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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38화 (138/317)

# 138

갑작스러운 제의. 확실히 좋은 생각이다. 나도 생각했던 방법이기도 하고. 제국 중앙 마탑과 연계한다면 어중이떠중이들은 감히 티드린드 영지에 손을 대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기가 애매했다.

"당장 가야만 합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래 줬으면 하지만… 솔직히 시기가 좋지 않군."

토펜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마탑과 이야기를 하고 싶겠지. 아무리 외진 곳의 영주라고 해도 마정석이 얼마나 중요하고 비싼 자원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막 수련자들이 영입되어 바쁜 상황이다. 게다가 나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당장 내가 자리를 비우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차라리 부족하더라도 내가 무력을 갖추는 편이 그의 입장에서도 좋았다.

마탑과 연계하는 것은 좋지만, 동시에 마탑에게 과하게 의존하면 먹힐 수도 있었으니까.

연계하면서 영지의 힘도 키워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큰일들을 정리하고 난 다음이어도 충분하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가도록 하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얼마 안 있으면 상단들이 들를 시기지. 자네 말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물품을 요구하기는 했네. 그래도 부족하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토펜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중얼거렸다.

"일단 자네 말대로 용병 길드를 통해 의뢰를 내 보지. 그리고 자네 요청에 따라 길 개척도 부탁함세."

"감사드립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이런 외진 영지에 이렇게 많은 용병이 올 줄은 몰랐거든. 게다가 마정석 광산이라니… 내 대에 드디어 한을 풀 기회가 왔네. 모두 자네 덕분일세."

토펜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부정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토펜은 약속대로 의뢰를 난발했고 용병 길드를 통해 나에게도 지명 의뢰가 들어왔다.

나는 우선 수련자들에게 의뢰에 대해 알리고 타 마을로 이동하는 이들에게는 소정의 지원금이 주어짐을 알렸다.

수련자들은 일단 노숙 환경에서 벗어난다는 것에 기쁨을 표했다. 하지만 동시에 더 위의 구역으로 간다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21구역의 고블린의 숲도 만만하지가 않다. 그런데 더 위의 구역이라니? 숙식이 해결되는 것은 환영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꼼짝도 못 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거리가 되기는 하지만 왕복도 가능하고, 정 되지 않는다면 뭉쳐서라도 사냥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새로운 장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장비.

그 말에 수련자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특히 25구역, 티드린드 성에 가시면 더 상위의 장비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더 빨리 성장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고심하던 이들은 하나둘 의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숫자가 많으면 내 말대로 사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경험치도 나쁜 수준은 아니고, 돈을 모으거나 드랍 되는 장비를 노린다면 속도는 점점 빨라질 터. 그들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구역은 현재 마을인 모너스 마을과 바로 다음 구역인 모올 마을, 체겐 마을이었다.

내가 활동했던 브리터스 마을은 가장 기피되는 편이었다.

수련자들은 각각 의뢰를 받은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서 꾸준히 성장할 테지. 그리고 나는 성장한 이들 중 괜찮은 이들 위주로 영입하면 된다. 부족한 이들은 저들끼리 뭉칠 터였다. 그리고 뭉친 이들마저 산하로 받아들여 거대 길드를 형성한다.

1회차에 비하면 거대 길드로 발돋움하는 시기가 너무 빨라 평균 실력은 부족하겠지만, 제국에 어필할 수단으로 덩치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내가 거대 길드를 만드려는 이유는 타 국가 수련자들에게 밀리지 않을 의도도 있었지만, 제국과 괜찮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기도 했으니까.

'정치판은 되도록이면 피한다.'

아주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크게 관계되고 싶지는 않았다. 권력욕보다는 그냥 힘을 키워서 목표인 지구를 구하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최고는 거래 관계. 딱 그 정도가 목표였다.

협력할 대상은 고민 끝에 선택했다.

'황제.'

아르테인 공작가나 애슐란 변경백, 다이딘 대공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힘이 강하면 중립도 나쁘지는 않지만, 집중 견제를 당할 가능성이 너무 컸다. 당장은 약한 편이니 어느 쪽으로 붙기는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제만큼 무난한 선택은 없었다. 애초에 1회차 시절 내가 속했던 길드가 황제 쪽이라 정보가 더 많기도 했고, 황제는 생각보다 열린 인간이라 거래 관계를 맺기도 어렵지 않은 편에 속했다. 물론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하기는 하다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중층에 진출하는 것이 머지않았다.

수련자들을 모두 분산시킨 뒤 나는 내 파티와 한바다 파티를 포함한 일행을 불러들였고 우리가 할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갈색 놀 지역과 늪지를 개척해서 중층까지의 길을 뚫는다고요?"

"네. 맞습니다. 이제 슬슬 진출할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수련자들은 막 올라왔는데…."

"저희는 아니니까요. 언제까지 정체될 수는 없죠. 한바다씨 입장에서는 빠르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는 2년이나 머물렀습니다. 더는 여기서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끼리만 행동하나요?"

"아뇨. 저희 길드 전체가 움직일 겁니다."

"전체…요?"

"마법사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 고블린의 숲도 힘들 지경이니까요. 당분간 지시한 수련을 하게 될 겁니다."

나는 마법사들에게 미래 1회차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아주 기초적인 마력 훈련법을 알려주었다.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어차피 기초를 다지는 용도. 높은 수준은 애초에 이해도 못 한다.

