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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90화 (90/317)

# 90

폭풍 성장

나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엄청나게 당황했다. 감정이 넘쳐 흐른 것은 알겠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적당히 멈출 줄 알았는데….

주하연은 내 목을 강하게 끌어안고는 고개를 틀며 입술을 부벼왔다.

츄릅.

혀까지 파고들어 오려는 기색에 나도 모르게 받아들일 뻔했지만, 곧바로 달려온 나서윤에 의해서 주하연의 시도는 무너졌다.

"떨어져!"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여긴 놀의 성지였다. 심지어 계승도 다 끝나지 않았고.

나답지 않은 실수다. 아무래도 억울함에다가 분노, 질투 때문에 1차로 이성이 마비되었고, 남은주와 주하연이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해 와서 2차로 정신이 나간 영향인 듯했다.

현실에 오면 원상태가 될 거라는 예측도 빗나가버려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고.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즉시 손을 들어 입술을 훑었다.

그사이에 입술이 침 범벅이 되었다. 키스가 길게 이어진 것도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어지간히 물고 빨았다 싶었다.

"언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나서윤이 주하연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뭐긴? 키스했지."

감정이 격해져 실수를 했다는 내 판단과 다르게, 주하연은 무척이나 당당했다.

그 당당함에 나서윤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했지만, 곧바로 이어 외쳤다.

"오, 오빠한테 허락도 안 받고 갑자기 무슨 짓이에요!"

"응? 신후 씨, 기분 나빴어요?"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거 성희롱이라고요!"

솔직히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순간 내 전리품이 되었을 스킬과 능력치를 뺏긴 기분을 잊었을 정도.

물론 키스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당황한 감정에 이전 감정이 덮어 씌워졌을 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키스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뭐, 내가 주하연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동의가 없었으니 어떤 의미로는 성희롱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긴 하다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서윤아, 그만하렴."

"오빠! 하지만!"

나서윤은 어딘가 배신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외쳤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주하연에게도 말했다.

"하연 씨도, 방금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아직 위험 지역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하는 행동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군요."

"…그렇네요. 죄송해요."

안전 문제를 지적하자, 그런 쪽에서는 예민한 주하연은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즉시 사과했다.

확실히 감정이 흘러넘치긴 한 모양이다. 안전 문제를 잊어먹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주하연의 사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뭐라 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나도 잘한 것은 없었고. 당황했다고는 해도, 파티장이라는 놈이 분위기에 잠시나마 휩쓸리긴 했으니까.

나는 일단 나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우리가 들어간 뒤에 무슨 특별한 일 있었어?"

"…아니, 없었어."

어딘가 놀랍기도하고 당황하기도 한 듯한,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서윤이의 계승을 끝마치는 것을 우선하도록 하죠."

일행은 내 말에 동의했다.

그게 원래 계획이기도 했고.

"그럼, 서윤아."

"…네."

나서윤은 조금 불퉁한 표정이긴 했지만, 내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가자."

"네."

나는 나서윤과 함께 놀 영웅의 시체로 다가갔다.

이미 결계를 유지하던 에너지는 주하연과 남은주에게로 들어간 상태. 우리를 막는 것은 없었다.

남은 것은 놀 영웅의 가슴에 박힌 검과 사체뿐이다.

놀 영웅은 확실히 컸다.

나는 말 없이 사체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저걸 잡으면, 아마 자연스럽게 계승이 될 거야. 엄청 아플 테니까, 조심하고."

"네, 오빠."

조금 긴장한 표정의 나서윤이 검으로 다가갔다.

나서윤이 검을 잡음과 동시에 나도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온 김에 심장을 파괴한다. 그럼으로써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할 셈이었다.

나서윤이 검으로 다가갔고, 곧이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화아악!

앆와다는 다른 느낌의 빛 덩어리가 생성된다. 그러나 과정 자체는 같았다.

으득-

역시 고통이 상당한 것은 같은 건지, 나서윤은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도 피가 흐를 정도로 강하게.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면 힐을 한번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일단 계승이 먼저다. 심장 파괴는 그 뒤로 미룬 상태였다.

일단 계승을 하는 데 조금이라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았으니까.

'아, 그렇지.'

나는 마침 시간도 있겠다, 남은주와 주하연의 상태 창을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무릎 사건과 포옹, 키스로 이어지는 3단 콤보 때문에 둘의 상태 창을 확인하지 못했다.

