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65화 (165/317)

# 165

“네, 네임드 오크가 뭐죠?”

오크들이 출몰하는 지역에 지냈음에도 엘리자베스는 네임드 오크에 관해 알지 못했다.

“있어. 괴물 같은 거. 젠장, 하층이라며 무슨 네임드가 둘이야?”

사샤가 한탄한다.

어리둥절해 하는 일행을 향해 한바다가 가볍게 설명해 주었다.

전사 오크에 관해 설명하고 검기와 레벨, 평균 능력치 등에 관해 대체적인 수준을 설명해주자, 엘리자베스 공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해는 된다. 엘리자베스 공주나 그 휘하 길드원들을 보면 고유 스킬을 제외한 다른 스킬들에 전설은 하나도 없었고 레벨과 능력치도 B등급이 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정확히는 조금 부족한 정도.

그런 만큼 S등급의 괴물이 둘이라고 하면 겁이 날 수밖에.

당장, 단신으로 저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는 나 하나뿐이었다.

사실상 1:1은 내가 우위다. 이전에 마스터의 경지에 들지 못했을 때도 네임드 오크인 카바락에게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마스터 경지에 든 데다가 주변에 죽일 오크들도 많아 바리치의 문신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설령 저들이 현재의 카바락보다 강하다고 하더라도 1:1이라면 나는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아무리 나라도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 쉽지 않다는 거였고 단시간에 모두 쓸어버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쪽의 인명피해가 크게 생길 수도 있었다. 작정하고 네임드 오크 하나가 나 하나를 붙잡고 늘어지고 다른 하나가 습격하면….

“신후 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내 직속 파티원 전원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러날 건가요?”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매하다. 대마도사를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웃긴건 또 잘 풀리면 별다른 피해 없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고민을 눈치챘는지 주하연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신후 씨라고 해도 혼자서 둘을 상대하기는 힘들겠죠. 아뇨, 할 수 있다고 해도 반대에요. 이번에도 그렇게 무리하게 둘 생각은 없어요.”

이전 내 방침에 과하게 간섭할까봐 걱정했던 주하연은 그자리에 없었다. 내 안전에 관련되었기 때문인지 주하연은 무척이나 단호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할 거면 같이 해요. 하나 정도는 저희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그리 쉽게 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러자 한바다와 남은주가 곧바로 주하연을 지지했다.

“버틸 수 있습니다. 저희도 이제는 2차 전직을 한 몸. 이전과 다르게 레벨도 올렸고 능력치도 개발 했습니다. 이번에도 혼자 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맞아요, 신후 오빠. 저랑 바다 언니가 하연 언니의 버프를 받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그러니까 혼자 하지 말아요.”

“뭐, 나도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어쩌겠어. 답답해도 내 계약자인데. 여전히 한참 모자라지만 나도 이젠 제법 도움이 되니까. 지금 리더면 하나 정도는 거뜬하잖아? 빨리 처리하고 도와주면 될걸?”

“…맞아. 우리도 성장했으니까. 이번에도 혼자 싸운다고 하면 조금 화날 것 같아.”

평소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었던 사샤와 나연마저 합심해 자신들 또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러자 뒤쪽의, 내 휘하의 정예 길드원들마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이윤형을 비롯한 정예 길드원들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무슨 말을 할지 짐작된다. 아무래도 그들도 여기까지 와서 물러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쪽 분들은 나서지 마.”

존대도, 평대도 아닌 애매한 말투. 놀랍게도 나서윤이었다.

“당신들은 나서면 다 죽어. 당신들은 네임드가 얼마나 강한 줄 모르잖아?”

“…….”

나서윤의 말에 정예 길드원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보다도 어린 소녀다. 이제 18살, 곧 19살이 될 어린 소녀의 말인데도 그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이제껏 보여준 힘과 능력, 그리고 지금 나서윤이 내비치는 기세는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빠.”

그들이 침묵하자 나서윤은 조용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오빠 혼자 싸우게 할 수는 없어. 하연 언니 말대로야. 싸울 거면 우리도 같이 싸우게 해 줘. 뒤에서 구경만 하는 것은 이제 질렸어…요.”

