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99화 (99/317)

# 99

귀환

해가 중천이 뜰 무렵.

한 파티가 브리터스 마을에 모습을 드러냈다.

흐암.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경 단원이 살짝 졸린 듯, 커다란 하품을 내뱉었다.

곧이어 마을로 접근하는 이들을 발견한 자경 단원은 잠시 움찔했지만, 곧이어 놀들이 아닌 사람임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시간에 나타난 파티를 의아한 듯 유심히 바라보던 자경 단원의 눈동자가 갑자기 엄청난 것을 깨달은 것마냥 찢어질 듯 벌어졌다.

"야, 야, 야야야야야!"

그는 곧바로 자신과 함께 경비 임무 중인 다른 한 명의 어깨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뭐, 뭐야? 왜?"

"저거, 저, 저거!"

"뭐가… 응? 뭐야. 용병인가?"

"아니, 그게, 그게 아니라…!"

"일찍들 돌아 오는구만. 근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정찰하던 놈들이 좀 일찍 오는가 보지. 아니, 뭔가 발견한 건가? 아니면 혹시 부상?"

다른 한 명은 곧바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유신후 파티가 조사를 가고 난 이후, 약 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습격은 없었다.

그리고 유신후 파티 또한 복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실력을 아는 만큼 한껏 기대를 품었던 브리터스 마을 사람들이었지만, 그 기간이 다섯 달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차츰 체념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 동안 놀들이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일행이 붙잡혔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조사차 들어갔던 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습격이 조금 늦어지는 경향이 있기는 했었으니까.

그리고 곧 습격이 멎은 지 반년이 되어간다. 그런 만큼 슬슬 습격이 있을 것을 대비해 다수의 용병들을 고용해 멀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 정찰을 하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최근 용병들은 이 주변에서 사냥 겸 작은 규모의 토벌과 정찰 임무 등을 주로 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아니아니! 이, 이 병신아! 잘 봐! 잘 보라고!"

갑작스레 욕을 먹은 다른 한 명의 자경 단원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도대체 뭘 보라는…."

"씨발! 얼굴! 얼굴을 보라고! 눈깔이 장식이냐!"

"이 새끼가… 도대체 뭘…."

결국 가늘게 눈을 뜨며 가까이 접근하는 용병의 얼굴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응? 오늘 나간 이들 중 저런 이들이 있었나…? 여자가 넷? 와 하나같이 제법… 어…?"

일행의 구성을 파악하던 다른 한 명은 곧이어 저들의 구성이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 하나. 여자 넷. 거기에 애 하나.

못 보던 얼굴이기에 새롭게 들어온 용병인가 싶었지만, 곧이어 깊숙이 묻혀 있던 기억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유, 유, 유…."

말을 잇지 못하는 경비병.

그리고는 곧바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유, 유신후 파티다! 유신후 파티가 돌아왔다!"

***

"유신후 파티가 돌아왔다!"

격한 외침이 들려온다.

우리 파티를 발견한 모양.

복귀 인사치고는 무척이나 격한 반응이다.

"와, 마을이다…."

하유진과 남은주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몸보다는 정신이 지친 듯했다.

"목, 목욕…."

나서윤도 조그맣게 중얼거렸고.

"드디어…."

주하연도 반짝이는 눈으로 마을을 바라보았다.

나연 또한 마찬가지.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 드디어 도착이군요. 도착하면 바로 여관으로 가세요. 촌장은 저 혼자 만나도록 하죠."

"…아뇨, 같이 갈게요."

"괜찮습니다. 그냥 쉬고 계세요."

주하연은 어딘가 갈등하는 표정이었다.

"저 반응을 보아하니, 아마 여관으로 가면 관심이 좀 많이 집중될 겁니다. 그것 좀 차단하고 우선 휴식부터 취하세요."

내 말에 주하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고 싶은 마음과 그리운 침대. 거기에 명분까지 쥐여주자 단숨에 후자의 승리로 판결 나버렸다.

"…미안하고 고마워요.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현명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어느덧 마을의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경비병은 한 명이었다.

하나는 아무래도 마을 내부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간 모양.

우리를 바라보는 경비병의 눈동자는 경악과 감탄, 흠모와 존경이 뒤섞인 상태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이제껏 떠났던 모든 조사 단원은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가 최초의 귀환자인 셈.

중간에 포기한 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간은 보름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즉, 유의미한 조사는 전혀 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기에 반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도달한 우리에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게다가 촌장도 반년을 최대한으로 잡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저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터. 우리의 등장은 더더욱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신후입니다. 조사 의뢰를 마치고, 복귀하는 길입니다."

내 말에 경비병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 오, 오랜만입니다. 유신후 님."

"그러게요.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아아… 그, 촌장님께 소식을 전하러 갔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그렇군요. 그럼 죄송하지만 일행은 안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조금 지쳐서 말입니다. 저는 남을 터이니, 걱정은 마십시오."

"아, 그, 물, 물론입니다. 피곤하시겠죠. 네. 통, 통과입니다. 지나가시면 됩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그런 내 태도에 경비병은 어찌할 줄 몰랐다.

"고마워요 신후 씨. 그럼…."

"네. 푹 쉬고 계십시오.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형, 이따가 봐요!"

"오빠, 고생하세요!"

"고생해."

"감사합니다, 신후 오빠."

다른 일행들은 하나같이 여관을 목표로 나는 듯 달려나갔다.

그 마음을 아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배웅했다.

잠시 찾아오는 정적.

경비병은 어딘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그, 가신 성과는 어떠신지…."

"음… 촌장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단은, 의뢰라서요."

