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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25화 (125/317)

# 125

나는 내 본래 파티원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내 승리에 흥분한 이들도 있었고, 내 괴물 같은 무력에 놀라 겁을 먹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공통적인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경의(敬意).

당장 겁을 먹었으면 더더욱, 흥분한 가운데서도, 미친놈처럼 환호를 지르는 이들조차도 하나같이 이 말도 안 되는 전투를 승리한 내게 경의 섞인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씁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째서 여기가 하층인지를 알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곳이 얼마나 외지고 약한 지역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할까. 하층과 중층이 제대로 연결된 이후에는 빠르게 성장하기는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낙후된 지역에 지나지 않는다.

내 현재 실력만 봐도 나는 1회차 시절 겨우 1군에 턱걸이할만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깡패다. 물론 내가 다수를 상대하는 것에 특화된 덕분이기는 하지만, 놀 수천 좀 잡았다고 경외 섞인 눈빛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좀 인상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겠지. 체력하나는 끝내준다고 하거나. 물론 중하위권 수련자들은 꿈도 못 꾸는 일이라 다르게 보기는 할 테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이렇게 한결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양기희를 비롯한 수련자 파티들도 하나같이 무섭다는 반응이었으니…. 그래도 이들은 나름 배신하지 못하도록 작업을 쳐둔 것이기는 했다.

내가 없는 동안 계속해서 나연을 따르도록. 절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지 못하도록 의도한 면도 있었으니까.

누가 위인지,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힘을 본 이상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기는 힘들 터였다. 떠나기 전에, 가볍게 한 마디 정도 해둘 생각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나연의 상태가 더 심해지지 않도록 할 필요는 있었으니까.

내가 아닌 제 3자를 이용하면, 거부감이 덜 드는 형태로 나연을 내 입맛대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중립에 가깝도록 만들고 싶었다.

나는 양기희 파티와 스페스, 라빈에게 본 그대로를 영주에게 전하고 우리는 회색 놀들을 더 줄인 뒤에 돌아가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들은 내 말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뭔 개소리를 해도 고개를 끄덕일 기세였다.

그들이 돌아가는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자경단 쪽은 영지가 커지고 자신들이 안전해질 거라는 희망에 흥분한 모습이었고, 병사들의 지휘관인 라빈은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수련자 파티는 김아연, 김지민, 김안지를 비롯한 나를 든든해하고 찬양하는 쪽과 양기희와 정은아, 차산미처럼 뒤늦게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긴장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나로서는 어느 쪽도 상관없었지만.

내 파티원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이 모두 돌아가기 무섭게, 나서윤이 내게 달라붙으며 물었다.

"오빠! 오빠!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어요? 비결이…."

"신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형! 형! 진짜 멋졌어요! 어떻게 하면 형처럼…."

일행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였던 꺼림, 두려움 등이 일체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당장은 내가 이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들도 언젠가는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 파티와 다른 파티의 다른 점이다. 경의, 감탄만으로 끝내지는 않는다. 향상심. 내가 할 수 있다면 자신들도 언젠가 가능하리라는 믿음. 그간 나와 탑을 오르며 형성된 믿음과 인식.

나는 언제나 일행보다 항층 더 앞서고 뛰어난 무력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감탄하고 놀라기 바빳지.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티원들은 내 과거의 그림자를 차츰차츰 따라붙어 왔다.

튜토리얼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나지만, 현재 일행들 중에서 당시의 나보다 약한 사람은 없었다.

나보다 느리고, 조금 뒤처져 있더라도 따라갈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내가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얻은 일행은 한층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천천히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던 주하연마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알잖아? 레벨이랑 능력치, 스킬이야."

"에이. 결국 그게 다예요?"

"글쎄. 과연 그게 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레벨과 대략적인 능력치들을 공개해 주었다. 얘들은 믿을 수 있는 이들이고, 이들도 내가 관리자의 눈동자를 쓰지 않더라도 나에게만은 능력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한다. 이들이 나를 믿는 만큼 보답해줄 필요성은 있었기에 조심해야 하는 개인 정보지만 공개하는 것을 선택했다. 어차피 수련을 통하면 당분간 빠르게 오를 능력치라 당장 공개해도 큰 타격은 없기도 했고.

일행은 내 능력치와 레벨에 놀라기는 했지만, 이런 차이만으로 과연 내가 보였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건지 의아해했다.

능력치가 하나하나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표시가 늘어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능력치 하나하나의 차이는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숫자 하나 사이에서 나오는 체감이 확확 달라지고, 그건 70을 넘으면 확실히 느끼기 시작한다.

지금만 해도 이럴 지경인데, 80, 90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 100은?

회귀자인 나만 해도 1회차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지금에서야 체감하고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저들에게, 말해준다고 한들 이해하기는 힘들 거다. 그냥, 강해져 보라고 말해주는 수밖에.

