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93화 (93/317)

# 93

'확실히, 강해지긴 강해졌군.'

그것도 엄청난 속도다.

벌써 화 계통의 대표 마법인 파이어 볼을 사용했다.

대표 마법이긴 하지만, 파이어 볼은 하급 마법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준은 아니긴 하다. 가장 널리 쓰이는 마법이고, 대량 학살이 가능한 마법이니까. 현시점에서 무속성 마법도 아니고 4대 속성 중 하나인 불 계통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다.

아무래도 어제의 계승이 영향을 미친 듯했다. 이제껏 쓴 적이 없었으니까. 어제 그렇게 자랑을 한 것 중에 이 일이 없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미처 자랑을 하지 못했거나 밤사이에 지식이 더 녹아들면서 가능해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생각 이상으로 큰 소리가 울렸다. 하기야, 처음 써보는 것일 테니 위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아도 실제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겠지. 최대한 강한 것을 쏘라는 내 말에 일단 위력이 가장 강하긴 하니까 쓴 것일 거다.

하지만 이번 폭발의 영향으로 다른 정찰대가 올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몇 안 되는 잔당을 처리하고는 곧바로 일행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일행이 우리 쪽으로 접근해왔다.

폭발의 흔적. 그 위력을 보면서 나서윤 자신을 포함한 다른 파티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제 이런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거야?"

남은주는 정말 놀랐다는 듯이 나서윤에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요. 자고 일어나니까, 대충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예상이 맞았다. 역시 아직 지식을 다 흡수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기야 그 많은 힘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였는데 단숨에 소화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는 한다. 기초 마법 이론의 등급이 상승할 만큼의 지식이다. 아마 전체적으로 많은 지식이 흘러들어왔을 거다.

"소리가 너무 컸다. 주변에 정찰대가 있었다면 이쪽으로 달려올 거야."

확실히 소리가 엄청 컸다. 어지간한 곳에는 다 퍼졌을 터. 다른 정찰대가 못 들었을 거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내 말에 나서윤이 조금 풀죽은 기색이 되었다.

"아니, 네 잘못은 아니야. 내 지시에 맞춘 것뿐이니까.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빨리 처리했으니 괜찮아."

"네…."

위로해주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빨리 갑시다. 이대로 가면 정찰대가 먼저 오겠어요."

"네."

"…응."

한 박자 늦은 나연의 대답.

나연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만든 흔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놀들에게까지 죄책감을 갖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보고 있던 것은, 말 그대로 자신과 나서윤의 마법이 만든 폭발의 흔적 그 자체였다.

복잡한 표정.

확실히 그럴 만했다. 나서윤이 자신을 앞지르기는 했지만, 실프까지 있는 이상 원거리 화력에서 자신이 이렇게까지 밀리진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로 깨달은 것 같았다.

자신과 동생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는 것을.

최하급 정령인 카사의 파이어 볼과, 나서윤의 파이어 볼의 흔적은 두 배, 아니 거의 세 배 가까이 위력의 차이가 있었다.

마력 능력치의 차이, 부족한 정령의 격, 나서윤이 얻은 지식들과 둘의 재능의 차이까지.

많은 요인이 나서윤의 손을 들어주었고, 결과로 나타났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더 빠르게 이동할 뿐.

아니나 다를까, 폭발의 여파는 강했다.

우리가 달려가는 방향에서 작은 규모지만 놀 정찰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

일이 꼬였다.

"…이대로 처리합니다. 돌아갈 시간은 없어요."

곧이어 다시금 나연과 나서윤의 마법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나연은 이번에 제대로 위력을 높일 셈인지 카사와 실프를 동시에 소환했다.

나서윤은 파이어볼 대신 매직 애로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나연을 제지하려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이미 알려진 상황. 차라리 빨리 끝내고 이동하는 것이 낫다. 일단 이 일대를 벗어난다.

이어서, 둘의 마법이 다시금 작렬한다.

콰쾅!

이전의 커다란 굉음에 비하면 작은 소리. 하지만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카사의 파이어 볼에 실프의 보조를 곁들여 위력을 높인 나연의 파이어 볼.

확실히 이전에 비해 위력이 1.5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서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연발 매직 애로우. 관통."