원래라면 전설 스킬을 각자 2개씩 얻고 끝났을 텐데, 결계 유지를 위한 기운까지 흡수했으니 능력치도 폭증했을 터. 게다가 발전 가능성, 그러니까 잠재치도 상승시켜 준다고 했으니, 둘 다 최소 상급, 잘만 하면 최상급의 잠재력을 지니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심 기대가 되었다.

나는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 저 멀리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 주하연과 남은주의 상태 창을 열었다.

능력치를 확인하자, 상당히 상승한 수치들이 보였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정도의 기운을 처먹고는 고작 저거 상승했다고? 설마 몽땅 잠재력을 키우는 데 쓴 건가? 순간 당황했다. 적어도 내 능력치는 간단히 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 능력치가 전부 40을 넘겼는데, 이 둘의 능력치 중 40을 넘긴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고작 이거 올라서는 질투한 내가 추할 뿐이다. 효율이 병신 수준이었나? 설마 싶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스킬 창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놓친 것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미쳤다.

[상태 창]

-이름 : 주하연

-나이 : 26

-직업 : 성녀(전설)

-LV. 25

-신체 능력

근력 : 25 민첩 : 25 체력 : 32 신성력 : 45

-자유 : 1(100미만)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성흔(전설)

스킬 목록

-교리(슈퍼 레어)

-악마 심판(슈퍼 레어)

-정화의 대지(슈퍼 레어)

-여신의 손길(전설)

-여신의 가호(전설)

-성역 선포(전설)

-봉인(자격 부족)

-봉인(자격 부족)

-봉인(자격 부족)

[상태 창]

-이름 : 남은주

-나이 : 22

-직업 : 성녀의 수호자(전설)

-LV. 24

-신체 능력

근력 : 39 민첩 : 36 체력 : 41 신성력 : 30

-자유 : 1(100미만)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수호자의 규율(레어)

스킬 목록

-힐(레어)

-성당 기사 수련법(레어)

-하급 성당 기사 무기술(레어)

-수호(슈퍼 레어)

-정신 무장(슈퍼 레어)

-봉인(자격 부족)

-봉인(자격 부족)

-봉인(자격 부족)

-봉인(자격 부족)

-봉인(자격 부족)

직업도 둘 다 전설급이다. 성녀와 성녀의 수호자. 이름만 들어도 대다한 직업이라는 것을 단숨에 짐작할 수 있는 이름들. 게다가 직업 변경에 타 차원의 관리자들이 간섭하지 않았으니, 우선권은 그대로 이쪽에 있다. 어차피 있어도 내가 있는 이상 타 차원에 뺏길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변한 것은 직업뿐만이 아니다. 고유 스킬까지 변했다. 주하연의 슈퍼레어급 신앙심이 '성흔'이라는 전설 스킬로, 남은주는 샘솟는 활력이라는 일반 등급의 고유 스킬이 '수호자의 규율'이라는 레어 스킬로 변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별게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들. 다름 아닌 스킬 슬롯들의 변화였다.

내 기억으로 주하연의 스킬 슬롯은 5슬롯, 남은주는 3개에서 1개 늘어나 4슬롯이다.

그런데 주하연의 슬롯이 9개로, 남은주의 슬롯은 무려 10개라는 심상치 않은 숫자로 변해버렸다.

물론 절반씩 자격 부족이라며 공개되지 않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주하연은 최소 하나가 전설, 남은주는 최소 두 개는 전설일 거라는 거다.

내가 기억하는 한 1회차에서 장비를 통해 얻은 스킬은 성녀의 축복과 성역 선포인데, 성녀의 축복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성기사의 스킬인 여신의 징벌과 철벽의 수호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즉 최소 하나에서 두 개는 전설 스킬일 거라는 것. 당장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자격이라는 것이 충족되면 개방된다는 뜻이다.

미래의 흥행 보증 수표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관리자의 눈동자로 보이는 둘의 잠재력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본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저 스킬들을 모두 개방하고 꾸준한 수련을 통해 능력치를 올린다면 최상급 잠재력 못지않은 수준의 능력을 손에 넣을 거다.

…미래에 랭커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나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저 스킬들을 모두 내가 받아들이려고 했다면 처음 몸이 터져 죽은 남자마냥 내 몸이 터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스킬 개수는 고유 스킬을 합하면 주하연 10개, 남은주 11개다. 일부 스킬들은 상위 스킬로 진화하거나 변형된 듯하지만, 대부분은 완전히 새로운 스킬들.

