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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58화 (158/317)

# 158

약 2달간, 나는 불사의 육체 숙련도를 쌓으며 동시에 꾸준히 기도에도 참가하고 성서를 공부하며 평판 관리에 힘썼다.

추기경들은 내가 성서에 대해 거의 모름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제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하지만, 시스템의 힘으로 사제로 전직한 내가 그런 지식이 있을 리 만무. 그나마 1회차 시절 때문에 수박 겉핥기로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였다. 주하연이나 남은주라면 스킬 덕분에 알 테지만… 나는 아니었으니까. 단지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사제가 될 수 있었다고, 여신께서 부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알아서들 납득할 뿐이었다.

게다가 나는 20대의 마스터다. 평생을 무에 바쳤다고,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훈련했으리라 믿고 있는 이들은 내가 성서에 관한 지식이 없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여신께서는 성실함을 강조하시고 게으름을 죄악이라고 여기 시며….”

지금도 나는 요도림 추기경으로부터 성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주로 여신의 말씀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태도 등을 말하곤 했다.

상당히 실용적이고 당연한 내용이다. 단지, 늘 그렇듯 이런 것은 지키기가 너무 힘들 뿐이지.

교단의 역사 강의 등이 포함될 때는 나름 편했다. 던전 때문에라도 수련자들은 그런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그 강의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작은 노크 소리가 울리고 요도림 추기경이 말을 끊었다.

“음? 들어오세요.”

벌컥.

“아, 실례했습니다. 여기 유신후 님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엄격한 대신전의 심사를 거쳐 들어온, 신전 내부에서 지내며 여러 잡다한 일을 하는 신도 중 하나였다.

일종의 시종 내지 하인에 가까웠다. 단지, 엄격한 심사를 거친 신도인 만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이들이다.

실제로 추기경 정도나 되는 사람들도 상당히 존중하는 이들이니까. 이름만 신도지 어지간한 사제보다 더 신실하고 공부한 이들이라고 보면 된다.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이들이라고 할까? 여러 이유로 사제의 길을 가지는 않지만, 여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이다.

“형제님, 무슨 일이신지요?”

“아, 그, 유신후 님 일행이라는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황실의 패를 들고 오셨는데….”

“그렇군요. 음… 일찍 올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2달 만에 찾아오실 줄은 몰랐군요.”

“그건 제 지시 때문입니다. 시킨 일이 있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음? 형제님 무슨 일이십니까?”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신도를 보며 요도림 추기경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형제님.”

“그, 맞이하신 분이 쿼노 추기경님이십니다.”

‘아, 그렇군.’

나는 무슨 상황인지 단숨에 눈치챘다.

“흠. 그렇군요. 황실의 손님이시니, 그럴 수도 있지요.”

“근데, 그, 쿼노 추기경님께서, 그 유신후 님의 일행분 중 한 분을 보시고는….”

망설이는 신도. 요도림 추기경은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서, 성녀님이시라고….”

“…뭐요?”

요도림 추기경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해버렸다.

****

“아니, 어째서, 이 기운은 성녀님이신… 그, 그렇지만 현재 성녀님은 성지에… 설마 성녀님께 무슨 변고가…!”

재빨리 나가본 입구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쿼노 추기경은 어쩔줄 몰라하며 빨리 교황님과 성지로 연락하라고 외치고 있었고 마리에다 추기경은 주하연으로부터 성흔을 확인하고 있었다.

“진, 진짜 성흔입니다. 이건 진짜예요. 이게 무슨….”

‘어째 그 추기경들이 이렇게 가볍게 느껴지나.’

1회차 시절, 근엄했던 추기경들이 경악하는 사건을 은근히 자주 보는 것 같았다.

뭐, 그만큼 사건 자체는 다 컸었으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계시에, 역사상 최초인 동시대에 2번째 성녀가 탄생하는 장면이었으니까.

“아, 신후 씨.”

내가 밖으로 나오자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주하연이 한결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오빠!”

“신후 님.”

나는 일행을 각자 살펴보았고, 모두 2차 전직 조건이 충족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아직 2차 전직을 하지는 않은 상태. 주하연과 남은주는 내가 막았지만, 나머지 인원은 해도 상관없었는데… 뭐 상관이야 없었다. 그런데….

하유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리더야, 몸은 어때?”

“오랜만이다. 사샤. 몸은 뭐… 많이 괜찮아 졌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젠장. 그놈의 경지. 어째 더 강해졌는데 몸은 약해졌어?”

“그러게나 말이다. 재능이 너무 뛰어난 것도 죄야. 그런데… 유진이는?”

