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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61화 (161/317)

# 161

시야가 돌아왔을 때 나는 특이한 가정집에 들어와 있었다. 지구의 느낌이 강한, 그런 가정집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가정집, 그것도 거실 한복판이었는데, 눈앞에는 식탁이 있었다.

그 위에는, 방금 끓인 듯한 차 두 잔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다.

“앉으세요.”

천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여긴 어딥니까?”

“제 영역이에요.”

영역?

의아한 표정을 짓자 천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반가워요 회귀자. 제 이름은 피니아.”

동시에 천사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해간다.

천사 특유의 신성한 금빛이었던 머리칼은 핑크빛으로 물들었고, 찬란한 여섯장의 날개가 그 모습을 감춘다.

동시에 옷이 지구의 현대적인 원피스로 바뀌어버렸다.

“중층의 플로어 마스터 중 하나랍니다.”

나는 조금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계시를 내리신 것이, 당신이었습니까?”

“반은 맞아요.”

피니아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가이아가 원했고, 제가 대신했죠.”

“…가이아 님은 현재 잠들어 계실 텐데요?”

“관리자들을 얕보지 말아요. 육체가 잠들었을 뿐, 혼은 간간히 깨어나니까. 당신이 세웠던 계획이 어긋남을 깨닫고는 열세 번째 꽃을 통해 우리 쪽으로 부탁해 왔답니다.”

그런 건가.

확실히 내가 하층에서 얻으려던 힘을 주하연과 남은주가 나누어 가져갔다.

그 대가로 나는 다른 형태의 힘을 얻었지만.

그리고 두 힘이 예상 이상으로 강한 덕분에 상당히 도움이 될 터였다. 아쉽긴 하지만 손해는 아니다.

“그럴만한 간섭력이 가이아 님께 남아 있었습니까?”

“당신은 직접 계약한 계약자니까요. 그리고 이건 본래 가이아가 만약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 것을 변형시킨 거에요.”

그런 것도 있었나….

하기야 회귀자들의 대부분은 실패했다고 했으니까. 역사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손에 꼽힐 지경이라고 했으니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겠지. 보험 하나 둘 정도는 준비해 놓았을 터다.

그리고 그 보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지 확인해 봐야 한다.

“무엇입니까? 제게 주어질 것이?”

“성흔이요.”

“…성흔이요?”

“네. 당신의 직업 중 하나가 사제인 걸로 알아요. 그래서 성흔은 내릴 생각이랍니다.”

성흔. 성녀의 증표이자 여신이 직접 선택했다는 증거다.

7대 성녀는 나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었고, 결국 주하연이 받고 말았었지.

그게 돌고 돌아 결국 내 손에 들어오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탐탁치 않았다.

“축하해요. 역사상 최초의 성자(聖子)가 되시겠네요.”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솔직히, 신성력은 효율이 나빠서 쓰고 싶지 않습니다만.”

“이해해요. 지금 신성력을 가져 봤자, 되려 약해지기나 하겠죠.”

“…그런데도 받아야 합니까?”

“당연히 당신을 위해 수정이 들어간 상태로 줄 거랍니다. 거기다가 그 외에 다른 스킬도 넘길 거에요. 성흔만 달랑 줘 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성흔은 신성력을 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거지 딱히 어떤 공격형 스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용량을 키우는 목적이라고나 할까?

“일단, 거부는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설명은 들었으면 하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피니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성흔을 신체에 새긴다고 당신의 마력이 신성력으로 전환되지는 않아요. 필요에 따라 당신이 성흔에 마력을 집중하면 그게 신성력으로 변환되게끔 만들 생각이에요.”

휘발성이라 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소모된다고.

“그리고 거기에 더해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 두 개 정도 들어가겠네요.”

스킬 슬롯 3개. 현재 5칸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만약을 위해 빼놓은 슬롯이 2개. 하지만 육체 정화를 덮어씌우면….

“성흔은 역시 전설급 스킬입니까?”

“줄 예정인 스킬 3개가 다 전설급 스킬인데요?”

