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경지의 최상급. 다른 말로는 경계에 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지의 끝이자 다음 경지의 출발선.
그 선을 평생 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능이 부족해 검기를 평생 만들지 못하는 이들은 부지기수이며 기껏 검기를 만들어도 검강에 닿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수많은 엑스퍼트들. 그들 중에 극히 일부만이 엑스퍼트의 끝이라는 최상급의 경지에 닿고 그리고 그 극히 일부 중 한 줌에 해당하는,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마스터라는 경지에 도달한다. 오크와 인간. 가장 거대한 두 세력에 포함된, 모든 마스터들의 숫자를 합하여도 천이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것은 훗날 수련자들이 대거 등장해 미친 속도로 성장해도 마찬가지다.
수련자들이 등장하고 레벨업을 위해 수도 없이 전투가 이어진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강해졌고, 덩달아 격렬한 전투 속에서 성장하는 오크들마저 경쟁하듯 성장하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내보인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마스터가 탄생했고, 동시에 수많은 마스터들이 전장에서 전사했다.
그렇기에 현재에도 미래에도 마스터의 숫자는 오크와 인간을 합하여도 천 명이 되지 못한다.
거기에 마법사나 주술사를 포함시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런 극히 적은 수의 마스터들 사이에서도 또다시 최상급에 도달해 다음 경지를 넘보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손에 꼽히는 존재만이 그 선을 넘는다.
그랜드 마스터. 오크들은 대전사라 부르는 괴물들.
인간 측에 둘, 오크 측을 알 수 없음. 현재 전선에 보이는 이들은 인간과 같은 수인 둘이며, 오크들의 왕, 오크 로드가 대전사의 경지에 다다랐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1회차에서는 확인된 대전사만 여섯이다. 그중 하나가 저 카바락이었고. 현재 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카바락이 벌써부터 대전사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달이다. 나는 그 기간 동안 요양을 빙자한 수련을 하며 능력치를 올리고, 스킬의 숙련도를 키우며 동시에 성자까지 됨으로써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과연 수련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니 수련자임을 고려해도 무시무시한 성장세다.
그런데 카바락이 보인 성장세는 그런 나마저 뛰어넘었다.
저건 수련자도 불가능한 성장 속도다.
그 괴물 같았던 랭커들도 저런 성장은 불가능할 거다. 엑스퍼트가 최상급에 다다르는 것도 아니고, 마스터가 최상급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게 몇 달 만에 되는 거라고?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게 현실로 존재한다.
그것도 내 눈앞에.
내가 그를 발판삼아 마스터의 경지가 되었는데, 그는 나를 향한 분노를 발판삼아 그랜드 마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감도 긴장감이지만 허탈한 감정이 밀려들어 왔다.
‘저건 진짜군….’
우습지만 현실이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최상급 마스터였고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이전의 치욕을 갚기 위해 왔다.”
카바락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세는 여전히 살벌한 주제에 말은 잘한다.
“어이가 없군. 쿠니쿠와 고른을 이쪽에 보낸 것도 너지?”
“그렇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잘도 대답하는군. 쿠니쿠가 죽은 것은 알 텐데? 그러고도 여길 찾아와? 네놈이 어떤 대가를….”
“지금 나를 걱정하는 건가?”
내 말을 끊어버린 카바락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유신후, 네놈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그렇다. 저놈이 어떤 꼴을 당하던, 어떤 대가를 치르던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이고 그는 나와 싸우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저리 치워라. 이전의 못다 한 승부를 다시 내자. 나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이 자리를 찾아왔으니까!”
싸움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여기서 물러날 방법도 없었고. 헬모사 성에는 내 휘하의 정예 길드원들과 새로 영입할 예정인 아멜리아까지 있었으며, 현재 여기로 열심히 달려오는 중일 터인 파티원들도 있었다.
나는 냉정하게 승률을 계산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승률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최상급 마스터. 직접 싸워본 적이 없는 수준이다. 솔직히 네임드 오크와도 제대로 붙어본 것은 2회차가 처음이다. 그런데 대전사가 코앞인 최상급 마스터? 실력이 짐작도 안 간다. 그나마 내 경지가 마스터이기에 그가 최상급에 다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지, 다른 이들이라면 저게 최상급인지 뭔지 알아보지도 못했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승률 계산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군.’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카바락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 손 검. 나와 같은 무기다.
최상급 마스터가 눈앞에서 검을 꺼내 드는 거다. 나 또한 반사적으로 검을 꺼내 들었고, 카바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크아아아아!”
