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이후 긴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나서윤과 함께 마법사들을 이끌고 사냥을 시작했다.
나는 키퍼만을 볼 뿐, 사냥은 거의 나서윤이 해내었다.
사냥 내내 나서윤은 내 요청에 따라 다양한 마법을 보여주었다.
처음 제대로 된 마법을 본 마법사들의 첫 반응은, 침묵이었다. 실망했기에 침묵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놀라서, 잠시 굳었을 뿐.
나서윤은 그런 반응은 알 바 아니라는 듯이 다음 공동으로 향할 때마다 새로운 마법을 사용했다.
다양한 마법의 향현. 기초적인 무속성 마법부터, 4대 속성 마법, 무속성 마법에 부가 효과를 부여한 마법과 속성 마법에 다양한 효과를 넣은 것, 속성 특유의 마법을 사용한 뒤에는 두가지 이상의 기능을 부여한 마법을 보여주는 등, 내 요청에 최선을 다해 응해주었다.
내가 처음 본 마법들도 있었을 정도. 나는 내심 나서윤이 이렇게 다양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기도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나서윤은 과거의 남은주처럼 묵묵하게 꾸준히 노력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불쌍할 정도로 나서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학살했다.
태우고, 얼리고, 자르고, 찢고, 으깨고….
새로운 마법이 등장하고, 같은 마법도 다양한 부가 효과에 의해 새로운 파괴 현장을 보여줄 때마다 마법사들의 눈에는 희망이 깃들었고 감탄사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어찌 보면, 파괴라는 단순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마법사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아니 질리기는커녕 갈수록 더 크게 환호하고, 더 크게 기뻐했다. 소심했던 반응들이 점점 열광적으로 변해갔다.
마지 처음 마술을 보는 어린아이처럼, 끝없이 기뻐하고, 신기해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듯이, 어떻게 하면 마법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은 강한 눈빛으로 나서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서윤은 저들을 완전히 무시했다.
나서윤은 전투가 끝나면 즉시 내 곁으로 돌아왔고, 내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마법은 어땠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괜찮았다고 칭찬하며 내가 상대였다면 어떻게 대응했을 거라고 말해주곤 했다.
나서윤은 기뻐하면서도 내 의견을 세심하게 경청했다.
나 정도 근접 전사의 의견이다. 그녀에게도 도움이 될 터.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기뻐하면서도 수련과 연관시키는 모습은 평소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녀의 습관 같았다.
그런 모습은 다른 마법사들이 내게 가까이 오기 힘들게 만들었다.
내게 보이는 눈빛과 저들을 바라보는 눈빛 사이에는 크나큰 온도 차이가 존재했고, 그 때문에 마법사들은 내게도, 나서윤에게도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나마 대표인 이연솔만이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내 주변을 서성거렸을 뿐.
"저, 저기… 유, 유신후 님."
그러나 주변 마법사들의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것일까. 이연솔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핑계일 뿐 자신 또한 내게 말을 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서윤의 차가운 시선이 이연솔을 향한다.
"어, 어떻게 하면 마법을 쓸 수 있나요?"
나서윤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일 거다. 간접적으로 물었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스킬과 재능, 수련을 통해서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그에 관한 정보는 저의 길드가 갖고 있습니다."
"길드에 가입하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요?"
"뭐, 틀리지는 않습니다. 정확히는 쓸 수 있도록 도와드리죠. 길드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마법을 쓸 수는 있습니다. 마탑이 존재하니, 정보는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더 좋은 길을 저희가 갖고 있을 뿐."
스킬을 배울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수련 장소, 숙식, 장비 등을 일부 제공한다. 게다가 거주민인 마법사들이 이해하기 힘든 스킬로 마법을 배우는 수련자들의 특성마저 고려한 커리큘럼이 준비되어 있었다.
1회차의 지식이다. 마법사들이 좌충우돌하며 쌓아온 지식을 내가 고스란히 들고 온 것.
1회차에서는 흔한 지식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저것만 해도 깨지는 돈이 보통이 아니다. 마법사가 지원 없이 홀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무척 힘든 길을 걸어야만 한다.
"재, 재능이란건 어떤 건가요? 역시 스킬 슬롯인가요?"
"그것도 포함됩니다. 다만, 여러분은 모두 재능이 있습니다. 일단 직업 마법사를 가진 시점에서 재능은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단지 여기 있는 인원들 중 대부분은 나서윤이 사용하는 마법의 극히 일부만 사용할 수 있을 뿐.
