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인, 간들인가. 이곳은 우리, 의 땅이다. 침략자는, 죽는다.”
중간중간 이상한 곳에서 끊어 말하는 특이한 말투. 오크 특유의 강한 강세와 거친 목소리. 녹색의 피부와 단련의 흔적이 보이는 거대한 근육들. 키는 큰 차이가 나지 않더라도 몸은 명백하게 인간보다 두꺼웠다. 뼈대부터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얼굴은 소설 속의 돼지머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과는 제법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좋게 말하면 나름 야성적인 외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입술이 조금 과하게 두껍고 코가 들창코에 가까워 빈말로라도 잘생겼다고 하기는 힘든 외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진짜배기 오크였다.
“말이 필요한가?”
나는 별다른 감정 없이 입을 열었다.
“크륵, 그렇긴, 하지.”
제국과 오크에게 대화는 필요 없었다. 자신들의 땅이라 말하고 침략하면 죽인다고 말하는 오크. 그러나 그들도 제국의 땅을 호시탐탐 탐낸다.
인간이 제 땅에 들어왔다고 뭐라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우스울 뿐이다.
우리와 조우한 오크들은 정예 다섯에 전사 열다섯으로 이루어진, 변방임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찰대였다. 게다가 전사 열다섯 중 셋은 활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궁사인 것으로 보였다.
바꿔 말하면 C급 열다섯과 B급 다섯이라는 뜻이고 이는 만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포함되지 않은 일행이었다면 나름 고전했을 수준이다.
“크흐아아아아!”
폭력적인 투기와 마력의 격류. 마력이 담긴 외침이 나와 일행의 귀를 때렸다.
아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자신의 마력 순환을 더 빠르게 만들며 상대의 기세를 위축시키는 기술인 워 크라이.
오크들, 전사 계급쯤 되면 누구나 사용하는 기술이다. 사실 인간들도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기는 하지만 원조는 오크라고 볼 수 있었다. 오크들은 워 크라이를 통해 야성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인간은 그 효과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오크들과 다르게 인간은 야성이 부족한 만큼 종족에 맞게 개량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워 크라이로 마주 반격하는 대신 살짝 물러나며 말했다.
“키퍼는 제가. 첫 싸움입니다. 본인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시죠.”
나는 이전 타락한 정령의 동굴에서와 마찬가지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던전과 다른 점은 거기서는 3층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일행이 실수하지 않는 이상 질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무난하게 싸우더라도 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서로의 세력은 백중세, 아니 나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오크들이 우리했다.
내가 키퍼를 보는 이상 이쪽이 유리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심했다간 죽는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내가 나서기는 하겠지만….
‘실망하겠지.’
내가 키워온, 최상위에 도달할 엘리트나 다름없는 이들이 고작 비슷한 수준의 오크들마저 감당하지 못하고 패배한다면 꽤 크게 실망할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짐작했기 때문일까. 일행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제껏 경험은 어디로 가지 않는지 전투의 시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나연아, 견제! 바다랑 은주는 잠시 버텨줘!”
“사샤! 화(火) 계통으로!”
“오냐!”
“파이어 볼!”
“이거나 먹어라 돼지들아!”
주하연이 적극적으로 지시를 내린다. 전투 상황임을 지시해 존대는 하지 않았다. 지시에 따라 나연이 사샤와 함께 오크들의 접근을 견제하고 한바다와 남은주가 앞으로 나서며 접근을 막는다. 둘이 오크들을 막으며 잠시 지연시키는 사이 여신의 가호를 하유진과 나서윤에게 걸었다.
나서윤 또한 그 잠시의 틈에 맞춰 마법을 사용한다.
“윈드 스피어!”
하급 마법 중 나름 상급에 가까운 마법. 중급 마법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하급 마법치고는 그 관통력과 속도가 우수한 마법이다. 대인 마법으로 무척이나 쓸모가 많은 마법이다.
핑-.
그사이 오크 전사들 중 활을 쏘는 이가 후열을 저격한다.
“흡!”
여신의 가호를 받은 하유진이 그 화살에 대응해 단숨에 화살을 쳐내 버렸다.
