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85화 (85/317)

# 85

조사 의뢰

일행에게 말해줄 시간은 없다.

어차피 리더는 나. 게다가 돌발 상황이다. 나는 즉시 하유진을 따라 인간들이 끌려가고 있다는 곳으로 이동했다.

"어떤 상황이었지?"

"그게… 저도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어요."

"…뭐?"

"족장으로 보이는, 화려한 황금 놀이 나타났어요. 근데 조금 이상한 기색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나는 굳은 표정이 되었다.

"…들킨 거냐?"

말하면서도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 외부에서 보았을 때, 별다른 일은 없었으니까.

"아뇨, 그건 아니에요. 낌새가 이상해서 즉시 숨었죠. 다행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주변을 살피는 듯했지만, 저를 발견하지는 못했어요. 그냥 기분탓으로 여기는 듯하더라구요."

몬스터지만 저들이 지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놀 족장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기야, 자기들 영역, 그것도 가장 깊숙한 곳인 데다가 마을 내부에 뭔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겠지.

하유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를 찾지 못하니까 곧바로 사람들이 갇힌 감옥 안으로 들어가더라구요. 그러더니 사람 다섯 명 정도를 끌고 나왔어요."

나는 이동하면서도 하유진의 말을 경청했다.

"사람들은 끌려나오면서 비명을 지르더라고요."

"뭐라고 하던?"

"그러니까… 엄청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거기는 싫어!'라던가, '이거 놔!', '제발, 제발 살려줘!',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라는 말들을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마지막 한 명은 새로 끌려온 세 명 중 한 명으로 예상되었다.

다른 이들, 특히 처음 말을 한 놈의 말로 추정해 보면,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처럼 말하는 데 반해, 마지막 말을 한 놈은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황인 것 같았으니까.

내부에서 다른 인간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을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래도 직접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하기야 열흘 가까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자주 가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잡혀간 이후로 시간이 제법 흘렀다. 우리가 습격을 물리치고 장비를 맞춘 후 훈련한 시간이나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 기다린 열흘 등을 합치면 두 달이 넘는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무슨 일을 당하지 않았다라….

"아, 그리고 끌려간 사람들은 그나마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상당수가 삐쩍 마른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그들이 최대한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이고 운동까지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최초로 봤을 때 대부분의 인간이 삐쩍 곯았었다고 했었다.

놀들이 억지로 인간의 건강을 유지시키려고 했었지.

진짜 열흘 동안 아무 일도 없어서 진짜 애완동물인가 싶기도 했는데, 그건 아닌 게 확실해졌다.

족장 때문에 하유진도 아주 가까이는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먼 거리에서 관찰할 필요가 느껴졌다.

하유진이 가르킨 방향으로 이동하던 중 슬슬 내 시야에도 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력을 사용해 시력과 청각을 강화, 족장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둔 채 이동했다. 하유진에게 내 근처에 있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내 일이다.

이동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인간들이 반항하고 반항해도 놀들은 적당히 묶어서 들고 이동할 뿐이었다.

나중에는 입까지 막아 말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게 했다.

한 번은 반항하던 인간에 의해 한 놀이 면상을 얻어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으르렁거릴 뿐 결코 보복성 구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인간을 들고 움직일 뿐.

나중에는 반항하던 인간들도 지쳤는지 슬슬 가라앉긴 했지만, 체력이 조금만 회복되도 다시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몸을 뒤틀어대고 있었다.

'뭐지? 뭔 일이지?'

적어도 자신들이 뭔 짓을 당하는지 저들은 알고 있었다. 하유진이 해준 말도 그것을 추측하게 해 주었다. 그렇다는 즉, 그 짓을 당하고도 살아서 돌아왔다는 뜻이 된다.

정말 다시 가기 싫지만 살아서는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

나는 지금 저들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쪽으로 쭉 간다면….'

1회차 시절, 경배하는 황금 놀 부족이 있던 장소가 나온다. 나름 말단이지만 토벌에 참가해 봤기에 알고 있었다.