나는 조금 놀랍다는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들이 합심하면 버티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나서윤은 중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대다수는 전설급 스킬로 무장한데다 레벨도, 능력치도 충분히 A급에 어울리는 수준이다.

조합이 엉망이라면 모를까 탱커 둘, 사제 하나, 후열을 지원할 정령사 하나에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나서윤까지 존재한다.

가능하기는… 할 거다. 그래도 목숨을 건 일이다. 조금만 삐끗하면, 다 죽는다. 네임드가 S급 용병과 동급으로 취급 받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괴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들은 네임드 오크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직접 본 이들인데도 불구하고 망설임이 없었다.

이들은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남은주는 조금 의외인데….’

목숨이 걸린 일인데도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조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이대로 강행할까.

어느새 저쪽은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고, 머리 속의 저울이 마침내 한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었다.

“조연은 씨.”

“네, 네!”

“후열에 참가하세요. 위치는… 나연 옆에서 행동하시면 될 겁니다. 그 외의 휘하 길드원들은 조금 뒤로 빠집니다. 네임드를 제외한 오크 병력이 접근한다면 그들과 싸우면 됩니다.”

어차피 접근은 힘들다.

와 봤자, 우리들의 전투에 끼어들 수준이 못 되니까.

A급 용병, 검기의 압축이 가능한 상급 이상의 엑스퍼트 기사, 최정예 전사 오크쯤 되지 않는 이상에야 접근하자마자 개죽음을 당할 터였다.

조연은을 파티에 참가시킨 이유는 간단했다. 확실히 부족하긴 하지만 궁수 직업군답게 민첩이 제법 받쳐주는 덕분에 일단 앞열이 버티는 한 살아는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스펙이 되는 유일한 이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투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무척이나 미미한 정도였다. 그래도, 그거라도 있으면 1초라도 더 버틸 수 있을 터다.

그 외의 인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연은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부는 하지 않는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테지만, 한바다의 친구답게 각오했다는 모습이다.

내 말이 뜻하는 바를 깨달은 일행. 그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신후 씨…!”

드디어, 오랜만에 진짜 전투에서 내 옆에 선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처음 있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이제껏 내 옆에서 싸워왔지만 언제나 정말 위험한 순간에는 내가 혼자 싸우고 홀로 남아 저들을 도망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들이 죽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내 옆에서 싸우는 것을 허락했다.

언젠가 올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지금이었을 뿐이다.

저들은 최소한의 각오가 되어 있었고, 최소한의 실력을 갖추었다.

그렇기에 허락했다.

여기서도 도망치게 만들면 이제껏 이들을 키운 의미가 없었다.

“죽을 수도 있는 전투에 참가시켜 줬는데 뭐 좋다고 다들 그런 얼굴을 하는 겁니까?”

“하, 어이 없네. 리더, 내가 가장 늦게 합류했지만, 댁 성격은 다 알거든? 이 답답이 기억 다 있다니까? 드디어 인정한 거잖아. 정말 몰라? 왜 이렇게들 좋아하는지?”

피식.

모를 리가.

“유진이가 섭섭해 하겠네.”

평소 하유진과 자주 합을 맞췄던 한바다가 중얼거리자 남은주가 대꾸했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유진이는 어려도 너무 어리니까요.”

“하지만 큰 전력인 것은 부정 못 해. 어리다고 얕 보면 안 될걸? 그 말 유진이가 들었으면 화 냈을 거야.”

“…그건 그렇죠.”

확실히 하유진의 빈자리는 제법 클 거다. 그래 보여도 최상급 잠재력을 갖고 그 나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탑에 적응한 아이다. 그만한 실력자가 빠지고,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고작 조연은이 끼어든 거였다.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나는 무기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가죠.”

***

나와 내 파티원들이 접근하기 시작하자 막 전투에 돌입하려던 오크들이 멈칫힌다.

이쪽의 접근을 눈치채고 일부 오크들이 눈이 벌개져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전투에 앞서, 좋은 것을 봤다는 듯한 행동. 미리 피를 보려는 수작인 듯했다.

하지만, 그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샤. 태워버려.”

“오냐, 답답아.”

사샤의 눈과 머리가 붉게 물들었고 순식간에 생성된 불덩이가 달려오던 오크들을 태워버린다.