폭(爆)은 사용하지 않는다. 소음에 신경 쓰는 듯했다.

슈슈슈슉!

순식간에 날아가는 매직 애로우의 개수가 30발을 넘었다.

게다가 날아간 화살들은 하나같이 놀들을 그대로 뚫어버리고 진형을 파괴해 버렸다.

관통 속성. 게다가 자세히 보니, 매직 애로우 자체가 회전하고 있었다.

회전에 관통 속성까지. 매직 애로우가 관통한 놀의 신체에는 뒤틀린 엄지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뚤려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급소를 관통했다.

수준 높은 컨트롤까지. 나는 나서윤의 일취월장한 마법 실력에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세세한 컨트롤은 없었다. 대단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파이어 볼 보다 지금의 모습이 더 수준이 높다고 느낄 지경. 실제로는 적성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기에 단순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객관적으로도 파이어 볼에 비해 그 수준이 결코 떨어지는 광경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나연의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나는 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들킨 상황이긴 하지만, 파이어 볼은 자제하도록 해."

나연의 파이어볼은 약하기에 소리가 큰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지금은 내비 두었지만, 다음부터는 위치 특정을 피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는 나연에게 가볍게 경고를 해 주었다.

"…응. 미안."

아직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반쯤 넋이 나간 나연과 일행을 데리고 놀 정찰대를 마무리한 다음 곧이어 흑색 놀과의 접경을 목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놀들의 끈질긴 추격이 이어졌다.

한 번 위치를 특정 당하니, 넓게 퍼졌던 놀 정찰대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

이후 우리가 습격하는 것보다 습격을 받는 경우가 더 잦아졌다.

"컹컹컹!"

빌어먹을. 하루는 어떻게든 버텼다. 휴식은 없었지만, 상당 부분을 이동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틀 가까운 거리를 더 이동해야만 한다.

아무런 방해만 없다면 하루면 도착할 거리.

하지만 지속적인 방해가 들어왔다.

아직까지 체력은 괜찮다. 하유진과 나연마저 컨디션이 떨어졌을지언정 잘 버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지는 미지수였다.

지금만 해도 달려오는 놀들이 제법 많았다.

"…남은주와 하유진이 후열을 지킨다. 서윤아, 따라와."

"네."

우리는 우리를 쫓아온 놀 정찰대를 바라보며 역으로 달려들었다.

우리를 쫓아온 놀 정찰대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져 이제는 거의 다섯 백인대 규모였다.

모두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하압!"

신체 능력치도 분명하게 높아진 나서윤은 오러를 동원해 나 못지않은 전투 수행 능력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 위에는 놀들의 시체가 가득할 지경. 하지만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손해였다.

위치를 완전히 들킨 상황이었기에 싸웠을 뿐. 되도록이면 전투를 피하고 싶었다.

이어서 나연의 지원이 이어지고, 일부 돌아서 후열을 노리는 놀들은 남은주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유진이 돕기는 했지만 그게 필요한지 의문일 지경.

남은주는 굳건한 자세로 달려오는 놀들을 쳐내고 으깨버렸다.

전투 자체는 무척이나 편해졌다.

이전과는 다르게 후열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고, 나서윤도 고작 이런 적들에게 당할 수준이 아니기에 마음 놓고 날뛸 수 있었다.

500인대 규모의 놀 무리를 잡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장족의 발전이지만,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도 들켰군."

"…어쩔 수 없어요. 오빠. 수가 너무 많아요."

급속도로 돌파한다는 계획은 어긋나 버렸다. 애초에 황금 놀들의 행동을 늦게 알아챈 시점에서 아웃이기는 했지만.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이대로 간다면 답이 없다.

"…일단 접경 지역까지는 이동해 보자. 상황을 보고,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아."

딱딱한 목소리. 내 말에 나서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가 이동하는 위치로 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쉴 시간도, 장소도 부족하다.

그렇게 우리는 접경 근처에 도착하는 이틀 동안 수십 번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뤄야만 했다. 점점 포위망이 접혀 오는 것이 느껴진다. 만약 일행의 신체 능력이 전체적으로 오르지 않았다면 진작 따라잡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나연과 하유진은 이미 각각 나서윤과 남은주에게 반쯤 업혀서 이동하는 꼴이었다.

