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나는 시비우스를 향해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간단합니다. 어차피 저희는 유신후 님과 협력해야만 하는 처지이니, 숨길 바에야 도움을 좀 받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도와드릴 것이 있으면 돕기도 하고요.”
눈치가 빠르다.
“저야 상관은 없지만, 보안상 그래도 괜찮은지 궁금하군요.”
“제가 대표이니 상관없습니다. 폐하께서도 유신후 님과 함께 가실 의향인 듯하니, 피할 이유가 없지요.”
과연. 그런 건가. 벌써 황제가 어느 정도 언질을 한 모양이다. 나야 좋다. 전문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이들인 만큼 이번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서로 도움을 준다면 괜찮겠군요. 환영하죠.”
내 흔쾌한 수락에 시비우스는 환하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나에게 도착 이후 일부 인원을 통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고, 저쪽은 자리를 잡으며 수련자(영국의 왕실 길드원과 무법자 모두)들을 조사, 감시하며 정보를 내게 전해주기로 약속했다.
나쁘지 않은 거래다. 일일이 정보를 모으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니까. 특히 상대에게 연관되지 않은 이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모아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일들을 저쪽이 해 주는 것. 솔직히 놀푸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모을 셈이었기에 이러면 오히려 좋은 결과다.
정보원으로서 일행에 합류한 것은 시비우스 혼자가 아닐 터. 상인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면 당연히 용병들 틈에도 분명 섞여 있겠지.
오히려 신분적으로 보면 용병이 더 쉬울 테니까.
이야기를 마친 후에야 나는 다음 날을 위해 쉴 수 있었다.
티드린드 지역과는 다르게 헬모사 지역은 제국에서 아주 멀지만은 않았다. 열흘 정도의 거리. 과거에는 더 먼 지역에 존재했던 이들이지만 최대한 제국 가까운 장소로 터를 옮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그 정도 거리면 성을 쌓고 어느 정도의 방어력만 갖춘다면 제국 내에 편입될 수 있었다. …대대적으로 전쟁이 난다면 가장 먼저,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기는 하겠지만.
조은연을 비롯한 궁수들이 선두를 이루어 정찰하는 덕분에 집단으로 이동함에도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그사이 주하연이 내게 접근해 왔다.
“신후 씨.”
“네. 무슨 일이시죠?”
“…궁금한 게 있어서요.”
나는 말하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번에 무법자들을 처리한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제국에 도움을 주고 저희 입지도 올리고… 티드린드와 다르게 오크들과 싸워 성과를 올리면 제국에서 당당히 인정받으니하려는 겁니다. 저 개인은 인정 받기는 합니다만… 길드로서, 용병단으로서는 아직 무명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번에만 도와주는 건가요? 혹시… 타국가가 등장하면….”
‘그런 얘기인가.’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았다.
“이번이 특수한 경우일 뿐입니다. 타 국가가 등장해 무법자들이 날뛴다고 해도, 이번처럼 나설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정보를 수집하고 알아보기야 하겠습니다만, 무법자 있다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정의구현을 한다거나 이쪽으로 전원 영입하기 위해 힘쓴다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괜찮은 인재가 있다면 영입하긴 하겠습니다만….”
딱 그 정도다. 애초에 하층이 열리면 그쪽을 탐사하고 확인하는 일을 주도하는 것은 제국이다. 이번에도 사실상 지원을 비롯한 것은 다 제국에서 하는 일이고 내가 신전과 과하게 친해지는 듯하니 황제가 조금 떠넘긴 느낌이 있었을 뿐이지 본래 이런 일은 제국이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이번에는 서로 도움이 되는 면도 있었고 티드린드를 지원하느냐고 황실이 조금 무리한 면과 이제는 완전히 황실과 가까이 함으로서 확실도 주는, 여러 가지 일이 복잡하게 얽혀서 내가 흔쾌히 받아들였을 뿐. 타 국가의 하층이 열린다면 이번처럼 길드원들 전원을 대동해 나서는 일은 잘해야 한 번 정도다. 그것도 상황을 봐야 하긴 한다.
‘미국 쪽은 혹시 모르니까.’
이후에는 나와 일행, 길드원들의 성장을 우선해 여러 던전과 아이템의 독점을 해야 할 때였다.
“그렇군요.”