"아… 하, 하하. 그렇죠. 이거, 실례했습니다."

경비병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도 궁금하긴 했을 터였다. 이제껏 귀환자들이 없었을테니, 최초의 소식이다. 마을 소속의 자경단원으로 보이는데,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자신들의 안전과 직결된 상황이니까.

그런 그를 향해 나는 가볍게 말했다.

"아뇨, 궁금하실 테니까요. 음… 자세한 이야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나쁜 소식은 없다… 정도는 말씀드려도 될 것 같군요."

나쁜 소식은 없다.

내 말에 경비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 감사드립니다."

"아뇨, 별말씀을."

"아이고오오오! 유신후 님!"

경비병과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브리터스 마을의 촌장, 루셀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그나저나.

'아이고오라니… 이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얼마나 격하게 나를 반기는지, 반년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주었다.

"살, 살아 돌아오셨군요… 정말, 정말로…."

"네. 의뢰도 제대로 마쳤습니다."

조사 의뢰.

내 말에 루셀의 표정이 더더욱 환해졌다. 이어서 눈물마저 글썽거리고 있었다.

"정,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감격한 목소리와 말투.

설마 진짜 울 줄은 몰랐기에 나 또한 조금 당황했다.

"이, 이런… 촌장님…."

내가 가져온 소식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일단 의뢰 자체가 성공했다는 말만 듣고도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정보가 부족했는지, 얼마나 답답했는지 그 마음고생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이, 이런 추태를… 우선, 우선 안으로 가시지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나는 경비병의 배려로 다른 일행은 우선 여관으로 향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러자 촌장은 경비병을 칭찬하고는 곧바로 자신의 집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촌장에게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고, 우리 일행이 겪은 일들과 놀들의 납치 목적, 그리고 마지막으로 있었던 대전투 이야기까지 들은 촌장의 표정은 내내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그 그럼…."

"네. 앞으로 황금 놀의 그러한 기괴한 습격은 없을 겁니다. 아니, 애초에 이제는 그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군요."

"…정말,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걸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그는 한동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혼란에 빠졌지만, 내가 전투 흔적이 있는 장소를 말해주고 놀 영웅의 시체와 경배하는 황금 놀 부족의 족장 시체를 건네주자 내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믿은 듯했다. 게다가 내가 마지막 전쟁이 있었던 장소를 알려주자 곧바로 사람까지 보냈으니 결국 확인이 될 터다.

"이것으로 의뢰는 완수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 하하… 제가 드린 보상이 되려 부족할 수준이군요."

촌장은 우리가 조사뿐만이 아닌, 아예 일 자체를 해결했다는 것에 감사와 감탄, 허탈한 심정까지 가미된,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번 일은 성주 님께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 정도 수준의 사건이다.

"놀 영웅의 부활이라니…."

촌장은 이번 사건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자신의 윗선인 티드린드 성의 성주이자 티드린드 가문의 영주, 토펜 티드린드에게 소식을 전할 것임을 알렸다.

***

"…그럼 보상이 더 늘어나는 건가요?"

여관의 방에서 주하연이 내게 물었다.

촌장, 루셀과의 대화가 끝나고 난 이후 그 결과를 대강 일행에게 알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나 또한 오랜만의 목욕을 즐긴 뒤 식사마저 마쳤다.

침대에서 오랜만에 잘 생각에 자리에 눕자마자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고, 살짝 일어나는 짜증을 참고 문을 열자 방 문 앞에는 주하연이 서 있었다.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피곤한 것은 피차 마찬가지. 특히 사제인 그녀는 더할 터. 계승을 받았더라도 대부분 신성력에 편중되어 있기에 신체 능력상 더 피곤한 것은 내가 아닌 저쪽이다.

그런데 그걸 감수하고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촌장과의 이야기를 더 캐묻는 주하연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일단 영주 귀에 들어간다면 저희 업적도 더 알려질 테고, 그에 따른 대우나 보상 등은 더 오를 수밖에 없겠죠. 새로운 의뢰까지 해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가져온 일들이 모두 완벽한 사실로 판명 난다면…."

아마 영주는 우리를 앞세워 놀들의 세력을 깎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그 시작은 거의 망가진 황금 놀과 흑색 놀로부터 시작되겠지. 특히 흑색 놀은 놀 영웅 후보가 있는 이상 최우선 대상이 될 터였다.

그래 봐야 혼은 다른 후보를 찾을 뿐. 아마도 몇 번의 과정을 거쳐 혼이 완전히 힘을 잃게 되던가 아니면 놀이라는 종족이 멸족을 당하지 않는 한 언제나 위험이 잠재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저희를 탓하면 어떻게 하죠?"

그게 걱정인가?

"당연히 곧 봉인이 풀리기 직전이었다는 말을 첨부했으니, 되려 저희가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저희 탓으로 미루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건 당연하게 속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듯한 내 표정에 주하연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현명하시네요. 역시."

주하연도 내가 역으로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과장했다는 것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게 걱정이신 겁니까?"

"…아뇨. 알아서 잘하시는걸요. 그런 걸로 걱정하지는 않아요."

"…그럼 왜 찾아오신 겁니까?"

잔걱정때문에 찾아온 것도 아니다. 충분히 피곤할 텐데 왜 이렇게 꾸물거리는지 모르겠다. 의아한 내 표정에 이게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주하연이 되려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이어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했다.

"…아, 에파토스…."

응? 튜토리얼의 플로어 마스터는 왜?

주하연은 곧이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결심한 듯.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신후 씨."

"…네?"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응?

순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뉘앙스를 모를 수는 없었다.

곧이어 성지에서 있었던 키스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

나는 순식간에 당황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