“…누나. 쉽지 않겠는데요, 이거.”
화살을 쳐낸 하유진이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화살에 담긴 힘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C급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힘을 가진 오크가 총 열다섯이다. 만만히 보기 힘든 수였다.
“걱정 마. 일단 후열은 신후 씨가 지켜주니까. 우선은, 이길 걱정이나 해.”
“네, 바로 지원 갈게요.”
곧바로 하유진은 후열을 빠져나가 최전선에서 고생하는 한바다와 남은주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서로 등을 맞대고 전사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수호를 이용해 전사들을 도발한 상태인지 남은주에게 달려드는 전사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한바다는 그런 전사들을 방해하고 밀쳐내며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워 크라이 덕분에 야성이 증가하고, 덕분에 도발에 더 잘 걸린 모양이었다.
‘저게 증폭된 야성의 단점이지.’
야성이 증가하면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그러면 역으로 지성체임에도 도발 스킬에 손쉽게 걸려든다. 동급이나 다름없는 정예 전사들마저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만큼 성기사에게 계승 받은 스킬의 수준이 좋은 덕분도 있었지만.
“크, 젠장….”
한바다가 일행에 들어온 뒤로 잘 하지 않던 욕설을 내뱉었다.
동급인 오크 다섯. 거기에 더해 전사들도 열이나 달라붙어 포위된 상황이다. 이대로 간다면 둘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버티지 못한다. 아마 둘이 방어가 뛰어난 직업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나연의 꾸준한 지원이 없었다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그사이 도발의 범위 밖에 서 있는 전사 셋이 활을 들어 올린다. 전열을 지원하려는 하유진과 나서윤을 노리는 것이었다.
“둘 다 조심!”
핑- 핑- 핑-.
평범한 인간 궁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화살의 속도. 하지만 둘은 나서윤과 하유진이다. 둘은 어렵지 않게 화살을 쳐내고 회피해냈다.
이어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침착하게 피한 뒤 한바다와 남은주를 포위한 오크들의 뒤통수를 노린다.
“크아악!”
단숨에 셋을 베어내자 정예 전사를 비롯한 일부 전사들의 도발이 풀려버렸고 침착하게 둘을 향해 맞서나간다.
정예 전사들의 무기에서는 각자 무기에 어울리는 검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몬스터가 검기라니….”
보고도 믿기 힘들다는 모습. 하지만 그런 것을 보며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지금은 그 검기를 쓰는 이들이 적이다.
나서윤과 하유진은 침착하게 그들을 견제하며 틈을 만들었고 남은주와 한바다는 한숨 돌리며 천천히 둘과 합류했다.
“윈드 커터!”
그사이에도 나연은 사샤의 속성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오크들을 견제했다. 물론, 오크 궁사들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일행을 노리는 화살이 날아왔고, 간간히 주하연과 나연을 노리는 공격 또한 날려 보냈다. 아쉽게도 아직 사샤의 사거리는 오크 궁사보다 짧아 저쪽 진영까지 공격을 하지는 못했다.
“젠장! 너는 답답한 걸로도 모자라 능력도 없냐!”
사샤가 짜증 난다는 듯이 외쳤다.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이 짜증 난 모양이었다.
“시끄러워! 바쁘니까 똑바로 지원이나 해!”
나연은 투정하는 사샤를 향해 외쳤다. 물론 제대로 지원은 하고 있었다. 단지 약한 자신의 모습과 계약자의 부족한 면이 거슬리는 것일 뿐. 아직, 어쩔 수 없었다. 둘은 서로 계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나연은 이제 정체기를 벗어난 시점이었으니까. 사샤도 알고는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러는 것일 뿐이다.
둘을 노리는 화살은 내 손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나는 침착하게 전장을 주시했다.
일행은 천천히 뒤로 밀리고 있었다. 하기야 그럴만 하다. 동급의 정예 전사가 다섯. 이쪽은 고작 넷이다. 원거리 원호는 비슷한 수준. 저쪽이 사거리가 길고 수가 많다고 한들, 이쪽은 4대 속성을 번갈아 가며 지원하는 나연이 있었다. 아직 숙련도가 부족하고 정령과의 친화가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많이 밀리지는 않았다. 단지 저쪽은 후열인 우리에게도 견제를 할 수 있는 반면에 이쪽은 완전히 무방비라는 것이 문제일 뿐. 그 부분을 내가 보충하고 있었다.
