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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19화 (119/317)

# 119

"신후…씨? 몸이 왜…?"

의아하다는 주하연의 표정. 그 가운데서도 나는 주하연의 얼굴에 묘한 피로감이 보임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

나는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해서 그녀의 성장세를 확인했다.

[상태 창]

-이름 : 주하연

-나이 : 27

-직업 : 성녀(전설)

-LV. 31

-신체 능력

근력 : 29 민첩 : 34 체력 : 35 신성력 : 52

-자유 : 1(100미만)

그간 제법 성장한 모습이 보인다. 레벨이 30대 초반인데 신성력은 50이 넘었고 다른 능력치들도 슬슬 성장하고 있었다.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닌 듯했다. 아쉽게도 스킬은 변한 것이 없었지만.

내가 관리자의 눈동자로 그녀의 상태 창을 확인하는 동안 주하연의 떨리는 눈동자는 내 팔과 쇄골, 그리고 얼굴을 왕복했다.

이동을 위해 갑옷을 착용하지 않은 덕분에 문신이 전부 노출된 것.

나는 그녀를 향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스킬입니다."

"그 문신이… 스킬이라고요?"

"네."

어딘가 비뚤어진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눈길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래 보여도 이 둘은 전설급 스킬입니다."

"…전설 급요?"

놀란 표정의 주하연.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역시 신후 씨 답네요. 오랜만에 오자마자 이런 대형 뉴스를…."

그러면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몸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녀는 내 귀 뒤의 냉정의 문신을 하나 더 확인했지만 이것도 스킬이라는 말에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다행이 큰 상처는 없어 보이시네요."

그거였나.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돌아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주하연은 조금 기쁜 표정이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해요, 신후 씨."

"감사합니다. 저도 오자마자 하연 씨를 만나서 무척이나 반갑네요.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그게…."

주하연은 조금 난처하다는 기색이으로 우물쭈물 거렸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주하연은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나연이를… 만나려고요."

"나연이요?"

뭔가 이상하다.

"성 밖에 있습니까? 사냥이라도?"

"그, 그게…."

이쪽은 회색 놀 영역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광산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설마?"

"설마 성에서 쫓겨났습니까?"

"아, 아뇨. 그게…."

자꾸 말을 끈다.

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연이가, 파티를 나갔어요."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

"그게, 무슨, 소리, 입니까?"

나는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 영구 탈퇴는 아니에요. 신후 씨가 돌아오면 다시 들어오기로 했고…."

임시 파티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주하연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내게 떠듬떠듬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처음 한 달은 별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일은 다 처리한 상태라 꾸준한 정찰과 새로 올라온 수련자들의 동태를 확인하고 가끔씩 영주와 식사하며 광산 보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그런데… 두어 달 쯤 지나니까… 그, 나연이가…."

그간 보여왔던 열등감. 그게 점점 커진 듯했다. 주하연은 바쁜 와중에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고, 주하연보다 일이 적은 나서윤과 남은주는 더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심지어 자신과 함께 정찰 임무를 주로 맡은 하유진도 내가 없음에 표정이 어두운 경우는 많았지만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한다.

하지만 나연은 어느 순간부터 마력의 성장마저 멈춰버렸다고.

"그래서… 마침 또 다른 그룹이 올라왔어요. 근데 수준이 조금… 부족하더라고요.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하는 와중에 일부 인원도 죽은 것 같았고…."

수준이 부족한데 도전을 했다고? 아니, 아닐 거다. 아마 전투 중에 뭔가 실수를 했겠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요?"

"그, 마침 관리할 인원도 늘었다 보니까 나연이도 성장에 욕심이 생겼나 봐요."

"있을 수밖에 없겠죠. 그런 욕심은."

"네. 그래서 새로운 이들 관리를 하면서 조금씩 도움을 주더니, 어느 날 걔들을 데리고 임시로 파티를 맺어 사냥을 다니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렸어요. 사냥을 가고 싶으면 애들이랑 가라고. 그랬더니…."

"거절했군요."

끄덕. 주하연은 내 말에 행동으로 긍정했다.

"맞아요. 거절했어요. 한참 실력이 느는 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신후 씨가 오면 돌아올 거고, 정찰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그걸 허락하신 거고요?"

"…네. 정말 힘들다고, 강해지고 싶다고 부탁하는데… 차마 말릴 수가 없었어요."

성가시네. 같은 길드 내에서 그런 파티를 만들었다면 모를까, 내가 없는 사이에 제멋대로 임시 파티를 만들어 행동했다고? 물론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 길드를 창설한 것도 아니고, 일단 주하연의 허락을 받고 나갔으니까.

심지어 내가 없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성장을 도모한 거니까 나쁘다고 보기는 힘들다. 내가 오면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딱히 배신도 아니고.

내가 그런 것까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기껏 내가 키워 놓은 파티원이 다른 곳에 도움이나 주고 있다. 아니,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니까 윈윈이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나연이를 만나 봐야겠네요. 그 외의 일은, 다음에 듣도록 하죠."

이쪽이 가장 급하다. 나연이 파티에서 마음이 떠나면 성가시다. 내 파티에서는 한껏 열등감만 생겼는데, 다른 파티로 가면 열등감을 느낄 일은 없었겠지. 게다가 힘든 이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정신적인 만족감까지. 우리 파티에서 열등생이라도 다른 파티로 간다면 우등생이다. 아마 나연보다 강한 놈들은 아직까지도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서윤은 조용히 있었다는 것. 나서윤까지 데리고 임시 파티를 형성했으면 제대로 폭발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걸 제외하더라도 지금 기분은 충분히 더럽지만.

나연도 괜찮은 인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같이 가요. 안내해 줄게요. 마침, 오늘 돌아오는 날이라 여관에서 쉬고 있을 거예요."

