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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29화 (129/317)

# 129

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상 목록이 나타났지만, 말을 걸어오는 스페레스 때문에 잠시 보류해야만 했다.

계속 보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잠시라면 가능하니 큰 문제는 없었다.

"대답해주게. 자네 파티원… 주하연… 님이라고 했던가? 설마 성녀가 되신 건가?"

"아직은 후보입니다."

"성녀 후보가 성역 선포를 사용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정확히는, 교단의 인정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정식으로 성녀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였나."

스페레스는 잠시 침묵했다.

"아니, 아니지.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정말 적은 피해로 최고의 결과를 얻었어."

"과찬이십니다. 저희는 약속대로 의뢰를 했을 뿐입니다."

"그래. 알겠네. 우선 보상을 줘야 할 텐데…. 이거, 예상 이상으로 활약하는 바람에 뭘 줘야 할지를 모르겠군."

"약속된 보수면 충분…."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일단 축제를 열 테니, 푹 쉬다 가게나."

아무래도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고도 바로 이동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여기 머물러야 할 듯싶었다. 아마 스페레스의 보상을 받는 것까지가 퀘스트의 끝이겠지.

솔직히 스페레스가 줄 보상은 기대도 안 된다. 비밀 창고도 털었고, 제대로 된 보물이나 영약이 있을 턱도 없었으며, 튜토리얼이라는 제한된 세상에서 움직이는 멜리드 성에서 받을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시스템이 주는 보상도 크게 기대를 안 하는 마당에, 스페레스의 보상은 대충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미궁으로 다시 입장하는 것만이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그래 봐야 오래지는 않겠지만. 아마, 보상을 선택하고 스페레스의 보상마저 받고 나면 얼마 안 되어 에파토스가 찾아올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나서윤이 낸 불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은 뒤 우리는 가볍게 주변을 정리하고는 멜리드 성으로 복귀했다.

이미 소식이 갔는지 노집사는 우리를 환영할 준비를 마쳐두었다.

"승리의 주역들이 돌아왔다!"

"영주 님 만세!"

"멜리드 가여 영원하라!"

"영웅을 위하여!"

미리 준비한 꽃들이 성벽 위에서 쏟아지고 성민들이 몰려나와 환호성을 질러댄다.

영화에서나 보던 승전 퍼레이드 이후 곧이어 축제가 열렸다.

3일간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상당히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가 내는 것도 아닌데 신경 끄기로 했다. 3일이나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우리가 사실상 주인공인데 보상 먼저 달라고 하는 것도 웃기고.

일행과 함께 초반에 가볍게 영주와 담소를 나누며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맡은 뒤, 한창 분위기가 흥할 때 조심스럽게 축제 현장을 빠져나갔다.

"으으… 진짜 짜증나."

나서윤은 내 곁에 딱 붙은 채 주변을 경계했다. 평소 내 앞에서 저런 말을 잘 하지 않는 나서윤이지만 지금 상황은 상당히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모양인지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내비쳤다.

솔직히 이해는 간다.

축제 분위기에 휩쓸린 성민들이 우리 일행에게 부담 없이 접근했던 것이 문제였다.

기사들로부터 시작된 접근이 어느새 병사로, 용병들로 내려가더니 이제는 성민들까지 부담 없이 다가오게 된 것.

그나마 여성 진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내 눈치를 보거나 그녀들의 무력을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이 조심스러워 한 기색 덕분에 덜했지만, 나한테는 정말 많은 이들이 접근해왔다.

기사, 병사, 용병, 영웅이라는 호칭을 동경하는 어린이들이나 성민, 남성 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적당히 상대가 가능하기도 했고. 그런데 축제 분위기에 취해 풀어진 여성들이 문제였다.

능력만 있으면 일처다부든 일부다처든 다 가능한 세계고 내가 능력 있는 여성들과 파티를 맺었기 때문인지 상당히 접근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

이미 외부에서 보기에는 하렘인 상황이라 여성 진에게 남성들이 접근하는 것은 제한된 반면에 나는 상당히 열린 놈으로 보인 듯했다.

덕분에 나서윤이 그런 이들을 차단하느라고 고생 좀 했고, 그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이 고조되어 틈이 보이는 순간 빠져나온 거였고.

주하연은 영주에게 붙들려 성녀가 된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남은주는 그런 주하연의 곁을 지켰다.

하유진은 본인 스킬과 능력을 한껏 활용해 접근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어린 나이인 것도 있어서 일단 미리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더더욱 내게 몰린 이들이 많아져 버렸다.

"이짓을 2일이나 더 해야 한다구요? 어흐…."