그마저도 안 돼서 귀중한 스킬 슬롯은 하급 마법 배우는 데 쓰게 되는 인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연솔은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지만 나는 가볍게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시간이 없네요. 하루빨리 20층까지 가야 해서. 사냥을 계속하죠."
이후 나서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돌아가면서 공동을 청소했다.
간간히 다른 쪽의 파티들도 만났다. 그쪽도 빨리 다음 층으로 수련자들을 올리기 위해서 고생하고 있었다.
랜덤 형식으로 게이트가 나오는 이상 나올 때까지 지루한 토벌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전에야 토벌 속도도 있고 휴식도 필요했지만, 나나 나서윤이나 이 정도 수준의 적을 상대로 사냥이 오래 걸릴 리도 없었고, 소모된 나서윤의 마력이야 내가 싸우는 동안 충전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사냥하는 동안 일부 마법사들이 나서윤에게 말을 걸었지만, 나서윤은 가볍게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애초에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마법사들은 붉어진 얼굴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뭐라 하기에는 나서윤이 보여준 것이 많다. 내가 친절하게 대해준 만큼 나서윤도 그러지 않을까 기대를 한 것 같은데, 어차피 설명해 줘도 모른다. 되려 의욕이 떨어질 가능성마저 있었다. 나서윤이 가진 스킬이나 재능의 격이 다르다.
그렇게 하루도 되지 않아 다음 층으로 나오는 게이트가 발견되었고, 18층 고정 안전 구역까지 이들을 인도한 다음 그들과 헤어졌다.
아쉬운 얼굴을 보이는 마법사들.
"…오빠 저런 사람들이 꼭 필요해요?"
"일단 마법사니까. 뭉치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 돼."
"하지만 제대로 쓸만해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던데… 이연솔이라고 했던가요? 그 사람은 좀 나아 보였어요."
전설급 마력 친화 덕분일까. 나서윤은 저들이 얼마나 마력과 친숙한 것인지 대충 알아보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상급 잠재력을 가진 사람 보고 겨우 좀 나아 보이는 정도라니… 확실히 격이 다르다.
"그런 것 같아. 아마 이연솔이 내가 만들 마법 병단의 단장이 되겠지."
"나머지 사람들은 하급 마법이나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 걱정되던데… 마력과 친하지 못하면 스킬의 도움이 있어도 마법 쓰기 어려울 거에요."
나서윤은 괜히 내가 헛수고를 할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 안 되면 슬롯에 강제로 마법 하나 채우면 돼. 일단 아무리 하급 마법이라도 나연 정도의 파이어 볼은 가능할 테고, 그런 마법이 500개 가까이 된다면 큰 위력을 발휘할 거야."
"…그 정도라면 나중에 저 혼자서도 될 거 같은데…."
맞다. 고위 마법사는 걸어 다니는 학살 병기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마법 병단은 나서윤의 하위 호환이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마법 병단이 쓰레기라는 뜻은 아니었다.
"무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숫자 그 자체가 무기가 되기도 하고."
"…오빠가 하는 일이니까요. 알겠어요. 걱정 돼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왜 죄송해. 나는 오히려 서윤이가 이런 일에 관심을 가져 줘서 기쁜걸?"
나는 나서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약 30명 정도의 규모로 마법사들을 번갈아가며 맡아 길드를 소개하고 마법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덕분에 마법사들 사이에서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고, 수련자들 또한 그러한 소문을 들었다. 그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하나는 유신후와 같이 행동하는, 나서윤 같은 초 일류나 가능한 거지, 저런 떨거지들은 쓸모가 없다는, 여전히 얕보는 반응이었고, 다른 한쪽은 유신후가 괜히 저들을 키우려고 한 게 아니라면서 일부 마법사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과거의 작은 인연을 끈 삼아 찾아오는 이들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연한 결과다. 최선두인 내가 만드는 길드와 평범한 수련자들의 파티. 어지간한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우리 길드를 택하는 것이 맞았다.
비전도, 이쪽이 훨씬 좋았고.
모든 파티를 번갈아 가면서 만났고, 마침내 500에 가까운 모든 마법사들과 최소 한 번씩은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난 이후 나는 마침내 능력치 개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앨거차의 문신을 비활성화한 상태로 능력치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일행과 대련을 하거나 수련을 거듭했다.