그나마 주하연의 힐과 정화가 섞인 여신의 손길, 반사 효과가 붙은 실드인 여신의 가호, 거기에 더해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사용되는 성역 선포 덕분에 일행은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밀리는 것은 시간문제. 주하연은 빠르게 판단하고 지시를 내렸지만, 조금 초조한 얼굴이었다.
C등급, 전사 오크들이 자신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자 천천히 주변을 포위하며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은 어느새 스스로에게 걸었던 워 크라이의 야성 효과를 지워낸 상태였다. 오크들의 강점은 이런 것도 있었다. 야성이 주무기이기는 하나 지성체답게 머리도 사용할 줄 안다.
일행의 얼굴에 조금씩 초조함과 조급함이 깃든다. 이렇게 대등한 싸움을 해 본 적이 언제였을까. 튜토리얼 초기를 제외하면 언제나 내 덕분에 항상 유리한 고지에서 싸워왔던 이들인 만큼 대등한 상황이 낯선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서윤만은 달랐다.
“——. ———.”
나서윤은 고속 영창 스킬이 있는데다 무빙 캐스팅도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그런 나서윤이 비슷한 상대와 전투를 하면서 필사적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하다. 상당한 집중을 하고 있는 상태로 보였다.
나서윤에게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이상한 상황을 알아챈 정예 오크 전사들과 C등급 오크 전사들의 시선이 나서윤에게 집중된다. 견제의 주 대상이 나서윤으로 넘어가고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나서윤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주하연과 일행들 또한 나서윤이 무언가를 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필사적으로 나서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서윤이! 서윤이를 지켜!”
초조한 목소리. 핵심은 짚었지만 평정이 흔들린다.
‘감점.’
일행은 필사적으로 나서윤을 지켰다. 상처를 감수하고 오크의 공격을 막아내며 때때로 방어를 도외시한 채 주하연의 여신의 가호만 믿고 몸을 던지기까지 한다.
그 노력이 통했음일까, 마침내 나서윤의 입이 열렸다.
“파이어 볼, 리피트(repeat), 중첩(重疊), 압축(壓縮)…….”
‘하급 마법에 세 가지 부가 효과를….’
심지어 중첩과 압축이다. 저건 내가 사용하는 상위 검기를 보고는 그걸 마법에 적용시킨 모양이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다. 아마 레벨만 오르면 금세 중급 마법을….
“폭(爆)!”
세 가지가 아니었다. 네 가지. 그것도 하급 마법인 파이어 볼에 네 가지나 되는 속성을 섞은 것이었다. 하나는 수를 늘리고 세 개는 자체적인 파괴력을 증가시킨다. 이 정도 부가 효과가 붙으면 차라리 중급 마법을 사용하는 게 효율이 나을 정도. 난이도는 되려 중급 마법보다 높을 지경인데, 위력은 중급 마법보다 약간 떨어진다. 애초에 하급 마법으로 저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규격 외이기는 하지만.
미궁에서는 하급 마법에 두 가지 부가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다였을 텐데… 어느새 저만큼이나 성장해 있었다.
게다가 그걸 동급의 상대와 전투 중에 해냈다. 그 찬란한 재능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마법의 위력을 짐작한 일행의 반응은 동시에 일어났다.
“여신의 가호! 여신의 가호! 여신의 가호!”
상황을 눈치챈 주하연이 재빨리 가호를 난사한다.
동시에 있는 신성력을 모조리 쥐어짜 성역을 선포했고, 한바다와 남은주는 긴장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재빨리 일행의 앞열을 막아서며 스킬을 사용했다.
“수호!”
“철벽의 수호자!”
그러나 마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력이 너무 눈에 띄었다.
