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복귀
본래 이카로스의 꿈이라는, 전설 등급의 부츠를 얻으려면 히든 퀘스트부터 시작해야 한다.
협곡의 잊혀진 전설이라고, 이 부츠를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히든 퀘스트가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는 관계로 나는 그 과정을 생략해 버렸다.
그 대가로 하늘 걸음이라는 스킬도 없이 이 협곡에 들어오는 처지가 되어버렸지만.
하늘 걸음이라는 스킬을 배우려면 상당히 고된 증명 과정과 퀘스트가 필요하기에 애초에 시간이 없기도 했었다.
이카로스의 꿈을 통해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만큼 생략해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후우…."
하지만 역시 어렵다.
이 넓은 협곡 지역에서도 세 번째로 높은 장소를 찾아야만 한다.
그곳에 이카로스의 꿈이 존재한다.
게다가 거기에는 하피 퀸 중 하나도 있었다.
협곡 지대가 아주 넓은 만큼 하피 퀸이 한 마리는 아니었으니까.
"끼아아아아악!"
게다가 이 하피들도 좀 귀찮은 정도가 아니다.
처음에야 한두 마리씩 덤벼드는 통에 별것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자신들의 영역에 인간이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제는 열댓 마리씩 무리를 지어서 차례대로 습격해 오고는 했다.
오는 족족 베어버림으로써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영역 안을 활보하는 나를 방치하지는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며 나를 귀찮게 만들었다.
게다가 때때로 습격하는 척하며 나를 거슬리게 만들기까지 했다. 일정 거리 내에 들어오면 죽는다. 그걸 아는 만큼 습격하는 척만 하는 거다.
내가 자신들을 선제공격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간 큰 행동.
덕분에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잘 때는 미궁 파편을 이용해야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정말 짜증이 났다.
"끼아아아아악!"
"빌어먹을 새대가리들. 반드시 죽여버린다."
수색 일주일 째.
이제 충분히 영역 내부로 들어왔다. 내 기억에 따르면 이 주변에 있다고 알고 있었다.
여기서 전설 등급의 부츠가 발견된 이후 이 일대의 하피들은 모조리 살해당했다. 혹시 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수련자들의 욕심 때문. 하피들이 비행 몬스터라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강한 놈들은 또 아니라 수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었다.
"…이 근처인데…."
문제는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가 뭔지는 알 수 없다는 것.
협곡 일대 전체에서 세 번째로 높은 거다. 일단 높은 곳은 다 가봐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협곡 전체를 살피기에는 하늘을 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 방법이 스킬을 얻고 오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다.
결국 나는 감이 시키는대로 조금 강한 하피가 있다 싶은 봉우리는 다 올라가봐야만 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이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고, 동시에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습격해오는 하피들을 사냥해 레벨을 올렸다.
사냥과 봉우리 수색을 번갈아 가며 헤멘 끝에, 나는 목표로 했던 이카로스의 꿈을 손에 얻었고, 동시에 생각지도 못했던 보상을 받게 되었다.
***
[이카로스의 꿈]
-등급 : 전설
-과거 하늘을 동경했던 남자, 이카로스가 신었던 부츠. 그는 하늘을 동경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샀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하늘에 집착했고 끝끝내 하늘 밟기라는 고유의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한다.
그 후 그는 자신을 비웃지 않았던 몇몇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하고 자신이 동경했던 하늘로 사라져 버린다. 그때 더는 필요 없어진 신발을 버렸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신발은 어떤 봉우리를 향해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방어력 : 125
-옵션1 : 바람(風)계열 속성 공격 30% 감소
-옵션2 : 스킬 하늘 밟기 스킬 등급 1단계 상승(스킬이 없을 시 획득 가능)
-옵션3 : 하늘에서 이동 속도 30% 증가
-옵션4 : 위기 상황에 윈드 실드 자동 생성 1회(재충전 24시간)
-옵션5 : 최대 3회 10m 이내로 블링크 사용 가능(1회 재충전 8시간)
-제한 조건 : Lv. 80 이상 또는 마력 80 이상 착용 가능
-착용 시 귀속
…이러니 전설 장비 하나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거리지.
