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잠, 잠깐만요. 하연 씨. 울어요?"
나는 당황해서 바보 같은 개소리를 지껄였다.
"읍…. 흐읍…."
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기 무섭게 어떻게든 눈가를 닦으며 울음을 멈추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번 터져버린 울음을 쉽게 멈출 수는 없었다.
"하, 하연 씨. 울지 말아 봐요. 잠시, 잠시만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참으려는 듯했지만, 눈물샘이 터져버렸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린 하유진이나, 나서윤도 아니고. 정말 힘든 상황을 겪어 왔던 남은주도 아닌, 주하연이 울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킁, 콜록. 허엉… 읍, 흐읍…."
주하연은 어떻게든 터져 나오는 오열을 막으려는 듯 입을 막고, 눈물을 닦아내며 참아내려는 노력을 해대고 있었다.
하지만 되려 그런 모습이 더 처량하게 보였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주하연이 계속 우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참아내려는 모습에 일단 다독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회차 시절에 이렇게 대놓고 참지 못한 채 눈물이나 흘렸던 사람은 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설마 우는 사람을 달래게 될 줄은 몰랐다.
등도 두드려주고 말도 건네 보고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답이 없어 한동안 우는 주하연을 끌어안고는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훌쩍…."
품 안에 안긴 주하연은 시간이 흐른 이후에야 진정이 되었는지 품 안에서 조용히 훌쩍이고 있었다.
"…진정 좀 되셨어요?"
"……."
아무래도 어지간히 창피한 모양이었다.
아무 말 없는 주하연을 내려다보며 나는 그냥 하려던 말이나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말이죠. 뭐 버리거나, 팀이 질렸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선 밑밥을 깔았다.
"…질린 거… 아니예요?"
"설마요. 그럴 리가."
역시 아주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는지 주하연은 즉시 반응했다. 그녀는 꼬물거리며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약간 귀엽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었다.
주하연은 나를 가만히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거짓말 같지는 않네요."
아직도 울음기가 조금 남은 듯한 목소리.
나는 내가 왜 그래야하냐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질려서 다 버리고 도망칠 거였으면 그냥 가버리지 거짓말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주하연은 고개를 저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이유가 뭐에요?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랑 기어코 또 떨어지려고 하는 건데요."
"…기어코 떨어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답답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수련이 필요한 타이밍이기도 해서요."
"수련…이요?"
"네. 근력 60. 진작에 다 찍었거든요."
나는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미 이것을 장착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 만큼 내 근력은 이미 60에 도달, 성장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다른 스탯도 마찬가지. 최근 성장이 거의 없었다.
"근데 왜 아직까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 말 하지 않는 내 행동에 주하연은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일부로 차고 있었던 거예요? 저랑 은주 때문에?"
나는 침묵했다.
그걸로 대답이 되었는지 주하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나는 언제나 일행 내에서 정신적인 지주이며 리더임과 동시에 실력적으로도 최고인 존재였다.
일행이 아무리 훈련을 하고 계승을 받고 스킬을 얻어도 나는 여전히 일행 중 최강이었으며, 감히 이겨볼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할까.
사냥이나 대련, 심지어는 단체로 내게 덤벼들어도 팀원들은 나 하나 어찌하지 못하고 하나같이 무너져 내렸다. 어디까지나 대련이었고 이전에 비해 분명 격차는 줄어들어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 내 성장이 멈춰버렸다.
여전히 최강이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일행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나연만해도 분명 다른 일행에 비해 명백하게 떨어지긴 하지만 마력이 자체는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나연이 가장 성장이 늦은 존재였다. 아니,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아니란다.
가장 성장이 덜 되는 존재는 나라고. 그것도 진작부터 그랬다는 것을 밝혔다.
"…이게… 아니, 그게…."
주하연 자신도 알 거다. 자신보다 못했던 이가 자신을 바짝 추격해 끝끝내 추월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과거 나서윤이 보여주었고 최근까지의 하유진이 보여주었던 광경이다.