평생 여기에도 닿지 못하는 수련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엄선된 내 일행은 지금 내 힘마저도 통과 점에 지나지 않으니까.

물론, 저들이 내수준의 능력치와 레벨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였던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 전투 지속력은 어지간한 수련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경지였으니까.

그나마 남은주가 비슷하게라도 할 가능성이 있었다. 공격력은 부족하겠지만, 신성력이 방어와 지속력만큼은 특별한 면이 있었으니까.

하늘을 날지는 못해도 버티면서 수천의 놀을 홀로 감당하는 장관을 보일 수 있었을 테지. 물론 내가 얻을 예정이었던 '철벽의 수호자'라는 스킬을 개방해야 하겠지만. 이건 내가 따라 하기 힘든, 남은주의 개성이 될 터였다.

"자, 그만하고 마저 처리하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최대한 많이 깽판 쳐 둬야 우리가 올 때까지 이들이 꼼짝도 못 하지."

"근데 정말 우리가 날뛰면 조용히 있을까? 신후 네가 없는 사이에 대대적으로 반격이라도 했다간…."

"글쎄. 작은 반응에 예민하게 굴던 적색과 갈색을 생각하면 열은 받아도 경거망동은 못 할걸?"

게다가 타이밍도 좋다. 본래 놀들은 자주 이동하는 종족인 만큼 시간 관계상 이 넓은 땅덩어리를 다 뒤져가며 처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을 견제한답시고 제법 많은 수가 이쪽에 배치된 데다가 주변에도 상당수의 놀들이 존재한다. 나연과 하유진을 통해 위치를 파악하고 내가 쓸어버리면 짧은 시간에도 효과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계산.

거기에 나서윤 혼자, 주하연은 남은주와 붙인 상태로 정찰을 시키면 앞선 둘보다는 떨어질지언정 확실히 도움은 된다.

나는 전원에게 지시를 내려 최대한 근처의 놀 부족 위치들을 파악하게 시켰고, 나 또한 돌아다니며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았다.

앞서 도망친 놀들의 흔적을 찾아 일대의 놀들 위치를 파악한 뒤, 소환까지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토벌에 사용했다.

그렇게 내가 학살한 놀의 수가 1만 5천에 가까운 수였고, 이정도 타격이면 우리 쪽 공격은 감히 신경 쓰기도 힘들 지경일 터였다.

긴 시간에 걸쳐서 싸웠다면 원한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만, 보름 남짓한 시간 만에 압도적인 피해를 입혔다면 분노보다는 공포가 앞설 거다. 어쩌면 영구히 이쪽 지역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전과를 쌓은 이후, 나는 티드린드 성으로 복귀했다.

***

내가 티드린드 성으로 복귀하자 곧바로 성주의 호출을 받았다. 예고도 없는 복귀나 다름없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린 듯했다.

보통 하루 정도는 쉬게 한 뒤 호출하던 것과는 다르게 무척 급박한 느낌이었다.

"우선 자네의 실력을 의심한 것을 사과하지. 솔직히…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영주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불렀다네. 혹시 말이야… 그대의 실력에 준하는 강자가… 제국에 흔한가?"

내게 말을 건네는 토펜의 얼굴에서 얼핏 불안한 감정이 느껴진다.

보통 이런 질문은 은근히, 조심스럽게 묻기 마련인데도 토펜은 나를 부르자마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내 용병 등급은 B등급. 그런데 내가 보인 무력은 차원이 다르다.

외진 곳이다 보니, 정보가 많이 부족한 듯했다.

자신의 영지가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테지만, 나 하나가 영지 전체를 쓸어버릴 수준의 무력을 보였으니 무척이나 불안한 모양. 광산을 확보하고 놀을 토벌한 이후 제국에 제대로 인정을 받을 셈이었을 텐데, 사람 하나 보내서 영지를 멸망시킬 수 있다면 인정은커녕 다른 영지에게 수탈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B급 용병이 다 저 수준이냐고 물으신 거라면… 아닙니다. B급 용병은 기사급에 준하기는 하지만, 저는 인연이 닿아서 훨씬 강한 축에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급수로 따지면… A급 수준일 겁니다. 그것도 거의 끝자락입니다. 게다가 제가 다수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 특화된 면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뿐, 보통의 A급 용병은 이런 짓 못 합니다."

"…그대가 규격 외라는 뜻이군?"

"규격 외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S급 용병이나 그들을 뛰어넘은 강자들은 제국에 제법 많으니까요. 당장 등록된 S급 용병만 하더라도 1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렇군."

제국의 인구를 생각하면 S급 용병 100은 많은 수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보기에는 힘든 것이, 그들 중 하나에 조금의 병사만 곁들이면 여기 영지는 그날로 전멸이다. 나처럼 양민 학살에 특화되지 않았다면 보조할 병사를 보내면 그만. 그만큼 군사력 격차가 크다. 100명 중 한 명이라도 의뢰를 받아들이면 끝이라는 얘기니까.