아쉽지만 당장 착용은 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착용 자체는 가능하지만 일시적으로 증폭된 능력치이기에 능력치가 하락하면 곧바로 비활성화된다. 현재 내 마력은 바리치의 문신 효과 없이 순수 앨거차의 문신이 활성화된 상태로는 마력 80을 충족하지 못한다.
레벨은 한 달 넘게, 느리지만 사냥을 해온 덕분에 64가 되었지만.
옵션만 5개. 방어력은 가죽 부츠인데도 125. 이마저도 전설치고는 낮은 편이다. 방어력이 높은 편이 아닌 부츠고, 재질은 가죽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 것. 수백 년은 되었을 부츠인데 썩어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이템답다고 할까?
훗날 고위 연금술사를 통해서 옵션을 유지하고 가죽을 다른 재질로 교체할 수 있었다. …돈이 엄청나게 깨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방어력은 그때 더 올리면 된다.
"…스킬만 배울까?'
잠깐만 착용하면 스킬 자체는 배울 수 있을 거다.
나는 그것을 노리고 잠시 아이템을 착용했다.
그러자.
[스킬 하늘 밟기(전설)을 배우시겠습니까? Y/N]
원래 하늘 밟기 스킬은 슈퍼 레어급 스킬이다. 아이템의 적용 효과를 받는 덕에 임시로 전설 등급을 받았다. 어차피 해제되면 다시 슈퍼 레어 급이 되겠지.
나는 마침 잘되었다 싶어 대 회복 스킬을 지우고 그 위에 하늘 밟기 스킬을 적용, 스킬을 덮어 삭제해 버렸다.
지금 당장은 전설이니 가능한 편법. 장비가 해제되어 슈퍼 레어급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스킬이 복구되지는 않는다.
이제 스킬이 등록되면 다시는 할 수 없는 편법이기도 하고.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하늘 밟기를 사용해 보았다.
액티브 스킬이지만, 패시브에 가깝기도 하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시동어 없이도 자연스럽게 발휘되니까.
숙련도가 부족하지만 등급이 전설 급인 덕분에 서른 걸음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마력 소모가 많았지만 높은 '보정'덕분에 연속해서 걸음을 걷는데도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마치 바닥에 디딤돌이 생긴 기분.
힘껏 밟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상당한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물론,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두르면 밀리거나 금이 가버리지만.
"…이래서는 거인과 정면으로는 붙기 힘들겠는데?"
하기야 거인과 정면 대결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건 내가 성기사의 스킬을 모두 얻고 극한으로 단련했을 때나 가능한 일. 이제는 회피를 중점으로 싸워야 할 터였다.
나는 장비가 비활성화되기까지 전설급 하늘 걸음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등급이 하락하고 하늘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발걸음이 5걸음으로 대폭 하락해 버렸다. 상당히 집중해야 했고, 마력 소모량도 두 배는 되었다.
그에 비해 견디는 하중은 최악. 집중이 조금만 풀리면 현재 내 몸무게도 쉽게 견딜 수 없었다.
검을 휘두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지경. 슈퍼 레어급 보정인데도 불구하고 이정도다.
전설급과 슈퍼 레어급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스킬에 익숙해지고 숙련도를 올린다면 과거 1회차에서 이 기술을 자유자재로 써먹었던 몇몇 이들처럼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차라리 마력을 80 찍고 말지.'
당장은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연습 상대들도 제법 되니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려움에 질린 하피들의 모습이 보인다.
협곡 높이가 높은 관계로 떨어지면 위험하기는 한데, 죽을 만큼은 아니다.
나는 복귀하기 전, 마지막으로 하늘 걸음 훈련 겸 마지막 경험치 노가다를 시작했다.
퀘스트까지 한 달 정도가 남았을 무렵, 나는 늪지 앞 경계 초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
진짜 거의 7개월 만에 보는 모습이다.
지금의 내 속도라면 닷새 이내에 마을까지 복귀가 가능하겠지.
"상태 창."