전투의 개시를 알리는, 커다란 워 크라이가 사방을 울려댔다.
****
쿵!
단순히 바닥을 박차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커다란 파괴음이 울린다.
나는 지체 없이 앨거차의 문신을 극한 활성화했다.
뿌드득.
근육이 크게 팽창하더니 곧바로 다시 압축된다.
인식되는 범위가 확장되고 세상이 느려진다. 동시에 마력이 끝없이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시스템이 보정해 줄 수 있는 능력치의 한계인 100. 민첩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그곳에 도달했다.
그러자 내 몸이 스스로를 망치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역시 예상이 맞았다. 스킬의 힘을 통해 강제로 100이 되어버린 능력치들을 몸이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시스템의 보정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90을 넘겨버린 능력치들은 그 1포인트마다 벽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걸 단숨에 10계단이나 건너뛰어 버린 거다.
심지어 내 순수한 능력치는 70 후반에서 80 초반들이다. 그 능력치들을 스킬의 힘으로 100으로 만들어버렸으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이 당연했다.
괜히 앨거차의 문신 스킬을 극한 활성화시 신체에 영구적인 데미지가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계산할 때가 아니다.
나는 즉시 검에 강기를 둘렀다. 동시에 남아도는, 과도한 마력을 퍼부어 이전처럼 강기를 불태운다.
정련된 강기로는 버틸 수 없다. 내 직감이 그렇게 느꼈기에 지체 없이 사용했다.
마력 소모가 극심하다고 한들, 내 마력 능력치는 100. 싸움 내내 이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들 마력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훙!
그때 내게 달려들던 카바락이 허공에 검을 휘두른다.
일그러진 형태의 강기가 나를 향해 날아 들어왔다.
나는 즉시 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냈다.
펑!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 그러나 소음과는 다르게 위력 자체는 보통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엑스퍼트 따위는 이 일격을 정면으로 막지도 못했을 거다.
‘최상급부터 가능한 거였나?’
대전사,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 가능한 기예로 알고 있었다. 강기를 날려 보내는 형태의, 원거리 기술.
마력 소모가 크기는 하지만 그 정도 경지쯤 되면 크게 부담되는 기술이 아닐 거다.
곧이어 카바락이 검격이 닿는 거리로 진입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쿠아앙!
이제껏 드려온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굉음이 퍼진다.
잠시의 대치. 오래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밀치며 검을 휘두를 공간을 확보했다. 서로 떨어지는 사이 틈을 노려 몇 번의 검격을 날렸다.
‘젠장.’
아쉽게도 아직 능력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내 공격은 허공을 가른 데 비해, 카바락의 공격은 내 몸 이곳저곳에 얕은 상처를 남겼다.
이 짧은 격돌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여전히 엄청난 힘이구나!”
카바락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내게 힘에서 밀렸고, 나는 경지가 부족했다.
‘무형 강기.’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카바락의 강기는 반쯤 투명한 모습이었다.
대전사.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다면 그의 강기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된다고 들었다. 동급의 강자가 아닌 이상 제대로 방어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는 것. 위력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데 거기에 더해 기척조차 파악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 최상급 마스터일 뿐이기에 흐릿하더라도 기척이 안 잡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금 거슬리기는 하나 마력의 눈동자도 있는 덕분에 전투에 큰 지장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과도한 마력을 이용해 불태운 강기가 순식간에 깎여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 위력만큼은 확실히 나보다 윗줄이었다.
정말 이전의 반복이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나 또한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카바락이 말이 되지 않는 성장을 했다면, 어떤 의미로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룬 성장세에 비해 모자란다고 한들, 내 성장이 우스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충분해.’
고작 몇 번, 검을 나누었을 뿐이지만 확실했다. 처음 카바락과 싸웠을 때, 그때보다 오히려 승률은 높았다.
‘마력은… 오히려 남아.’
하루 종일 싸워도 마력이 부족할 것 같지 않았다. 마력 100이라는 수치는 내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렇게 마력을 낭비하는데도 그렇다.
오히려, 신체가 못 버티겠지.
툭, 투둑.
힘을 줄 때마다 몸 안에서 근육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숙련도가 높아진 불사의 육체는 끝없는 마력을 잡아먹고 그런 내 몸을 회복시킨다. 떨어지며 입었던 얕은 상처들마저 이미 회복된 이후였다.