이렇게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역은 29구역. 과거 28구역이었던 장소로 왔음에도 구역이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황금 놀의 본대가 따라오고 있군.'

그것도 우리와 비슷하거나 빠른 속도인 것 같았다.

곤란하다. 본대는 절대 만나서는 안 된다.

접경 지역이 멀지 않음이 느껴졌다. 접경 지역이 다가옴에따라 정찰대를 만나는 수가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기야 접경 지역에는 늘상 전투가 일어나니, 이쪽에 정찰대를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할 만 하다.

그렇게 조금이지만 여유를 얻은 우리는 접경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익숙한 풍경들. 이미 한 번 본 풍경이다. 그러나 반갑지는 않았다.

나는 멀리서 바라본 접경 지역의 모습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찰대를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접경 지역에는 전투가 한참 이뤄지고 있었고,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규모의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놀 본대. 그들은 우리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경배하는 황금 놀 부족의 깃발.

그것이 한참 전투 중인 접경 지역에 꽂혀 있었다.

***

"……."

일행은 침묵했다.

그럴 수밖에. 황금 놀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꼴이었으니까.

저들은 애초에 우리가 이쪽으로 향한다는 것에서 우리 목적을 알아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우리를 추적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대신, 소규모 부족들을 이용해 꾸준히 우리를 압박해 속도를 늦추고 자신들은 그대로 접경 지역으로 달려온 것 같았다.

'…중간에 방향을 틀었어야 했나….'

물론 바보 같은 생각이다. 중간에 방향을 틀었으면 저들 입장에서는 훨씬 좋았겠지. 인간의 마을 쪽으로 가려면 그냥 이동해도 6일은 걸린다. 충분히 소식을 접한 뒤 달려와도 늦지 않는 거리. 지금에 와서 돌린다고 하더라도 저들은 전장에서 천천히 물러남으로써 다시 우리를 추격하기 시작할 터다.

아마 아래로 내려가면 다시금 정찰대와 추적대가 깔려 있을 터였다.

"…어쩌죠."

힘 빠진 주하연의 목소리.

그녀도 지칠대로 지쳤다.

삼 일간의 강행군. 그녀들은 이런 상황이 올 줄은 상상치 못한 듯했다.

한껏 강해졌으니,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듯했다.

나는 이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기에 정신적인 충격은 덜 한 편이었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립되는 상황. 물론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기가 위기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회차에서 더한 위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때 멍청하게 공포와 혼란이라는 감정에 지배되었다면 현재 나는 여기에 있을 수 없었겠지.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했다.

접경 지역에 도착하고 난 뒤로 정찰대의 수가 팍 줄어들은 것은 사실. 그렇기에 우리도 이렇게 조금이나마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30구역에 가까운 지역이라면 상대적으로 놀들의 수가 부족하고 경계도 옅었다.

이제 접경 지역을 통해 빠져나간다는 계획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몇만, 아니 이제 중심 부족이 접경 지역으로 이동해 왔으니 흑색 놀 쪽에서도 반응이 올 터. 양 측을 합해 10만이 넘는, 놀들이 우글거리는 장소를 돌파할 능력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 아래쪽으로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역으로 정 반대 방향인 갈색 놀 지역으로 탈출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되려 인간 쪽 진형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일행을 바라보자 한껏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힘을 얻어 자신감 넘쳤던 주하연도, 이제 자신도 1인분을 할 거라 생각한 남은주도. 전설 스킬을 다섯 개나 얻어서 내게 큰 도움이 되겠다던 나서윤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번에 아무런 계승을 받지 못한 나연이나 하유진은 더한 표정이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한 뒤, 아쉽지만 이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방법이다. 정말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계획이 조금 어긋나겠지만, 생존이 우선이다. 계획도 살아 있는 다음에나 가능한 거다.

나는 거인을 상대해야 한다. 고작 놀 따위에게 죽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버팁니다."

"…네?"

"버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군요."

"…신후 씨? 무슨 소리를…."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말했다.

"30구역으로 넘어가서 버티겠습니다."

"…얼마나 버티실 생각이신데요?"

주하연도 딱히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일행에게 선고하듯 말했다.

"최소 반년. 최대 2년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

일행은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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