“어쩐지 이상하긴 했어. 리더가 저쪽이 힘들다고 나설 사람이 아니긴 했는데 말이야.”
“확실히, 신후 님이라면 몸 낫자마자 또 레벨에 맞는 전쟁터나 아니면 황실 정보 단체를 이용해 괜찮은 던전을 찾으러 갈 것 같았는데 이상하다 하긴 했습니다.”
“이번엔 어쩔 수 없기는 했어요. 황제가 신전과 너무 가까워진다고 기분 나빠하는 눈치였거든요. 그래서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타 국가때도 나설건지 확실히 알려고 물어본거였어요. 아, 물론 간섭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혹시 내가 기분 나빠할까봐 뒤늦게 걱정이 된 건지 주하연이 슬쩍 나를 쳐다보았다.
“의문점이나 의견이 있다면 주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걸로 기분 나빠하지는 않습니다.”
길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의문점을 묻는다고 기분 나빠하는 것이 이상하다. 내 직속 파티원들은 전원 간부 이상의 지위를 얻게 될 테니 길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가깝다.
이후 일정을 묻는 한바다에게 접경지에 거점이 될 요새를 정하고 한동안 성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실상 탑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당분간 다시 레벨을 올려야 할 터. 그러면서 공도 세워 황제에게 여러 지원을 뜯어내고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도 조금 들어주긴 할 거다.
‘혹시 모르니 엘프 쪽도 대비해야 겠네.’
타락한 정령의 동굴을 처리했으니 그쪽에서 분명 나와 나연의 정보를 알아보고 있을 거다. 초대를 받을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한다.
초대를 받는데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웃기기는 했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마스터에 든 지금도 많이 부족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꾸준히 헬모사 영지로 나아갔다.
3일쯤 지났을 때, 슬슬 보이던 정찰병들이 아닌 제대로 된 오크들의 부락과 경계 인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 이래요? 저길 뚫고 나왔다고요?”
어이없다는 듯한 주하연의 말.
“이건 딱 봐도 불가능인데? 리더, 혹시 오크들이랑 붙어먹었다는 거 쟤네 아냐? 쟤네 능력으로는 도저히 탈출 불가능한 수준인데? 우리라면 모를까.”
사샤는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영국 왕실 길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아, 아니예요! 저희가 나올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억울하다는 듯한 항변.
그건 그럴 거다. 1회차 시절 저들은 제국에 붙었던 이들이지, 오크들에게 붙었던 이들이 아니니까.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오크들에게 붙었던 이들이라면 수련자고뭐고 일단 영국은 몰살시켰을 터다.
하지만 일행이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의심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의심 가득한 시선이 자신들에게 쏠리자, 엘리자베스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정, 정말이에요 유신후 님, 저희는 오크들이랑 붙어먹지 않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법자 놈들이 밑으로 들어가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군요.”
1회차와 다르게 황제의 지원이 늦었다. 그런 만큼 무법자들이 성공적으로 오크들과 접선한 모양인 듯했다.
덕분에, 오크들의 경계가 삼엄해진 결과를 맞은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오크들이 물경 천에 이른다.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영국 왕실 길드원들이 말한, 하층과 연결된 길목이다. 아무래도 여길 통해 빠져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오크들이 제대로 경계 인원을 늘린 모습이었다.
‘하층과 이어지는 길목이 막혔어.’
천에 이르는 오크들은 하나같이 전사 계급.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은 나름 최정예 전사로 보였다.
우리 일행에게 위협적인 적들은 아니나, 하층 수준은 명백하게 넘어선 집단이다.
“이거, 헬모사 쪽이 이미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는데….”
내 중얼거림에 영국 왕실 길드 인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긴 있었다.
“어느 정도의 지원이 왔는지 모르겠다는게 문제입니다. 저희가 있던 티드린드와 다르게 여기는 직통으로 오크들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이윤형이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총 책임자가 유신후 님인 이상 저희는 유신후 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나름 유쾌하게 말을 걸어왔던 놀푸르 또한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시선을 돌리자 시비우스도 내 결정에 따르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어찌 해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된다.
듣기로 헬모사 지역에도 성 자체는 있다고 한다. 수련자들이 하층에 도착했을 때 한참 정착한 지역에 거주민들이 성을 쌓는 와중이었다고. 거기에 수련자들이 손을 거들기 시작해 지금은 작더라도 제법 괜찮은 수준의 성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무법자들도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좀 커다란 마을 수준의 영역이라고.
