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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60화 (160/317)

# 160

티드린드 영지와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바람에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창 발전 중에 영주인 토펜이 함부로 자리를 비우기도 힘들었고, 나 또한 기껏 대신전 내부로 대피해 타 귀족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인데 다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였다.

그렇기에 연락은 편지로 주고받는 편이었다.

영상통신 구슬이 있기는 했지만 서로 시간을 조율하기가 불편해서 편하게 편지를 선택했다. 애초에 토펜이 먼저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고, 내 답신 또한 편지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내 몸에 대한 걱정과 쾌차를 바란다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편지지만 지금은 영지에 대한 소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영주 토펜은 내가 설마 황제와 끈이 닿을 줄은 몰았는지, 내게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마탑과 연계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고 천천히 귀족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세력을 키울 계획이었는데, 안전 확보에 그토록 원했던 황실의 인정과 더불어 많은 지원을 받는 마당이었으니까.

물론 당당한 귀족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한참 모자라기는 했다. 영지의 발전도 상당히 낙후된 데다 무력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마정석 광산이나 놀들을 처리하며 얻을 넓은 영지는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지만.

내 몫의 마정석은 비율에 맞춰서 일부는 내 휘하의 마법사들에게, 일부는 돈으로 바뀌고 남은 것들은 창고에 그대로 쌓이고 있다고 한다.

토펜 뿐만이 아니라 현재 하층에서 사실상 내 길드를 이끌고 있는 조연은과 이윤형과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지구의 상황을, 한국쪽 수련자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정보의 통제? 해서 뭐 하는가? 그 소식을 듣고 포기하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나나 내 파티원들 덕분에 더 노력하자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애초에 귀환도 가능할지, 탑의 정상이나 밟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던 이들인 만큼 먼 지구의 상황은 당장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내 휘하의 능력있는 길드원들은 나름 동기 부여가 되었는지, 더더욱 자신들을 채찍질했다. 내 정예 길드원들은 어느새 늪지를 헤집고 다녔으며, 교역로는 이미 완전하게 확보한지 오래였다. 아마 이것만 아니었다면 내 정예 길드원들이 진작 중층에 진출했을 터였지만, 다행히 그것에 불만을 갖지는 않았다고 한다.

내 지시에 따라 따로 만들어진 파티나 길드 등은 산하로 영입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수준을 키우고 예비 마법 병단은 내 요청으로 파견된 마탑과 연계해 꾸준히 수련을 받는 중이었다.

슬슬 최하급 무속성 마법 등을 비롯해 속성 마법이나 하급 마법을 넘보는 중이라고. 예비 부단장인 이연솔은 이미 하급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상급 잠재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주기적으로 실전도 겪으며 뒤처지지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전하는 것으로 간섭을 최소화했다.

슬슬 약하더라도 마법 병단으로서의 모습을 조금씩 보이고 있을 터.

‘이건 영국 왕실 길드도 초반에는 갖지 못한 힘이었지.’

확실히, 우리가 앞선다. 그들은 이제 중층에 진출한 햇병아리들이다. 과거의 그 괴물들이 아니었다.

당장 찾아가서 여러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당장 찾아갈 수는 없었다.

슬슬 완치에 가깝기는 했지만, 2주 정도는 더 쉬어 줘야 했고 완치가 되더라도 성지를 찾아가야 한다.

거기서 그놈의 계시가 뭔지 확인을 해야만 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그들을 바로 뭘 할 수는 없어.’

황실이 접촉하기는 할 거다. 내가 있더라도 일단 접촉해 놓아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아마 우리랑 크게 비교가 될 터다. 하층의 발전 정도는 우리가 훨씬 앞서고 리더나 다름없는 엘리자베스 공주와 내 수준 차이는 비교하기 미안할 만큼 차이가 나며, 왕길 기사단의 수준은 내 정예 길드원들보다도 약할 테니까.