나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재능 탓을 하며 이야기를 돌려버렸다.

“그, 유진이는….”

“잠시 떠났어요.”

나서윤은 내게 달라붙어 조심스럽게 하유진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도적 길드와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이었다. 뭔가 타이밍이 좋았다고. 그래서 아쉽지만 다음에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한다.

“오빠한테 더 도움이 되고 싶다고….”

“기특하네.”

“2차 전직도 그쪽에서 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끄덕.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부디 그쪽에서 괜찮은 스킬들을 배웠으면 했다.

그쪽은 워낙에 폐쇄적이라 내가 아는 것이 적은 편이었다.

“음… 다들 노력했나 보네. 강해졌어.”

정확히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작 두 달일 뿐이었는데도.

“당연히 해야 하는 노력이었을 뿐입니다. 신후 님에 비하면… 멀었죠.”

한바다는 어느새 멈췄던 능력치가 다시 슬금슬금 오르는 모양이다.

레벨에 비해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그 간극이 좁아진 것은 사실. 헤어질 당시보다는 조금 나아진 얼굴이었다.

“유신후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운 표정의 요도림. 그는 결국 일행의 리더인 내게 접근하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나는 요도림을 비롯한 추기경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

응접실. 나를 비롯해 우리 일행과 대신전에 거하는 추기경들이 한자리에 몰려들었다. 첫 방문 시에는 첫 번째 기도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절차는 생략된 상태였다. 그도 그럴게 지금은 더 중요한 일들이 겹쳐 일어난 상태였고, 일단 내 일행은 황실의 손님인 나를 찾아온 예외의 경우에 해당했으니까.

교황은 현재 성녀와 통신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한다.

별다른 일은 없을 테지만.

“…어떻게 유신후 님 일행에 성녀가….”

요도림을 비롯한 추기경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하층에서의 이야기를 가볍게 요약하여 알려주었다.

“7대 성녀님이라니….”

“당대의 용사? 으음… 하기야 당시의 인간 수준이라면 놀들은….”

“7대 성녀님의 기록이 어느 순간 끊겼던 이유가 있었네요. 그런 일들을 하셨을 줄이야….”

잃어버렸던 역사. 당대 인간이 약했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만큼 7대 성녀에 관한 기록이 조금 부실한 편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주하연이 기름칠한다고 7대 성녀의 업적을 알리니 마니 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져 버렸다.

“성흔이 계승된다니, 처음 있는 일 아닙니까.”

“주하연 님께 자격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게다가 저 남은주라는 분은 당대 최고의 성기사 님의 힘을 물려받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당대에도 성녀를 지켰던 성기사가 이번 대에도 지킨다라… 대단하군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또한 여신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동시대에 2명의 성녀라니….”

퀸셔 추기경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성녀님이 두 분이나 필요한 경우가 무엇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

추기경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 한 대에 성녀가 둘이나 존재하는 상황이다.

“…인간에게 무언가 큰 위기라도….”

“으음… 아니길 빕니다만….”

‘위기보다는… 기회지.’

황제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수련자들이 대거 등장함으로 인해 인간 측 힘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지고, 주적인 오크들을 무너뜨릴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지.

하지만 1회차에서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사이 성녀와 무사히 연락이 되었는지 교황이 찾아왔다.

“성하.”

“음, 확인은 되었소?”

“그렇습니다. 명백한 성흔입니다. 그런데 알레나 성녀님은….”

“무사히 계시네 별다른 일은 없으시다더군. 오히려 무슨 일이냐고 의아해하고 계시네.”

내가 계시를 받을 때 성녀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추기경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교황은 한동안 침음을 흘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군. 여신님께서 의미 없이 두 번째 성녀님을 허락하실 리가 없지. 일리가 있소.”

어느새 주하연은 자연스럽게 2번째 성녀로 인정받은 상태였다. 교황도 추기경들도, 그녀가 성녀임을 부정하지 못했다.

“걱정입니다. 오크들만 하더라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말입니다.”

“어쩌면 그 오크들 때문에 두 명의 성녀를 허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쿼노 추기경의 추측에 교황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주하연에게 말을 걸었다.

“음, 성함이 주하연… 이라고 하셨던가요?”

“맞습니다. 성하. 주하연이라 합니다.”

주하연은 상당히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성녀가 되신지… 2년이 채 안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교황은 주하연을 완전히 성녀로 인정함으로써 말을 조금 높여주었다.

“네.”

“그런데 그 정도 힘이라… 확실히 여신님의 비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탑과 가이아, 나의 합작품이다.

