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조사 의뢰
"…그럼, 출발하시는 겁니까?"
"네. 다른 물품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입니다. 이건 저희가 해 드려야죠."
나는 촌장과 독대하고 있었다.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자 촌장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하루 동안 푹 쉰 뒤에 바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부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단 하루만 쉬고 곧바로 출발한다는 말에, 촌장은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우리, 특히 남은주가 받던 훈련은 촌장이 가끔 와서 보고 그 강도에 질려 할 수준이었다 보니, 고작 하루만 쉰다는 것은 자신을 배려한 덕분이라는 것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을 테니까.
나는 촌장을 통해 물품들을 전부 받아 놓았다.
연이 닿아 아공간을 갖고 있다는 말은 이미 전해 두었기에, 무척이나 많은 물품을 지원받을 예정이었다.
만약의 경우도 대비해야 했고, 정말 최악의 상황이지만, 적진에 고립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장비 값에 비하면 이 정도 지원은 별것도 아니다.
장비 값은 최종적으로 3200골드 정도가 나왔다. 3천 골드가 넘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넘을 줄은 몰랐다.
그가 우리의 무기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이 원인인 듯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용병들은 하나같이 부러움과 축하를 보내왔다. 사실 시기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의 실력을 아는 만큼 함부로 나서는 멍청한 놈들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활약을 하면 마을에서 보상을 준다는 생각에 최근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촌장으로서는 무척이나 바라던 상황.
그리고 뒤늦게 우리 파티가 조사 의뢰는 나간다는 소문 또한 퍼져버렸다.
브 삼 형제가 우리를 찾아와 그런 위험한 임무를 왜 나가냐고, 아무리 너희들이 뛰어나도 결국 죽을 거라며 같이 방어나 하자는 설득을 해 왔지만, 나는 장비 지원의 조건 중 하나였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맏이인 브리컬이 재능 있는 용병을 사지로 던진다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우리 장비의 가격을 듣고는 곧 침묵했다. 촌장도 필사적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는 결국 우리에게 살아서 오라는 말을 끝으로 자리를 피했었다.
촌장과의 자리를 파하고 여관으로 돌아와 일행에게 전달했다.
"미리 말했다시피, 모레 곧바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촌장과도 이야기가 잘 되었구요. 내일 창고로 가서 물품들을 인벤토리에 담을 겁니다. 그것을 제외하면 휴식이니,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 올리세요. 특히 은주. 그간 고생했다. 내일 푹 쉬고. 네 물품은 내가 따로 챙겨 올 테니까, 꼼짝하지 말고 방에서 쉬어."
"…네, 감사합니다, 신후 오빠."
남은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냈다. 별거 아닌 일이기도 하고, 내가 단호하게 쳐다본 것을 보고는 아니라고 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다음 날이 되어 일행과 함께 브리터스 마을의 창고를 왕창 털어 주었다.
상상 이상의 물자를 가져가자 촌장은 당황한 듯했지만, 내가 넌지시 많은 물자를 가져갈 거라는 말에 어느 정도 대비를 해 놨기 때문인지 그런 표정은 금세 사라졌다.
나는 미궁 조각까지 사용해서 예비 물품들을 가득 챙겼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촌장은 도대체 장비가 그 수준인데, 아공간 주머니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냐, 너무 당황한 나머지 튀어나온 그의 질문에 우리는 그냥 연이 닿아서 마법 같은 기술로 갖고 있을 뿐, 마법 물품이 아니라고 해명해야만 했다.
나는 남은주의 물품까지 챙겨 일행과 함께 여관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진짜 제대로 된 휴식. 나는 일행에게 최대한 휴식을 할 것을 주문했고, 일행은 받아들였다.
나는 남은주에게 물품 전달을 위해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네."
벌컥.
나는 남은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약속했던 물품. 그거 전해 주려고 왔다."
