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황실 창고. 게이트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는 특이한 창고인 이곳은 내가 지급 받은 이 금패가 없으면 내부에서도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처음 들어간 장소에는 3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거대한 문이 있을 뿐이이었다. …저 거대한 문이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부터가 어이가 없었다.
물론 평범한 금은 아닌 듯했다. 전혀 무르지도 않았고, 이곳저곳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은 특유의 마법이 걸렸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커다랗게 쓰인 3이라는 숫자는 아마 3등급을 뜻하는 것 아닐까?
나는 지급 받은 황금패를 문 가까이 대었고, 곧바로 거대한 문이 쿠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내부를 바라보았다.
내부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무기, 방어구, 장신구, 금화, 보석, 영약…….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걸 모두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서 옮긴 것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이 될 정도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레어나 슈퍼 레어 수준. 레어인 것들도 레어 중에서 정말 최상급 수준인 경우였고, 능력마저도 희귀한 것들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3구역 내의 무기 창고로 이동했다.
[흡혈검]
“역시….”
있을 것 같았다. 한 자루뿐이긴 했지만, 분명 흡혈검이었다.
물론, 이걸 갖고 나갈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그것도 1등급만 제외하면 아무거나 가져가라는, 어지간한 공을 세워서는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보통 꾸준히 공을 세운다면 황실 창고 내부의 물품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창고 내부까지 들어올 수는 없었다.
단순히 원하는 카테고리, 혹은 내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황실로 지급받을 뿐. 과거 내가 황실로부터 얻은 장비는 그런 식으로 얻은 거였다.
그마저도 고작 한 번뿐이었지만.
간단히 내부를 훑어보고는 곧바로 2등급 아이템이 모여 있는 장소로 향했다. 내가 출입할 수 있는 최대 구역이자, 내가 가장 기대하는 장소였다.
쿠궁-
예의 같은 소리가 열리며 2라고 적혀 있는 거대한 황금 문이 열린다.
내부는 3등급 보물이 보관된 장소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는 않았다. 하지만 물품 수량은 확 줄어들었다.
입구에는, 정말 드문 슈퍼 레어급 아이템들이 널려 있었다.
마찬가지로 카테고리에 따라 나뉘어 있었는데, 나는 최대한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깊숙한 곳으로 갈수록, 그 물품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슬슬 전설급 아이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화룡갑(전설)]
-막 성룡이 된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 막 성룡이 되었기에 그 단단함이 비교적 부족한 편이다. 드워프 장인 바눔이 제작했으며, 수준 높은 마법사가 갖가지 마법을 인챈트했다. 드래곤의 비늘답게 높은 마법 저항력을 자랑한다. 생전 화염의 드래곤이었기 때문에 화염에 대한 저항력마저 갖추고 있다.
-방어력 : 1300
-중급 마법 미만의 마법 무효화
-중급 마법 데미지 20% 감소
-화염 저항력 50%
-자동 사이즈 조절
-자동 수복
-경량화(輕量化)
-하루 1회 중급 실드 사용 가능
-착용 조건 : 화룡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레벨 70 이상 또는 체력 85 이상인 경우 시험을 치룰 자격이 생긴다.
…그 단단함이 비교적 부족한데 방어력이 1300이다.
저 정도 보정이면 갑옷을 입은 부분은 어지간한 검기도 막힌다고 봐야 한다.
저 수준의 전설 등급 아이템은 저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중급 바람의 정령을 하루에 한 시간 소환할 수 있는 [슬피 우는 정령검]이나, 마력 능력치를 상승시키고 흑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리치의 왕관], 황금으로 만들어져 방어력은 부족하지만, 중급 마법을 무시하고 상급 마법도 20%나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거부의 방패]. 심지어는 유령형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는 기능이 달린 [저주받은 로브] 또한 존재했다.
하나같이 특수한 효과를 지니고 높은 보정을 자랑하는 괴물 같은 전설 등급 아이템이 이곳저곳에 존재했다.
액세서리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컨디션을 조절하고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몸을 유지시켜주는 기능이 달린 목걸이나, 반지 주제에 중급 마법이 3개나 저장된 것도 있었고, 전설 등급 영약 또한 몇 개나 나왔다.
확실히 이곳 창고만 털면 랭커 열은 더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 팔찌는 서윤이 주면 엄청 좋아하겠네….”
팔찌 주제에 어지간한 지팡이보다 마법 증폭률과 마나 회복률이 더 높다.
옛날 버릇 남 못 준다고 여러 아이템을 보자 내 파티원들에게 어울리는 것들이 눈에 밟혔다. 그렇다고 파티 인원 것을 고를 생각은 절대 없었지만.
나는 당장 내게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솔직히 하나같이 탐나는 것 투성이었다.
나는 쓸 수 없는 마법을 쓰게 해 주는 액세서리나, 한 번 구하면 어지간해서는 바꿀 것 같지 않은 무기, 현재 부족한 내 방어력을 보충해 줄 방어구 등 욕심나는 것은 많았다.
‘가장 무난한 것은 역시 무기인가?’
흡혈검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랑도 궁합이 좋은 편이고. 하지만 전설 등급 무기에 비하면 확실히 모자란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흡혈검을 찾아다닐 것도 아니고. 하지만….
‘무기는 구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되니까.’
흡혈검을 굳이 쓰지 않는다면 다른 무기를 구하면 된다. 알고 있는 정보만 몇 개던가. 그건 방어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구하기 힘든 거라면 영약. 그렇지만 영약을 선택하기에는 별로 끌리는 것이 없었다. 이미 전설 등급 영약 하나를 먹었고 고난의 신전도 있어서 능력치 상으로 부족할 일은 딱히 없었으니까.