[상태 창]
-이름 : 유신후
-나이 : 25
-직업 : 사제(일반), 아름다운 검사(레어)
LV. 65
-정보 LV. 60
-신체 능력
근력 : 74(+11) 민첩 : 66(+11) 체력 : 65(+11) 마력 : 69(+11)
-자유 능력치 : 5(100 미만)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이중 계약(신화), 불사의 육체(전설)
스킬 목록
-탑의 축복(신화)
-웨폰 마스터리(슈퍼 레어)
-하늘 걸음(슈퍼 레어)
-육체 정화(레어)
-앨거차의 문신(전설)(활성화)
-바리치의 문신(전설)(활성화)
-냉정의 문신(슈퍼 레어)(활성화)
-전사의 문신(일반)(활성화)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엄청난 성장세. 비록 문신의 앨거차의 문신 효과로 10이 상승한 상태가 되어야 근력 70대, 나머지는 60대에 해당하는 현재 능력치를 유지할 수 있지만, 문신을 해제하면 능력치가 다시 돌아오는 관계로 훈련을 생각하면 이쪽이 이득이다.
모든 능력치를 무조건 10 올려주는 효과. 역시 전설급 문신의 힘은 장난이 아니다.
나는 곧바로 늪지를 지키는 경계 초소로 다가갔다.
"흐아암. 멈춰. 너, 무슨 용무냐?"
방금 전까지 졸았던 듯, 병사는 미묘하게 피곤한 얼굴이었다.
동시에 홀로 늪지 경계 초소까지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의아해 보이는 기색 또한 섞여 있었다.
"아, 티드린드 성으로 갈 예정입니다."
"혼자서?"
"네. 여기 용병 패입니다. 과거에도 이동했던 적이 있어서요."
"으음…. B급 용병이셨군요. 흐아암…. 아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B급 용병이시면 괜찮겠죠. 통과입니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하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35구역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자, 잠깐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나는 하층에 진입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
[하층, 35구역에 진입하셨습니다.]
…누군가 나를 불렀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퀘스트 시작 시간.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오히려 너무 늦었달까.
본래 퀘스트 시작 45일 전쯤에 도착하려고 했었는데, 하늘 걸음 훈련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하피 만한 연습 상대를 찾기는 힘들었기에 최대한 버틸 만큼 버티면서 훈련을 하다가 예상보다 훨씬 늦어 버렸다.
그래도 만족할 만하다.
이제 20걸음 가까이 걸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힘껏 검을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나는 빠른 속도로 이동했고 얼마 되지 않아 아지렉의 대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유신후?"
"아지렉."
나를 바라보는 아지렉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무래도 리베리드가 떠오른 모양.
하지만 그때의 내가 아니다.
"표정 풀어."
나는 짧게 말하며 아지렉을 향해 마력을 방사했다.
아지렉의 표정이 단숨에 공포로 물들어간다.
과거의 나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힘.
그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를 느낀 아지렉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이런 마수들은 힘의 차이를 보여주면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 지능이 있고 시험관이라는 직책이 있는 아지렉이지만, 그 본질은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쓸데없는 놈을 위해 예의를 다해줄 마음은 없었다. 나는 현재 갈 길이 급했다.
"리베리드 님은?"
"모른…모릅니다."
무심포 반말을 내뱉으려던 아지렉은 내가 다시금 마력을 개방하자 곧바로 말을 높여왔다.
미리 기를 죽여 놓으면 나중에 편하다. 여기는 내 길드원들도 꽤 자주 지나다닐 예정이니까.
아직 만들지도 않은 길드지만.
모른다면 볼 일은 없었다.
나는 인사도 없이 곧바로 자리를 벗어났고 내가 아지렉의 대지를 벗어나는 동안에도 고릴라는 경직된 몸을 풀지 못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티드린드 성을 향해 이동했고, 닷새가 되기 전에 티드린드 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성의 경비병들은 내 얼굴을 보고는 처음에는 못 알아보는 듯하더니 곧이어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당연히 무사통과.
7개월 만에 티드린드 성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신후… 씨?"
거기서 운도 좋게, 뭔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모를 주하연과 딱 마주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