를 모아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대부분 자신의 재능이나 실전을 통해 단련한 이들이었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기술에 대한 재능? 스킬의 힘으로 배워왔다. 실전? 나보다 치열하고 많은 전장을 거친 이들은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마스터도 되지 못한 이들 투성이었다.
그렇다고 전통 있는 기술을 배우자니 하나같이 맥이 끊겼다거나 제대로 된 전승자도 없는 기술들 투성이라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금씩, 조급함이 생겼다. 하지만 경지라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막 오르는 것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는 없었다.
시스템의 힘이 아닌 이상 솔직히 20대에 마스터에 오른 것만으로도 역사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 와서 정석적인 방법으로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다?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 정도는 알아 둬야겠지.’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다. 시스템의 힘과 정석적인 방법. 모두를 이용한다면 분명 길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황제에게 저런 요구를 한 것이었고.
일행은 황실 창고라는 말에 무척이나 흥분한 모양이었다.
“우와! 역시 히든 퀘스트고 뭐고 형이랑 같이 다니는 게 최고예요! 오자마자 황실 창고라니! 거긴 도적 길드도 엄두조차 못 내는 곳인데!”
“신후 씨와 함께 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가 보네요.”
“황제가 급하긴 급한가 보네. 아무리 오빠 요구라고는 하지만 황실 창고에 파티 인원 전부를 보내준다니….”
“2등급이라고는 했지만, 대부분이 전설급이라던데… 그런 아이템을 7개, 아니 영약까지 합하면 8개… 황제답게 통이 엄청 크군요.”
“아, 저는 안 들어갑니다. 여러분만 갈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신후 오빠? 신후 오빠가 제외라뇨?”
“아, 나는 다른 것을 원했거든.”
일행들의 표정이 굳는 듯하더니 내가 요구한 것이 어떤 것인지 들어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 원했길래 황실 창고를 포기해? 리더, 미쳤어?”
내가 원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자 일행은 이내 납득한 기색이었다.
“하긴, 최근 오빠가 그런 것에 관심을 크게 갖기는 했었지. 뭐, 내가 마스터에 들어간 것도 오빠가 모은 자료들의 영향이 있기도 했었고.”
거기에 더해 내 조언과 내 행동들이 영향을 많이 미친 편이었다. 덕분에 마법은 비교적 성장이 늦었지만.
이는 나서윤의 선택이기도 했다. 마스터의 힘을 보고 겪어본 나서윤은 마법도 중요하지만 이쪽을 먼저 얻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장 환경이 괜찮게 조성되기도 했으니까.
“…카바락과의 2차전 이후 그런 정보를 끌어모으기는 했었죠. 이해는 해요.”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역시 황제….”
“자, 자.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야지만 가능한 겁니다. 일단 황실 측에서 미국 쪽 인원들을 보호하고 있다고는 하더군요. 그들을 먼저 만나볼 계획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길드 쪽은 다시 이윤형 씨와 조연은 씨가 맡게 되겠네요.”
둘은 최근 간부로 임명된 만큼 충분히 권한이 있었다.
참고로 주하연과 나서윤, 한바다는 고위 간부가, 나머지 인원은 간부에 해당하는 지위를 갖고 있었다.
주하연은 부 길드장 역할이자 성녀이고, 나서윤은 아직까지는 길드 내의 최고 마법사이자 나를 제외하면 유일한 마스터다. 한바다는 아무래도 정예 길드원들이 가장 믿고 따르는 이인데다가 길드 전체에서 세 번째로 강하며 나서윤의 뒤를 이어 마스터를 넘보는 위치인 만큼 부족하게나마 고위 간부에 오를 수 있었다.
“추후 방침은 미리 정하고 갈 겁니다. 그동안 모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길드원들은 던전 및 사냥에 집중시킬 계획입니다. 유진이가 데려온 암살자들도 따로 배속해야 하고요. 적응시킬 인원도 따로 빼야겠군요.”
“그런 것보다는 휴가가 우선 아닐까요? 1년간 고생했는데.”
“그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가볍게 주하연과 이야기를 나누며 방침을 정한다.
“마법사들 쪽에는 내가 말할게요, 언니. 휴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빠가 원하는 던전이나 사냥을 하려면 아무래도 팀을 짜야 할 텐데, 제가 직접 말하는 쪽이 더 잘 통할 거에요.”“하기야 그쪽은 네가 낫겠지. 부탁 좀 할게.”