"뭐, 삼 일 째는 파장이니까. 마지막에나 참가하면 될 거야. 내일은… 쉬지 뭐. 오히려 더 피곤하네."

"그래요 오빠. 내일은 쉬어요. 나가 봤자 아무것도 못 할걸요?"

내일은 포위될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어 영주에게서 해방된 주하연은 피곤한 얼굴로 돌아왔고 그녀 또한 내일 쉬는 것에 찬성했다.

우리는 전투 피로를 핑계로 다음 날 하루를 통째로 쉬었고, 동시에 시스템 보상을 확인했다.

[보상을 선택하세요.]

1.스킬

2.장비

3.능력치

4.영약

???였던 보상 목록이 개방되었고 자세한 설명 없이 선택하라는 말만 나왔다.

여기가 튜토리얼 지역인 것을 감안하면… 장비는 그다지 끌기지 않는다. 2년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솔직히 여기서 전설 등급 이상의 장비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았고, 나온다고 해도 튜토리얼 출신 장비다. 중층이 멀지 않은 지금 시점에 튜토리얼 출진 전설 장비라고 해 봤자….

그래도 진짜로 전설이 뜬다면 등급이 있으니 아주 쓰레기는 아니겠지만, 중층 전설 아이템에 비하면 분명 부족할 것 같기는 했다.

능력치야 적어도 평타는 치지 싶었다. 선택해도 그리 큰 후회는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현재 레벨을 높여 놓은 상태라 개발할 여지가 많았기에 당장 능력치를 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음에 갈 장소도 고난의 신전이라는, 능력치와 연관된 곳이다 보니 더더욱 꺼려지기는 했고.

그나마 영약이나 스킬이 나은 선택이기는 하다. 내가 전설급 영약을 먹기는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필요하면 나중에 먹을 수도 있었고, 정 쓸모없다면 선물이랍시고 한바다에게 버리면 그만이었다.

스킬은… 아직 슬롯이 조금 남았으니까. 어떻게든 도움이 될 테지. 장비처럼 전설이 나온다고 가정하면 이쪽이 더 낫기도 하다. 스킬은 장비와 다르게 어떤 층에서 얻더라도 유용하니까. 하지만, 가장 시선이 가는 보상은 따로 있었다.

5.간섭력 - 특수, 정보추가

'…간섭력?'

의외의 보상.

정보 추가가 붙은 것을 보면 정보 레벨의 영향인 것 같은데… 특수? 그런 보상이 있기는 한데, 간섭력이라는 이름이 무척이나 눈에 익었다.

'관리자.'

그렇다. 관리자들이 수련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데 필수로 필요한 힘이었다.

이걸 보상으로 준다라… 솔직히 상당히 로또성이라고 생각한다. 간섭력 자체는 무척이나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걸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준다고? 얼마나 주는지도 모르겠고, 저게 내게 도움이 될지도 의심이 된다.

대표적으로 간섭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관리자들이 퀘스트 명목으로 장비, 스킬, 직업 등을 내려주는 건데, 당장 나만 해도 저중 필요한 것이 없었다. 다 알아서 구할 수 있거든.

내 눈으로 보기에는 도박성이 짙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난한 선택이냐, 도박이냐….'

그때였다.

"됐어! 이게 됐어! 말도 안 돼!"

주하연이 호들갑 떠는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간섭력이라는 선택지 때문에 심사숙고하는 사이에 이미 보상을 선택한 모양.

"무슨 일입니까?"

"신후 씨! 대박이에요! 스킬! 전설 스킬이 나왔어요!"

'전설 스킬이 나왔다고? 잠깐만. 주하연은….'

"하연 씨는 지금 스킬 슬롯이 가득 차지 않았습니까? 설마 다른 스킬을 삭제하신…."

내가 대 회복 스킬을 삭제한 과정을 알려주었기에 전설 스킬이면 다른 스킬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일행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하연의 스킬셋은 아무리 슈퍼 레어라도 하나하나가 지우기 아까운 스킬들이다. 사제에게 최적화되었고 대부분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킬 등급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일정 수 이상의 전설 스킬이면 이후로는 조합이 더 중요해진다.

그렇기에 어지간히 좋은 스킬이 아니라면….

"아니,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신후 씨! 봉인된 스킬 하나가 해금되었어요!"

"…해금 말입니까?"

"네! 그것도 공격 스킬이에요!"

봉인된 슬롯 중 하나가 해금되었다고? 그것도 공격 스킬?

나는 즉시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해 주하연의 스킬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스킬들 사이로 새로운 스킬이 해금된 것이 보인다.

봉인되었다고 나온 3개의 스킬들. 그들 중에서 하나가 해금된 것이 보인다.

