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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30화 (130/317)

# 130

간섭력을 선택하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간섭력을 선택하셨습니다. 현재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간섭력은 플로어 마스터를 통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으음…."

내 신음에 일행들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다.

"왜 그래요? 안 좋은 거 나왔어요?"

"형! 형은 무슨 스킬이에요?"

"오빠?"

"…스킬 아냐. 나는 다른 거 선택했어."

"…뭐 선택했는데요?"

"특수 보상. 근데 내가 쓸 수 없다네."

"특수 보상? 그건 뭐예요 오빠?"

"정보 레벨이란거, 알려준 적 있지?"

"네. 그거 덕분에 여기 왔다고…."

"그게 있으니까 별의 별 게 다 보이네. 정보 레벨이 있으면 추가 정보 공개가 이루어지는 거 같아. 그래서 나타난 선택지로 보이고. 일단 나는 별로 끌리는 것이 없어서 이걸로 선택했어."

"…스킬 괜찮던데…."

"나야 가진 스킬들이 하나같이 등급이 높으니까. 설마 전설 스킬을 다음 단계로 올려 주지는 않을 거 아냐?"

고유 스킬은 신화급 하나에 전설급 하나고 그나마 남은 전설 미만 스킬이라고 해 봐야 슈퍼 레어급 웨폰 마스터리와 하늘 걸음, 냉정의 문신과 레어급 육체 정화 그리고 일반 등급의 전사의 문신이다.

전사의 문신이야 금방 올릴 수 있으니 걸리면 조금 아쉽다. 육체 정화는 아예 나중에 지울 스킬이고.

하늘 걸음은 장비만 착용하면 전설급이 되니 걸리면 전사의 문신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고.

남은 건 웨폰 마스터리나 냉정의 문신 정도. 이 두 스킬이 전설급이 되어 준다면 대박이긴 하다. 그렇지만….

'서윤이나 유진이 둘 다 레어급이 슈퍼 레어가 되는 선에서 멈췄단 말이지….'

솔직히 내가 스킬을 선택하면 새 스킬을 주던가 전사의 문신, 혹은 육체 정화 스킬의 등급이 올라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아쉽네요. 신후 씨가 스킬을 선택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는데…."

"하하. 당장 얻지 못했다뿐이지 보상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튜토리얼이니 플로어 마스터이신 에파토스 님과 만날 가능성이 아주 높지 않습니까. 그때 한 번 물어보죠."

"그건 그렇네요. 특수 보상이라는데… 벌써 단정 짓기는 그렇죠."

하유진이 개인적으로는 슬퍼하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냥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한 장소에서 상상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솔직히 기대도 하지 않았었기에 일행들은 하나같이 더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언니도 왔다면 괜찮았을 텐데…."

나서윤의 중얼거림.

나연이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밖은 여전히 축제 분위기였지만, 우리 일행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저 안에서 쉬며 하루를 보냈고, 다음 날 축제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축제 현장에 나타났다.

성주와 함께 축제의 끝을 알리고 우리는 보상을 받기 위해 스페레스의 초대에 응했다.

"솔직히 승리는 자네들이 가져다준 것이나 다름없지."

"……."

늘 그렇듯 겸양을 떨려다가 그래도 일단 보상, 즉 대가를 받는 장소고 전투는 내가 아닌 일행들이 주도했기에 여기에서는 잠시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고맙네. 덕분에 영지가 더 안전해지고 발전할 가능성을 얻었어.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우리 영지 사정상 이정도가 한계더군."

그는 나에게 주머니를 건넸다.

안에는 금화가 가득했고, 중간중간 보석이 들어 있었다.

비밀 창고에 남아 있던 보석들도 그렇고, 질이 정말 좋은 보석들이다. 멜리드 성이 보석 광산이라도 소유하고 있는 걸까?

그런 것 치고는 되게 약한 영지긴 한데….

"그리고 성녀 님께는 이것을 드리고 싶습니다."

추가 보상.

성주는 주하연에게 성배 하나를 건넸다.

무척이나 익숙한 성배.

[모조 성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요한 그 빌어먹을 놈이 자신이 가져온 물건이라 속였던 겁니다. 사실, 성녀 님 일행이 구해 오셨다고 했었죠."

"…맞아요."

"그걸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역시 별거 없었다.