“네. 걱정 마세요.”
1년새 하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법사들은 하나둘 전선에 참가했고 나서윤과 이연솔의 지휘 아래 방어전에 참가했다.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수련자들 답게 레벨과 마력은 필요했고, 그렇기에 가끔 사냥을 해오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사냥을 하기에는 마법 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하급 마법을 사용하게 된 이후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방어전에서 상당히 활약을 했고, 가이아의 마법병단이라는 이름으로 상당한 유명세를 떨쳤다.
‘문제는 벽에 막힌 이들투성이라는 거지만.’
아마 500의 마법사들 중 반 이상은 중급 마법에 닿지도 못할 거다. 한 100명이나 중급 마법을 하나라도 익힐 수 있을까?
상급 마법을 익힐 수 있는 마법사는 다섯이 채 안 될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솔직히 나서윤이나 아멜리아를 제외하고 상급 마법을 익힐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연솔 정도뿐이었다.
상급 마법을 하나라도 쓸 수 있게 된다면 1회차를 기준으로 거대 길드의 1군 파티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조건에 해당했다. 상급 마법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유진이 너도 조심해. 신후 님 직속 파티에 소속된 이상 함부로 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쪽이 조금 예민하거든.”
한바다의 조언에 사샤가 끼어들었다.
“그게 다 옛날에 무시당하고 살아서 그래. 난 오히려 보기 좋던데 뭘. 그렇게 당하고도 헤헤거리면 호구지.”
“…그래도 조금 그렇긴 해.”
“으휴, 답답아, 답답아. 그러니까 니가 아직도 답답이인 거야. 그건 걔네들이 잘하는 거라고. 선생님 지시기는 했지만 자기들 도와줬던 정예 길드원들과는 원만히 지내는 편이고, 자기들을 거둬준 리더나 직접 보살핀 선생님한테는 깍듯하잖아. 그 휘하였던 너희들에게도 예의 잘 지키고. 그거면 됐지, 뭘. 그리고 나가서 사람 막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딱 선 긋는 게 다잖아?”
확실히 마법 병단에게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랄까? 무시당하거나 하는 것을 잘 참지 않기도 하고. 그렇다고 어디 가서 함부로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니 애매하기는 하다.
그 때문인지 주하연도 조금 거북해하는 편이다. 예의 자체는 잘 지키고 주하연의 지시라고는 해도 시키면 잘하니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대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자주 하소연을 해 왔다.
“나한테는 전혀 안 그러던데.”
“…너는 조금 예외지. 걔네들에게는 우상 같은 거니까….”
나와 한바다, 그리고 나서윤은 완전히 예외지만.
오히려 엄청 어려워하지. 빠릿빠릿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의 그런 태도를 싫어하지 않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 길드원으로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대충 차후 방침이 대강 정해지자 인원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먼저 이동하는 인원은 나와 하유진, 나연이었다. 정찰에 특화된 편성이다. 나머지 인원인 주하연과 나서윤, 남은주와 한바다는 길드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따라오기로 결정했다.
“일단 먼저 가서 대충 상황을 파악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뒷일은 좀 부탁하죠.”
“맡겨두세요.”
“금방 따라갈게, 오빠. 언니, 그동안 잘 부탁할게.”
“걱정 마. 벌레 꼬이는지 잘 확인할 테니까.”
나연의 가벼운 말에 일행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뒷일을 완전히 맡긴 나는 곧바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 목표 지역인 페소타 인근으로 이동했다.
***
미국인들은 제국의 군인들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고 있었다.
정확히는 보호라는 이름 하의 감시였으며, 이미 페소타 지역 주변에는 제국군이 가득했다.
내부에서 더 나오는 이들을 감시할 뿐만이 아니라 외부의 인원이 내부로 들어가는 것까지 철저하게 통제했다.
제국 내부의 무법자들이 저기로 들어가 버리면 안 그래도 커다란 무법자 집단이 더더욱 커질 우려가 있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페소타 지역의 담당자 리프라소라고 합니다!”
“유신후입니다. 미국 쪽 인원을 보호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스스로를 미국의 시민이라고 칭하는 이들이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페소타가 이미 카르텔이라는 멕시코 갱단에게 점령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중입니다.”
“…카르텔?”
너무나도 유명한 이름에 나연의 얼굴이 아연해진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워낙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나연은 그걸 알 턱이 없었다.
