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20화 (120/317)

# 120

"그러니까, 19살에 레벨이 19?"

"네, 넷!"

"직업은 궁수시고?"

"그렇습니다!"

어느새 나는 테이블에 앉아 나연이 있었던 파티의 멤버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능력치는?"

"그, 그게…."

아무래도 슬슬 능력치에 대한 비밀 엄수는 퍼져 있었는지 김아연은 어찌할 줄 모르는 듯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그, 근력은…."

"아연아!"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그래 봐야 20대 중반, 25살이었다- 전사, 양기희가 그런 김아연의 입을 막았다.

"왜 그런 것을 물어보시는 거죠?"

아무래도 그녀가 이 파티의 리더인 듯했다.

"아. 괜찮으면 영입할까 싶어서요."

내 말에 다른 파티원들의 얼굴이 일변한다.

"영입을요? …아연이를?"

"네."

내 가벼운 대답. 그 말에 저쪽 파티원들의 얼굴이 제각각 변해버렸다.

"축하해! 아연아!"

"아연이를 영입…."

"축하할 일이기는 한데…."

"와, 언니!"

일부는 축하를, 일부는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듯했다.

"…확실히, 유신후 님 파티에는 궁수가…."

양기희는 뭔가를 생각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작 김아연의 얼굴은 기쁜듯하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동경하던 파티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 기쁘면서도 자신만 쏙 빠지는 상황이 불편하기도 한듯했다.

나는 다른 일행을 죽 살피며 말했다.

"오해가 조금 있군요."

"네?"

"저는 김아연 씨를 영입할 생각이기는 합니다. 물론 본인이 원한다는 전제하에서요."

"그…."

김아연은 조금 곤란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김아연의 말을 자연스럽게 끊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김아연 씨만 영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말에 양기희 파티의 표정이 다시 일변한다. 일부는 욕심을, 일부는 우려를 표한다.

양기희는 우려를 표하는 쪽이었다.

"…다른 팀원들에게 좋은 기회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 빼가시면…."

불안한 표정.

이해는 간다. 오로지 여성만으로 파티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대강 이유를 짐작할 수도 있었고, 이런 상황이면 파티원을 추가하기도 힘들다. 너무 많은 전력이 빠지면 곤란하겠지.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 영입 대상은 여기 있는 수련자 전원이니까요."

"네?"

전원. 즉 6명 모두를 집어삼키겠다는 뜻이다.

"아…."

주하연은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내가 과거 말했던, 덩치 부풀리기. 그것을 일찍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길드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 기왕이면 수련자가 많은 미궁에서 시작하고 싶었지만, 나연이 잠시나마 고민할 정도로 익숙해진 파티다. 기왕이면 나연이 떠나지 못하도록 점수도 따고 마음을 안정을 되찾게 도움을 줄 겸 이 파티를 통째로 영입할 계획이었다.

이 실력이면 적당한 사냥터에 던져 놔도 나연이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고 몇 달간 같이 행동했으니 호흡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나를 통해서긴 하지만 안전을 원하는 수련자들을 도왔다는 자긍심 고취까지.

저쪽은 안전을 찾고 최고 수준의 길드에 별다른 테스트도 없이 합격하는 데다 나는 나연을 묶어두고 그녀의 마음도 안정시킨다.

서로 윈윈 하자는 거다.

'이게 바로 반려동물 테라피지.'

나연도 제 몸은 하나니까 감당할 수 있는 파티의 수는 제한된다. 특히 얘들은 파티에 들어온다면 나연의 연줄로 들어온 만큼 나연이 다른 파티에 관심을 주는 것도 알아서 견제해 줄 터. 급하게 생각났지만 나쁜 수는 아닌 것 같았다.

'뭐 견제 안 하면 돌려서 말하면 그만이니까.'

생존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눈치는 비상해진다. 아마 내가 돌려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터였다.

하지만 내 말에 되려 양기희 파티의 얼굴이 굳는다. 이럴 줄은 몰랐다는 표정.

양기희는 입술을 깨물며 모멸을 참는 듯한 얼굴로 떠듬떠듬 말했다.

"제, 제안은 감사하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왜죠? 좋은 기회이실 텐데. 나연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파티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저희 울타리에 들어오신다면 안전은…."

"꺼져 변태야."

"산미야!"