그 모습에 오크들이 흉악한 기세를 드러냈고, 나는 거기에 맞춰 기세를 해방했다.

훙-.

강한 마력의 유동. 주변의 공기가 살짝 뒤틀리며 옅은 바람을 만들어낸다.

“호, 오.”

내 기세는 흉흉해져 가던 오크들의 기세를 완전히 찍어 눌러버렸고, 내 힘을 느낀 오크 네임드 둘이 강한 흥미를 보였다.

무료한 얼굴이었던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제대로 된, 이가, 나타났, 군.”

조금 끊어지는 듯한 말투. 네임드가 되었음에도 말이 조금 이상한 오크들. 종종 있는 개체다. 어떤 의미로 바보처럼 보이긴 하나, 그런 것과 실력은 별개다. 얕봤다가는, 순식간에 죽어 나간다.

오크들이 갈라지고 두 명의 네임드 오크가 기세를 흘리며 접근한다.

미미하게 웃는 표정. 그러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흉악한 기세에 내 일행들이 긴장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킨다.

일행은 벌써부터 싸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진형을 잡고 거리를 둔다.

“…저쪽도 괜찮은 것 같은데, 쿠니쿠?

“고, 른. 하지만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

고른이라 불린 네임드 오크는 멀쩡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가 저쪽을 맡지. 아무래도 그러기 위해 온 것 같거든.”

“좋, 다. 양보에, 감사, 하지.”

이쪽의 의도를 알아챈 오크들은 별다른 말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로서는 나름 익숙한 일이다. 괜찮은 상대를 만나, 전장에서 서로의 기량을 뽐낸다.

전투를 즐기는 오크들의 로망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인간들 또한 거절하지 못한다.

이쪽이 이렇게 접근하지 않았다면 저들은 죽자사자 달려들 터였고, 그러면 어차피 싸움은 피하지 못한다. 원래 싸움은 한 쪽이 걸면 저절로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마치, 이전에 카바락이 내게 달려들었던 것 같은 장면이 되었을 거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듯한 모습이었던 오크. 하지만 곧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전장에 울려퍼지는 워 크라이.

그와 동시에 쿠니쿠라 불렸던 오크가, 거대한 크기의 도끼를 휘두르며 단숨에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당연하게도, 그 거대한 도끼에는 강기가 덧씌워진 상태였다.

“후읍!”

이전과 다르게 앨거차의 문신을 극한 활성화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제 내 체력과 마력은 극한 활성화 없이도 90에 다다랐고 경지 또한 마스터 초입에 안착했다.

“흐아아아아!”

나 또한 마주 워 크라이를 사용해 사기를 고취시킨다. 동시에 검에서 강기를 뽑아내 마주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검과 도끼의 충돌. 보통 저런 중병기를 상대로 검을 쓰는 내가 마주 무기를 휘두른 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미친 짓이다.

하지만 우리 둘은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이들이며, 나는 시스템의 보정을 받고 있는 이였다.

내 힘은 체력, 마력과 더불어 90대에 다다랐으며, 이는 아무리 중병기를 쓰는 네임드 오크라 해도 쉽게 볼 수 없음을 뜻했다.

게다가 강기가 덧씌워진 무기는 어지간해서는 파손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무기를 마주 댄 채로 얼굴을 마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

“굉장, 하군. 인간. 힘이, 보통이, 아니야!”

콰가칵.

서로의 강기가 긁히며 부서진다. 떨어진 강기의 파편이 조그맣게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살짝 물러나며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콰앙!

쿠니쿠는 내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며 무식한 힘을 바탕으로 도끼를 장난감 휘두르듯이 마구잡이로 그어댄다.

마구잡이처럼 보이지만, 놀랍도록 내 빈틈을 파고들고 있었다.

과연 야성에 기대는 오크의 전투답다고 할까.

대부분의 오크들이 사용하는 전투 방식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공격을 피하고 동시에 맞받아치면서 크게 휘두르는 틈을 파고들었다.

“흡!”

순간적으로 마력을 퍼부어 강기의 길이를 늘린다. 높으 마력 수치를 이용한 변칙적인 공격.

놀란 표정의 쿠니쿠는 처음으로 뒷걸음질 치며 내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공격을 피하지는 못해 옅은 상처를 입었다. 전투에는 지장이 없는 상처.