암석지대도 그 덕에 알고 있었고.

물론, 토벌은 실패했다. 거기까지 진군은 했지만….

'놀 영웅에게 깨졌지.'

그리고 그 영웅은 훗날 놀들을 통합, 사실상 왕이 되어 버린다. 제국에서 위협을 느껴 토벌이 나오기 전까지 그들은 이쪽 지역을 유린하며 어마어마한 군세를 형성한다.

그런데 지금 가는 방향이, 과거 그 장소다.

30구역의, 중심 부족이 존재했던 터.

어느 시점이 되자 곧바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수 조건을 만족해 다음 구역에 진입합니다. 레벨이 부족합니다. 주의하세요.]

[30구역, 봉인된 놀의 성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봉인?'

봉인. 과거 이 장소의 이름은 그냥 놀의 성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봉인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이건 확실히 기억한다. 몇몇 구역의 특별한 지역은 이름이 붙어 있다. 대표적으로 21~24구역의 '고블린의 숲'. 31구역의 초입은 '광활한 늪지'. 사실상 35구역까지 전체가 늪지라 정보 전달 목적이 강해 보이긴 했다. 그 외에 35구역의 '아지렉의 대지', 마찬가지로 35구역의 '리사르의 둥지'와 '리버그의 은신처'. 그리고 30구역의 '놀의 성지'. 그 외에 광산에도 이름이 붙어있는 장소가 있다.

그런 장소의 이름이 1회차와는 다르다. 즉, 저 봉인이 나중에 풀린다는 뜻. 뻔하다. 나는 단숨에 저 봉인이 놀 영웅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메인 퀘스트의 내용. 놀 영웅의 부활을 저지하라.

'그래, 이런 식이었군.'

설마 놀 성지 자체가 봉인된 상황일 줄이야. 1회차에는 이미 경배하는 황금 놀 부족이 성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지역 봉인이라니….

도대체 뭔 짓을 하면 지역 자체를 봉인한단 말인가? 나중이라면 모를까, 여기는 하층이다. 상상하기 힘들만 했다.

놀의 성지 안쪽 깊숙한 곳까지 놀들은 이동했다.

놀의 성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인간들의 반항이 극에 달했다. 정말 마지막 힘을 다해 저항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거대한 놀. 황금색 가죽을 가진, 제법 큰 덩치의 경배하는 황금 놀 부족의 족장보다도 두어 배는 더 큰 덩치의 놀이 쓰러져 있었다.

'놀 영웅.'

놀 영웅이다. 과거에도 본 적이 있어서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엄청나게 먼 장소에서 얼핏 본 게 다였지만. 특이한 점은, 과거에 보았던 놀 영웅보다도 더 커 보인다는 것.

물론, 얼핏 본 것이라 확신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놀 영웅의 사체, 가슴 중앙에 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게다가 그 주변에는 넓게 몇몇 무기들이 땅에 박혀 있었고, 몇몇 장비가 주변에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저게 무엇인지 안다.

'전설 등급 장비들!'

저것들이 내가 원하던 것들이다. 저 무기 자체의 성능도 괜찮기는 하다. 물론, 전설 등급에 어울리는 성능은 아니다. 끽해야 상급 레어 수준? 그런데도 저 무기들의 등급은 전설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저 무기들을 통해 전설 등급의 스킬을 획득할 수 있으니까!

'어째서 저기에?'

다른 부족들이 갖고 있어야 할, 그 무기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검, 방패, 스태프, 완드, 로브, 여성용 사제복, 장갑….

저 장비 중 다섯 개가 전설 스킬을 계승하게 해 준다.

그런데 이상했다. 저 장비들에서 은은한 빛이 나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알고 있는 전설 스킬을 계승해 주는 장비들이.

과거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컹컹컹!"

아쉽게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능은 있는데, 격이 부족하다는 뜻.

족장이 짖어대자 놀들이 인간들을 앞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묶인 밧줄의 일부를 풀기 시작했다.

