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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12화 (112/317)

# 112

나는 퀘스트가 완료되자마자 다른 이들을 도와 웨어울프를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좋은 경험치다.

아니나 다를까 전사들을 도와 고작 셋을 더 처리했을 뿐인데 정체되었던 레벨이 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우우우우!"

리더로 보이는 웨어울프가 긴 하울링을 뱉었다.

아무래도 퇴각 신호인 듯, 남은 웨어울프들이 곧바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본능이 앞서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이성은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저리 순순히 물러갈 놈들이 아닌데….'

괜히 내가 본능이 앞선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물러간 이들은 고작 여섯.

11마리나 죽은 전투다. 눈이 제대로 돌아버렸을 텐데, 어째서 도망을?

"아아! 이 무식한 놈들아! 살려서 잡으라니까!"

"미친 영감태기가. 이놈들은 안 돼!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그사이 마법사와 전사가 서로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나를 시험했던 전사가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시험에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탈루스 였던가.'

전사 탈루스. 일행들 중 유일하게 문신을 활성화한 남자다.

"멋진 전투였다. 저 늑대들을 상대로 정면 돌격이라니."

그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정말 멋지군! 마고그 족의 전사가 된 것을 환영한다!"

일행 중 가장 덩치가 큰 전사인 아트바도 내 등을 두드리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나는 내게 감탄했다며 칭찬해오는 전사들과 가볍게 악수를 하며 가벼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싸우다 지쳤는지 몸을 돌리는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아, 저거…."

자신을 마도스라 소개했던 전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최근 마탑이 웨어울프를 산 채로 잡고 싶다며 또 떼를 쓰더군. 예전에 실패하고는 또다시…."

그는 정말 짜증 난다는 말투였다.

"말이 되는 계획을 들고 와야지. 도대체가 웨어울프와 뱀파이어의 지능을 되찾아주고 인간의 노예로 부려먹겠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인가?"

마도스는 답답하다는 듯이 떠들었다.

웨어울프와 뱀파이어. 그들과 오랜 시간 대립해왔던 마고그 족 입장에서는 저들의 지능을 되찾아준다는 계획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만 했다.

무언가 잘못되어 저들이 본능을 뛰어넘는 지능을 갖게 되었다간 마고그 족 입장에서 재앙이 될 테니까.

그래도 마탑은 중요 전력이라 초기에는 힘겹게 잡아 주기는 했었는데, 계속된 실험 실패와 뒤처리까지 맡는 바람에 점점 원망이 쌓였고, 생포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결국 거부하는 지경에 이른 것.

그리고 이제는 용병을 이용해 의뢰까지 맡기고 있었다.

"…짜증 날 만 하군요."

나또한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 계획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애매하게 계획이 성공하기 때문이다.

지능을 되찾는 데는 실패하지만, 몸뚱이는 거의 라이칸스로프에 가까운 돌연변이가 태어난다.

격세유전인건지, 아니면 단순히 돌연변이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런 존재가 탄생했고, 마고그 족은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토벌하기는 했지만,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마고그 족의 전투 인원의 1/3가까이가 죽어버렸고, 수련자들 또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전설 스킬 소지자 둘이 한 번에 죽어버리기까지 했다.

그 스킬들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얻을 전설스킬의 원주인들이다.

가능하면 막는 것이 좋지만, 당장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전사의 시험을 통과함에 따라 주변의 수많은 전사들과 안면을 틀 수 있었다.

내가 자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웨어울프를 농락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 듯했다. 게다가 나는 마고그 족의 문화에 대해 잘 아는 편이기도 했다. 강해지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문신을 알아본 적이 있었으니까.

축하를 겸하는 식사를 대접 받고 곧바로 마을로 복귀했다.

더 있다 가라는 이들의 말에 하루라도 빨리 문신을 받고 싶다는 말로 대답했다.

마고그 족은 문신을 아주 중하게 생각하기에 내 말에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영지의 입구 마을로 복귀해 테수스를 만났을 때, 그는 내 시험 통과 소식을 듣고는 정말 기쁘다는 표정으로 웃어 제꼈다.

"오랜만에 우리 일족이 아닌 외부인 중에 제대로 된 전사가 탄생했구나!"

그는 내 등을 두드리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테수스를 향해 가볍게 재촉했다.

"하루라도 빨리 문신을 받고 싶군요."