지금 당장은 괜찮다. 하지만 전투가 오래 지속되면 분명 한층 강해진 불사의 육체도 한계를 맞이하는 순간이 올 것이었다.
그나마 체력도 100에 달했기에 망정이지 부족한 기본 육체 스펙과 애매한 레벨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몸이 망가질 뻔했다.
몸을 파악하는 사이 카바락이 즐거운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전투 자체를 즐기는 모습. 미래 어떻게 되든, 현재를 즐기는 것 같았다. 이 행동이 자신의 모욕을 되갚는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모양이었다.
“흐야! 하아압!”
기묘한 기합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공격을 큰 차이로 피한다. 100이 되지 않더라도 높은 민첩은 상대의 행동을 정확하게 파악해 주었고 미숙한 무형 강기는 내 기감과 마력의 눈동자를 피하지 못했다.
덕분에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았다. 높아진 능력치로 인한 보정. 그러나 아직 컨트롤 자체가 부족해 큰 차이를 보이며 회피해야 했고, 반격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약 반격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방금 전과 같이 내가 손해를 보는 구도가 나올 터. 당분간은 회피에 주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사이 나는 이전 강기를 분석했던 것처럼 마력의 눈동자로 무형 강기를 관찰했지만, 이전에 강기를 관찰했던 것처럼 무형 강기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솔직히, 상당히 아쉬웠다.
그런 내 모습에도 카바락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높은 민첩 덕분일까. 내가 몸에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몇 번의 공격을 피하는 사이에 높아진 감각은 육체에 빠르게 적응했고, 간간이 그를 향해 견제를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검격에 매혹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의 카바락에게 그러한 매혹은 통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묘한 기술이구나!”
요양하는 동안 거의 검을 휘두르지 못했기에 숙련도 상승이 멈췄던 웨폰 마스터리 스킬. 거기에 레벨 또한 이전에 비해 고작 2밖에 올리지 못했다.
덕분에 매혹은 이전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고, 성장한 카바락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휙! 훙! 쾅!
이어지는 검격을 막아내고 밀어붙인다. 하지만 카바락은 공격의 주도권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힘이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내 강기를 깎아내고 정면 공격은 피하면서도 전투의 흐름을 자신이 가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 강기를 깎아 내고 부숴도 빠르게 재생되어가는 모습에 카바락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놀고 있지는 않았다는 건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카바락의 말을 무시한 채 공격에 전투에 집중했다. 흐름을 빼앗아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힘이 앞서는 이상 내가 밀어붙일 수 있는 구도가 나온다. 과거에는 마력의 부족으로 그럴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별다른 동요 없이 자신에게 맞서오자, 점차 카바락의 눈이 붉어지며 육체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전투가 이어짐에 따라 야성을 개방시키는 모습. 하지만 역시 네임드 답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후읍. 크아아아!”
카바락이 한층 더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동시에 기묘한 모습을 목격했다.
한순간, 전체적으로 부풀었던 몸 중에서 양팔이 기묘하게 더 부푸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쾅! 크그그그극.
내 공격을 정면으로 밀어붙여버린 카바락.
놀랍게도, 밀린 것은 나였다.
‘미치겠군.’
자신의 강점을 빼앗기 위해, 무언가 특별한 기술을 익힌 모양이었다.
“완벽한 팬텀 블레이드를 익히지 못한 이상 그대를 쉽게 이기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투술 근력 강화를 더욱 갈고닦았다. 다행히 효과가 있는 모양이군.”
무형 강기를 오크는 팬텀 블레이드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카바락은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놈이다. 집념이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밀려나는 와중 바닥을 강하게 밟아 몸을 멈추고는 이어 앞으로 돌진하며 허공을 밟았다.
기습적인 움직임.
그리고는 곧바로 유리한 위치에서 카바락의 머리를 노렸다.
그러나 카바락의 대응은 상당히 기민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허공을 밟자마자 강기를 형성해 나를 향해 쏘아낸 것.
덕분에 기습의 효과가 사라졌다. 나는 허공에서 강기를 피해낸 후 다시금 공격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검을 마주하는 순간 내 발판이 박살 나며 몸이 더 멀리 튕겨 나가버렸다.
매혹과 하늘 밟기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하필이면 힘의 이점이 사라져버렸다.
카바락은 마치 철벽과도 같았다.
내가 연신 밀리는 모습에 성 위에서 우리의 전투를 바라보던 이들이 탄식을 내뱉는다.
‘곤란하군.’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내 생각을 비웃듯, 카바락은 내 공격을 모두 무위로 돌려버렸다.