시스템 보상이 상상 이상이라 조금 기대했었는데… 아 물론 돈은 상상 이상으로 받았다. 200골드가 넘는 데다 보석까지 합하면 훨씬 많지 않을까? 이 정도만 해도 난이도에 비하면 엄청난 보상이 맞기는 했다.

"고맙습니다, 성주님."

"별말씀을. 혹시 가능하시다면…."

성주는 다시금 우리를 붙잡으려 했고, 주하연은 난처한 표정으로 성주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보상을 모두 받고 나서야 우리는 성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상 퀘스트가 모두 완료된 것. 성주에게서 벗어나기 무섭게 우리는 다시금 흰빛에 휩싸였고, 조금 익숙한 장소로 이동되었다.

"여기는…."

"오랜만이군."

에파토스.

과거와 마찬가지로 깔끔할 로브로 몸을 감싼 모습. 여전히 젊고 미형인 얼굴을 자랑했다.

"오랜만 입니다. 에파토스 님."

나와 일행은 에파토스에게 인사했고, 우리는 에파토스와 가볍게 해후를 나누었다.

"그래. 언제고 다시 만날 줄 알았지. 그나저나… 자네는 여전하군. 저번에는 업적이더니 이번에는 간섭력? 정말 터무니없는 것을 가져왔구만."

그는 말투와는 다르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튜토리얼에서 간섭력은 어떻게 가져온 건가?"

"………어쩌다 보니?"

"푸하하. 그래 하긴 노리고 얻기에는 힘든 것들이기는 하지. 그런데… 어째 일행이 바뀌었군?"

에파토스의 눈빛에 장난기가 맴돌고 있었다. 플로어 마스터간에 정보가 공유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에파토스는 알면서도 묻는 거였다.

"어린 소년이라… 자네 취향이…."

"장난치지 마십시오. 이유,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 최근 수련자들을 만나지 못해서 말이야. 심심해서 그런 것뿐이니 이해좀 하게. 그래… 자네들이 여기 와서 할 게 없긴 하군. 던전도 출입은 불가능하고… 결국 위로 올라가야 하나? 어디로 보내줄까? 하층? 자네는 중층도 가능하긴 한데, 어떤가?"

장난치지 말라니까.

"11층, 미궁으로 가길 원합니다."

에파토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현명한 선택이로군. 확실히 거기가 제일 좋은 선택이기는 하지. 그나저나… 자네, 간섭력 쓸 건가?"

"그것 좀 설명해 주십시오. 일단 이게 끌려서 받기는 했는데… 어디에 쓸 수 있습니까? 이거."

"어지간한건 다 된다고 봐야지. 간섭력이 있다면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양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은 양은 아닐세. 그 정도 양이라면 9층 던전에 재진입도 가능하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네. 전부 기본 던전들 뿐이거든."

내가 갔던 마도사의 던전 같은 1회만 클리어 가능한 던전들은 이미 다른 이들이 클리어했겠지. 고작 기본 던전에 가자고 간섭력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다고?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힘이었다.

'선택하길 잘했군.'

나는 에파토스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내 스킬 등급을 올릴 수 있는지, 새로운 스킬이나 장비를 받을 수 있는지, 이걸로 영약을 만들 수 있는지 등등등….

에파토스는 그런 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본래 플로어 마스터가 이렇게까지 정보를 풀지는 않지만, 간섭력이라는 보상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는 물어보는 족족 정보를 풀어주었다.

"스킬 등급을 올릴 수는 있네. 하지만 자네가 가진 스킬들은… 그 정도 간섭력으로는 힘들어. 전설 등급을 올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슈퍼 레어급 스킬을 전설로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다네. 나머지는… 자네가 원하지 않을 테고."

끄덕.

맞는 말이었다.

"간섭력이 많다면 관리자 흉내도 가능하지. 자네 스킬을 타인에게 주거나 보상을 걸고 퀘스트를 만들 수도 있지."

미쳤군.

"아이템 같은 것은 그냥 주는 게 나으니…."

"스킬을 역으로 가져올 수도 있습니까?"

"강제로는 안 되네. 하지만 상호 동의만 있다면 가능하지. 그렇지만 지금 자네의 간섭력으로는 불가능해. 끽해야 일반 등급 정도? 이쪽은 사용되는 간섭력 양이 더 많네."

아쉬웠다. 간섭력 보상이라는 것은 처음 받아 본다. 나중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껴 놓는 것도 방법이기는 한데…."