이 티드린드 성은 S급 용병과의 인맥도, 그렇다고 최소한의 군사력도 없는 영지다.

귀족들의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토펜은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저게 반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정석 광산이 발견되고, 마탑에 마정석 일부를 일부 무상 증정, 일부 물량을 독점으로 조금 싸게 넘기기만 한다면 아마 모든 마탑이 이 영지를 보호하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 될 거다. 약간의 정치력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는 마정석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저 고민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네, 귀족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

"네. 그렇기는 합니다."

"…티드린드 영지는 어떤가?"

"…네?"

토펜의 갑작스러운 제안.

조금 늦게, 그 말을 이해한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자네가 앨리자뱃과 혼인한다면, 나는 앨리자뱃에게 영주의 자리를 주겠네. 단, 정실은 앨리자뱃이어야만 한다네."

토펜은 큰 결심을 한 얼굴이었다.

"자네의 자식을 다다음 대의 영주는 자네의 자식이 차지하게 될 걸세. 이 티드린드 영지는 당장에는 힘들지 몰라도…."

"잠, 잠시만요 영주 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자네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네. 이 짧은 시간에 그 정도 수준의 무력을 손에 넣었다면 앞으로 자네는 크게 될 인물이 분명해. 자네라면 귀족이 되고도 남겠지."

"……."

"하지만 제국에 가서 자네가 귀족이 된다고 하더라도 영지를 받기는 힘들 걸세. 아무리 내게 정보가 적다고 하더라도 제국에 대해 아주 모르지는 않아. 그대와 같은 무인이 귀족이 된다면 단승 귀족, 설령 세습 귀족이 된다고 하더라도 영지가 없는 귀족일 가능성이 크네. 물론 자네라면 영지를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엄청난 공훈을 세워 영지를 얻어도 그 강대한 오크들과 싸우는 접경 지역에 받을 것은 뻔한 일일세."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귀족이 되더라도 나는 크게 영지 욕심은 없었다. 이전에야 야망이 있는 척했지만, 나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고 영지는 방해만 될 뿐이다. 돈이야 여기서 나오는 마정석 지분으로 해결했고. 그냥 우호적인 귀족의 영지, 그러니까 여기 티드린드 영지와 제국 내의 괜찮은 귀족 영지 한 군데서 협력하며 지내면 그만일 뿐이었다. 거기서 레벨을 올리고 수련자들을 흡수하고 육성한다. 그리고 세력이 거대해진다면 상층으로 진출하는 것. 그게 내가 중층에서 하려고 하는 일의 전부였다.

즉, 나는 후대를 생각해 영지를 얻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당대에 쓸 수 있는 무력만 모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영주는 조금 필사적으로 내게 영지의 좋은 점을 어필하고 있었다.

"당장은 남작 위에 불과할지라도, 자네가 놀들을 토벌하고 자네가 말했던 용병 단을 흡수한다면, 훗날 제국에도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걸세. 이 정도 규모라면 승작도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영주 님."

영주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초조한 표정. 확실히 인맥도, 금전도, 군사력도 없는 약소한 귀족의 고뇌가 느껴졌다. 말을 하면서도 아마… 상당히 비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씀은 감사드립니다. 좋은 제안인 것은 확실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충분히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협력하겠습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런 관계가 아니더라도, 저는 영주 님의 굳건한 인맥으로 남을 겁니다. 광산 지분도 갖고 있는데, 제가 티드린드 영지를 저버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영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로는 부족하네."

그렇겠지. 떠나버린 내가 타 영주와 협력해서 지분을 올려 받는 대가로 이쪽과 관계를 끊으면 영주는 끝장이니까.

"잊으신 것 같은데, 저 신관입니다. 맹세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신관, 그리고 맹세. 나는 이 영지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돕지 않는 것이 해를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주도 그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리 매달리는 것일 뿐. 하지만 나는 영주에게 크게 갑질할 마음은 없었다. 내 돈줄이고, 이런 쪽으로 신경을 최대한 덜 쓰려면 과한 갑질은 훗날 역효과를 불러올 뿐이다. 지금은 초라해도, 곧 있으면 마나석 광산을 소유한 영주가 될 예정이니까. …지금은 어쩐지 존재 자체만으로 갑질하는 기분이기는 했지만.

"그러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앞으로도 강해질 테고, 티드린드 영지와는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그래. 알겠네."

토펜은 크게 납득한 기색은 아니지만, 내가 이야기를 끝내 하고 싶자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 있으면 앞서 말했듯 당분간 또다시 영지를 비워야 한다고 말했고, 영주는 어쩔 수 없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역시 영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내 방으로 앨리자뱃이 찾아왔고,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도망쳐요."

"…네?"

"빨리 뒤로 돌아서 나가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영애. 그렇지 않다면… 험한 꼴을 보게 되실 겁니다."

저 멀리서, 나서윤의 기척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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