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05화 (105/317)

# 105

"…무슨 짓을 할 셈인가?"

"뭐, 저들만 놀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해맑은 얼굴로 답했다.

"…방금 자네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외곽 구역에서는 쉽게 통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말씀드렸죠. 붉은 놈들은 흉포해서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다고요."

"…회색 놈들은 갈색과 달라. 붉은 놀들이 저런 놈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놈들이지."

"맞습니다. 확실히 갈색 쪽처럼 잘 통하지는 않겠죠."

"…그렇다면 도대체…."

"뭐, 별거 아닙니다. 회색 놈들은 지금 인접한 놈들이 위쪽에서 전쟁 중인 것도 모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저들이 자신들의 영역 밖까지 정찰을 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붉은 놀들은 전쟁 중이라는 말이죠."

"…그건 그렇다네."

그리고 그건 갈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놓고 회색을 칠 생각입니다."

"…무슨?"

"영역을 침범하겠다는 뜻이죠. 괜히 적색이나 갈색을 들쑤셨다가 내분이 더 커질 수도 있지만, 역으로 긴장해서 멈추면 안 되지 않습니까?"

적색과 갈색은 서로 싸우기 바쁘고 흑색과 황금은 아예 저 구석으로 쫓겨나 버렸다.

회색과 인간이 전쟁을 한다고 해도 저쪽에서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은 적다는 뜻.

"…인간의 힘만으로는 성벽 없이 회색 하나 감당하기도 힘들다네."

괜히 흑색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제국은 강하지만, 이곳 티드린드는 너무나도 약했다.

"상관없습니다. 전면전을 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저희 파티를 중심으로 검은 놈들에게 했던 짓을 반복할 뿐이죠."

"…그러면…."

"그렇다고 해도 자극받는 것은 직접 침범을 당한 회색 놀들뿐입니다. 열 받아서 쳐들어와 준다면 저희야 좋죠. 하나 정도는 쉽게 감당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문제일 뿐. 하나 정도는 괜찮다. 게다가 저들은 모르겠지만 적색과 갈색은 전쟁 중. 일정 이상의 병력이 일어나면 저들이 평소보다 예민하게 견제할 터였다.

직접 습격을 하지 않으면 일단 위쪽의 전쟁이 멈출 가능성은 낮았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하긴 할거지만.

적색과 갈색이 최대한 계속 싸워대 조금이라도 더 약해지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나중에 수련자들이 왔을 때 보다 손쉽게 이쪽의 영역이 커지고 내가 티드린드와 연합해 중층에서 영향력을 더 행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제안한 방법에 토펜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여왔다.

"자네들만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지. 광산이 절실한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니 말이야. 좋네. 해 보지."

이미 기세를 탄 상황.

토펜 또한 말리지 않았다.

시원시원한 영주의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자네 오늘 시간 괜찮나?"

"…바쁠 것 같습니다."

"이런, 그럼 내일이라도…."

…딱 하나, 여전히 자신의 딸을 내게 이으려고 하는, 끈질긴 태도만 빼고.

***

그 뒤로 3개월에 걸쳐 끊임없이 회색 놀들을 괴롭혔다.

광산 주변을 청소하고 내부의 코볼트들 또한 청소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광산이 던전화 된 덕분에 드랍 아이템으로 광석까지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주에게 보여주자 대장장이에게 알아본 결과 광석의 질이 최상급이라며 광산을 하루빨리 얻고 싶은 것인지 몸이 달아오르는 태도를 보였다.

하기야 광산은 선대, 즉 아버지 대에 확보했고, 그 대에 다시 빼앗겼으니 영주가 되어 실제로 광산의 광석이 얼마나 좋은 지 제대로 확인한 것은 처음일 터. 욕심이 날 만했다.

던전을 클리어함으로써 내부 청소는 손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선대가 개발한 광산은 두 개. 그 외에도 주변에 광산이 될 수 있는 곳은 제법 많았다.

일대가 광물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우리가 회색 놀들을 괴롭히는 동안, 적색과 갈색의 전투는 서서히 진정되어갔고, 이제는 소규모 전투만 끊임없이 일어날 뿐이었다.

흑색과 황금처럼 전체 전력이 반 토막이 날 수준으로 엄청난 전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많치 않은 손해가 났을 터.

전투가 줄어들기 무섭게 나는 대대적으로 회색을 자극했고, 동시에 적색과 갈색의 지역까지 기습해 일대에 다시금 혼란을 가져왔다.

적색과 갈색은 막 전투가 끝나 힘이 약해진 시점에 공격을 받았으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우리에게 제대로 반격하려던 회색 놀들은 주저하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큰 전투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

그 틈에 우리는 광산을 확보했고, 어떻게든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정말 되는군."

"운이 좋았습니다."

"…글쎄. 그토록 집요하게 정보를 가져온 자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전투가 그리 길어진 것은 제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찌 되었든 최소한의 방어선은 만들었지만… 저들이 한 번에 일어나면 답이 없어."

"맞습니다. 이것도 잠시죠. 티드린드 성 수준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려면 정말 몇 년의 시간만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티드린드 성처럼 주변에 괜찮은 토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티드린드 성의 위성 도시가 한계인 지역.

그래도 개발된 광산이 두 개에 후보는 더 많은 지역이다. 가치는 엄청나게 높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의 수익 중 일부가 나에게 돌아온다.

광산이 고갈되어 사라지지 않는 이상에야 지속적으로, 엄청난 수준의 수익을 가져다줄 마르지 않는 돈줄.

하지만 지켜야만 그 돈들이 내 주머니로 들어온다.

이제 최소한의 방어선이 완성 된다면 하나둘 광부들이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할 터였다.

