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브리터스 마을
루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은 뒤 지도까지 챙겨서 일행이 배정받은 여관으로 돌아왔다.
일행은 내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맞아 주었다.
"어땠나요?"
"들어 보면 상황이 개판이더군요."
"…3구역이나 지나쳐 왔는데, 뭐 좀 챙겨야 할 텐데요."
확실히 우리는 드레너를 따라서 21구역의 모너드 마을부터 시작해 22구역, 23구역을 지나쳐 24구역의 브리터스 마을로 들어왔다. 중간중간 구역을 지나칠 때마다 메시지가 떠서 일행들도 확인한 사항.
각 구역의 경계를 지날 때마다 [특수 조건을 만족해 다음 구역에 진입합니다. 레벨이 부족합니다. 주의하세요.] 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수 조건. 현재는 메인 퀘스트지만, 다른 거주민들의 부탁 등으로 이동할 때도 적용되는 조건이다.
덕분에 1회차에서도 다음 구역의 진입 조건이 무엇인지는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루셀에게 받아온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이쪽이 황금 놀들의 부락이 많은 곳이라더군요. 이번에 들어오는 놈들은 대략 500 남짓. 백인대 다섯 정도라고 합니다."
"이쪽 수는 어떻게 되나요?"
"마을 내에서 끌어모은 덕에 자경단은 100 정도에 용병은 쉰 남짓, 중앙의 성인 티드린드 성으로부터 지원받은 병사가 백 정도 된다더군요."
"250…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수비 자체는 될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버티는 것은 가능한데… 문제는 놀들의 목적이 인간의 납치라고 하더군요."
"…납치요?"
나는 루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일행에게 설명했다.
"그렇군요…. 특이하네요. 최대한 죽이지 않는다니…."
"덕분에 마을의 자경단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몸을 사리기 바쁘다고 합니다."
"확실히 그럴만하네요… 응? 표정이 왜… 설마?"
주하연은 말하다 말고 내 얼굴을 보곤 표정이 변했다.
웃는 얼굴. 주하연은 금세 내 의도를 눈치챘다.
"…날뛸 생각인가요?"
"네. 잃었던 근력을 거의 복구 했거든요."
"…후, 괜찮겠어요? 상대는 500이라고 했어요. 최근 검기라는 것을 쓰는 걸 보긴 했는데…."
드레너에게 보여줬던 때를 기억하는 듯했다.
"좋은 기술인 것은 맞지만, 함부로 쓰기는 힘듭니다."
검기를 쓰면 진짜 제대로 날뛸 수 있기는 한데, 몸에 무리가 가므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저나 나연이, 서윤이가 지원을 한다고 해도 500은 위험해요. 잃었던 근력을 대부분 되찾았다고 해도, 그만큼 성장은 하지 못한 거잖아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자신감을 가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신후 씨가 그렇다면 맞겠죠 뭐."
내가 자신있게 말하자 주하연은 곧 알겠다는 듯 물러났다. 해명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걱정이 되어 저런 것일 뿐. 전투에 관해 내 의견이 옳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럼 다음 습격 때는 신후 씨가 나서는 순간 지원만 하면 될까요?"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저를 제외한 인원은 마을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지하겠습니다. 원거리에서 지원만 하세요. 내가 물러날 때가 되면 서윤아, 너는 나와도 된다. "
"네!"
나서윤은 기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서윤 정도면 퇴로 확보 정도는 도와도 된다. 내가 못 빠져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이 있다면 더 편한 것은 사실이니까. 사실 나서윤 정도면 근력만 떨어지지 않았어도 같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는 그냥 방어만 하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신후 씨. 가장 위험한 곳에 가시는데… 조심하세요."
"…누가보면 지금 싸우러 가는 줄 알겠습니다…."
묘한 어조에 미묘한 표정으로 말하자 자신도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주하연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아, 그, 그렇네요. 아, 아하하."
조금 민망한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늘 오전에 왔었기에 당장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을 밖으로는 되도록 나가지 말아 달라고 하니, 숙소나 공터에서 수련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은주랑 서윤이. 일정이 꼬이긴 했지만, 그래도 수갑은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니까 포기하지 말고 훈련 꾸준히 하도록 해."
"네. 오빠."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남은주는 능력치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도 겸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부디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은주의 성장세나 스킬 슬롯을 얻는 것을 보면 탑의 관심이 남은주에게 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관심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계속, 꾸준히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탑의 시선이 남은주에계 계속 남아 있다면, 다른 일행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이득이 될지 모르니 신경을 꾸준히 써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강의 정보와 행동 방침을 설명하고는 해산, 각자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이 되어 연무장으로 사용되는 공터에 나가자, 우리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저들인가?"