그나마도 둘이 나눠서 저렇지 나 하나에게 저걸 모두 쏟아부었다면….

부르르.

…이중 계약 스킬이 있어도 그냥 죽었을지도 모른다. 최초의 생각대로 일부 스킬들만 받았다면 모를까, 봉인지를 유지시키는 힘까지 합치니 현재 내 육체 수준으로는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욕심에 눈이 멀었었나.'

성녀의 협력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킬 슬롯만 해도 저 정도를 차지한다. 그나마도 탑의 축복이라는 신화급 스킬 덕에 늘어난 스킬 슬롯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숫자라니….

저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7대 성녀가 내게 줄 생각만 있었다면 서로 협의 하에 가능한 만큼만 받아들였어도 나는 충분히 괴물이 되었을 터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빌어먹을 성녀.'

그때였다.

화악-.

빛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덧 나서윤의 계승 의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성녀의 협조가 없더라도, 애초에 나서윤은 그릇이 다르다. 별다른 위험도 없이 무척 빠르게 계승 의식이 끝났다.

그런 만큼 나는 나서윤이 얼마나 성장했을지 궁금해졌다.

남은주와 주하연의 성장세를 본다면 나서윤의 성장 또한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배도 아프지만.

나서윤은 봉인을 유지하는 힘이 다른 둘에 비해 부족했기에 능력치의 큰 상승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잠재력이 이미 괴물이라 그쪽으로 새는 힘이 없는 만큼 조금은 상승했을 터.

나는 곧바로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

[상태 창]

-이름 : 나서윤

-나이 : 16

-직업 : 마검사(레어)

-LV. 25

-신체 능력

근력 : 36 민첩 : 38 체력 : 34 마력 : 44

-자유 : 2(100미만)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마력 친화(전설)

스킬 목록

-이도류(二刀流)(슈퍼레어)

-기초 마법 이론(레어)

-4대 속성 개론(레어)

-고속 영창(레어)

-마력 회로 특화 - 이중 나선 구조(전설)

-오러 친화(전설)

-두 개의 심장(전설)

-프레이멀식 마력/오러 단련법(전설)

-전설 죽이기(비활성)(전설)

-없음

-없음

-없음

…이거 방심하면 안 되겠다. 어쩌면 나서윤에게 따라잡힐지도.

앞선 둘과 다르게 본인의 자격이 충분한 만큼 모든 스킬을 이어받았다. 확실히 개수는 둘에 비해 적었다.

마력 회로 운용술이 마력 회로 특화 - 이중 나선 구조로 변경되고 기초 마법 이론의 등급이 레어로 상승 했다. 아마 숙련도 상승과 계승이 상승 효과를 이룬 듯했다.

그 외에는 오러 친화와 두 개의 심장, 프레이멀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마력/오러 동시 단련술에 전설 죽이기라는 전설급(…) 스킬 까지….

얻은 전설 스킬이 5개다. 수는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 질 만큼은 어마어마하다 할 수 있었다.

나서윤의 잠재력은 여전히 최상급. 게다가 전설 스킬이 다섯에 본인의 고유 스킬도 전설급이다. 단지, 직업은 용사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마검사라는, 나중에 얻었을 직업을 미리 얻었을 뿐이었다.

하기야 능력 있는 이를 용사로 뽑아 성검을 하사했을 뿐이니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저 모든 스킬들이 하나같이 전부 패시브. 즉 자기 단련을 위한 스킬들이라는거다. 아니, 저 전설 죽이기는 모르겠지만. 일단 비활성이긴 하다. 조건을 살펴보니 격에 맞는 이와 전투 시 자동 활성화라고 되어 있었다.

'…강자 저격용 스킬인가….'

어지간하다 진짜.

액티브에 비해 패시브 스킬들이 당장은 부족할지 몰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설급 액티브라면 조금 다르긴 하더라도, 나중에 가면 패시브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중론. 특히 재능이 넘치고 본인의 노력하면 할수록 그 차이는 벌어지게 되어있다.

나서윤은 제 양손을 펼친 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태 창을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스스로의 재능이 어마어마한 만큼 아마 자신의 변화를 직감하고 있겠지. 어쩌면 패시브스킬들의 영향으로 쏟아지는 지식들을 소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나서윤을 지나쳐 놀 영웅의 사체로 접근했다.

가슴팍. 심장이 있는 자리를 조준하고, 강하게 검을 찔러 넣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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