"싫어! 싫다고! 난 이제 다섯 번째란 말이다!"

밧줄에서 풀리고 물렸던 재갈을 풀자 곧바로 한 남자가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놀들은 인정사정없었다.

곧바로 소리 지르는 남자를 제압한 채 질질 끌고 가기 시작.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거친 동작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놔! 놓으라고! 안돼, 안돼!"

"뭐야, 도대체 뭐냐고!"

한 명. 하유진이 말했던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외쳤던 남자만이 상황을 덜 파악한 듯, 다른 인간들의 몸부림에 한껏 겁에 질려 같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외 네 명은 하나같이 미친 듯이 반항하고 있었다.

곧이어 반항하긴 했지만 가장 반항이 덜 했던, 처음 온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놀들에게 이끌려 장비에 가까이 가기 시작했다.

'…설마! 안돼!'

곧바로 남자가 장비에 손을 올린다.

이런 미친! 저게 어떤 장비인데, 저기에 손을! 내 전설 스킬이…!

급격하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저건 훗날에도 전설 스킬을 계승하는 장비들이다. 지금 스킬을 계승했다면 2회차에서 스킬을 주지 못했을 텐데…?

곧바로 내 의문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저게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스스로의 목청을 찢어버리는 듯한 소리.

득음을 위해 폭포 아래에서 수련을 했다고 하는데, 저 비명을 폭포 아래에서 질렀다간 폭포 소리가 묻혔을 것 같았다.

듣기만 해도 그 고통의 일부가 느껴지는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으, 으아! 으아아아!"

그 비명을 들은 나머지 네 명의 사람이 더더욱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살려, 살려줘! 살려줘!"

하지만 의미 없었다.

놀들의 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차례차레 장비에 강제로 손을 댈 수밖에 없었고 하나씩,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악!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특히 마지막 한 명의 저항이 정말 처절했다.

"안돼, 안돼… 난, 나는 다섯 번째야, 다섯 번째라고! 이번에, 이번에 닿으면 정말 죽는다고! 안 된다고!!"

놀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족장 정도면 알아는 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과거에 족장 정도면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눈치라고 했었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족장의 손짓은 단호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역시 남자의 손이 다른 장비에 닿았고,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혀, 형, 저거, 저거 뭐에요?"

나는 대답해 줄 정신이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 저게 뭔 상황이지?

막 뭐라고 말이라도 해 주려던 순간이었다.

"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펑!

푸득, 후드득.

자신이 다섯 번째라고 한 남성. 그가 마지막 단말마를 내지름과 동시에 그의 몸이 폭발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그 남자의 육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이이잉--

그러나 사방팔방으로 튄 육편은 어느 선을 경계로 더는 튀지 못하고 아래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장비들이 늘어선 구역. 자세히 보니 놀 영웅의 시체를 중심으로 장비들이 일정하게 둘러싸듯 펼쳐져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다섯 번째라 말했던 남자를 제외한 이들이 몸부림을 멈췄다.

"꺽! 꺽!"

더는 비명을 지를 힘도 없는지 꺽꺽거리는 이들.

폭발한 한 명을 제외한 넷은 일단 살아남은 듯했다.

"컹! 컹컹!"

족장이 짖자, 다른 놀들이 그들을 하나씩 들어 올렸다.

인간들은 더는 저항할 힘도 없는지 힘없이 끌려갔다.

자세히보니, 살아남은 인간들은 하나같이 10kg은 빠진 듯했다.

몸도 엄청나게 피곤해 보였고.

족장은 한참 동안 남은 장비들을 확인하더니 다시금 인간들을 이끌고 자신들이 왔던 장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것, 저 행동. 방금, 인간을 이용해 저 장비에 손을 대게 한 것.

저것이 놀들의 목적이다. 뻔했다.

저 장비들은, 놀 영웅의 시체를 봉인하고 있는 거다.

아마도, 저 상태에서는 놀 영웅이 부활하지 못하는 거겠지.

놀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완전히 기척이 사라졌을 때. 나는 장비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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