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74화 (174/317)

# 174

주하연을 비롯한 일행들이 헬모사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뒤였다.

헬모사 성의 성문은 보수 중이었고, 유신후는 귀빈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누가 찾아와도, 깨우지 말라고 했다는 말과 함께.

“…그러니까, 신후 씨, 아니 길드장 님 혼자서 다 죽였다고요?”

“네, 맞습니다. 처음 괴물 같은 오크와 싸울 때만 해도 밀리시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압도하시더군요. 끝끝내 승리까지는 하셨는데, 숨통을 끊기 직전에 오크들의 지원군이 도착했어요. 그 때문에 팔 하나 겨우 자르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럼 저 많은 시체들은….”

“이후 지원 온 오크들이 유신후 님을 견제했고, 잠시 뒤 네임드 오크 두 명과 신후 님이 맞붙었습니다. 멀리서 화살도 날아오더군요. 보통 화살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접전 끝에 유신후 님이 승리하셨고… 그, 오른팔로 피를 흡수하시더니 곧바로 오크 대군을 향해 홀로 돌진하셨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엘리자베스 공주는 어딘가 경외감이 깃든 눈동자로 말했다.

“그리고는 모조리 도륙하셨습니다. 어딘가에서 화살을 쏘던 오크도 잡아서 죽이셨고, 수천에 이르렀던 오크들은 유신후 님 한 명을 막아내지 못하고 전멸했습니다. 분명 수준이 있는 오크들도 몇몇 보였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더군요. 중간에 잠시 힘들어하시기는 했고, 피를 토하는 모습도 확인되었습니다만… 피를 대량으로 흡수하시더니 곧바로 모조리 쓸어버리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피곤하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는 아무도 찾지 마.’

“처음으로 존대가 아닌 말을 들었지요. 그리고는 방에 틀어박히셨습니다.”

피곤에 젖은 눈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주하연은 이야기 사이사이 껴 있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앨거차의 문신을 극한 활성화했고, 전투 중에 풀린 거다. 부족한 부분은 바리치의 문신으로 처리한 모양이었다.

강해진 유신후와 대등히 싸웠다는, 카바락이라 추정되는 오크가 의아하기는 했지만, 유신후가 괜히 앨거차의 문신을 극한 활성화했을 리가 없었다. 필요한 상황이었을 거고, 부작용에 시달리면서 오크들과 싸워 성을 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하연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또 어떤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몸에 부하가 걸린 거겠지. 이번에는 얼마나 갈지 한걱정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가 회복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유신후도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자신이 더 뛰어나긴 하더라도 필요했더라면 언급을 했겠지. 무시하고 그의 방으로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눈앞의 공주를 통해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찾지 말라는 말을 전해 들어 버렸다.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서 길드장의 명령을 그렇게 가볍게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주하연은 유신후의 방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당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다른 상념이 머리를 차지한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그가 자신과 같이 시작한 수련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고 많은 것을 주고도 어떻게 저리 닿을 수 없는 장소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주제에 제 사람은 끔찍이 챙기고 목적은 숭고하며 그게 지금까지 변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말릴 수도 없었다. 따라가는 것도 벅차다. 이야기만 들어서는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그게 밖의 흔적과 이어진다면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유신후에 비해 부족할 뿐 충분히 빠르게 성장해왔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실력은 지니고 있었으니까.

A급 용병에 준하는 수준의 실력을 부족하다고 한다면 그게 더 웃기는 것이었다.

어쩐지 성에 오면서 봐온 흔적들이 하나같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서윤의 표정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던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일행들 중 여전히 가장 앞서나가기에 그 흔적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더 읽은 것이리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네?”

“어떻게 해야 가이아 길드 산하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엘리자베스 공주의 질문에 주하연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유신후 님은 실력이 괜찮다면 산하에 파티나 길드를 받아들인다고 들었어요. 저희 왕실 길드도 그 산하에 들어가고 싶어서요.”

“…갑자기요?”

“탑의 상황을 보니 도저히 저희 길드의 힘만으로는 버텨나가기가 힘들다고 판단했어요. 그러니 적어도 비빌 언덕은 필요하겠죠. 유신후 님이시라면 같은 수련자시고 목적도 지구의 귀환이라는, 공통된 것을 지니신 데다가 자기 휘하에게는 끔찍하게 대하시는 분이니까요. 기왕이면 가이아 길드의 비호를 받고 싶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엘리자베스 공주는 두 손을 모으며 간절하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주하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건 신후 씨에게 직접 하셔야….”