내 직속 파티원 하나하나의 임팩트만 봐도, 저쪽이 등장함으로써 한국 쪽의 평가가 가만히 있어도 역으로 오르는, 웃기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아멜리아는 영국 왕실 길드와 사이가 상당히 나빴지.’

아멜리아는 미래의 대마법사다. 하지만 영국 왕실 길드는 모든 길드들이 공통적으로 그랬듯 마법사들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다. 중층에 와서야 마법사들의 힘을 체감하고 몇몇 뛰어난 이들에게만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서야 뒤늦게 마법사들을 끌어들였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탑에서는 언제나 미래의 힘보다는 당장의 힘이 더 필요했고, 년 단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마법사들은 여전히 무력했다. 그렇다보니 사실상 특수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마법사에게 투자가 없었던 셈.

그리고 아멜리아는 그렇게 외면된 마법사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왕실 길드는 나름 아멜리아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는 등 여러모도 끌어들이려는 갖은 수를 다 사용했었다.

그녀의 과거가 정확히 어땠는지는 모른다. 소문으로는 하위권 전사로 활동했었다는 말도 있었다. 타 국가의, 근접 계통 출신의 랭커들 처럼 등장부터 강하게 나왔던 이는 아니었다. 비교적 일찍 중층에 도착했음에도 활약 시기는 무척이나 늦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휘하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랭커 중 하나였다.

문제는….

‘내가,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1회차 시절의 랭커나 거대 길드들이 어떤 놈들이었는지 대부분 알고 있었다. 훗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다.

거대 길드들은 수련자들이나 거주민들을 이용해먹고 뽑아먹지 못해 안달 난 이들이고, 랭커들은 하나같이 제 자존심 하나에 살고 죽었던 폭군들이다.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무려 랭커다. 그걸 그리 쉽게 포기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상대해야 할 이들이 거인인데, 현실적으로 지구를 위해서는 내가 싫다고 하더라도 감안하기는 해야 했다.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결국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시도는 해 보기로. 어차피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후 2주에 걸쳐서 꾸준히 소식을 받아두었다.

주하연이 고생을 좀 해주었다.

“자칭 공주라는 사람이 자기 직속 인원들을 이끌고 지원을 요청하러 왔어요. 그쪽 지역, 사실 버려진 지역이었다던데….”

“버려졌던 곳이요?”

“네. 티드린드 영지와 마찬가지였어요. 원래 제국의 땅이었는데 오크들에게 점령당했다고 하더라고요. 나름 변방이고 후방에 요새를 지으면서 사실 처음부터 포기한 땅이었다고….”

“…거기가 하층이라….”

“그렇게 강한 오크들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오크랑 고블린들이 주 적이었다고….”

그런 주제에 사냥터 몬스터는 놀이었다고 한다. 뭐, 지역마다 다르기는 하니까. 어떤 곳은 슬라임이나 렛맨이 사냥터 몬스터이기도 하니까.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버려졌던 이들이 남아서 어떻게든 성을 지키며 살아있었는데, 거기에 수련자들이 나타나 조금씩 영역을 넓힌 거죠. 그런데 슬슬 세력이 커지고 있으니 이제 제국과 다시 연결되기를 바라는 상황인가 봐요.”

“그럼 지원 요청은 뭡니까?”

“물자가 부족하대요. 수련자들까지 합세하니 세력은 커졌는데, 먹을 것이나 생필품, 보급품들이 하나같이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던 곳이 하층 최고의 영지가 되었다라… 도대체 얼마나 지원을 받은 걸까?

“황제 쪽은 어떻던가요?”

“모벨 자작이라는 사람이 엘리자베스 공주를 만나는 중입니다. 황실 측 사람으로 알고있어요.”

나 처럼 직접 초대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만 해도 이미 초대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마스터가 되버린 전력이 있었다. 황실의 권력을 더 키우려는 현 황제의 특성상 수련자의 존재는 최대한 늦게 알려지는 것이 좋았다. 최대한 많이 포섭해야 하기도 하고,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당장은 약한 편이기도 했으니까.