무섭게 성장해 자신의 뒤를 바짝 쫓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저 위에 서 있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무섭게 치고 올라와도 언제나 나라는 존재가 위에 있었던 거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받아도, 내가 자신의 몫을 포기해도 언제나 강한 모습을 보였고, 질투하지 않는 훌륭한 리더로써의 모습을 보였기에 일행은 내심 안심하며 호의를 받아들였고, 동시에 내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강하게 바라왔다.
그런데….
내가 성장을 멈춰버렸다? 그것도 자신들은 여전히 성장하는 와중에?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아낌없이 퍼준 대가로 리더의, 울타리를 만들어 줬던 이의 미래를 빼앗은 것이 되어버렸다.
탑에서 무력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을 일행들은,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심정일까.
주하연은 떠듬거리는 말로 내게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신후 씨… 저희가, 저희가 바보 같은… 대,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흔들리는 동공. 불안에 떨리는 팔과 희게 질린 얼굴.
아무런 생각 없이 주는대로 받았던 과거의 자신과 그런 일행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했다.
나는 그런 주하연을 다시 품으로 끌어들이면서 말했다.
"뭐가 죄송합니까. 다 내가 원해서 준 건데."
…사실은 빌어먹을 성녀년때문이지만.
"그런 말 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성장 자체는 하고 있어요."
"……."
주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만 그럴 뿐, 사실상 멈춘 거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챘겠지.
그러니 내가 이렇게 나왔다는 것도 깨달았을 테고.
"지금 이대로 멈춰선 안 됩니다. 수련자들도 나오고 나면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1년 안에 한바다 씨를 포함한 수련자들이 밖으로 나올 겁니다. 그때까지 제가 멈춰있을 수는 없어요."
끄덕.
내 말에 주하연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내 성장이 멈췄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그럴 수는 없었을 거다.
"제국에는 오크가 있습니다."
"…들었어요."
그간 여기서 지내며 용병들과 교류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내 일행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들과 싸워서, 레벨을 올릴 계획입니다."
"…레벨이 오르면…."
"능력치도 상승하죠. 아시잖습니까. 레벨이 오르면 능력치가 오르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네."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주하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해요. 누구라도 그렇겠죠."
"그러니, 가야 합니다.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분명, 분명히 돌아올 테니까, 내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주하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얼마나 힘든 고민의 과정을 거쳤을지 헤아리는 듯했다.
남자, 아니 사람으로써 자신이 연인에게 부족함을 인정하고 밝히는 것, 리더로써의 권위,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괴감….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리 행동하려는 거고.
주하연은, 그제야 내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내 품에 안긴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나를 마주 끌어안으며 말했다.
"…7개월이에요."
결국, 주하연은 나를 말리지 못했다.
"…네."
"그 안에 안 오면… 다 버리고 쫓아갈 거니까…."
"물론입니다."
"반드시, 절대, 무조건, 확실하게 무사히 돌아와야 하니까요."
"그럴 겁니다."
"강해지겠다는 욕심에… 무리하면 안 되니까…."
"네."
설마 이런 신파극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우스운 것은,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
1회차에서도, 이렇게까지 나를 걱정해 준 사람은 없었다.
생소한 기분이었지만, 결코 나쁘지는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주하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내게 입을 맞췄고, 결국 그날도 같은 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
"근데 어제는 왜 우신 겁니까?"
"…그런 거를 묻는 거예요? 안 묻는 게 매너 아닌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하연 씨가 우는 것은 처음 봤으니까요. 저는 일행 중 누군가가 눈물을 흘린다면 서윤이나 은주 정도만 생각했거든요. 설마 그럴 줄은 몰라서…."
잠시 고민하던 주하연은 풀썩 웃으며 답했다.
"…저희 집이 독실한 신자였거든요."
"…네?"
"게다가 저는 혼전순결까지 맹세한 몸이라… 전에 사귀었던 남자랑 그런 일 때문에 헤어졌었어요."
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혼전순결?
"그, 그럼 저는…? 괜찮은 겁니까?"