“유신후 님이 부재중이실 때는 주하연 님이 그 역할을 대리한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몇몇 인원들은 주하연 님의 허락하에 길드 산하에….”

어디서 그렇게 정보를 모았는지 엘리자베스 공주는 어떻게든 주하연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주하연은 이 정도 규모를 산하로 받아들이는 것에 길드장의 직접적인 허가 없이는 힘들다고 말했고, 그러자 엘리자베스 공주는 허락 대신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고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까이서 본 유신후의 성격은 어떤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공주의 적극적인 모습에 당황하던 주하연도 유신후의 기호나 취향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물어보기 시작하자 마침내 입을 닫아버렸다.

그 기색을 눈치챈 엘리자베스 공주는 더는 자세한 이야기를 묻는 것을 포기하고 던전에서의 일 등을 물으며 그녀와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주하연은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래도 한 길드의 수장인 사람을 막 대할 수도 없었기에 엘리자베스 공주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다음 날이 되어 유신후가 밖으로 나온 이후에야 주하연은 엘리자베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

“영국 왕실 길드에서 산하로 들어오고 싶다는 말을 해 왔다고요?”

“네. 맞아요. 제가 결정할 수는 없어서….”

“그렇군요. 한 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몸은 괜찮으신가요? 필요하다면 제가 치료를….”

“괜찮습니다.”

“…이번에도 극한 활성화를 하신 것 같은데, 괜찮다고요? 혹시 무리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아닙니다. 운이 좋아 이번 부작용은 잘 해결되었습니다.”

나는 걱정스레 물어오는 주하연의 질문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실제로 사실이었다.

그대로 부작용이 터졌으면 또 요양을 해야 했을지도 몰랐지만, 성자의 육체, 성흔, 신성의 오라에 성장한 불사의 육체, 거기에 더해 쳐들어온 오크 대군을 학살하며 얻은 피를 바탕으로 바리치의 문신 효과까지 최대로 활용하자 큰 문제 없이 부작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상당한 피로감과 탈력감 때문에 하루를 날려 먹기는 했지만, 그 정도 대가는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 그리고 놀푸르 님이랑 코리엘 님이 제국 측에 사람을 보냈다고 들었어요. 이쪽 상황을 설명한다고… 신후 씨가 쓰러져 계셔서 직접 처리했다고 하더라고요.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제게 말을 해 왔어요.”

“잘했네요. 확실히 여기가 좀 폭풍의 핵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현명한 선택이다. 솔직히 말해 제국의 지원이 없으면 이 영지는 더 버틸 수 없었다.

여기서 죽은 네임드만 셋이다. 이쯤 되면 오크들도 이곳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자신들의 영토를 포기할 리는 없으니 아마 중요한 지점으로 선언하고 제대로 군사를 보내오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에 온 이들은 주변에서 끌어모은 이들이겠지. 고른 덕분인가?’

아마 이쪽의 전력을 정확하게 보고했고, 카바락을 잡기 위한 네임드 셋이면 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과 거기에 더해 주변 부족에서 끌어모은 다수의 오크들이라면 이곳을 충분히 청소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거다.

문제는 내가 숨겨놓은 패를 잘못 파악했고 덕분에 모조리 내 경험치가 되어버렸다는 거지만.

덕분에 레벨이 제법 상승했다.

“성의 민심이 상당히 좋지 않아요. 신후 씨 명성은 엄청나게 오르긴 했는데, 오히려 무서워하는 사람도 생겼고… 아, 저희 길드원들은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상관없었다. 다른 일반인들이 강자를 두려워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니까. 그래도 지켜주는 입장인 만큼 두려워하고 동시에 믿음직스러워하고 있을 거다.

“그렇군요.”

“…영국 왕실 길드는 어떻게 할 셈이신가요?”

“조금 더 살펴보고 괜찮으면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한 국가의 대표 길드를 산하로 넣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물론 좋은 상황이지만. 물을 흐리면 산하라는 이름 하에 간섭이나 처벌이 가능해지고 반대로 쓸만한 이들이라면 내 길드가 더 강해지는 거다.

이쯤 되면 후발주자들이 따라잡기 아득한 차이가 날 거다.

뭐, 황제가 조금 견제할 수도 있긴 하지만. 믿는다고는 해도 여기서 더 몰아줘 크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 황제가 호인이라고 한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하지 않을 짓이었다.