미궁까지는 거의 비슷한 환경인 만큼 미궁 내에서부터 무법자들과 싸워온 것은 한국 쪽과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라고는 무법자들의 세력이 막강했다는 것이었다.
중층에 도착했을 때 한참 성을 쌓고 있던 거주민들과 연합한 것은 영국 왕실 길드 쪽 수련자들이었다. 하기야 무법자들이 거부감이 드는 것은 거주민들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래도 무법자들의 무력은 무시할 수준이 못 되었고 처음에는 구역을 벗어나지 못해 서로 싸우긴 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서로 전멸할 판이라 서로 휴전, 틈을 타 성장한 무법자들이 구역을 탈출해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고 꾸준히 헬모사 성과 대립, 약탈과 납치를 반복해 왔다고 한다.
그렇게 성장한 무법자들의 영역은 어지간한 마을보다 큰 상태이며, 헬모사 성에 비하면 명백히 떨어지지만, 나름 목책성 수준의 성벽을 쌓는 등 영국 왕실 길드가 토벌하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고.
거기에 오크들의 지원이 더해진 거다. 과연 지금 헬모사 성이 무사할지 의문이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임무는 실패에 대마도사는 살아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성이 있으니 조금은 버티긴 할 텐데….
“…일단은 확인은 해 봐야겠습니다. 저길 못 뚫을 정도도 아니고, 지레 겁을 먹는 것도 웃기군요.”
일단 확인은 한다.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쉬웠다.
일단은 변방. 얼마만큼의 수가 지원에 응했을지는 몰라도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닐 터. 저쪽이 하층 수준을 넘는 지원을 보냈다고 한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확인 하는 것에 위험 부담은 크지 않을 거다. 그런 만큼,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 결정에 엘리자베스 공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속행입니까… 알겠습니다.”
내 말에 이윤형이 즉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토를 단다거나 의문을 표하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 내 결정에 즉시 행동한다. 정황이 좋지 않은데도 이런 점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일행들 또한 자리를 잡는다. 내 파티원들이 최전선에 서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최정예 오크가 있어. 그건 우리 쪽에서 처리한다. 나머지 이들은….”
“신후 씨는 나설 필요 없어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시죠.”
한바다가 나서서 이윤형에게 자신들이 할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사이 주하연이 내게 찾아와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도 그럴게 내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하다. 솔직히 나를 제외한 내 파티원 5명만 나서도 모조리 죽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내 정예 길드원들도 있는 이상,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수준 차이는 명백하다. 부상은 허락 못해. 길드장 님이 지켜보고 계신다. 똑바로들 하도록.”
““예!””
이윤형의 짧은 말. 정예 길드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한다. 마치, 군대를 보는 듯했다.
‘아니 군대 맞군.’
제대로 교육한 듯싶었다. 사석에서 어떻게들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적인 모습은 만족스럽다.
“오빠, 잘 봐요! 제가 새 마법 익혔는데, 위력이 제법 괜찮은 것 같거든요!”
나서윤이 전투 직전 내게 가볍게 귀띔하고는 선두로 달려나갔다.
곧이어 전투가 벌어졌고, 내 예상대로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졌다.
오크들은 우리들의 등장에 놀라긴 했지만 내 길드원들만 나섰기에 수는 200을 넘는 정도, 즉 자신들의 1/5에 불과했으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듯 우리를 향해 마주 달려드는 패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수준 차이는 명백했고, 즉시 파고든 나서윤이 첫 중급 마법 파이어 링을 구사, 전열이 모조리 불타며 확실히 기선 제압을 선보였다.
과거 튜토리얼에서 스크롤로 보았던 파이어 링. 갓 중급 마법에 입문해서인지 딱 그 정도 위력이었다.
그리고 당시 파이어 링은 고블린들의 대부락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위력을 선보였었다.
오크들은 그보다는 수준이 높았던 덕분에 그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단번에 200이 넘는 오크들이 타 죽어버리며 중급 마법의 위력을 제대로 선보였다.
나서윤이 호언장담할 만했다.
그리고 이어진 돌파에 오크의 진영이 반으로 찢어졌고 수준 높은 정예 오크 전사 이상의 오크들은 조장 이상의 인원들이 달라붙어 우선적으로 처리해 버렸다.