그런 내 표정을 본 주하연은 조금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뭐예요 그 표정은? 설마 책임지지 않을 생각?"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책임질 겁니다."
민첩 만세다.
내 단호한 대답에 주하연은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곧바로 기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신랄했다.
"대놓고 다른 여자 만나겠다는 분이 말은 잘하세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쪽으로는 내가 할 말이 없기는 하다.
"뭐 괜찮아요. 종교도 바꿨으니, 뭔 상관이람."
그건 그렇다. 생각해보면 본래 독실한 집안이었던 것 치고는 상당히 잘 개종한 경우다. 끝까지 개종하지 못하고 망해버린 사제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좋은 예인 셈.
"아무튼, 그런 것 때문에 헤어진 남자가, 어차피 성격이 사람 질리게 하는 년이라 몇 번 먹고 버릴 생각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주하연은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껏 연인이 되어서 앞으로 떨어질 일 없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까… 나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은근히 피해 의식 있었네. 겉으로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그렇다. 아마 가까운 관계가 되지 못했다면 영영 몰랐을 터였다.
그나저나.
'내가 그렇게까지 쓰레기로 보였단 말인가?'
게다가 연인이 되고 난 이후 벌써 반년이 넘어간 상태. 매일은 아니더라도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같은 방을 쓴 입장에서 몇 번은 옛날 옛적에 지났다.
아무래도 그녀가 생각하는 몇 번은 스케일이 다른 듯했다.
"…그만 일어나죠. 다른 일행들에게는…."
"내가 말할 거예요. 나서지 마요."
주하연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히 그런 말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신세를 지는군요."
"내가 받은 게 얼마인데요. 그리고, 우리 파티의 리더님은 언제까지나 강한 채로 계셔야 하니까요."
그녀는 아무래도 내가 강해지기 위해서 떠나는 거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듯했다.
"그냥 파티의 미래를 위해서 제국에 갈 일이 생겼다고 둘러댈 테니까요. 여기 일도 중요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렇게 말할 테니까."
"…납득 하겠습니까."
"제가 알아서 해요."
그렇게 말하는 주하연의 얼굴은, 어제의 눈물을 흘리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죠."
"…신후 씨도…요."
무언가. 입을 달싹거리는 주하연. 또다시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괜히, 자신들 때문에 이리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방을 나섰고, 주하연은 일행을 이끌고 나갔다.
그사이 나는 다량의 식량과 야영 도구를 비롯해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고 영주를 찾아갔다.
내가 잠시 제국에 다녀와야 한다는 말에 그는 난색을 표했지만, 일행이 남아 있고, 주하연이 서브 리더로써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실력이 가장 뛰어나긴 했지만, 일행들의 실력도 하나같이 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조금 아쉽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듯하여…."
확실히 어지간한 일들은 끝난 상태. 아슬아슬한 경계가 무너지고 나면 결국 지키는 것이 관건이 된다. 방어에 있어서 내 존재감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격보다는 덜 한 것이 사실.
수성은 혼자 하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까. 뭐, 규격 외 강자라면 다르지만.
그렇기에 토펜도 아쉬워했지만 말리지는 못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용병들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 더더욱 말리기 힘들게 하는 구만."
뭐 확실히 잠시 여기 돌아온 뒤에 튜토리얼 퀘스트마저 끝내버리면 미궁으로 이동해 그들을 만날 수 있기는 하다.
상황 좀 보고 일부는 그냥 위로 올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알겠네. 조심해서 다녀 오게나."
"감사합니다."
나는 이후 주하연의 말과 내 명령 때문에 더는 말릴 수 없게 된 일행과 이틀 정도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정도는 시간은 주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내가 떠나는 날이 되어서도 일행은 여전히 불안하고, 섭섭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사실, 그건 주하연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매일,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나를 갈구해왔으니까.
나서윤도, 하유진도 매시간을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남은주는 무려 이틀간 수련을 멈추고 일행과 함께 시간을 보냈을 정도.
최근 가장 불안해하는 나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일행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눈물 어린 배웅 속에서 나는 늪지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