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재전직
입구 마을에 돌아가 두 개의 문신이 활성화되었음을 확인한 테수스는 경악을 넘어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들의 상식선에서 문신이라는 것은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각성시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용맹을 증명해 문신을 받을 자격을 획득하고, 첫 문신을 몸에 새긴 후 몇 년에 걸쳐 무용을 쌓고 각성을 통해 진정한 전사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얻은 문신이 역대로 초대 외에는 각성시킨 적 없다는 형제의 문신이다. 평생에 걸쳐 정진해도 각성시킬 가능성이 한없이 0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며칠 만에 각성을, 그것도 두 개를 몽땅 한 상태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
"…이건 무슨 술수지?"
그는 어이없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알고 있을 터였다. 이건 진짜 각성이다. 문신을 활성화 시킨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눈과 감각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해는 된다. 나도 탑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애송이가 랭커가 되었다고 한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을 테니까.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어차피 소문은 곧 난다. 그렇기에 그냥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게 그냥 그렇게 되면 되는 일인가?"
테수스가 반문했지만 그래 봐야 이미 활성화된 문신이 다시 비활성화되지 않는다.
나는 다음 문신을 새기겠다고 요청했고 테수스는 별다른 말 없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미 받은 문신을 다 활성화 시켰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나는 바리치의 문신 효과 때문에 정신 방비를 위한 문신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원인이 원인이기 때문인지 슈퍼 레어급 문신을 받을 수 있었다. 평시에도 저항력이 있지만, 전투 상황에서 그 효과가 증폭되는 냉정(冷靜)의 문신. 거기에 더해 일반 등급의 전사의 문신까지.
본래 각성 이후 두 번째 문신을 받을 때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지만, 나는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계승한 문신이 문신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끼친 것. 확실히 이전과 다르게 내게 문신을 새기는 주술사의 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했다.
가장 대중적이고 흔한 전사의 문신을 받은 이유는 무척 간단했다.
이건 성장형 문신이다. 당장 일반 등급부터 나름 괜찮은 효과를 자랑한다. 전 능력치 1상승.
물론 내가 가진 다른 스킬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효과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모든 슬롯을 전설 스킬로 채울 수는 없다. 물론 내가 획득 방법을 알고 있는 전설 스킬의 개수 자체는 내 슬롯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단지, 내가 쓸 수 있는 문신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마법사용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맞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확실히 슈퍼 레어 이상으로 성장이 가능한 전사의 문신은 효율이 좋은 편이었다.
지금이야 일반 등급이지만 1회차에서는 슈퍼 레어를 달성한 이도 있었으니까.
'당시 효과가… 전 능력치 상승 4에 전투 보조, 직감 스킬 개방이었던가?'
게다가 능력치 상승은 더 오를 가능성도 있었다.
레어가 되면 전 능력치 상승이 1에서 2로 상승하는데, 슈퍼 레어에 거의 다가갈 쯤 되면 3으로 상승하니까.
잠재력이 높은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괜히 중하위권 수련자들이 비주류인 마고그 족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이 스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제값을 한다.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최대한 작게 문신을 이식받았다.
다행히 자주 쓰이는 문신인 덕분일까. 작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몸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만약을 대비해 작게 만드는 기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냉정의 문신은 귀 뒤쪽에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전사의 문신은 왼쪽 쇄골 근처에 검지 손가락 길이로 새김으로써 문신 이식을 완료했다.
활성화 조건은 등급에 맞춰 냉정의 문신은 약간 까다로웠고 전사의 문신은 어렵지 않았다.
전사의 문신은 웨어울프나 뱀파이어를 홀로 20체 이상 사냥할 것이었고, 냉정의 문신은 7일간 수면하지 않는 것이었다. 시스템상의 퀘스트인 만큼, 잠시 조는 것마저 인정되지 않는다.
형제의 문신과 다르게 이런 문신들은 다른 활성화 방법도 있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나았다.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 수련자라 할지라도 7일간 날밤을 새는 것은 신체적으로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일정 수준이 되지 않은 수련자는 아예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 하지만 현재 내 수준이면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고되기야 무척 고되겠지만.
그래도 바리치의 문신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일주일간 밤샘을 시작했고, 한 번에 성공함으로써 문신을 활성화 시켰다.
그래도 재밌었던 건 불사의 육체가 이쪽에도 영향을 준다는 거였다.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알 방법이 없었다고 할까.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나는 냉정의 문신을 활성화하고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 하루를 리 잔 후 곧바로 뱀파이어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주일사이 내 소문이 퍼질 대로 퍼져서 시끄러운 만큼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는 뱀파이어 20마리를 처리한 순간, 나는 계획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효과가… 생각보다 좋은데?"
본래라면 전사의 문신을 활성화하고 마고그 족의 영지를 떠날 생각이었지만, 뱀파이어 사냥이 생각보다 효율이 괜찮았다.
아직 숙련도도 낮고 극한 활성화도 불가능한 상황이라 원래 계획했던 사냥터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피가 에너지원인 종족이라 그런 걸까? 바리치의 문신과 상성이 상상 이상이었다. 던전에서 극한 활성화의 영향 때문에 강력한 줄 알았더니 기본 지속 효과부터가 만만하지 않았다.
어차피 레벨을 올릴 사냥터로 이동할 생각이었고, 다시 에울프 성으로 돌아가려면 보름, 아니 이제는 열흘이면 충분하기는 할 거다. 능력치가 충분히 올랐으니까.
그래도 제법 아까운 시간이다. 내가 가려 했던 장소도 텔레포트만으로는 갈 수 없다 보니 다시 이동에 시간을 써야 하니까.