스킬을 배우면 자연스럽게 터득하기에 불필요한 행동일 수도 있었지만, 거의 500에 가까운 이들에게 일일이 스킬을 배우게 하려면 돈이 모자란다.

그렇기에 선행학습을 시킨 셈.

한 스킬만 해도 100골드. 하나씩만 배워도 근 5만 골드가 필요하다. 내게 당장 이런 돈은 없었다.

마정석을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하면 넘치도록 들어오겠지만.

마법사들이 보조 다 떼고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기술만 해도 2개다. 기초 마법 이론과 마력 회로 운용술.

이 두 기술이 없다면 안 된다. 마법사인 이상 기초적인 마력 친화는 존재한다. 스킬로 존재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만, 없더라도 일단 직업 보정이 있는 이상 마법 시전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단지 더 느리고 위력이 부족할 뿐.

아무튼 이 두 가지만 배워도 벌써 근 10만 골드가 소멸한다. 괜히 광산 지분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정진현 씨를 비롯한 사람들은 갈색 놀 지역까지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릴 거고, 이후 그들이 익숙해지면 한바다 씨 파티와 저희 파티는 늪지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늪지. 리자드맨들이 존재하는 장소. 여기서부터는 우리 일행도 레벨이 오른다. 나는 안 되지만.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늪지의 리자드맨 수를 줄이고 최소한의 길을 개척할 겁니다."

"…그게 끝나면 설마…."

"네. 바로 중층으로 나갑니다. 거기에 볼일도 있어서요."

마탑. 그리고 자리 잡기.

하층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중층 이야기를 듣는 한바다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나는 한바다 파티인 조연은과 이윤형에게 말했다.

"두 분은 실력이 조금 모자랍니다."

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런 고로 아마 길 개척이 끝나더라도 중층에 오시기는 힘들 겁니다."

"진현이와 같이 다니게 되겠군요."

끄덕.

"그리고 광산도 지키게 되시겠죠."

"광산이라… 저희 길드의 자금줄이라고 했던가요?"

"맞습니다."

"그럼 바다는요?"

조연은이 내게 질문했다.

나는 잠시 한바다를 바라보았다.

내 파티에 넣어 달라고 했던가. 나는 그녀를 길드에 영입했고, 기회가 된다면 같이 행동할 수도 있다고 말했었다.

"한바다 씨는… 중층으로 갈 수 있는 실력입니다."

한바다의 얼굴에 얼핏 미소가 어렸다.

"원하신다면… 저희 파티와 함께 중층으로 가실 수도 있습니다. 단."

나는 조연은과 이윤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두 분과는 떨어지셔야 합니다."

한바다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런 한바다에게 조연은이 가볍게 말했다.

"가, 바다야."

"…뭐?"

"예상했으니까. 바다랑 우리가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사실이고. 확실히 우리보다는 유신후 님 파티 쪽에 가깝기는 해."

담담하게 말하는 조연은. 실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조연은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경우이기도 했다.

잠재력은 한바다와 같은 상급인데도 불구하고 한바다에 비하면 확실히 부족했다. 자원이 제한된 미궁에서 궁수가 성장하기 쉬운 직업은 아니다. 마법사보다야 낫다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따라올 것이다. 환경 때문에 막혔을 뿐이니까.

이윤형은 그냥 본인이 부족한 것일 뿐이고.

"…미안."

"미안할 게 뭐 있어? 사실인데."

"그러면 저희가 따라갈 때까지 다시 헤어져야 하는 겁니까?"

이윤형이 물었다.

"아닙니다. 중층과 하층은 연결되어 있어요. 만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다행이에요."

내 말에 조연은은 조금 안심한 표정이었다.

마탑에 가서 이야기가 잘 되면 크지는 않더라도 텔레포트 게이트 정도는 설치할 수 있을 거다. 이용 요금이 싸지는 않겠다만 또 엄청 비싼 것도 아니라 못 만날 일은 없다고나 할까. 단지 저들은 중층으로 진출한 이후에나 쓸 수 있기에 한바다가 만나러 와야만 했다.

나도 중층 진출 이후 관리차 자주 들를 예정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였다.

중층에 진출하면 할 일이 태산이었다.

아직 중층에 진출한 수련자들은 없을 터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어야 한다.

기회의 땅이라고 할까? 나연의 정령을 먼저 획득한 후에 몇몇 던전을 털고 곧바로 오크들의 접경지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거기서 레벨과 명성을 쌓고 자격이 될 때마다 전설급 스킬과 아이템들을 하나씩 수집할 생각이었다.

아마 엄청나게 성장하고 자리를 잡아갈 때가 되면 슬슬 타 지역의 수련자들이 나오겠지. 정확한 시점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훨씬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국은 진출이 늦었던 만큼 그런 정보는 약간 부족했다. 한국이 중층에 진출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수련자들이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때가 이제 제대로 줄을 잡을 시점이었다.

결국 둘의 동의 하에 한바다는 내 파티에 임시로 합류했다. 중층 진출을 함께하기로 한 것. 이대로 계속 나와 행동할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저들이 따라왔을 때 다시 저들과 함께할지는 모른다. 저들이 따라와도 이미 우리 파티와는 차이가 크게 벌어진 뒤일 테니까.

후열이 부족한 게 아쉽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 결정된대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길드원들에게 전해주세요. 준비가 끝나는대로, 움직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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