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새로운 성녀가 첫 번째 기도실을 이용한다.
각자의 역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참한 몇몇 추기경을 제외하고는 모든 추기경과 교황까지 첫 번째 기도실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들은 기사(奇事) 넋을 잃고 일행을 바라보았다.
“유신후 님의 일행분들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한바다나 나서윤은 당장의 극적인 변화가 없었다. 저게 보통이다. 아마 천천히 드러나겠지. 하지만 이 둘과는 다르게 나연은 2차 전직과 동시에 사샤의 몸집이 손바닥 크기에서 팔뚝 크기로 커져 버렸다. 최하급 수준이었던 사샤가 하급 수준의 정령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남은주와 주하연의 경우는 더 극적이었다.
“…신성력이 저리 상승할 줄이야….”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이 둘은 2차 전직과 동시에 봉인된 스킬이 하나씩 풀렸고, 거기에 더해 신성력까지 상승한다는, 솔직히 말이 안 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둘 다 전설급 스킬이 해방되었는데, 남은주는 고대하던 공격 스킬이었고, 주하연은 버프 스킬이 개방되었다.
[여신의 철퇴(전설)]
-신실한 성기사, 여신을 위한 전투의 최선봉에 섰던 그의 무기에는 여신의 뜻이 담겨있다.
-사용 시 무기에 강력한 성(聖) 속성의 힘이 깃들며, 무기에 담긴 힘은 다음 공격 시 단번에 방출된다.
-신성력에 비례한 추가 피해
-어둠 속성에 추가 피해
-명중 시 스턴 효과
[성녀의 축복(전설)]
-여신과 가장 가까운 이, 성녀가 전장에 출전하는 전사들의 무용과 안전을 기원하며 내리는 축복.
-사용시 일정 시간 동안 레벨과 현재 신체 능력치에 비례하여 근력, 민첩, 체력이 상승한다.
-사용된 신성력에 비례하여 축복의 지속 시간이 결정된다.
-신성력을 더 사용하여 추가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
-중복 사용시 유지 시간이 상승한다.
‘둘 다 전설이라니.’
이쯤 되면 솔직히 둘 다 랭커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2차 전직과 동시에 스킬이 풀리고 신성력까지 상승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계승한 기운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전설급 스킬도 랭커가 되기에 충분하며, 솔직히 주하연은 이미 넘칠 만큼 갖고 있었다.
주하연은 가진 스킬의 반 이상이 전설 급인데도 균형마저 맞아떨어진다.
거기에 더해, 장비마저 조건부이긴 하나 확보 루트까지 확실하다. 스킬 활용이나 본인의 전투 센스, 경험도 더해져야 하지만 그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남은주는 아슬아슬하긴 한데, 주하연은 솔직히 확정이나 다름 없다는 판단이다.
주하연도, 남은주도 솔직히 지금 시점이면 슬슬 내 일행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던 이들인 만큼 감개무량한 느낌이었다.
주하연은 내가 이제껏 본 이들중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나서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으며 남은주는 하 수준의 잠재력으로 출발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방금 성장한 사샤를 보며 그냥 1군 정도를 기대했던 나연 또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더 어려운 난이도로 던전을 클리어했기 때문일까, 사샤는 최하급 시절부터 인간의 말을 했고, 방금 성장한 하급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봐왔던 어떤 하급 정령보다도 강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사상 최고의 파티가 만들어지고 있다. 1회차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그런 파티가.
그런 파티를, 내가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전율이 일었다.
‘그 대가가 내 인내심과 보모 짓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심지어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나마 꾸준히 나아졌고 이제는 의존은 여전하더라도 이전처럼 짜증 나는 수준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 위안이랄까.
의존이야 내가 의도한 바인 만큼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인 지주 위치를 놓칠 수는 없었다.
“대단…하군요. 확실히, 성녀님과 수호 성기사님의 뒤를 이을만한 재목이십니다.”
교황과 추기경들의 어안이 벙벙한 표정. 그렇겠지. 나나 일행이야 저게 2차 전직이라는 것을 알지만, 저들이 보기에는 그냥 대신전의 첫 번째 기도실에서 기도 한 번 했을 뿐인데 뜬금없이 신성력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나연의 정령이 진화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나연 님이라고 했던가요. 저분의 정령마저 진화하다니… 여신님의 축복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대비가 필요하긴 해 보이는군요. 성인의 전당을 열기로 한 것은 옳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훗날 수련자의 존재가 밝혀지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래도 솔직히 상관은 없었다. 성녀를 이은 것은 사실이고, 우리 일행들 만큼 빠르게, 강하게 성장할 이들은 정말 손에 꼽을 테니까.