첫날은 그렇게 대강 살펴보는 것을 끝으로 궁으로 돌아왔다.
일행은 내게 황실 창고는 어떤 곳인지 물었고, 나는 내가 본 것들을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일행은 내 말에 하나같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이템이 그 수준이라고요?”
믿을 수 없다는 눈빛. 까놓고 말해서 그거 하나만 착용하고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아이템에 따라서 내 일행보다도 강해질 수 있었다.
물론 불가능한 가정이다. 아이템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려면 일종의 자격이 필요한 경우가 태반이다. 내 일행에게도 전설 등급 아이템을 던져주면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그보다 부족한 사람이 전설 등급 아이템을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둘째 날이 되어도 제대로 장비를 선택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스킬을 익힐 수 있는 기술서까지 뒤져보았지만, 마음에 차는 것이 없었다.
계획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인지 하나같이 애매했다. 되려 여러 장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 독이 되버렸다. 솔직히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평타는 친다. 차라리 전설 등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던전 클리어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으로 선택할까?
하지만 이런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는다. 정말 특별한 아이템을 하나 얻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아직 보지 못한 2등급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마지막 3일째 되는 날, 나는 특이한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고 웨폰 - 자율 방어(전설)]
-전설적인 연금술사 서르발리아가 만들어낸 특이한 무기이자 방어구. 방패의 형상을 띤 이 장비는 특이하게도 주인으로 인식한 대상을 위해 날아다니며 일정 공간 내부로 침투하려는 공격을 자율적으로 방어한다. 주인의 마력을 바탕으로 움직이기에 주인의 마력이 강할수록 효과가 증가한다.
-방어력 : 1000(+마력에 비례)
-자동 수복
-하급 마법 무시
-중급 마법 50% 경감
-착용 조건 : 레벨 90 이상 마력 99 이상
-주인 인정 필요
“…자동 방어 시스템?”
이런 것도 있었나?
나는 특이한 것을 본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마법사들이면 제법 탐낼 것 같은데….
“음….”
하기야 생각해 보면 이것 말고도 탐낼 것은 많았다. 나야 장비도 스킬도 그다지 원하는 것이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 부족함을 느꼇던 부분이 있을 테고, 여기까지 왔으면 그런 것 위주로 챙길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방패치고는 방어력이 낮다.
뭐, 방어력 700짜리 [거부의 방패]보다는 훨씬 높고 마력에 비례해 방어력이 높아지기는 한다만….
‘뭐 이리 착용 조건이 높아?’
레벨 90 이상에 마력 99 이상?
이건 1군들도 불가능한 조건이다. 랭커는 되야 한다. 조건만 보면 전설 등급 최상위 수준.
그런데 막상 눈에 보이는 효과는 조건에 비해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왜 이 아이템을 본 적이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나로서는 불가능한 조건이 아니었다.
당장은 착용할 수 없지만, 어차피 당장 쓸 수 있는 장비들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장 쓸 수 있는 아이템은 약하기도 했고.
나는 이 장비로 마음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조건이 높으면 보통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의미로는 도박인데….’
하지만 끌리는 것이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귀찮게 되어 버렸다.
나는 결국, 이 아이템을 선택하고 말았다.
내가 아이템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황제 귀에 들어갔다.
“크하하. 또 특이한 것을 골랐군.”
“…솔직히 뭘 선택해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하나같이 탐나는 것투성이였습니다.”
“그야 그렇지. 그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면 나라도 고민이 되겠군.”
황제는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이제 받을 것도 받았겠다, 바로 떠날 생각인가?”
“예. 그렇습니다. 지구가 그 꼴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 쉬고 있을 시간은 없죠.”
황제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듯했다.
“티드린드 영지는 걱정하지 말라. 그대가 가지 않더라도 내가 어떻게든 지원해 주지.”
“…감사드립니다.”
마정석 광산을 핑계로 댄다면 타 귀족들이 배 아파 하겠지만 황제의 행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터였다.
“준비가 되는 대로 언제든지 떠나도 좋다. 인사는 지금 받은 것으로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내일, 곧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은 어디로 갈 생각인가?”
황제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엘프의 숲. 제국과 엘프&드워프 연합의 국경입니다.”
***
다음 날, 이야기 했던 대로 우리는 곧바로 황궁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와중 황제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무제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패와 포션 세트였다.
“…이거 최상급 포션인데요?”
주하연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회복 스킬보다도 되려 더 강한 효과를 가진 포션이다. 이것만 있으면 반쯤 죽은 상태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최상급 포션을 1인당 1개, 상급 포션은 1인당 10개씩이나 주었다.
게다가 귀하디귀한 마력 회복 포션까지 받을 수 있었다.
금화로 따지면… 아니 이건 금화로도 못 산다.
최상급 포션은 현실적으로 구할 수 있는 예비 목숨에 가까웠고 마력 회복 포션은 마탑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객에게만 판매하니까.
“그런데 서윤아, 지금 바로 가도 되겠어?”
“마탑은… 조금 더 강해진 이후에 가고 싶어요. 아직 2차 전직도 못 했으니까….”
나서윤은 곧바로 소개받은 마탑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 말에 더 강해진 이후에 가고 싶다는 말로 거절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언니가 고대의 정령을 얻는 장면도 보고 싶고요.”
끄덕.
나는 나서윤을 말리지 않았다. 하기야 레벨 더 올리고 가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마탑으로 향했다.
내가 황제에게 선물 받은 패를 보이자, 마탑의 마법사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곧바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 엘프&드워프 연합과 가장 가까운 영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