“무언가 위기가 오고 있다…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20대에 사제의 몸으로 마스터가 되신 유신후 님도 그렇고… 이제껏 없었던 일들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리가 있어요.”

교황은 추기경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추기경회의를 소집해야겠소. 의제는… 성유물의 계승.”

흠칫.

추기경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진다.

“성지의, 성인(聖人)의 전당을 개방하고자 하오.”

나는 미소를 감추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

성인의 전당.

생전에 뛰어난 무용이나 업적, 인망 등을 인정받아 사후 성인으로 추대된 이들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들을 보관해 놓은 장소다.

그런 이들이 사용했던 물품인 만큼 상징성도 어마어마하고 연대에 따라 성지에 보관된 기간도 길어서 쌓인 신성력도 엄청나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관이나 성기사 입장에서는 황실의 창고보다 성인의 전당이 더 보물 창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전설급 아이템이야 황실 창고에 더 많겠지만, 이쪽에도 전설급 아이템은 상당히 많았고 무엇보다 하나같이 사제, 성기사 전용 아이템들이다.

1회차의 성녀도, 대부분의 주 장비를 성인의 전당에서 구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기꺼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12명의 추기경이 모두 대신전으로 소집되었고, 추기경회의를 거쳐 결국 성인의 전당을 여는 것에 ‘조건부’로 찬성했다.

나는 주하연, 남은주와 함께 요도림 추기경으로부터 회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당장 주하연 성녀님과 남은주 성기사의 실력이 부족함이 원인이었습니다. 설령 성유물을 받는다고 한들, 제대로 사용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합니다.”

맞는 말이다. 나만 해도 지금 전설급 아이템이 두 개나 있는데 하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카로스의 꿈은 착용 조건을 만족했으니 슬슬 착용하고 제대로 적응을 시작해야만 한다.

앨거차의 문신 덕분에 마력이 80을 넘은 지는 제법 되었지만 그간 그놈의 경지에 몰두하느냐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었다.

덕분에 카바락의 전투에서 제대로 사용도 못 했었다. 그게 있었다면 한층 더 유리하게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뭐 그 덕분에 마스터가 되었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요양이 끝날 쯤이면 순수 능력치가 마력 80은 넘을 터. 문신 없이도 착용 해제가 될 일이 없으니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닙니다. 성녀님이 두 분이나 되기는 했지만, 그게 실제로 인간에게 위협이 오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신 분들도 있었지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유가 없지는 않을 터이니, 대비해서 나쁠 것이 없다는 의견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허가는 하되, 조건부가 되었습니다. 두 분이 성유물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거친 이후에나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건 1회차랑 똑같네.’

1회차의 성녀 또한 성유물을 거저 받지는 않았다. 교단에 그만한 기여를 하고 보상의 의미로 성유물을 수여받았다. 게다가 성유물은 일부 전설급 아이템처럼 받고 바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시험이요?”

“그렇습니다. 우선 두 분의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당장은 최소한의 자격 요건도 미달입니다. 따라서 더 성장한 이후에나 시험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결국에는 레벨과 능력치다. 하기야 레벨 50짜리한테 전설급 아이템을 줘 봐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그래도 미래에 장비를 얻을 방법이 생겼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준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 아니었다면 이쪽에서 교단에 먼저 공을 세우고 성유물을 요구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었는데, 그 과정이 없어졌다.

이렇게 되면 공을 비교적 덜 세워도 더 좋은 성유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것만 해도 감사할 지경입니다. 성유물을 계승할 권리라니….”

나는 일행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주하연과 남은주도 성유물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보통 물건은 아님을 짐작했는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모두 여신님의 뜻인바, 저희는 그저 대비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리고 두 분의 준비가 되어야만 하니까요.”

요도림 추기경은 곧이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 두 분 또한 단순한 손님이 아니게 되셨습니다. 제대로 인정을 받으셨으니…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요도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첫 번째 기도실이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내심 잘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신전에서 2차 전직이라. 솔직히 노리기는 했지만, 일이 잘 풀렸다.

“혹시 그 기도실, 저희 일행들 또한 이용 가능합니까?”

“누구든지 가능합니다. 신도님들도 처음 오실 때는 사용하시니까요.”

첫 번째 방문에는 보통 의무로 사용하고, 그 외에는 정해진 시간이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보통은 개인 기도실을 이용하는 편이라고.

‘2차 전직을 대신전의 첫 번째 기도실에서 한다라….’

내 계시처럼 엄청난 임팩트는 없겠지만… 제법 그림이 될 터.

또 다른 이벤트가 이어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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