내 성장을 본 황제는 여기서 내가 더 수련자들을 흡수하면 단시간에 어지간한 대귀족 이상의 세력이 될 수 있음을 알 테니까.

이건 신뢰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아무리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이라고 해도 일정 이상 커지면 경계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 황제가 정치적으로나 무력적으로 타 대귀족들에게 부족한 상황도 아니니 도박을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 클 뿐 지금의 그는 충분히 한 제국의 수장으로서의 위엄과 세력은 갖추고 있었다.

단지 그가 봉건제의 군주로 만족하는 대신 중앙집권국가의 황제를 원해서 나를 이용하려는 것뿐이었다.

‘타 국가들에게 당분간 간섭은 힘들겠지만, 이걸로도 충분하니까.’

슬슬 많은 정보가 쌓였을 테니 시비우스를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의견을 참고하면 어렵지 않게 영국 왕실 길드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주하연과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난 이후 나는 전투 중에 나타났던 메시지를 확인했다.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

설마 이걸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최초의 모든 능력치 100달성자.]

-여러 요건이 돕기는 하였으나 탑에 입장 후 짧은 시간 만에 모든 능력치 100을 달성한다는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스킬 슬롯 1개가 추가 개방됩니다.

이것도 업적이 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차갑게 메시지 창을 바라본다. 솔직히 스킬 슬롯이 여기서 더 늘어나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은 안다. 여기서 더 강해질 여지가 생긴 것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업적을 얻었으니 또 포인트가 생겼겠지. 게다가 이곳은 중층. 중층에서 업적을 쌓은 만큼 이번에는 정보 레벨 90을 완성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키밀리가 준 미궁 파편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겠지.

그게 끝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여러 요건이 돕기는 하였으나’라는 문장이 거슬린다. 설마 순수 능력치가 100에 달하면 또 뭐가 있나 싶었다.

‘일단 시도는 해 봐야겠네.’

자유 능력치 포인트도 남았으니 훗날 시도를 해 봐야 할 듯했다.

하지만 솔직히 감흥 자체는 부족했다. 이번의 전투로 인해 강해진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서 강함이란 모든 것의 총합이었다. 레벨, 능력치, 재능, 스킬, 스킬 슬롯, 아이템, 숙련도, 경험 등에 경지 또한 그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강해진다는 것은, 그 목표의 구체적인 모습은 일단 랭커였다. 그보다 강해진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당장에 도착해야 할 지점은 그곳이라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귀결이었다. 모든 수련자들의 꿈은 랭커였으며 그나마 현실적인 꿈은 거대 길드에 들어가는 것이었을 정도니까. 나도 거기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경지란 재능이 있으면 빨리 올라 다른 것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지름길이지만, 역으로 다른 것들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오르기도 했으니 오를 필요가 있기는 했으나 그렇게까지 간절하지는 않았다. 시스템이 있었고 다른 것들을 갖추다 보면 결국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계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깨졌다.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마스터가 되지 못했고, 그때 약간이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카바락과의 첫 번째 대결을 통해 해결되었고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전 내 상황이 특별한 예외였기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사실이다. 당시의 내 육체와 정신의 불균형으로 인해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은 맞으니까.

하지만 이후의 경지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마 처음의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을 거다. 분명 다른 것들이 받쳐주면 자연스레 경지는 오르겠지. 재능이나 갖춰진 것들에 따라 다르지만, 내 재능이었다면 마스터는 어떻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전투를 통해 느꼈다. 그랜드 마스터는 그래서는 갈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랭커들이 대전사와 같은 이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은 시스템과 아이템의 힘이 크다.’

그들의 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대단하다. 다만, 상상 이상으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나는 카바락과 비교해 경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앞섰다. 하지만 그를 겨우 이기는 것이 한계였다. 게다가 그 카바락은 아무래도 금술인지 뭔지를 이용해 그 경지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모든 것들을 동원해 힘겨운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즉, 카바락은 모든 것이 다 나보다 떨어졌는데 경지 하나만으로 나를 이길 수도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는 거다.

이번 싸움을 통해 어째서 수련자들이 그리 성장하고 강해졌더라도 오크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과장을 보태자면 수련자의 한계이자 시스템의 허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타 종족이 인간들이 오크를 완전히 누르고 강대해지는 것을 싫어한 이유도 있었지만, 수련자들이 그런 그들조차 눌러버렸다면 인간이 중층을 지배하는 것도 가능했을 거다.

근데 그게 불가능했다.