"…그래도 슬슬 자네가 말한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오는 추세더군."

"네. 그들이 이곳에 익숙해지면 슬슬 이쪽 방어에 투입해야죠."

어느덧 우리가 하층에 진입한 지 1년이 넘었고, 슬슬 하나둘씩 수련자들이 하층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수는 아니다. 현재까지 하층에 나타난 놈들은 한 무리, 정확히는 다섯 파티였다.

20층의 보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다섯 파티가 연합해서 나온 듯했다.

그래도 제법 재능도 출중하고 사지를 헤쳐 나왔기 때문일까. 실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레벨도 20을 넘긴 상태로 하층에 나타났고.

나는 그들에게 고블린의 숲이라는 사냥터의 존재를 알리고 그곳에서 성장하게끔 유도했다.

이들과 앞으로 더 늘어날 수련자들을 성장시켜 의뢰라는 명목으로 광산 방어에 써먹을 계획.

다행히 당분간 적색과 갈색의 견제 때문에 회색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만큼 시간은 남아 있었다.

내가 전 층의 고정 안전 구역을 차지한 그 유신후라는 것을 알자 그들은 정말 경악한 표정을 보였다.

게다가 우리 파티의 실력은 그들이 감히 바라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보이지도 않았다. 은근히 내 실력과 힘을 보였고, 그들이 쉽게 기를 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길드를 만들면 덩치를 키우기 위해 산하에 넣을 사전 작업이랄까? 이들 정도면 상당히 엘리트이기도 하니까. 나쁜 수준은 아니었다.

눈에 익을 얼굴들도 몇 있었다. 1회차에서 나쁘지 않은 실력을 보였던 이들이라고 해야 하나? 일부는 중견 길드의 1군 파티에 속했던 이도 있었다. 괴물은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무시당하던 이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로부터 현재 미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어지간하네요."

"…후우…."

주하연과 나연은 새로 올라온 이들로부터 얻은 미궁의 소식에 절로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법자…라."

내가 깨끗하게 청소를 했지만,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언제까지 질서가 유지될 리가 없었다.

살아남은 쓰레기들이 뭉쳐 10구역 밖의 위험 지대를 바탕으로 무법자 무리를 형성했다고 한다.

한바다가 최대한 관리하고 지켜내고는 있지만, 세력이 만만히 볼 수준은 아닌 상태.

그들은 한바다 쪽 사람을 조금씩 사냥하고 기간제 안전 구역 몇 개와 리젠되는 공동을 꾸준히 청소하며 자신들의 본거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바다 쪽에서 몇 번의 토벌 시도를 했지만, 드넓은 미궁에서 그들을 일일이 찾아 다 치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도 대세는 한바다 쪽에 있는 듯하고, 내가 부탁한 마법사들도 철저한 관리하에 잘 성장하고 있다고 하니까, 아주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나는 오랜만에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멜리드 성을 위하여]

-멜리드 성의 영주, 스페레스는 2년 후 고블린들을 몰살시켜 버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 그를 도와 고블린들을 쓰러뜨리자.

-조건 : 2년 후 나타날 초대 메시지에 응할 것. 자신을 제외한 4인과 동반 이동할 수 있다.

-동행이 현재 파티원인 나연, 나서윤, 주하연, 남은주일 경우 보너스가 지급된다.

-보상 : ???

-소환까지 남은 시간 237일

광산 조사는 아예 내가 먼저 협상을 걸어버렸기 때문인지 히든 퀘스트가 되지 못했다. 솔직히 상관은 없었다.

거래를 통해 광산의 지분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받아 냈으니까.

'멜리드 성을 위하여라….'

보너스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튜토리얼의 히든 퀘스트인 만큼, 그 한계가 존재는 한다. 그래도 히든 퀘스트인 만큼, 그 대가가 탐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혹시 아는가? 자유 능력치 포인트라도 받게 될지?

하지만 이 퀘스트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에파토스를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 퀘스트를 위해 아래층으로 이동하면 무려 '미궁'에 재입장할 권한을 얻을 수 있었다.

에파토스를 통해서 미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 내가 부탁하면 에파토스가 거절할 리도 없으니, 확실했다.

'고난의 신전.'

그것을 재차 이용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솔직히 아쉬웠다.

년 단위의 시간을 써야 할 텐데….

'빌어먹을 성녀.'

성녀만 아니었으면 최상의 상태로 고난의 신전에 도전, 빠른 시간 안에 빠져나와 중층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미래의 랭커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

하층도 더 빨리, 더 좋은 상태로 만들어 놓고 중층에서 최대한 레벨을 올린 이후에 최상의 상태로 고난의 신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레벨로 인한 잠재치를 바탕으로 고난의 신전과 수련을 병행하면 반년 안에 고난의 신전을 탈출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성녀 때문에 나 대신 일행이 대가를 챙겨버렸고, 내 최상의 시나리오는 대차게 꼬여버렸다.

그것을 되돌릴 방법은 하나.

퀘스트까지 이제 약 8개월 남은 시점.

이 시간 안에 내가 하층에서 목표했던 것 이상의 성장을 한 뒤에 퀘스트에 응하는 것이었다.

최상의 시나리오만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러려면… 중층으로 향해야만 했다.

하지만 동시에 하층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행을 불러모았다.

"…무슨 일이에요? 신후 씨.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심각한 얼굴.

그럴 만 했다.

일행은 극렬하게 반대할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필요한 일이다.

"…오빠?"

"왜 그래? 신후야. 또 뭔 일 생겼어?"

"…신후 오빠, 설마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형?"

"…일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에요? 설마 또 위험한…."

주하연의 걱정스러운 얼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한동안 일행과 떨어져 행동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발언.

일행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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