이러다 내가 가진 스킬이 몽땅 전설급 이상의 격을 갖게 생겨버렸다.

“…제가 가진 스킬들과 충돌이 일어나는 종류는 아니겠죠? 신성력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고려를 했죠. 그 정도는 기본이랍니다.“

피니아는 손가락을 꼽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앞서 말한 필요할 때마다 마력을 신성력으로 치환하는 성흔, 거기에다가 당신은 본인 육체에 데미지를 주는 기술들을 상당히 갖고 있더라고요? 불사의 육체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회복에 치중되어 있으니까요. 전체적인 회복 스킬의 효율을 올려주고 신성력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성자의 육신에다가 본인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상처와 피로, 내성을 올려주는 신성한 오러를 줄 계획이에요. 3슬롯이나 차지하겠지만, 상당히 도움이 될걸요? 내성 스킬의 필요성은 잘 알 텐데요?”

알다마다. 내 슬롯 중 하나는 추후 전설급 내성 스킬로 채울 예정이었다. 하다못해 나서윤이나 한바다처럼 슬롯에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는 하나정도 줄 예정이었고 남은주나 주하연처럼 슬롯이 부족한 이에게는 장비라도 맞출 계획이었을 정도였다.

내성 스킬은 그만큼 중요하다.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필요성이 덜해 보이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당장 마법사들이 제대로 속성 마법을 제대로 사용하고 오크 주술사들이 존재하는, 변방을 벗어난 지역만 가도 갖가지 상태 이상들이 널리고 널렸으며, 중층에 존재하는 상급 던전들은 그 환경부터가 무척이나 가혹하다.

마력이나 레벨, 능력치 등에만 의존해서 그런 것들을 버티려고 했다간 싸우기도 전에 탈진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주려는 스킬에 내성이 붙어 있습니까?”

“일단 성자의 육신에 기본적으로 붙어있어요. 전설급의 전용 내성은 아니겠지만, 어지간한 슈퍼 레어급 이상에 신성력이 가미된다면 전설급 못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신성한 오러 스킬까지 합치면 내성 스킬을 따로 구할 필요는 없을 걸요?”

“…확실히 끌리네요.”

“그렇죠?”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전열이고, 상황에 따라 후열이 제때 지원을 해주기 힘든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상황에 나를 포함한 타 전열들에게 치료, 내성, 피로까지 회복시켜주는 지속형 오러가 붙어 있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터. 저렇게 기능이 많으니 효율은 조금 떨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설급이다. 성흔에 직업 보정까지 얹는다면 무시할 만큼 약한 효과는 아닐 터였다.

그리고….

“최초의 성자라….”

내 생각을 짐작했는지 피니아가 입을 열었다.

“교단의 지지가 당신을 따를 거예요.”

주하연만 해도 충분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교단 역사상 최초로 존재하는 성자까지 된다면… 실질적인 권한은 없으면서, 교황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정치를 할 생각은 없지만,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나 강해짐에 따라 견제하려는 세력이 생기는 것은 필수였다.

그런데 그런 가벼운 견제를 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닌 열번 스무번은 더 생각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 된다.

이런 거라면… 그리고 계륵 같은 신관 직업까지 사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넘친다.

게다가 그 가이아가 날 위해 준비한 거다. 도움이 되면 되었지,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좋습니다. 받죠.”

“현명한 선택이에요.”

***

피니아로부터 모든 것을 받고 밖으로 나왔을 때,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일행이 조금 불안한 상태이긴 했지만, 무사한 모습에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남은주와 주하연은 순식간에 내 변화를 눈치챘다.

물론, 알레나를 비롯한 교황과 추기경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잠시만요 그 기운은….”

“눈치 채셨군요. 음… 여신의 대리자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습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계시는….”

“아, 그건 여신님께서 안배해 놓으셨던 거라고 하더군요.”

나는 갑옷을 슬쩍 치우며 말했다.

“그리고, 이게 그 증표입니다.”

성흔.