쿠니쿠는 사나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크흐하하하! 역시 이쪽을 선택한 것은….”

나는 쿠니쿠를 무시한 채 시선을 돌려 고른이라 불린 오크와 내 일행들이 싸우는 모습을 관찰했다.

“철벽의 수호자!”

“수호!”

“다리! 연은 씨 다리를 노려요! 이런, 축복! 여신의 손길! 여신의 가호!”

“사샤! 풍계로 바꿔! 윈드 스피어로!”

“알았어, 알았다고!”

저쪽은 상당히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보정이 있다고 한들 명백하게 부족한 능력치를 바탕으로 싸우는 와중이다. 고른이라 불린 네임드 오크는 자신의 높은 신체 능력을 제대로 이용해 일방적으로 일행을 두들기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그래도 남은주와 한바다가 어떻게든 고른을 물고 늘어져 후열에 다가갈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날카롭게 달려드는 나서윤의 공격에 고른 또한 일행들을 완전히 얕잡아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철벽의 수호자라는 전설 스킬 덕분인지 남은주가 메인 탱커 역할을 상당히 잘 해주고 있었다.

강기가 실린 공격을 어떻게든 받아내고 있었다. 한바다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연속된 공격에 남은주가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싶은, 위험한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파고들어 대신 공격을 받아주고 있었다. 이쪽은 한 번의 공격을 막으면 수호 스킬이 깨지며 뒤로 크게 밀리며 상처를 입곤 했지만, 다행히 주하연의 성녀의 축복, 여신의 가호 덕분에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고 회복 스킬인 여신의 손길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전투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만약 한바다가 없었다면 아무리 전설급 스킬을 가진 남은주였다고 하더라도 아주 오래 버티지는 못했을 테니, 충분히 제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

나는 슬쩍 돌렸던 눈동자를 정면으로 향했다.

쿠니쿠의 눈동자가, 완전히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인, 간. 지금 어디, 를 보는 거냐?”

피식.

나는 대답 대신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흘렸다.

“네, 상대는, 나, 다! 이 쿠니쿠란 말, 이…!”

“닥쳐. 언청아.”

“뭐, 엇?”

“발음 장애자 새끼가 하지도 못하는 말은 왜 그리 떠들어대. 제 주제도 모르고 감당도 못 할 커다란 무기나 쓸데없이 휘두르는 머저리가 혓바닥만 길어서 시끄럽게 구는군. 내가 한눈팔지 못하게 하고 싶으면 실력을 보여. 너에게 집중하게 만들라고. 그럴 능력도 없는 주제에 어디서 입을 열어?”

언청이, 발음 장애자. 이게 오크들에게 어떻게 번역되어 들릴지는 모른다.

단지, 하나 아는 것은 이게 나름 쓸만한 도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상대하며 한눈까지 파는 모습을 보인 나다.

아마, 효과가 상당히 괜찮을 거다.

방금 전까지 말이 없었던 내가 갑자기 폭언을 쏟아내자 순간 쿠니쿠는 당황했는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크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를 내지른다.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 오른듯, 두 눈은 붉게 물들다 못해 피가 흐를 지경이 되었다.

광분한 쿠니쿠는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찼고, 내디딘 땅이 으스러지며 쿠니쿠가 엄청난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

이제껏 보인 것들은 준비운동이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쿠니쿠에게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존재다. 제법 빠르기는 했지만 놓칠 정도는 아니다.

나는 내 머리를 쪼개버리겠다는 듯이 내리쳐지는 도끼를 바라보았다.

내 이마를 향해 가까워지는 거대한 도끼.

도끼를 감싼 강기는 쿠니쿠의 감정이 반영이라도 되었는지 이글이글 타는 듯한 모습이었다.

감정이 제대로 컨트롤 되지 않으니 강기가 저모양이지.

하지만 나름 위력은 더 올라간다. 마력 소모가 크기는 하지만.

나는 내게 다가오는 도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블링크.”

훅.

내 눈에 보이던 광경이 일변한다.

콰아아아아앙!

쿠니쿠의 도끼는 내가 있던 자리를 그대로 내리찍으며 거대한 굉음을 사방에 울렸다.

바닥이 완전히 박살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쿠니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에 든 검을 내리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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