끄덕.

나는 곧바로 주하연과 함께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용병들과 오늘이 비번인 자경단들, 그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성의 아이들이라던가 최근 정세가 궁금한 성민들 까지. 나는 그런 그들 사이를 헤치며 나연의 마력이 느껴지는 장소로 곧장 향했다.

그러는 와중에 나를 알아보는 용병들이 있었지만, 내 굳은 표정을 보고는 취한 술도 깨는지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다.

나연에게 접근하자 나연은 밝은 얼굴로 떠들고 있었다.

"나연."

"응…? 어? 신후?"

"네? 설마… 유신후 님!?"

나연의 주변에는 그녀와 일행으로 보이는 파티원들이 포진해 있었다.

우스운 점은 모두 여자라는 것. 전사가 넷에 궁수 둘. 아니, 전사 셋에 신관 하나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신성력이 느껴진다. 나연까지 합하면 총 일곱 명에 달하는 파티였다.

그 귀한 신관까지 있다라…. 장비를 보면 거의 전사나 다름없는 장비다. 고작 힐 스킬 하나 배운 것 같았다. 하기야 그것만 하더라도 여기서는 충분히 귀한 대접을 받겠지. 특히 지금 시점에서는 여기까지 살아남은 신관은 정말 귀하니까. 회복 스킬까지 쓸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마법사는 지금도 쩌리 취급이겠지만.

신관은 대체 자원이 없지만 마법사는 원거리 공격을 대신할 궁수라는 직군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특히 지금 시점에서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도 없겠지만,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궁수보다 사거리도 짧고 위력도 형편없을 터였다.

나중에 가면 비교도 안 될 만큼 대우의 차이가 생기겠지만.

"왔, 왔구나?"

나연은 어딘가 어색한 몸짓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기분 나쁜 것을 전혀 숨기지 않는 모습에 당황한 것 같기도 하다.

"왜 멋대로… 아니, 아니다. 그간 잘 지냈냐?"

나는 표정을 풀고 최대한 가볍게 물었다.

"으, 응. 훈련 진척이 없어서… 사냥으로 레벨을 올렸어. 덕분에 능력치도 조금 더 올릴 수 있었고…."

확실히 나연의 레벨이 주하연보다는 높았다. 현재 나연의 레벨은 33. 능력치는 근력 30 민첩 31 체력 30 마력 40을 달성한 상태였다.

확실히 잠재력이 있었다. 게다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많은 일을 겪은 덕분인지 신체 능력도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고.

마력도 40을 달성했으니, 그간 고생했다는 것은 인정할 만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복귀할 시간이야."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신후야…."

"뭐."

"그, 조금만 더 여기에…."

"안 돼."

나는 나연의 말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이제 내가 돌아온 이상 바빠질 예정이야. 그간 사정으로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돌아와 줬으면 좋겠는데?"

나와 나연의 이상한 분위기에 그녀의 파티원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나연은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주하연을 바라보았지만, 내 뒤에 서 있는 주하연이 고개를 젓는 기척이 느껴진다.

"와… 박력…."

"역시 두 분은…."

…당황한 줄 알았던 파티원들이 의외로 다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나와 파티원들을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

"저, 저기!"

나는 나를 부른 나연의 파티원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저, 저는! 김아연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아연 씨. 하지만 보시다시피, 제가 조금…."

"그간, 나연 언니를 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응?

"아, 언니가 물건은 아니니까 빌려주셔서는 아닌가…?"

나는 곧바로 이 파티원들의 능력치와 잠재력, 직업 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제법 빨리 올라온 파티들답게, 잠재력이 평균 중에서 중상 수준이다. 게다가 내 앞에 있는 이 김아연이라는 궁수는 무려 잠재력이 상. 20 초반… 아니, 상태 창을 확인하자 19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킬 슬롯은 다섯. 이정도면 나이가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아슬아슬하게 걸친 듯했다.

'호오….'

나는 조심스럽게 턱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끼어들어 파티원을 빼가려는 나다. 원래 내 파티원이기도 했으니 당당할 수 있는 거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지금 나연과 같이 행동하는 것치고는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밖이 아니라 고블린의 숲에서 사냥해야 될 수준. 그런데도 나를 향한 눈빛에는 불쾌감이나 불만이 아닌, 호의나 동경만이 가득하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한….

상황이 특이하다. 나연은 놓칠 수 없는 인재다. 귀한 정령사이자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가장 쉬운 존재다. 고대 정령까지 합하면 일단 내가 만들 길드에서 1군에 들어가는 것은 확정인 인재. 지금 성장이 다른 이들보다 느리다고 빼앗기기에는 아깝다. 특히 나서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기도 하고.

아무리 나를 더 따른다고 하더라도 나연은 핏줄이다. 관계가 조금 특이한 것 같지만 아예 마음에서 치우기는 힘들겠지. 그런 만큼 나는 나연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게다가 지금 보이는 나연의 표정은 내가 떠나기 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었다.

물론 그래도 내가 더 중요하기는 할 거다. 안전에 대한 것은 인간에게 있어 포기하기 힘든 영역이니까.

훨씬 강해져서 돌아온 나. 그런 나의 파티. 그 파티의 창설 멤버. 나연이 아무리 멍청해도 놓칠 리는 없었다. 단지, 마음이 떠나는 것을 경계했을 뿐. 그게 균열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 정신 치료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방법도 있었지.'

나는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나로 부족하다면….

"흐음… 김아연 씨?"

"네, 넷!"

"지금 직업이랑… 레벨이 어떻게 되시죠?"

미궁에서 시작하려 했던 덩치 부풀리기.

그걸 조금 일찍 시작할 필요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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