"스폰녀가 필요하면 다른 데서 찾아. 실력은 엄청나다면서 뇌는 다리 사이에 달렸나 봐? 우리가 만만해?"

"그만! 그만해! 산미야! 죄, 죄송합니다. 유신후 님. 얘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갑작스러운 폭언. 나연이 놀라고 주하연의 표정이 굳는다.

다른 일행들 또한 마찬가지. 내게 폭언을 한 사제, 차산미와 마찬가지로 분노한 이들도 있었지만 저쪽 파티와 나의 평판, 명성, 실력의 차이는 비교조차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차산미의 이러한 생각 없는 돌발 행동이 당황스럽고 무서운 모양이었다.

무서울 만 했다. 내가 방금 발언에 화가 났다면 맨손으로도 저들 전원을 찢어 죽이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테니까.

물론 저들이 내 무력을 그렇게까지 잘 아는 것은 아닐 테지만, 날 대하는 태도만 봐도 대강 여기서의 내 행적을 대부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왜 내가 주는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하는지 깨달았다는 것이 더 만족스러웠다.

폭언에 대한 분노? 왜? 개가 짖으면 짜증은 나지만 그렇다고 죽이지는 않지 않은가? 나연의 정신을 안정시켜줄 안정제들이다. 이 정도는 너그럽게 너머가 줄 수 있었다.

"아, 그런 이유셨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제가 만들 단체… 편의상 길드라고 부르겠습니다. 길드는 제 권한이 가장 크고, 결정권도 사실상 제가 거의 보유할 예정이긴 합니다만… 그런 쪽으로 강압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고의적으로 쓴웃음을 연기하며 익살스럽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런 짓을 했다간 저를 때려죽일 사람이 있어서."

"프핫."

내 말을 알아들은 주하연이 웃는다. 그녀와 내 머릿속에 공통으로 떠오르는 사람.

바로 나서윤이었다.

주하연과 종종 밤을 보낸 뒤 나서윤이 보내는 눈빛은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아, 아하하…."

나연도 뒤늦게 사실을 깨달았는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하기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반응이기는 하지.

그나마 주하연이니까 그 정도 반응이지… 만약 이들을 들이고 곧바로 그런 쪽으로 썼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그 상대방을 죽일 것 같기는 한데, 거기에 대고 나랑 잤다간 그쪽 죽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내 작디 작은 양심에 찔리는 수준이라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내 말에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양기희 파티. 나는 곧바로 나연을 지목하며 말했다.

"여러분은, 나연이 그런 것을 받아들일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저랑 튜토리얼에서부터 같은 파티로 쭉 함께해 왔는데?"

그제야 양기희 파티는 나연의 존재를 깨달은 듯했다. 그녀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듣기도 했을 테니, 들었던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내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게다가 몇 달이면 나연의 성격도 알만할 거다. 나연의 성격상 그런 것을 방치할 리가 없었다. 나를 예외로 둘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저들은 모른다.

나와 나연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양기희 파티. 그제서야 자신들의 말이 말이 안 되는 오해라는 것을 깨달은 듯 저쪽 일행의 얼굴이 붉어진다.

"죄, 죄송합니다. 이, 이러면 안 됐는데…."

"뭐, 그간 겪으신 일들이 별로 좋은 쪽은 아니셨나 보군요.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한 번이에요. 다음은 없습니다."

나는 경고를 보내며 슬며시 마력을 개방했다.

전부도 아니다.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힘만을 개방했을 뿐인데도 저쪽 일행의 얼굴은 퍼렇게 질려갔다.

"네, 네… 죄송합니다."

끄덕.

나는 사과를 받아주고는 곧바로 양기희를 향해 물었다.

"아무래도 그쪽 분이 파티의 리더이신 듯한데…."

"네.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가장 많다 보니까…."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네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길드를 만들 생각입니다. 정확히는 용병 단으로 출발하겠지만… 이후 올라올 수련자들도 받을 용의가 있습니다. 먼저 올라오신 파티인 데다 나연이 함께 행동하신 것을 보면 테스트는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군요. 그래서, 어떠십니까? 저희 파티에 들어오시는 것이?"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기에는…."

"찬성! 기희 언니! 나는 찬성!"

전사, 김안지가 성급하게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녀의 눈은 다시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해가 풀리기는 했다지만 잠시 사이에 잘도 기분이 확확 변한다. 아니, 그냥 판단이 빠른 건가? 저들 입장에서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다.