그 모습에, 내 일행을 제외한 거주민들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일체의 표정 변화가 없었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나는 즉시 마력을 사용해 성흔을 활성화시켰고, 신성력이 공급됨과 동시에 신성의 오라가 발동해버렸다.

화악-.

은은한 금빛이 내 주변에 넘실거린다. 성자의 육체에 신성의 오라, 성흔이 서로 공명하며 그 위력을 증폭시킨다.

생각보다 효과가 세다.

나는 가볍게 팔을 벌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음…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네요.”

“…이건 괜찮은 정도가… 아니 어떻게….”

주하연 또한 제법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일어난 주변의 반응에 비하면, 아주 침착하다고 볼 수 있었다.

“성흔… 그렇다면 성녀….”

“하지만 유신후 님은 남성이 아니신가?”

“허나 이 기운은 분명 성흔… 그리고 성녀님의 기운일세!”

“성자… 성자가 나타났다! 교단 최초의 성자가…!”

점차 혼란이 퍼지고, 곧이어 현실을 받아들인 추기경과 교황이 경악하며 외친다.

“성자시여!”

“아아… 여신이시여!”

“한 세대에 성녀가 두 분인 것으로도 모자라… 어찌 새로운 존재까지…!”

성자.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내 직업은 사제에서 상위직인 성자로 바뀌었다. 그것도, 전설급 직업이었다.

다행히 같은 계통이라 그런지 직업 2개는 그대로 유지된 상태였다.

추기경들은 나를 바라보며 무릎까지 꿇고는 신실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나는 어색한 얼굴로, 그들을 말려야만 했다.

***

플로어 마스터라던가 잠든 여신 등의 이야기는 뺀 채 나는 가볍게 소환된 장소에서의 이야기를 풀었다.

교황을 비롯한 인사들을 경건한 자세로 내 말들을 들었고, 그들은 나의 존재 또한 가볍게 인정했다.

“…한 세대에 두 성녀님이 탄생하신 것도 역대 최초인데, 아예 역사상 최초의 성자님까지 뵙게 될 줄이야….”

교황은 무척이나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된다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어떤 시련이 닥치길래….”

‘뭐, 시련이 없지는 않겠지.’

혼란스러운 시대가 찾아오기는 하니까. 그게 대부분 수련자들 때문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온갖 원인 제공은 수련자들이 다 한다.

내가 교단으로부터 정식 성자로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다음이 문제였지.

“성지에서 머무르셔야 합니다.”

“수련은 성지에서도….”

“하다못해 대신전 근처에서….”

“그러니까 저는 싸워야 합니다. 성지 내부에서 수련을 한다고 해도 강해지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여신님의 뜻입니다.”

“그런….”

내가 마스터기는 하지만 나와 비슷하거나 강한 존재는 제국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S급 용병만 해도 100명 가까이 되고, 그 외 이름난 기사단에 속한 일부 기사들, 상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나 하다 못해 당장 우리를 호위하는 성기사들 중에서도 나 못지 않는 이들이 열이 넘었다.

아무리 강한 이들이 많더라도, 상징성 만큼은 내가 최고가 되어버렸지만.

덕분에 나를 잡는 이들이 많았지만, 훗날 있을 미래를 대비한다는 말을 핑계로 어어떻게든 교단을 빠져나왔다.

외부의 도움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명목상이기는 하나 일단 황제의 초대를 받았으니까.

핑계는 완쾌 기념 초대였지만,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고 나는 당연히 초대해 응해야 한다며 흔쾌히 황궁으로 길을 떠나버렸다.

일행들과 함께한 것은 당연한 이치.

교황은 차마 황제의 초대를 막지는 못했다.

중세의 유렵과 다르다. 이곳에서는 황제의 권위와 권한이 훨씬 강했다.

덕분에 나는 손쉽게 교단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비공식적인 성자 인정부터 시작해 교단을 빠져나오는 것까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뵙겠습니다. 유신후… 님. 영국의 공주, 엘리자베스라고해요.”

한참 지원군을 꾸리는 것에 열심히여야할 영국의 공주.

그녀를 나와 함께하는 자리에 초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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