나와 주하연이 있는 한, 대신전의 지지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거다.
작은 이벤트 덕분에 우리 일행은 단체로 교황과의 식사에 초대되었다.
나야 황실의 손님인데다 계시 사건도 있었던 덕분에 교황과의 식사가 익숙하고, 일행들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만큼 어색해 할 지언정 심각하게 긴장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전에 출입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교황과의 식사는 어지간한 권력자거나 교단의 인정을 받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파티는 엄청난 명성을 얻을 터였다.
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어졌고, 주하연과 남은주는 스킬의 영향으로 교황, 추기경들과 여신교에 관한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갔다.
역사에 관한 지식은 비슷했지만, 교리나 가르침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덕분에 교황과 추기경들은 무척이나 흡족한 웃음을 지었으며 둘을 향한 꾸준한 지원을 약속했다. 약간의 활동비와 성수 정도지만, 지원 내용보다는 대신전에서 지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으로 도움이 될 터.
‘황실과 대신전의 지원을 동시에 얻은 파티라….’
꽤나 주목을 받을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일행은 특별히 허가를 받아 며칠간 대신전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예외 중의 예외. 나만 해도 황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현재는 계시도 있었고 일행이 여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굳게 믿는 교황과 추기경들 덕분에 온갖 특혜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그간 어땠나요? 쉼 없이 달리다가 처음으로 쉬셨을 텐데.”
처음으로 쉬었다라… 휴식도 훈련이고 지금도 쉰다기보다는 평판 관리나 숙련도 작업을 하는 중이라 쉰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냥… 그렇군요. 별다른 느낌은 없습니다.”
“오빠가 간 뒤로 저희는 나름….”
내 근황을 적당히 전하고, 그간 일행이 겪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래서, 여자들만 있으니까 치근덕거리는 애들 엄청 많았어요. 유진이도 발견 못 할 정도로 수준도 떨어지는 주제에 말이에요.”
“바다 씨가 고생했죠. 어지간한 애들은 다 쫓아내 주셨으니까요.”
“별로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름 A급이라는 사람이 접근했을 때는 조금 귀찮기는 했는데….”
A급이 변방에? 의외네.
“그래 봤자 황금패 하나에 쫄아서 갔는데 뭘. 하나같이 근성이 없다니까?”
사샤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 근방에 최정예 오크가 나타나는 바람에 현상금이 걸렸었거든요. 충분히 잡을 만 하다는 생각에 갔는데, A급 용병이 떡하니 나타날줄은 몰랐었어요.”
“덤볐으면 죽여버렸을 텐데….”
나서윤이 중얼거린다. 확실히 최정예 오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면 A급 용병을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S급이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일행의 수준이 제법 높은 편이었고, 조합 또한 상당히 좋은 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2차전직까지 한 상황이고 얼마 안 있으면 A급 용병 수준이 하나둘 되기 시작하겠지.
한동안 즐겁게 지내는 것도 감시, 일행은 며칠 되지 않아 각자의 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나서윤이었다.
“오빠, 저 마탑에 다녀올게요.”
어딘가 아쉬운 기색이었지만, 그럼에도 단호한 태도였다.
“마탑에?”
“2차 전직도 했으니 슬슬 중급 마법을 배우려고요. 가진 지식들이 풀리긴 하지만, 마탑으로 가면 여러 참고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건 맞아.”
“오빠가 신경 써서 연줄을 만들어 주었으니, 이용해야죠.”
기특한 생각이었다.
“그래. 알겠다.”
“자주 찾아올게요. 쓸 수 있게 되면 고난의 신전 이용할 거니까요.”
확실히 나서윤은 고난의 신전을 스텟 상승 용도보다는 그런 쪽으로 이용했었다. 당시 고난의 신전 안에서 마법 실력이 일취월장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얼마든지.”
나는 그런 나서윤을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나서윤은 그런 내게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조금 떨떠름하긴 했지만, 뭘 원하는지 아는 만큼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20살이 되면 곁에 서겠다더니….”
“그건 그거구요. 어차피 미성년자라고 안된다고 말했으니까, 미성년자 시절에 충분히 즐겨야죠.”
…미묘하게 계산적이었다.
나서윤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잠시 뒤 마탑을 향해 떠나버렸다.
주하연과 남은주는 일행과는 다르게 언제든 대신전을 드나들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남은주는 애매하긴 했지만 주하연이 성녀인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최근 타 신전의 사제들을 따라다니며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숙련도도 올리고, 인지도도 올리는 중이에요. 교황님이나 추기경님들 의견대로 성녀임은 밝히지 않고 있어요.”