"그래. 원한다면 그래야지.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

그는 뭐가 그리 기쁜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고그 족은 자신들의 문화가 제국에서 비주류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었다.

나는 용병이고, 내가 문신을 달고 활약을 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문화를 홍보하는 셈이니, 좋아할 수밖에.

게다가 현재의 무력 수준에서 나는 강한 편이다. 일단 B급 용병은 되니까. 수련자들이 등장하고 난 이후에는 제법 많은 수가 불어나기는 하지만, 지금은 나름 상위권이다. 그런 강자가 선택한 기술. 저리 만족스러워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특히 그는 외부 사정을 아는 것으로 보아, 외부에 관심이 제법 많은 특이한 전사인 만큼 아마 효과가 더 크겠지.

"그래, 어떤 문신을 원하는가? 역시 전사의 문신인가? 용맹의 문신도 나쁘지 않다네. 자네 정도의 용맹이라면 금세 각성을…."

나는 즉시 말을 끊었다.

"예전부터 꼭 갖고 싶었던 문신이 있습니다."

"…뭔가? 그게."

"형제의 문신."

테수스의 표정이 굳는다.

"저는 형제의 문신을 갖고 싶습니다."

***

형제의 문신.

1회차 시절, 수련자였던 실제 친형제가 얻었던 문신.

그저 그런 수련자였던 둘은 이 문신을 얻음으로써 비약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문신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마탑의 실험으로 태어난 반쪽짜리 라이칸스로프. 그를 막기 위해 둘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대신 반 토막일지언정 라이칸스로프를 막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문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은 그리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미고그 족의 영지로 온 뒤 꾸준한 수련을 통해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평소 미고그 족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형은 형제의 문신에 얽힌 전설을 듣고 마음에 이끌려 동생과 함께 그 문신을 받아냈다.

이미 스킬 슬롯이 가득 찼던 형제기에 단순한 멋의 의미로 달았던 문신. 수련자는 스킬 슬롯이 없으면 문신을 활성화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슬롯이 남았다면 퀘스트를 통해 쉽게 활성화할 수 있는데, 아닐 경우에는 진짜 스스로 활성화 시켜야만 한다. 수련자들에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에 가까웠다.

덕분에 순수하게 미고그 족의 문화를 존중하는 조건으로 문신을 받았고, 우습게도 그게 득이 되었다.

전설급 스킬은 다른 스킬을 덮어써 스킬 슬롯에 등록할 수 있으니까. 덕분에 자신들이 받은 문신이 전설급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퀘스트를 통해 하나뿐인 던전을 클리어, 전설급 스킬을 얻는 것에 성공한다.

"…자네는, 형제의 문신이 어떤 것인지 알고는 있는 겐가?"

"물론이죠. 모르는 것을 해달라고 하지는 않겠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문신은 두 가지야. 게다가 처음 문신을 만들 분들을 제외하고는, 이제껏 그 문신들을 각성시킨 자가 아무도 없었네."

"자신 있습니다."

"…처음 받은 문신들을 각성하지 않는 이상 주술사는 다음 문신을 새겨주지 않는다네. 정말 할 생각인가?"

"처음 받을 때는 몇 개고 받을 수 있을 텐데요?"

"…설마 두 개를 한 번에 받을 생각인가?"

"네."

테수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짓누르며 말했다.

"가능이야 하겠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짓을 하는 전사는 없어. 하나를 각성시키는데도 얼마나 걸릴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그딴 오만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저는 외부인입니다. 뭣도 모르는 놈이 객기 부리는 거라 생각하겠죠. 별문제는 안 될 겁니다. 어차피 감당하는 것은 저니까요."

"…하. 그래. 그렇지."

그는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이었다.

"기껏 외부에서 온 전사가 실용성보다 로망을 추구하는 놈이라니. 하, 하하…."

그렇게 말하는 테수스는 아쉬워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형제의 문신. 앨거차와 바리치 형제. 이 둘은 마고그 족들이 존경하는 일종의 위인들이다.

주술사인 형 앨거차와 대전사였던 동생 바리치.

두 형제는 마고그 족의 멸족 위기 당시 강성했던 웨어울프와 뱀파이어를 각각 몰아내며 마고그 족을 위기에서 구해내었던 이들이다.