'천국의… 분노?'

자세한 정보를 불러보았다.

[천국의 분노(Fury Of The Heaven)(전설)]

-그릇된 것에 분노한 사제가 하늘에 고했고, 분노한 하늘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렸다.

-사용 시 하늘에서 성(聖)속성의 번개가 떨어진다.

-공격력은 신성력에 비례한다.

-어둠 속성에 추가 피해

-언데드 몬스터에게 추가 피해

설명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 스킬, 그것도 전설급 스킬이다. 공격력도 신성력에 비례하고. 게다가 추가 피해만 없다뿐이지, 악마 심판처럼 언데드 계열에 한정되어 사용할 수 있는 스킬도 아니다. 사제들에게도 공격 스킬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전설급 공격 스킬은 정말 드물다.

새삼 주하연이 얻은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는다. 주하연은 내가 관리자의 눈동자를 가진 것을 모르기에 재빨리 스킬에 대해 설명했고, 일행의 축하를 듬뿍 받았다. 그러면서 남은주에게 말했다.

"은주야, 너도 스킬 골라. 나도 혹시나 하면서 고른 거긴 한데…."

아무래도 내 성장과 우리가 갈지도 모를 고난의 신전을 예상하면서 능력치나 영약을 제외한 데다 자신의 스킬 슬롯을 생각해서 스킬까지 제외, 그냥 장비나 받으려고 했던 듯했다. 하지만 그녀도 느꼈듯이 하층과 튜토리얼의 장비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렇기에 한참을 고민하다 혹시 스킬을 선택하면 봉인 슬롯이 해금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웠고, 결국 장비에 큰 기대가 되지 않는 만큼 그냥 스킬에 질러버린 듯했다.

결과가 최상이기는 했지만.

남은주 또한 스킬을 선택, 그녀로서는 처음 얻는 전설 스킬, 철벽의 수호자가 해금되었다. 봉인된 다섯 스킬 중 정확히 저게 해금되다니…. 대박이었다.

내가 탐냈던 전설급 스킬, 철벽의 수호자.

방어 보정에 밀림 저항을 붙여주는 심플한 스킬.

하지만 효과가 적은데도 전설 스킬인 이유가 있다. 그 수준에 어울리는 보정을 보여주는 것.

이 밀림 저항만 있다면 아마 거인의 공격을 정면으로 방어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터였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것. 탱커든 키퍼든 후열을 든든하게 지키는 입장에서 이보다 신뢰성 높은 기술은 없었다.

게다가 방어 보정은 자신이 원한다면 일정 범위 내의 공격을 모두 자신이 흡수한다는, 사기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제자리에서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큰 범위를 커버한다는 의미.

이 기술을 갖춘 자가 앞에 있다면 후열은 보다 마음 편하게 전투를 이어갈 수 있다.

그가 죽지 않는 이상에야 절대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기술을, 남은주가 각성했다. 역시, 그녀는 필요한 인재다.

이어서 나서윤마저 앞선 이들이 연타석으로 대박을 터뜨리자 자신마저 스킬을 선택했고 그녀는 새 스킬을 얻는 대신 고속 영창이 레어에서 슈퍼 레어로 진화하는 결과를 얻었다.

내심 전설을 기대했던 모양이지만, 나는 저게 엄청 좋은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야, 고속 영창이 전설 등급에 도달하면 무영창으로 진화하니까. 마검사인 나서윤에게 무영창 스킬은 정말 큰 힘이 되어줄 터였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호흡에 영향 없이 마음대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집중력이야 필요하겠지만 나서윤이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빙 캐스팅 스킬도 없이 움직이며 스킬을 쓰는 애인데, 무영창 스킬이 있다면 전투 중에 마법 하나 못 쓸까.

이어서 하유진 또한 스킬을 선택, 무려 고유 스킬 희미한 존재감이 슈퍼 레어로 오르는 결과를 얻어버렸다.

기껏 성장해가며 스킬을 조금씩 억눌러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던 하유진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다.

"형! 형! 나 보여요? 안 보이는 거 아니죠?"

"잘 보여. 걱정 마라. 전설급이 되어도 확인 가능할 테니까."

"어흐… 형 저 어떻게 해요… 이거 나중에 또 등급 오르면…."

사실 엄청 대단한 결과인데도 하유진은 울상이었다.

저들의 계속된 성공에 나는 내심 스킬 쪽으로 마음이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요 눈은 여전히 간섭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안정이냐, 도박이냐.'

주하연은 도박을 선택했고,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

그렇지만 그 선택은 나로서는 되려 안정된 선택이다.

나는, 결국 도박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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