마침 제국의 영토를 다시 넓힐 기회라는 좋은 명분도 있으니까, 천천히 만나면 되겠지.

그래도 화제는 될 테지만.

무려 오크들의 영토 내부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세력이다. 귀족들도 나름 무력적 가치가 상당하다고 생각할 이들이 있을 터다. 당장은 생각보다 약하겠지만.

엘리자베스 공주는 최대한 빨리 도움을 받기를 원했지만, 그게 말대로 쉽게 되지는 않았다. 황제는 1회차와 다르게 나 때문에라도 그리 급하지는 않았고, 내쪽에 지원이 집중되는 와중이라 빠르게 지원해주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다다익선이라고 조금씩 지원군을 갖추고 상단을 꾸리고는 있었다.

그사이에 나는 몸을 완전히 회복한 채 교황을 만나는 중이었다.

“음, 완쾌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네. 모두 성하와 여러 추기경님들, 그리고 폐하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곧바로 성지로 향하실 겁니까?”

“그래야죠. 여신님의 계시인데, 하루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교황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죠.”

어느 정도 회복할 기미가 보여 말해둔 덕분에 말만 그럴 뿐 실질적인 준비는 끝난 상태였고, 곧바로 성지로 출발할 수 있었다.

성지와 가까운 지역으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이동한 다음, 한동안 더 이동해야만 했다.

성지 내부로는 텔레포트 게이트 설치가 불가능했다. 그 주변도 마찬가지. 신성력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 가까운 지역으로 텔레포트 한 이후, 성지까지 가는 데만 해도 도보로 반나절 이상이 걸린다. 성지가 제국 내부에 존재하는 데다 특별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게다가 교황과 추기경들을 비롯한 이들이 한 번에 이동하는 바람에 호위 병력의 규모마저 커져 버리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합류하지 못한 하유진을 제외한 내 일행들까지 모두 성지로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나연 자매 또한 내가 성지로 간다고 하자 고난의 신전에서 다시 중층으로 나온 상태였다.

수련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지 나연은 사샤와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였다. 사샤는 조금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나연을 막대하지는 않고 있었고.

나서윤은 아직 눈에 띄는 모습은 없었지만, 훗날 전투가 기대되기는 했다.

“뭐 때문에 그런 계시가 내려왔을까요?”

“신후 씨 직업이 사제니까,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사제는 2차 전직을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닙니까? 신후 님은 직업이 두 개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시가 내려오는 것은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차라리 시스템 메시지가 날아왔다면 모를까….”

일행의 추측들. 솔직히 나도 남은주의 마지막 말에 동의한다. 전직을 해야 하면 계시가 아니라 시스템 메시지가 날아왔겠지.

어차피 가는 와중이라 곧 풀릴 궁금증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이동한 후에야 우리는 성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미리 연락을 받은 알레나 성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알레나 성녀. 금안에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미녀였다. 외향적으로는 20대 초중반으로 밖에 안 보이지만, 일단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알고 있었다.

“성하.”

“알레나 성녀님.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이렇게 대대적으로 성지에 방문하시는 것은 오랜만이네요.”

“허허. 여신님게는 죄송할 따름이지요.”

“일이 많으셔서 그런 것일 뿐인걸요. 그러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알레나 성녀는 우리 일행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쪽 분이 새로 성녀가 되셨다는…?”

“네 맞습니다. 주하연 님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주하연 입니다.”

“제 대에 다른 성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반가워요.”

엘레나는 무처깅나 친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히 그녀가 주하연을 견제한다거나 밀어낼 생각은 없어보였다. 하기야 성녀가 교황처럼 실질적인 권력이 강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상징성이 어마어마할 뿐.