간섭력으로 능력치를 올리 수도 있다고 한다. 시스템 상점을 열 수도 있고, 팔아서 포인트로 환전도 가능하다고. 원한다면 당장 신지 못하고 보관만 해둔 이카로스의 꿈도 퀘스트를 걸어 장비에게 인정받는 꼼수를 이용해 착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플로어 마스터들을 제한하는 시스템에 간섭해 플로어 마스터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잠깐. 시스템, 간섭….'

나는 즉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미궁 조각(준신화)]

그리고는 에파토스를 바라보았다.

"이거, 이거 안에 고난의 신전, 집어넣을 수 있습니까?"

씨익.

에파토스는 미소를 지었다.

***

결과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애초에 그 미궁은 아키밀리의 것. 그 신전도 아키밀리의 것이라 가지고 나가려면 간섭력이 무지막지하게 필요하지. 그의 허가도 필요하고. 그 신전은 특별한 거라서 말이야. 그는 거절할 가능성이 높고, 그의 의견을 무시하려면 더 많은 간섭력이 필요해지지. 결국 불가능해."

"…그렇다면 이 미궁 조각의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이 출입할 수 있도록 정보 수정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그런데… 그건 의미가 없네."

'의미가 없다고?'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고 곧이어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이거… 원래 출입 가능한 거였습니까? 주인 말고도?"

에파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기야 이건 간섭력과는 관련 없는 질문.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을 뿐이었다. 대답은 아니지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뭔가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타인도 출입할 수 있다는 뜻. 그렇다면….

"그러면 이 미궁 조각 내부의 공간과 고난의 신전이 있는 공간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설마 이것도 안 됩니까?"

"가능하네. 간섭력 양도 충분하군."

"그럼 그걸로…!"

"근데, 그건 나 말고 아키밀리에게 부탁하게나. 그도 그건 허락할 걸세. 그쪽이 효율이 좋아. 본디 미궁은 아키밀리의 세상이니까. 그렇게 한다면… 조금이나마 간섭력이 절약되거든."

에파토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되려 조금 남지."

간섭력은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다면 아끼는 것이 좋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키밀리를 부르며 간섭력을 쓰고 싶다고 한다면 무조건 나올 걸세."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용건은 끝났나?"

"그렇습니다."

"바로 미궁으로 보내주지. 그럼 잘 가게나."

"감사했습니다. 에파토스 님."

"아 참, 유신후 군?"

"예."

"솔직히 아직 부족하긴 하네만… 그래도 예전 보다, 지금이 더 나은 것 같군."

왜 일행에게 선을 긋는가.

과거 에파토스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빛과 함께, 미궁으로 이동되었다.

****

칙칙한 동굴. 결코 어둡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밝은 것도 아닌 발광석. 그리고 결정적으로 칙칙한 이 분위기.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미궁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도착한 공동에는 이미 전투를 끝낸 것으로 보이는 파티가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휴식도 잠시.

우리의 등장에 그들은 빠르게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누구야!"

"무법자인가? 여기까지 어떻게?"

여기는 11층. 설마 아직까지 11층에서 사냥하는 이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곧바로, 이들이 11층에 있을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충 봐도 18층에서도 문제없을 수준. 사냥 목적으로 이곳을 쓸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준이 여기서 나타나기는 거의 불가능. 그렇다는 것은 이들이 이미 20층을 넘어 층간 이동이 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한바다 씨 휘하의 사람들입니까?"

"…뭐냐 너희는. 설마 무법자가 아니라고? 이제 와서 튜토리얼에서 올라올 리가… 아니 설마 신규 수련자들인가? 그런 게 있던가? 근데 그런 사람이 한바다 님을 어떻게 알아?"

한 남자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신규 수련자? 그런 것은 없다.

"자, 잠깐만! 잠깐만!"

그러자 남자의 파티 후열에서 우리를 조준하던 궁수가 당황한 목소리를 낸다.

"기다려! 다들 무장 풀어!"

"뭔 개소리야? 너 미쳤어?"

"이 병신아! 다 죽고 싶어? 저분 유신후 님이잖아!"

"뭐? 유신후? 그게 누구…."

의아한 표정을 짓는 전열의 전사. 하지만 곧바로 내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유신후? 그 학살자 유신후라고?"

전사는 저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고, 우리 일행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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