그 와중에도 일부 인원은 남아 궁수 및 이연솔을 보호하는, 깔끔한 역할 분담을 보여 주었다.
진영이 반으로 찢긴 순간 우두머리인 최정예 오크 전사가 나섰지만, 한바다와 남은주의 공격을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일방적인 전투. 전투는 30분도 채 안 되어 끝나버렸고, 내 길드원들의 일방적인 학살을 본 상인들과 영국 왕실 길드원, 용병단들은 하나같이 침을 삼키며 뻣뻣한 몸짓으로 복귀하는 길드원들을 맞이했다.
“저희쪽 사상자는 전무합니다. 오크들을 모조리 전멸시켰습니다, 길드장 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빠, 새 마법 어땠어요? 괜찮지 않아요? 아직은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았긴 했으니 앞으로 더 세질 거예요.”
“고생했다. 벌써 중급 마법이라니, 정말 빠르네.”
“헤헤. 이게 다 오빠가 저를 신전에 보내주셔서 그래요. 그리고 언니도 이번에….”
나서윤은 내 앞에서 성과를 자랑하며 조잘거렸다.
확실히 나연 또한 괜찮은 모습을 선보였다. 사샤와 교감이 깊어진 듯 전투에 적합한 화염 계열 정령 마법을 미친 듯이 난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혼자서 짧은 시간에 200에 가까운 오크들을 죽였으니 자랑할 법도 한데 별다른 감흥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나서윤의 활약이 워낙 세기는 했지. 오죽하면 이연솔의 마법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지경이기는 했다.
나름 정통 마법사의 중층 데뷔전인데도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다. 그런데도 이연솔은 나서윤을 향해 선망의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나서윤은 힐긋 한 번 시선을 주고는 내게 자랑하기 바빴지만.
내 파티원들이 전체 전력의 반 이상을 잡아낸 수준이다. 다른 이들은 내 파티원들의 활약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내 길드원들에게도 주목했지만, 되려 내 길드원들은 나서윤을 비롯한 내 직속 파티를 선망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빠르게 전장을 정리한 이후 우리는 하층으로 진입했다.
이들이 여기를 틀어막을 정도라면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최대한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고, 우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동시에 일부 용병을 돌려보내 혹시 모를 현 상황을 제국에 알리기로 결정했다.
저길 저렇게 털어버린 이상 은밀함은 필요 없었다. 애초에 오크들이 저리 빠르게 무법자들을 받아들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걸리는 족족 오크들을 처리하며 헬모사 지역을 향해 나아갔다.
빠르게 이동한 덕분일까. 예상보다 조금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성은 공격받은 흔적이 이곳저곳에 보였다. 성벽의 일부는 무너져 있었고 성문도 이미 반쯤 부서진 모양이었다. 다행히, 함락당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만 포기해라 멍청한 새끼들아! 그분이 나서면 끝이라고! 엘리자베스 년이 와 봤자 니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무법자로 보이는 남자의 외침.
“닥쳐! 그래 봐야 괴물 새끼들의 밑에 기어들어 간 주제에 뭐가 그리 잘났다고!”
성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누군가가 외친다. 하지만 확실히 기세는 부족했다.
그 모습에 영국 왕실 길드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요. 하지만 반쯤 포위되었어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네요. 뚫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마차가 걱정이네요.”
“제, 제가 나서면 바로 문을 열어줄 거예요. 일단….”
“조용히.”
나는 주하연과 엘리자베스 공주의 입을 막았다.
확실히 전체적인 수준은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다.
저들의 지원 온 오크들의 숫자는 1500정도로 길목을 막았던 놈들과도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수준 자체는 비슷하다. 조금 높은 이들이 보이긴 하지만 정예 오크 전사로 보이는 이들이 100을 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일행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저쪽에서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분명 느껴진다.
“네임드 오크가 있습니다.”
“…네임드 오크가요? 하층에?”
“…네임드 오크면 예전에 오빠랑 싸웠던….”
내 말에 일행들의 표정이 굳는다. 나서윤은 반쯤 죽일 듯한 기세를 내뿜는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 정도 수준은 되는 이들이야. 문제는… 하나가 아니라는거지.”
“…하나가 아니라고요?”
“네. 맞습니다. 제 감각에 걸리는 네임드 오크는… 둘이네요.”
네임드 오크가 둘.
일행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