되려 짐을 나눠들 동료가 늘어난 것에 기뻐하는 듯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시, 성녀는 곧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분이 계시의….”

“그렇습니다. 이분이 바로 여신님께서 직접 성지로 초대하신, 유신후 님입니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성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주하연을 대하듯 친밀한 감정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예의는 갖추는 모습이었다.

조금 어색할 만하기는 했다. 하기야 일단 대신전 내부 사람들 중 모르는 이가 없기는 했다. 나는 계시의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성녀의 연인이기도 했으니까.

성녀의 연애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역대로 제대로 결혼한 성녀는 없다시피 했기에 나와 주하연이 특이한 경우이기는 했다. 애초에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계시나 혹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강대한 신성력 때문에 성녀 후보로 선정되어 보호되는 만큼, 자연스럽게 또래의 이성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지게 된다. 완전히 성녀가 된 후에는 사실상 방문이 쉽지 않은 대신전이나 성지에서 주로 지내는 만큼 성녀가 엄청나게 적극적이지 않는 이상에야 결혼은 불가능하다.

“오늘 쉴 장소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일단 기도실에는….”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바로 가고 싶습니다.”

나는 성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헬모사 지역으로 향할 상단과 물자들은 이미 준비가 된 상황이다. 그러나 용병이 쉽게 모이지 않고 있었다. 위치가 오크족 내부라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었다. 용병들이 보기에 함부로 갔다간 진짜 살아 돌아오기 힘든 의뢰로 보였으니까.

솔직히 상인들도 진짜 목숨 내놓고 대박을 좇는 이들이 뭉친 지경이라 들었다.

제국군으로 호위를 할 수도 있었지만, 정예 병력을 얼마나 위험할지 모르는 곳에 쏟아붓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내 존재가 없었다면 모를까, 이미 우리가 확보된 마당에 황제는 함부로 정예병을 쏟아붓기 거북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용병 모집이 지지부진하면 결국 자신의 병력을 투자하기는 할 터. 내 성장세를 보면 수련자를 포기하기는 힘들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지원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일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계시로부터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알레나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여신의 계시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을 아닐 터. 이미 준비도 다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이전에 요도림 추기경에게 들었던대로 성지의 신성력은 확실히 대신전보다도 짙은 수준이었다. 괜히 성지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는것을 깨달을 정도.

나는 곧바로 준비된 장소로 이동했고, 대신전에 비하면 작지만 신성력 만큼은 더 짙은,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내포된 여신상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기도를 하기 무섭게 예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빛이 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또다른 빛기둥이 하나 생기며, 웬 천사 하나가 나타났다.

천사의 등장에 주변이 하나같이 감탄한다.

하지만 나는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천사는 드래곤이나 거인, 악마나 최상위 마족과 같은 수준에 달하는 최상위 종족이다.

주로 강대한 관리자들이 휘하에 넣어 사용하는 이들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만만히 볼 이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날개가 세 쌍이다. 저 수준이면 여기 있는 인원 전원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가 없었다. 일단 상성이 최악이다. 천사에게 신성 공격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천사 본인보다 강한 신성력을 퍼붓지 않는 이상에야…. 그건 현재 이곳에 있는 교황이나 성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천사가 교황이나 성녀를 우선 공격하면 막아줄 이들이 없다.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 하지만 천사의 등장에 저들은 감탄하기 바쁠 뿐 경계심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적응 안 되네.’

사실 내가 예민한 것이기는 하다. 이 상황에 저 천사가 우리를 적대할 리는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를 죽일 수도 있는 존재가 내 위를 날아다니는 거다. 긴장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한 천사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며 웃더니 곧바로 내 곁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움찔했지만 저항하지는 않았다. 일단 계시를 통해 초대받은 몸이다. 이상한 놈이 가이아를 사칭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상 이 천사가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 터였다.

내 곁에 내려앉은 천사는 조심스레 나를 붙잡았고, 동시에 시야가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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