우습게도, 1회차 당시 반쪽짜리 라이칸스로프를 죽인 대가로 쓰러져버린 수련자들과 마찬가지로 앨거차와 바리치는 두 종족을 몰아낸 대가로 죽음에 이른다.

실제로 1회차에서 그 둘은 앨거차와 바리치에 비교되며 죽음 이후 상당히 존중을 받았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럼 가세나."

"무리한 요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사의 인정 받은 자의 선택일세. 내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테수스는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곧이어 나는 테수스가 소개해준 주술사의 앞으로 불려갔고, 내가 형제의 문신을 2개 다 요구하자 어처구니없어하는 주술사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와 테수스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테수스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별수 없다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못 말리는 전사가 들어왔군."

주술사마저 고개를 젓고는 내게 물었다.

"그래, 어디에 하기를 원하는가? 역시 몸통에?"

"아닙니다. 앨거차의 문신은 왼쪽 팔에, 바리치의 문신을 오른쪽 팔에 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한다면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을 터인데?"

"최대한 작게 부탁드립니다."

"…작게 해달라는 말인가?"

주술사는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마고그 족의 전사들은 하나같이 전신을 도배하는 커다란 문신을 선호했으니까.

"예."

"…알겠네. 그리하지."

그렇게 새겨진 문신은 양팔의 하박을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빚어 놓았다.

크기를 최대한 작게 하기는 했지만, 하박의 반 이상을 차지한 문신들은 나름의 멋스러움을 보이기까지 했다.

앨거차의 문신은 묘하게 각이 지면서도 촘촘한 느낌이었고, 바리치의 문신을 묘하게 둥글둥글한 선과 문양, 그리고 필기체 비슷한 문자들이 팔을 따라 줄지어져 있었다.

이런 쪽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기에 그런 문신을 봄에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저, 전설급 스킬을 얻었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 조금 있었을 뿐.

나는 즉시 스킬 슬롯을 확인했고, 전설 스킬 두 개가 슬롯에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비활성화 상태였지만.

그러자 곧바로 메시지 창이 내 눈을 가렸다.

[문신 활성화(앨거차의 문신)(전설)]

-과거 마고그족의 위기를 구해내었던 위대한 주술사 앨거차의 문신이다.

-활성화 조건 : 앨거차가 최후를 맞은 장소에 생겨난 던전 [앨거차의 마지막 유지]를 클리어하라.

-던전 앨거차의 마지막 유지는 앨거차의 문신을 소지한 자만이 입장할 수 있다.

[문신 활성화(바리치의 문신)(전설)]

-과거 마고그족의 위기를 구해내었던 위대한 대전사 바리치의 문신이다.

-활성화 조건 : 바리치가 최후를 맞은 장소에 존재하는 던전 [바리치의 끝없는 증오]를 클리어하라.

-던전 바리치의 끝없는 증오는 바리치의 문신을 소지한 자만이 입장할 수 있다.

끄덕. 그제서야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두 개의 던전은 난이도가 그리 낮지만은 않다고 들었다. 1회차 원주인들도 힘겹게 깼다고 했으니까. 실력이 부족하기는 하더라도, 당시 그들의 수준은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 그들은 자신들의 슬롯을 모두 문신으로 채웠고 활성화까지 끝냈던 이들인 만큼 뛰어나지는 못했더라도 아주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만족하나?"

"네. 무척 좋군요."

"그래. 그렇군."

가볍게 한숨을 내쉰 테수스는 말을 이었다.

"이제 활성화를 위한 조언을 해줘야 할 텐데… 아쉽지만 우리도 모른다네."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감안하고 받은 거구요."

"그래. 그런가."

"그런 의미에서 두 분께서 마지막까지 싸웠던 장소도 들러보고 싶군요."

내 말에 테수스는 그럴 것 같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퀘스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마 마고그 족은 절대 이 문신들을 활성화 시키지 못할 거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내가 수련자니까, 시스템의 도움으로 던전이 생성되니까 가능한 거다.

그마저도 전설 등급답게 1회성 던전이라 그들의 사후 누구도 이 문신을 얻지 못했었다.

"그래, 언제 갈 생각인가?"

"지금 바로요."

나는 어딘가 열망에 찬 얼굴로 말했다.

아마 테수스는 내 기대에 찬 얼굴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겠지만,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알 바 아니었다.

"그래, 그러게나."

그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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