"저도, 저도 좋은 것 같아요."

"찬성입니다!"

제일 어린 궁수, 김지민과 잠재력이 상에 걸쳐 내 관심을 받았던 김아연. 그들도 찬성을 표했고.

"언니 결정을 따를게요."

일행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정은아도 사실상 찬성이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내게 폭언을 내뱉었던 사제, 차산미는 시뻘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더니 조용하게 '찬성할게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현명하네.'

쪽팔린 것은 잠시지만 안전은 오래간다. 특히 방금 내 마력을 느낀 만큼 수준 차이를 제대로 느낀 듯했다.

"의견이 나온 것 같은데… 어떠신지?"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저희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록 구두 약속이긴 하지만, 정식으로 용병 단도 창설할 예정이니 그쪽에 먼저 적을 올리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양기희는 나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왔다.

수련자들이 탑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연아."

"…응."

"당분간 이쪽 파티랑 같이 다녀. 이제 같은 길드원이니 허락할게."

나는 짐짓 너그러운 척을 해 보였다. 감정을 버리고 바라보니 나연의 얼굴은 확실히 떠나기 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진짜?"

"어. 하지만 이틀 정도는 시간 빼. 할 얘기가 많아."

"응, 알겠어. 고마워 신후야."

"…그래."

'잘좀 하자 진짜.'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중층은 하층처럼 이렇게 하나하나 챙겨주기가 힘들다. 그런 만큼 알아서 쫓아오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대강 끝나는 기색이 보이자 주변의 용병들이 한숨 돌렸다는 듯이 외쳤다.

"휘유! 용병 단을 만들어? 이야 역시 유신후! 용병의 희망!"

"거기 나도 못 들어가나? 여자만 받아?"

"근데 유신후가 강한 거 알긴 아는데… 용병 단장이 그리 쉽게 될 수 있는 거였던가?"

용병 단장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긴 했다.

C등급 이상. C랭크 수준의 의뢰를 달성할 것과 일정 수의 의뢰도 달성해야만 했다. 쉽게 말해서 신용도가 필요한 것.

나는 랭크는 되지만 신용도가 애매하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귀족의 추천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마침내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귀족도 존재하고.

나는 용병들의 말에 적당히 대꾸해주며 일행을 이끌고 여관을 나섰다.

양기희 파티에게는 이틀 뒤에 찾아올 테니 그간 쉬고 있으라는 말을 전하고 나연을 데리고는 이전에 쉬었던 영주 성으로 돌아갔다.

이미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다 알려졌는지 영주까지 버선발로 나를 맞아 주러 나왔다.

"오오! 유신후 군. 드디어 돌아왔는가?"

"예. 오랜만입니다. 영주 님."

아쉽지만 다시 헤어져야 하는데…. 잘 통하려나? 게다가 이번에는 일행까지 데리고 갈 계획이라….

어쩌면 이번에 새 용병 단원을 모집한 것을 핑계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환담을 나누고 난 뒤 영주는 막 돌아온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며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점심 식사나 같이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나는 내심 그의 눈치 빠른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며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나는 일행들과 가볍게 재회할 수 있었다.

"오빠!"

"형!"

나서윤과 하유진은 내게 달려들어 품에 얼굴을 부볐고 남은주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환영했다.

그들은 내 문신을 보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제대로 돌아온 기분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기에 일행의 상태 창을 보자 놀고 있었던 인원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하연 못지않은 성장세. 하지만 역시 레벨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나의 성장에 비하면 너무나도 부족했다.

이러니 한참 후에나 중층에 도착한 한국 쪽 수련자들이 죽을 쓰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 해후를 마치고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본래 주하연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먼저 들으려고 했지만, 나서윤과 하유진의 재촉에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전설 문신을 얻은 과정과 이카로스의 꿈을 얻은 과정, 그리고 강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거의 대하 드라마 수준으로 창작해 일행에게 소개해야만 했다.

미리 준비했던 이야기지만, 어딘가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쩌겠는가? 내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들이 이렇게 많은데. 오히려 이런 이야기는 조금 허술한 편이 좋았다. 솔직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정도가 아니면 이들에게 내 성장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설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그런데 하연 씨."

"네."

"혹시, 정보 레벨이라는 거, 아십니까?"

"…네?"

정보 레벨. 나는 드디어 이 카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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