"아, 감사합니다. 신후 오빠."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의 물품을 꺼내 차례로 전달해 주었고, 남은주는 하나씩 받아 자신의 인벤토리로 옮겼다.
"…이렇게 많이 받아 오셨어요?"
"공짜니까."
나는 가볍게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자 남은주는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곧바로 표정이 가라앉았다.
"응? 왜?"
"…아뇨, 새삼 오빠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딱히, 그럴 필요는… 아니, 지금 대화에서 뭐 때문에…."
"저번에 성에서 그러셨었죠. 돈 얼마 없다고…."
그런 기억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충분히 많은데? 의뢰비도 꾸준히 들어와서 지금은 다시 복구했어."
"그래도, 튜토리얼 졸업 직후만큼은 안 되시잖아요…."
그렇긴 하다. 그때가 내 인생, 1회차와 2회차를 통틀어서 재력으로는 전성기였다. 골드가 1만 골드에 보석은 1천 개, 최고급 보석도 수십 개였으니, 최저로 잡아도 2만 골드가 넘는 돈을 소유했었으니까.
물론, 앞으로도 돈 벌 계획은 충분히 있고, 나중에는 이 전성기를 우습게 볼 수준으로 벌 거지만.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강해졌고, 살아서 여기까지 왔잖아. 이것도 그 연장이야."
"…그래서, 새삼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저는 따라가기 바빴으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요…."
"뭐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 내가 얼마나 굴렸는데. 되려 따라와 준 게 고맙지. 걱정 말고 너 클 생각만 해도 돼.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최근 주변 환경을 보면서 자신들이 엄청 행복한 환경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 듯했다.
아마 훗날 더 족쇄가 될 거다. 2년 정도 뒤로 예상되는, 후발 주자들의 입장. 물론 빠른 이들은 1년 정도만 지나도 하나씩 올라오긴 할 테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이 나와서 하나씩 구르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더더욱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네. 열심히… 할게요…."
내가 자신만만하게 걱정 말라고 말하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남은주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떠듬떠듬 대답했다.
"그래. 오늘 푹 쉬고. 내일부터, 힘내자."
"네, 오빠도 푹 쉬세요."
"그래."
나는 웃으며 남은주의 방을 나왔다.
일행은 내 당부대로 정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다.
거의 방에서 쉬거나,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몸이 찌뿌드드하다 싶으면 가벼운, 정말 운동 수준의 훈련이나 대련 정도만을 했고 체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다음 날이 되자 일행의 얼굴색은 명백하게 밝아져 있었다.
나는 이른 새벽을 출발로 잡았다.
그에 맞춰 일행들은 기상했고, 다들 일찌감치 식사를 끝낸 뒤 곧바로 마을을 나섰다.
새벽부터 드레너와 촌장이 우리를 배웅했다.
"조심하십시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딱히 우리가 조사에 기간을 잡지는 않았다.
이제껏 제대로 돌아온 이들이 있지 않는 이상, 얼마나 걸릴지 예측할 수가 없었으니까.
촌장은 그래도 짧으면 두어 달, 길면 반년 정도를 예상한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년 씩이나 시간을 잡아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모른 척 다량의 식량을 챙겼다.
사실 반년도 넘는 분량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으면 우리가 결국 다 쓰니까. 인벤토리 내부에서는 상하지도 않고.
그렇게 우리는 새벽부터 마을을 떠났다,
***
우리의 이동 수단은 사실상 도보. 궁수가 없기에 가장 경험이 많고 신체 능력이 뛰어난 나와 도적인 하유진이 길잡이 역할 겸 척후 역도 해야만 했다.
하유진은 내심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이 신나는 듯 보였다.
"유진아, 너는 특성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안 걸려. 네 수준이면 놀 들은 사실상 널 발견 못 해. 그걸 이용해서…."
나는 하유진을 가르치며 사방을 경계했다.
인간의 영역은 진즉에 지나갔다.