시스템. 분명 엄청난 힘이지만, 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직접 부딪침으로써 깨달아버렸다. 시스템의 보조는 뛰어나지만 나 자신이 더 강해야만 한다.

어떤 의미로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이었다.

‘경지.’

진짜로 강해지려면 경지를 올리고 거기 위에 시스템을 얹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존재가 되어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진짜 잘 성장한, 최상급의 잠재력을 모두 계발해 스킬을 제대로 체화한 랭커라면 거인 두셋은 혼자 죽일 수 있다. 물론 지구에 존재하는 거인은 왕자 휘하의 정예들이니 얘기가 조금 다르기는 하다.

지구에 침공한 거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랭커 둘은 되어야 거인 하나를 확실히 죽일 수 있다. 가이아로부터 그렇게 들었다.

그런 거인이 100개체.

다른 의미로 그랜드 마스터 100개체가 지구에 침공한 것이며 그들 중 왕자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새삼 생각해도 미쳤군.’

1회차를 기준으로 내가 죽기 전에 존재했던 그랜드 마스터의 숫자는 열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음을 가정하면 지구는 정말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카바락이 새로운 고민을 가져다 주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이후 제국 쪽에서는 헬모사 지역의 상황을 듣고는 이쪽 영토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얻는 것에 비해 손해가 너무 크다.

그렇기에 사람만을 모두 빼 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헬모사 주민들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싶어 했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이대로 간다면 이곳은 멸망한다. 결국 이들은 이주에 찬성했고 제국의 지원 하에 대대적인 철수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빠져나가고 싶었으나 수천이 넘는, 만에 달하는 인간이 움직이는데 오크들이 눈치를 채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제국은 나름 큰 전투를 각오하고 군대를 파견해 일대를 쓸어버린 뒤 잽싸게 사람들만을 빼 왔다.

그들이 이주할 장소로는 티드린드 영지가 선택되었다. 정확히는, 내가 강하게 추천했다.

놀들을 몰아내고 그 드넓은 영지를 손에 넣은 곳이다. 그에 반해 인구는 무척이나 적어 땅이 남아돌았다. 헬모사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나쁜 것은 아니다. 제국의 지원을 받아 한참 성장하는 지역에 안착하는 데다가 이전과 다르게 안전도 상당히 보장된다.

물론 제국 내에 땅이 남는 영지는 넘쳐 흐르기에 다른 선택도 가능은 했었다. 다만 조건은 티드린드가 제일 좋았고 결정적으로 내가 강하게 관련된 지역이다 보니 사실상 내가 추천한 시점에서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다.

대다수의 수련자들이 중층에 진출하기 위한 시험을 치르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하층이 붕괴되는 특수한 상황 덕분에 이쪽을 담당하는 플로어 마스터의 편의를 받을 수 있었다.

헬모사 지역의 플로어 마스터는 그들이 중층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하고 티드린드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었다. 제대로 중층에서 활동하고 싶다면 티드린드에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

헬모사 지역의 주민들이 제국으로 대피한다는, 거대한 규모의 작전이 끝난 이후, 제국은 오크들의 영토 내에서 대대적인 작전을 실행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상당수 오크들의 전력이 이쪽으로 집중된 것. 곧 이쪽 지역은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오크들은 헬모사 지역을 다시 찾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피의 복수. 그들은 그것을 원했고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제국을 침공했다.

나는 여기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다시금 타 지역으로 떠날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전쟁을 치를지.

황제는 그런 내게 제안했다. 많은 것을 지원할 테니, 부디 그 장소에 남아 달라고.

황제가 내게 저런 제안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사이 또 다른 하층이 개방되었던 것. 게다가 최근 두 개의 지역이 개방되고 황실이 자꾸 관심을 갖자 타 귀족들이 슬슬 입질을 보냈던 것이 문제였다.

애슐란 변경백이 새로 개방된 하층에 관심을 표했고, 황제는 그가 접촉하기 시작하자 더는 애매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헬모사 지역의 영국 왕실 길드마저 내 산하에 들어와 버리자 나를 투입하는 것도 꺼려질 수밖에 없었으니 이참에 내 간섭마저 완전히 막아버릴 셈인 듯했다.

고민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많은 것을 뜯어내고 그 대가로 한동안 길드원들과 함께 이 장소에서 방어전에 참가했던 것.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고 나는 황제가 원하는대로 이 장소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하유진이 마침내 복귀했고 나서윤은 20살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