C급 수준의 오크 전사는 모르지만, 정예 오크 전사들은 상황을 눈치채고 재빨리 뒤로 벗어나는 중이었다. 대부분 범위 내부이기는 하나 저대로 빠져나간다면 즉사는 힘들다. 잘해도 하나 정도에게 중상 정도였을 터였어야 했다.
“사샤!”
“알았어!”
나연은 사샤의 이름을 외쳤고, 교감의 영향인지 사샤는 즉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사샤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갈색으로 물든다.
동시에 도망치기 위해 바닥을 힘껏 박차는 정예 오크 전사의 발밑이 단숨에 꺼져버렸다.
“크악!”
다급한 정예 오크 전사의 표정.
아쉽게도 최하급에 불과하기 때문인지 고작 둘의 이동을 방해하는 것에 그쳤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터진다.
“크으윽….”
한바다와 남은주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여러 방어 보정 스킬과 전설급 실드의 힘, 그 틈을 뚫고 들어오는 열기는 나서윤의 마법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중급 마법에 근접했다. 이미 저 마법은 하급 마법이라고 부르기 힘든 수준이었다.
폭발이 지나간 자리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터져버린 오크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정면에 있던 C급 오크 전사들은 전원 사망했으며, 일행 덕분에 폭발의 범위 내에서 벗어났던 이들도 열기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나마 일행은 성역 선포 덕분에 자잘한 상처만이 존재했고, 가장 중요한 정예 오크 전사는 세 명이 사망, 둘이 경상을 입은 상태였다.
둘은 사샤와 나연의 합작으로 붙잡았지만, 마지막 한 명을 끝장낸 것은 하유진이었다.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하유진은 단숨에 세계 동화로 은신, 즉시 정예 오크 전사 뒤쪽으로 돌아가 허벅지를 찍어 이동을 방해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다.
덕분에 폭발 범위에 노출되었지만 여신의 가호와 성역 선포 덕분인지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멀쩡하지는 못했다.
팔에는 제법 큰 화상 자국이 보였고, 팔 한족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유진아!”
깜짝 놀란 표정의 한바다. 하지만 하유진은 태연했다.
“헤헤. 하나 잡았어요. 이제 둘 남았네?”
충분히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이제는 자신들이 유리해졌다며 하유진은 웃었다.
“미친놈.”
사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미쳤다기보다는 저것은 승리를 향한 집념으로 보였다.
셋이 남으면, 여전히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겠지. 짧은 시간에 뛰어난 판단이다.
“크하아아아아아아!”
폭발에서 살아남은 정예 오크 전사 둘이 일행을 향해 워 크라이를 사용하고 즉시 돌격한다.
큰 공격 직후의 틈을 노리는 것. 생각이나 계산이 아니다. 저건 본능 레벨의 움직임이었다.
그것에 맞춰 거리가 멀어 폭발 범위 외부에 있던 궁수 셋이 필사적으로 화살을 난사했고, 그 셋을 지키던 전사 둘은 호위를 포기하고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서윤은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는지 식은땀 투성이었다. 하지만, 아직 오러가 남았다. 나서윤은 즉시 신체를 강화하고 검을 들어 올렸다. 하유진은 또다시 세계 동화로 모습을 감췄으며 남은주와 한바다는 방어만 하던 모습을 버리고 정예 오크 전사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들어 오는 오크 전사들의 머리 위로, 사샤의 파이어 볼이 떨어지고 있었다.
***
이후의 전투는 일행의 승리로 돌아왔다. 하유진은 세계 동화로 완전히 무방비가 되어버린 궁수 셋을 썰어버렸고, 일행은 정예 오크 전사 셋을 손쉽게 무력화시켰다.
피해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고, 되려 이번에는 숫자가 이쪽이 우위였다.
나서윤은 오러 덕분에 제대로 싸우기는 했지만, 확실히 마력을 탈진할 정도로 썼기 때문인지 최대한 보조하는 쪽으로 전투 방향을 선회했다.
오크들은 지원이 끊겼고, 그에 반해 이쪽은 나연이 건재했다. 주하연은 모든 신성력을 사용, 탈진했기 때문에 전투가 끝날 때까지 신성력 회복을 위한 기도에 몰두하고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난 이후, 주하연은 하유진의 등짝을 때리며 빠르게 회복 스킬을 난사했다.