“멕시코의 세력이라는 것이 카르텔이었어?”
“카르텔이 뭔데요?”
하유진은 모르는 눈치다. 하기야 8살에 탑에 들어왔으니까.
지구에 퍼져있는 멕시코 카르텔의 악명 중 반만 맞아도 그들이 탑에서 미국의 시민이라는 이들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했을 거다.
지구에서 선진국에 속하고 시민의식이 뛰어날수록 도리어 탑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제대로 된 갱단이나 야쿠자 같은 뒷면에 속해 왔다면 차라리 적응이 쉽다. 단순히 인간을 이용해먹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폭력, 살인에 거부감이 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익숙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런 만큼 적응이 빠르다.
적응이 빠르면 초반 성장이 빠른 만큼 하층 단계에서는 장악이 쉬운 편이고.
“…저 말이 사실이면 페소타는 재기 불능이겠는데?”
나연의 기억을 읽어 갖고 있는 만큼 사샤도 카르텔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다.
어떤 의미에서 카르텔은 단순한 무법자들보다 악질이다.
그들은 공포로 사람을 지배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이곳은 법보다 힘이 더 가깝고 힘에 의한 지배가 지구에 비해 더 당연한 세계다. 그들의 폭력성을 마음껏 배설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니까.
우리들의 대화를 들은 리프라소의 얼굴이 한껏 굳어진다.
미국의 시민이라 자칭하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페소타 지역의 꼴은 말이 아닐 테니까.
“우선 그들을 만나보고 싶군요.”
“바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리프라소를 따라 이동했고 자칭 미국의 시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들은 허름한 천막 하나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조리 들어가 있었다.
천막 자체가 큰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수십 명이 들어가 생활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환경이 좋지 못하군요.”
“그, 제일 큰 천막이 저거였습니다. 저희는 구역 하나를 정해주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천막을 나눠 주었는데, 굳이 본인들이 한 천막을 쓰고 싶다고 고집을 피워서….”
‘불안한가?’
하기야 그럴 만했다. 카르텔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다 겨우 여기에 도착했을 거다. 자신들끼리의 유대감도 크겠지.
생각해보면 미국의 랭커 복수자를 추종하는 이들의 충성심은 중층 내에서도 유명했으니까.
1회차 시절 카바락의 손에서 복수자를 살리기 위해 추종자의 대부분이 목숨을 던진 일화는 유명하다.
“새, 새로운 사람이….”
“제국에서 온 사람인가 본데?”
“프레드! 프레드를 불러! 프레드! 어디 있습니까! 제국에서 사람이 왔어요!”
‘프레드.’
미국의 랭커 복수자의 이름이다. 아무래도 이 시절부터 그는 두각을 나타낸 듯 리더의 위치를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등장에 천막 내부가 어수선해진다.
천막 내부의 사람들은 난민을 연상시켰다. 옷 자체는 제국에서 지급했는지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지만 행색은 추레하고 지저분했다.
아무리 무법자로 의심된다고 해도 혹시 모르기에 식량 자체를 보급하지 않은 것은 아닐 터. 뻔하다. 아마 받는 족족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인벤토리에 대부분 보관한 모양이다. 그래놓고 더 달라고 해 봐야 제국이 내줄 리는 없을 테고.
미국인들로 추정되는 이들은 이민자들의 나라답게 가지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있었다.
동양인이나 백인, 흑인, 아랍인 등 여러 인종들이 섞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흑인과 백인이었다.
“서, 설마, 한국인이신가요?”
그들 사이에 동양인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생김새가 확실히 한국인에 가까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맞습니다.”
“하, 한국도 하층이 열린 건가요? 게다가 여긴 중층인데… 어떻게 제국의 대표로….”
“한국이 첫 번째로 중층과 연결된 곳입니다. 사실상 모든 하층 중 한국의 세력이 가장 큽니다.”
내 말에 남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자는 궁금한 것들이 많은지 이것저것 질문을 더 해 왔지만, 대답할 의무도 없었기에 더는 귀찮다는 듯 입을 다물어 버렸고, 그제서야 남자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고요한 가운데 나는 집단의 대표가 오기를 기다렸고, 얼마 되지 않아 헐레벌떡 달려오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헉, 헉. 늦,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화장실에 있어서….”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언질도 없이 찾아온 거니까요.”
나는 인사를 나누며 만약을 위해 그를 향해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