“좋은 선택입니다. 일정 수준이 되기 전에 밝혀져 봤자 귀찮기만 합니다.”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접근해 오겠지.
“그런데 정말 안 들킬 수 있을까요? 신후 씨 덕분에 저희에 대해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던데….”
“황실 정보 단체와 대신전이 지키는 이상 함부로 접근하지는 못합니다. 나중에 저희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뒤 밝히는 편이 낫습니다.”
나까지 같은 의견을 말하자 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녀도 귀찮은 것은 피하고 싶겠지.
남은주는 처음에는 주로 주하연을 따라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더니 얼마 안 되어 한바다와 함께 성기사들이 수련하는 곳에 찾아가 대련을 시작했다.
추기경 중 한 명이 추천해 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그들 사이에 녹아들 수 있었다.
이제껏 상대해왔던 용병이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상대들.
그녀들은 생각보다 쉽게 성기사들과 어울렸다. 추기경의 추천 덕분인지, 만만치 않은 실력 덕분인지 둘을 전혀 배척하지 않았다.
하유진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지만 황실 정보 길드를 통해 짧은 소식은 전해왔다.
-형,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저는 무사해요. 형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형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어요. 만나고 싶은데… 그래도 더 강해져서 갈테니까, 그때 뵈요.
피식.
내가 다친 덕분인지, 지구의 상황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중층의 수준을 봤기 때문일지도.
일행들은 하나같이 게으름은 커녕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자신의 특성을 파악하고 해야 할 일들을 선택해 스스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무척,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연이 나를 찾아왔다.
“고난의 신전을 이용하고 싶어.”
나는 나를 찾아온 나연과 사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답답이가 나서윤한테 들었다더라. 거기가 안전하게 수련하기 좋은 장소라고….”
사샤는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샤와 교감할 필요도 있고, 하급 정령으로 진화해서 여러 마법들도 익혀야해.”
나서윤이 중급 마법을 배우는 시기에 나연은 하급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얕봐선 안된다. 정령은 하급부터가 시작이다.
본래 정령이 사용하는 하급 정령 마법은 마법사가 사용하는 하급 마법에 부가 효과가 두어개 적용된 위력이며, 그걸 캐스팅 없이 마력이 존재하는 한 마구 난사할 수 있었다. 그 연사 속도는 무영창을 익힌 마법사보다도 빠르다.
솔직히 2차전직을 하자마자 중급 마법을 배우러 간다는 나서윤이 특별한 것이다. 마법사는 개인의 기량에 따른 편차가 상당히 큰 직업이니까. 본래 2차전직 시기의 마법사는 한참이 지난 이후에나 중급 마법 하나를 겨우 사용하는 것이 다였다. 3차 전직은 해야 중급 마법을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과거 거대 길드의 1군이었던 정령사가 중급 고대 정령을 사용했다는 것만 봐도 정령사와 마법사를 같은 범주로 놓고 비교하기는 조금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사샤를 잠시 역소환한 나연을 미궁 조각을 통해 고난의 신전으로 보내주었다.
두어 달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마탑에서 돌아온 나서윤 또한 배워온 마법을 연습하겠다고 고난의 신전으로 가버렸다.
…원래 그렇게 쓰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슬슬 불사의 육체 숙련도가 정체기에 접어들고, 내 요양이 끝나갈 무렵이 되었을 때 주하연이 한 가지 소식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신후 씨.”
“아, 하연 씨. 무슨 일이시죠?”
“그게… 최근 이상한 소식이 들려와서요.”
“무슨 일입니까?”
“단절되었던 헬모사 지역과 연결되었다는 소식이 황실 정보 길드로부터 들어왔어요.”
멈칫.
헬모사. 익숙한 이름이다.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티를 내면 이상하기에, 나는 반문했다.
“헬모사, 말씀이신가요?”
잘 모르겠다는 기색을 내비치자 주하연이 짧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네. 그쪽 말로는… 티드린드와 같은 지역이라고 했어요.”
하층. 헬모사 지역은 모를 수가 없는 지역이다.
지금은 티드린드가 최초지만, 과거에는 아니었다. 지금 티드린드 지역은 나와 황제와의 거래 덕분에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마치, 과거의 헬모사처럼.
그랬다. 헬모사 지역은 과거 최초로 중층에 진출한 세력이며, 현재는 내가 차지한 황제의 제1파트너 길드인 영국 왕실 길드의 기반이 되는 지역이었고 동시에 랭커인 대마법사 아멜리아의 출신 지역이었다.
동시에, 모든 하층 중 가장 발전했던 지역이었다.
3년차가 멀지 않은 시점. 드디어 타 국가의 수련자들이 중층에 진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