“도대체 어쩌려고…!”
“하지만 나연 누나 상태로 봐서는 하나 더 놓쳤다간 위험할 수도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는걸요. 솔직히 죽지 않을 것 같기도 했구요.”
올바른 판단이었다. 확실히 그 상황에서 셋이 살아남았다면 성가실 터였다.
나는 일행의 전투를 복기했다.
침묵한 채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일행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꿀꺽.
잠시 후 나는 일행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본인들의 현재 수준은, 파악하셨습니까?”
“…약하네요. 확실히 신후 씨가, 제가 천천히 가자고 했을 때, 그런 표정을 지은 이유가 있었어요.”
“…하연 언니, 그런 말도 했었어요?”
“응. 실수였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졌었나 봐.”
“…수련이 끝나고 오자마자 우리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던 이유가….”
남은주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추측했다.
“아주 약한 것은 아닙니다. 확실히, 수련자들 중에 저희는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제국 내에서도 전체적으로 상위 20%에는 충분히 들 겁니다.
단지 현시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나 수련자들 중 최강일 뿐이고, 제국 전체 중 상위 1%와의 격차는 도저히 넘볼 수조차 없으며, 오크 대전사 같은 규격 외의 강자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들까지 생각하면 일행의 실력은 먼지나 다름없었다.
하기야 오크 대전사와 비교하면 나도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비교적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에 주하연이 평정을 잃기도 했고, 한바다와 남은주 또한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서윤은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마법을 선보여 역전의 기회를 만들었고, 일행은 합심해 그 기회를 제대로 살려냈다.
하유진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정확한 판단으로 승리를 제대로 굳혀냈고. 평균으로 따지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이랄까?
아직 보완할 부분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경험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일행을 보며 나름 고생했다는 말을 하려던 와중, 소름 끼치는 기운을 감지했다.
내 표정이 일변하자 일행의 얼굴이 굳는다.
하지만 내 시선이 급격히 돌아가는 것을 깨닫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씨발.”
나는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신후 씨?”
일행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일행 앞에서 내가 함부로 욕설을 내뱉은 적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당장 물러나.”
나는 일행을 향해 명령조로 입을 열었다. 존댓말을 해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정예 오크 전사 다섯과 C급 오크 전사 열다섯.
나는 요새에서 들었던 최근 정찰을 나간 용병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를 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이런 이들과 조우한다면 살아남기는 힘들다. 그렇게 납득했었다.
아마 이 주변에서 인간들을 처리하던 이들이라고, 변방에 어울리지 않는 이레귤러 같은 이들이라고 판단했었는데… 이레귤러는 이들이 아니었다.
나는 단숨에 저 멀리 보이는 흐릿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에 마력을 집중했고, 흐릿한 그림자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녹색 피부를 가진 오크였다. 하지만 다른 오크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내 시야에 비치는 오크는 상반신에는 멋들어진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여러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동시에 인간이 보기에도 감탄할만한,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었다. 이전의 오크들은 나름 야성적으로 생겼지만 빈말로도 잘생겼다고 하기 힘든 외모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외향이었다.
나는 저런 얼굴의 오크를 알고 있었다.
오크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오크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멋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형과 야성이 공존하는 외모. 그러한 외형과 정말 잘 어울리는, 사내다운 웃음이었다.
동시에, 사나움이 포함된 미소이기도 했다.
‘시발, 개 시발. 이런 개 좆 같은….’
설마 여기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흉포한 기운이 용솟음친다.
그제서야, 일행은 오크의 존재를 알아챘으며, 그 강렬한 존재감과 자신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마력에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크허어어어어어어엉!”
압도적인 워 크라이가 일대에 울려 퍼진다.
대지가 진동하고 하늘이 순간 울렁거린다. 휘몰아치는 살기에 이 먼 거리에서조차 피부가 따끔따끔할 지경이었다.
‘오크의 왕자.’
워 크라이를 통해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한 오크는, 곧바로 이쪽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카바락.’
나는 일행을 뒤로한 채 마주 검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