튕겨나간 내가 자세를 잡을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카바락이 돌진해온다.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러오는 검격. 나는 급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다.
쿠와아앙!
쿨럭.
이전과는 격이 다른 위력이다.
‘뭐 이런….’
느껴지는 위력은 이전까지와 비슷했다.
힘이 나와 비슷해졌다는 것을 고려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위력이다.
무형 강기에 더 많은 마력을 불어넣어 폭발시켰다. 그리고 나는 그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마력의 눈동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그게 무형 강기의 특징인가?”
“그렇다. 불완전하기에 대전사분들에 비하면 하찮으나 그래도 분명 평범한 블레이드와는 다르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더 힘을 준 공격이 구분이 안 된다. 예상치 못했다.
덕분에 전투가 이어질수록 흐름을 빼앗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격 하나하나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공격에 더 힘을 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견제라고 생각했던 공격에 힘이 실리고 파괴적일 거라 생각했던 공격은 속임수였다.
불규칙하게 섞여버린 공격 패턴에 방어하기 급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몸에 상처가 늘어난다. 검에 베이고 강기에 찢어진 상처가 늘어나며 천천히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강기에 의한 상처이기 때문일까. 잔존 마력이 남아 불사의 육체가 상처를 회복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결국 나는 성흔에 마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파아앗.
신성력 특유의 금빛이 몸을 물들인다.
웅웅웅웅.
허공이
신성력이 가미된 신성의 오라가 주변에 퍼지고 성자의 육체가 신성력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마력과의 충돌을 피한다.
성흔이 변환된 신성력을 연이어 증폭시킨다.
찢어지고 베인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고 몸에 걸린 부담이 어느 정도 완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민첩이 올랐다.
그런 내 변화에 카바락은 한층 더 공세를 강화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흐읍!”
쿵!
나는 모든 공격을 전력으로 받아치기 시작한다.
손해를 본다 해도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힌다면 이익이다. 카바락에게는 신성력도, 불사의 육체도 없었다.
카바락의 얼굴에 작은 당황이 어린다.
분명 공방으로 인한 손해는 내가 더 보고 있는데도 자신이 밀리기 시작했다.
카바락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져간다. 하지만 즐거워하는 표정은 여전했다.
다음 검이 부딪치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건 제대로 힘을 실은 공격이다.
나는 있는 대로 마력을 때려 넣고 강기를 한순간 폭파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블링크!”
콰아아앙!
본래라면 사용하는 순간 위치를 특정해 내가 나타날 공간에 강기를 날렸을 카바락도, 방금 공격 때문인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나는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으하핫. 왜지? 왜 그런 선택을 한 건가? 그대로 갔더라면 그토록 원하던 주도권을 손에 쥐었을지도 모르는….”
나는 카바락이 웃으며 떠드는 동안 빠르게 상태 창을 열어 능력치를 확인했다.
-신체 능력
근력 : 100(+23) 민첩 : 99(+23) 체력 : 100(+23) 마력 : 100(+23)
-자유 능력치 : 5(100미만)
피식.
진짜로 올랐다.
내가 시간을 번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그대로 가봐야 최대가 비등한 정도다.
하지만 실마리 정도는 얻었다. 확실히 무형 강기는 무서운 무기였다. 그러나 민첩이 상승함으로써 늘어난 감각은 내게 기묘한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이제껏 아껴 놓았던 자유 능력치 포인트를 민첩에 사용했다.
-신체 능력
근력 : 100(+23) 민첩 : 100(+23) 체력 : 100(+23) 마력 : 100(+23)
-자유 능력치 : 4(100미만)
훗날 스킬을 제외한 순수 능력치가 99가 되거나 성장이 멈췄을 때나 사용하려고 아꼈던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까지 아낄 이유는 없었다.
모든 능력치가, 시스템이 보정하는 한계에 달했다.
[업…]
순간 나타나는 메시지를 치운다. 이후에 확인해도 될 일이다.
감각이 끝없이 확장되는 기분이다.
이 순간 민첩을 상승시킨 이유는 간단했다.
민첩이 99에 이르고 카바락과의 공방을 나누면서 나는 저 불완전한 무형 강기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전 강기처럼 분석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허와 실 정도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모자랐지.’
그렇기에, 민첩을 100으로 만들었다.
허와 실을 파악할 수 있다면 내가 불리할 이유는 없었다.
감각이 진정됨과 동시에 나는 카바락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