여기서부터는 놀들의 영역. 물론 모든 영역 내에 놀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후각에 민감한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행에게 전달된, 후각 교란을 위한 물품들을 꼼꼼하게 사용하도록 지시해 두었다.
어느새 우리는 26구역에 들어와 있었고, 시스템 메시지만큼 정확한 것은 없었다.
21~25구역은 마을이나 성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편이라면, 26구역부터는 성과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처럼 큰 구역을 형성한다. 밖으로 나갈수록 27, 28, 29, 30구역을 형성하는 것. 물론 완벽한 원형은 아니다. 부락의 세력이나 힘에 따라서 경계가 정해지는 편이니까.
어디까지나 이 구역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자격을 의미하는 것. 탑 입장에서는 튜토리얼과 미궁까지 지난 인원이 너무 쉽게 죽는 것을 방지하려는 거다.
31구역은 또 다르게 모너스 마을의, 우리가 처음 나왔던 장소에서 반대 방향으로 이동, 30구역까지 관통해야만 갈 수 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대충 30구역 가까이 가야지만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원인을 조사하라는 것은, 결국 잡혀간 인간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알면 대강 알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가끔가다 와서는 5명 이상의 인간을 납치해간다. 그냥 바로 잡아먹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럴 거면 그냥 왕창 납치해가지, 찔끔찔끔, 그것도 살려서 납치해갈 이유가 없었다.
잡아가서 어딘가에 쓴다는 뜻. 그리고 그게 부족해지면 다시금 납치한다는 뜻이니, 효용이 다할 때까지는 살려둘 가능성이 높았다.
과연 어디에 쓰는 걸까?
과거 이 시간대에 여기 존재하지 않았다 보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일단 과거의 기억과 우리가 활약한 전투에서 놀들이 도망친 방향대로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벌써부터 놀들의 부락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저녁 무렵이 될 때까지 이동하고 나서야 첫 부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 저기, 저기 찾았어요."
"그렇네. 좋아.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쉴 장소부터 확보하고 다시 오자."
마력이 있는 이상 어둠 속에서도 정찰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게다가 하유진은 그냥 저 정도 구역이면 은신 써서 대놓고 들어가도 살아올 수 있을 수준이라고 본다.
어차피 놀들은 주행성. 생긴 건 개나 늑대, 하이에나의 중간쯤 생긴 대가리를 가진 주제에 행동은 주행성이다.
실제로 고블린이나 훗날 보게 되는 오크들도 주행성. 물론 사냥이 잘 안 되거나 하면 야행성으로 패턴을 바꾸기도 한다.
나는 일행에게 첫 부락을 발견했다고 알리고는 곧바로 쉴 장소를 확보했다.
그리고는 일행과 함께 조심스럽게 마을을 관찰했다.
"…인간은 없는 것 같군요."
"그렇네요. 하긴,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인데… 이들이 습격한 주범은 아닐 테니까요."
부락,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300마리 정도? 백인 대장 하나가 지배하는 곳으로 보였다.
처리하고 갈까 싶다가도 쓸데없는 행동인 듯해서 일단 일행과 함께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경험치를 생각하면 습격이 좋겠지만, 일단 조사가 먼저다. 내 예상대로라면 대 부족이 있는 30구역은 가야 결과가 나올 텐데, 벌써 소란을 일으키면 골치가 아프다.
퀘스트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처음 조우한 마을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후 26구역을 지나 27, 28구역에 도달해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점점 부락의 규모는 커져만 갔다.
슬슬 돌아가는 것도 힘에 부쳐 황금 놀 부족과 흑색 놀 부족의 접경선을 이용, 흑색 놀 부족의 습격인 것처럼 위장해 걸리적거리는 부족을 학살하며 더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9구역.
나는 그곳에서 이상한 것을 확인했다.
1회차, 30구역에 존재했던 놀들의 대 부족. 정확히는 각 색깔 놀의 부족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 부족. 통칭 중심 부족을 상징하는 깃발. 그것이 29구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1회차의 기억. 그것이 어긋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