스릉-.
결국, 나는 뱀파이어를 통해 레벨을 올리기로 결정, 짧지만 긴 경험치 노가다를 시작했다.
***
3개월. 긴 시간이다. 총 7개월의 시간 중에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사냥에 투자했다.
레벨이 50에 가까워지자 슬슬 얻는 경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내가 그들의 영역을 휘젓는 만큼 더 강한 존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레벨 업 속도가 다시금 회복되었다.
그 덕에 레벨 59라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숫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식량은 충분한데…."
60이 코앞이다.
50이 되어 전직을 할 레벨은 달성했지만, 사냥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상대 영역을 휘저었다.
"유신후 전사님."
"바레틴."
한 달쯤 사냥했을 무렵부터 내 소문이 마고그 족 사이로 퍼져나갔다.
반쯤 예상하긴 했었다. 외부인인 내가 전사로 인정받고 처음 새긴 문신이 형제의 문신이다. 게다가 그걸 며칠 만에 둘 다 각성시켜버렸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화제가 될만한 일인데, 그 문신을 이은 후예가 현재 곧바로 뱀파이어를 토벌하고 있다.
충분히 화제가 될만한 일이었다.
한 달 전쯤에는 기어이 마고그 족을 대표하는 가장 큰 부족, 구터 부족에서 사람을 보내오기에 이르렀다.
사실 형제의 문신 두 개를 모두 각성시킨 시점에서 그들이 내게 사람을 보내올 거라는 것은 확정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냥 일찌감치 사냥터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뱀파이어 사냥의 효율이 괜찮아 머문 덕분에 그들에게 이리 빠르게 초대를 받아버렸다.
그다지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다. 어차피 정식으로 중층에 진출하면 만날 계획이었으니 그게 좀 빠르게 된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지금보다는 더 강해진 이후에 만나는 것이 좋다.
지금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후계자로 존중받는 것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거기에 후계자라는 타이틀이 얹어지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나는 초대를 거절했다.
"정말 이대로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바레틴. 구터 부족에서 보내온 재능 넘치는 뛰어난 전사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전사의 문신을 활성한, 구터 부족에서 기대하는 미래의 족장 후보 중 하나.
"그래. 지금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군. 아직 모자라거든."
나는 솔직하게 가지 않는 이유를 대답했다. 마고그 부족은 마초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십니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느낀 바레틴은 내가 스스로를 약하다고 칭하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강하다.
내 레벨은 59에 다다랐고, 현재 능력치는 근력 89 민첩과 체력이 80에 마력은 81이다.
하지만 내 순수 능력치는 훨씬 떨어진다.
현재 내 근력은 71에 민첩 63, 체력 64, 마력이 66이다.
추가된 능력치는 뱀파이어를 학살함으로써 얻은, 바리치의 문신 효과로 증폭된 임시 능력치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감소되어 능력치가 하락할 터였다.
최근 레벨이 60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멈췄던 능력치가 다시금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앨거차의 문신을 비활성화한 상태로 수련을 하면 내가 느낄 정도로 능력치가 성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수련보다는 레벨을 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능력치를 올릴 수련은 하층에 돌아가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냥은 여기서 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나는 석 달 내내 미친 듯이 사냥을 해댔고, 뒤늦게 그런 나를 보는 전사들은 하나같이 뜨거운 함성과 응원을 보내왔다.
그들이 보기에는 전설을 재현한, 앨거차와 바리치의 후계가 그들의 뜻을 이어 마고그 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홀로 전투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나는 그냥 사냥을 하는 것일 뿐이지만.
"내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 "
바레틴의 간절한 표정을 무시한 채 내 의견만을 전달한 뒤, 짐을 인벤토리에 넣기 시작했다.
전설의 후예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유신후 전사님!"
"나중에."
나는 바레틴의 애타는 요청을 그대로 끊어버렸다.
"나중에 더 강해져서 다시 찾아올 테니 지금은 그냥 가라."
그보다 더 상위의 전사가 하는 말이다.
나를 무시할 생각이 아니라면 억지로 붙잡을 수 없었다.
마고그 족의 최대 부족? 나는 저들에게 있어서 전설의 후계자다.
어떤 의미로는 조금 창피한 감투기는 하지만, 내 이득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치심은 참을 수 있었다.
"언제, 언제 오실 겁니까?"
"그건 모르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말에 바레틴이 초조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런 바레틴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다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네가 온다면 첫 초대는 너희 부족으로 가겠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둬."
바레틴은 실제로 미래에 부족장까지 되는 뛰어난 놈이다. 그런 놈과 연줄을 만들어 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를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고그 족의 영지를 벗어났다.
나는 곧바로 에울프 성으로 이동했다.
이동에는 열흘. 갈 때와는 다르게 습격은 없었다.
에울프 성으로 이동한 뒤 나는 곧바로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의 기부금을 내고는 신전의 기도실을 빌린다. 그리고는 곧바로 제단 앞으로 향했다.
[열세 번째 꽃이 오랜만의 등장에 환호합니다!]
나는 발랄함이 느껴지는 간접 메시지를 무시하고 덤덤하게 말했다.
"준비는?"
[열세 번째 꽃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
[전직하시겠습니까? Y/N]
곧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난다.
나는 Y 버튼을 클릭했고, 곧바로 전직 가능한 직업 목록이 나타났다.
1.정원의 수호자
2.아름다운 검사
3.사신의 추종자
4.극지의 사냥꾼
5.태양의 전사
6.폭풍검의 주인
…
…
…
…
"…아직 포기 안 했냐…."
나는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목소리를 흘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