때때로 고난의 신전을 들락날락 거리기도 했다. 나를 제외한 우리 일행은 고난의 신전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발전이 거의 막힌 상황이었기에 휴식이나 나와의 대련 시간을 제외하면 고난의 신전에 처박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두 달 여가 지났을 무렵, 마침내 모든 수련자들이 20층에 도달했고, 절반에 가까운 인원은 이미 하층으로 보낸 상태였다.
"후… 지칩니다."
한바다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찾아왔다.
"고생 많으셨어요.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제 20층 보스만 차례로 깨면 되니까요. 길어도 보름? 짧으면 10일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층은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한바다를 통해서 괜찮은 수준의 수련자들에게 길드 가입 권유를 했다. 한바다를 따르는 이들은 대부분 받아들였지만, 일부는 거절했다. 자신들 또한 나처럼 길드를 만들고 싶다나? 일부는 자유를 원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해 주었다. 어차피 현실에 부딪치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터. 그때가 되면 저들을 흡수해 산하로 두면 그만이었다.
내가 만들 길드에는 길드원 등급을 넣을 생각이었다. 거창하지는 않고, 전투 계열이냐 행정 계열이냐로 나눈 상태로 임시 길드원, 평 길드원, 정예, 간부, 고위간부 정도로 나눌 생각이었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정예 취급으로, 아니라면 일단 평 길드원으로 받을 생각이었다.
우리 파티는 일단 전원 간부로 시작시킬 생각이었다. 이는 하유진도 마찬가지. 10살짜리 간부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었지만, 능력으로만 따지면 충분히 간부에 어울리는 수준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능력제로 갈 생각이었기에 저런 파격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동시에 길드 내에서 인정받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고정 파티장을 하려면 적어도 정예 수준은 돼야 가능하도록 제한할 생각도 갖고 있었다.
한바다 휘하에서 능력 있는 이들은 정예로, 나머지 대부분은 레벨과 능력치를 통해 임시 길드원 혹은 평 길드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임시 길드원은 쉽게 생각해 계약직과 비슷한 형태였다. 평 길드원 이상은 정규직이라고 할까?
내가 만드는 길드가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하층에서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 대대적으로 모집한다는 말과 함께 그들의 가입 문의를 막았다.
일단은 검증된 이들을 통해 완벽하게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었다.
대강 영입 권유를 끝낸 나는 마지막으로 성공적으로 전향한 광진을 찾아가 길드에 들어오라는 통보를 전했다.
"길드… 입니까."
"그래. 넌 평 길드원으로 들어올 거다. 뭐, 능력이 되면 정예까지는 올라갈 수 있겠지만, 간부는 되지 못할 거다."
광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지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눈치였다.
"글쎄. 난 네가 필요하니까 받은 거라서."
"…제가 아직 쓸모가 남았습니까?"
"그래. 뭐, 능력적으로 쓸모 있는 것은 아니야. 너는 그러니까… 상징 같은 거지."
상급 잠재력이 아깝기는 하지만, 나는 이놈을 신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 징, 이라니요…."
나는 대답하는 대신 입꼬리를 올렸다.
"저를, 어떻게 하시려고…."
"걱정 마라. 약속대로 네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거다. 보호도 계속 받을 수 있을 거고."
광진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내 손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도망친다면, 이중 스파이로 들어갔던 광진이 결국 무법자들에게 물들어 도망쳤다는 소식만 퍼뜨려도, 그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터였다.
수련자들은, 아직도 무법자라고 하면 치를 떠니까.
한바다의 예상대로 열흘 조금 넘는 시점에 수련자들을 모두 하층으로 올릴 수 있었고, 우리 또한 마지막으로 미궁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2년 만에 드디어 나가는군요"
2년. 정확히는 2년 하고도 몇 개월 더 되는 시간.
한바다는 감회에 젖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직속 파티라고 할 수 있는 조연은과 이윤형 또한 20층 고정 안전 구역을 바라보며 싱숭생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한결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욕심 같아서는 계속 관리를 시키고 싶었지만, 한바다는 아마 기겁을 할 거다. 게다가 능력이 아깝기도 하고, 미궁을 관리해 주면 성장에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있었으니까.
"빨리 가요. 나연이가 아주 목을 빼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하긴. 이만한 수련자들이 우르르 하층으로 진입했다. 영주도, 나연도, 아마 정신이 없을 거다.
그렇게 수많은 수련자들이 모조리 미궁을 빠져나갔다.
1회차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