"그래 이번에 새로 왔다는 용병들이라더라."
"F급이라던데."
"진짜? 용케 살아서 여기까지…."
"실력은 아니라던…."
벌써 소문이 퍼진 듯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일행은 조금 다른 듯했다.
알게 모르게 주변을 살피고 경계한다. 지금껏 탑에서 만난 인간들 중 첫인상부터 쓰레기인 이들이 절반이다.
8층은 무법자 지망생들의 습격, 한바다는 샤우팅, 20층에서 11층으로 내려갔을 때는 신입 사냥이나 하는 쓰레기들.
충분히 경계할만한 이유가 되었다.
"어이! 신입들!"
최근 신입 소리 듣고 당했던 게 습격과 성희롱이다.
별로 좋은 예감이 들지 않았다.
우리를 부른 것은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었다.
"무슨 일이죠?"
"이야, 꽃밭이네. 그쪽 부인들?"
이쪽은 능력만 있으면 일부다처나 일처다부는 흔한 경우였다.
의외로 이건 시비가 아니다. 부러워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주의할 요소이기도 한 것.
실제 하렘이면 능력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신경 끄세요."
주하연이었다.
"이런, 까칠하네. 와 신입 능력 있어. 근데 너 여긴 왜 온 거냐?"
"의뢰가 있었으니까요. 보수도 좋고 해서 왔습니다."
"그럼 알고 온 거냐? 여기 놀들은…."
"사람을 납치한다는 거 말입니까."
"이런 아는군?"
끄덕끄덕.
남자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지. 방어전 때 함께 움직일 생각 있나?"
"…왜 그래야 합니까?"
"말했잖아 그 놀 놈들은 우리를 납치하려고 한다고. 솔직히 갈 데만 있었어도 이런 곳에 안 오는데… 별수 없지. 너도 알겠지만 다른 마을은 정찰 말고는 사실상 의뢰가 없으니까. 돈 챙겨서 제국으로 돌아가려면 여기뿐이거든."
그는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말했다.
"이야기가 샜군. 아무튼 놀 놈들이 목책에 달라붙어서는 우리들을 잡아 끌거거든? 어떻게든 살려서 잡아가려고 기를 쓴단 말이야. 그러니 주변의 다른 파티들과 협력은 필수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함께하자고 말하는 거다."
"…그렇군요."
파티의 연합제의. 이건 탑에서 흔하진 않지만 없는 일도 아니다. 훗날 수련자들이 대대로 올라오게 된다면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파티 연합이 생기기도 하니까. 조금 더 지나면 더 큰 집단인 길드가 탄생해서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면 길드별로 뭉치기에 점점 빈도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어때? 그쪽 실력 괜찮다는 소문이 있기는 한데…."
내 일행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하렘까지 차린 것을 보면 신빙성이 높단 말이지."
"딱히 하렘은 아닙니다. 다들 실력있는 동료에요."
"근데 그거 사실인가? 자네 일행에 마법사가 있다는 거."
"…있기는 있죠."
"호오!"
그는 정말 끌린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누구… 아니, 아니지. 아무튼, 대답 좀 해주지? 우리랑 함께할 텨?"
"거절합니다."
나는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왜? 우리가 셋뿐이라? 이래 봬도 우리 실력 괜찮다고? 이 근처에서 브리컬, 브룩, 브루거스 삼형제 하면 제법 실력 있는 C급 용병들로…."
"아직 연합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껏 우리끼리 해결하지 못한 상황은 없었거든요."
"…쯧. 그러냐? 그래. 알았다."
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의외라면 의외였다. 첫째로 보이는 이가 몸을 돌리자 남은 둘 중 하나도 몸을 돌렸다. 그러나 마지막 한 명이 내게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중에 연합할 생각 있으면 우리한테 먼저 오라구."
"브루거스! 뭐 해!"
"아, 알겠소, 형님. 걱정 마시구랴. 질척댈 생각 없수다."
그는 정말 마지막 여지만 남길 생각이었는지 이후 나머지 둘을 따라 자리를 피했다.
"…브리컬 3형제를 거절했군."
"꽤나 건방진데?"
"마법사가 있대잖아. 소문에는 사제도 있다고 그랬어. 함부로 덤비지 마라."
"…쓸데없는 싸움 할 생각 없으니 걱정 말지?"
웅성웅성.
나는 귀찮다는 눈초리로 힐끔힐끔 우리를 바라보며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괜한 싸움은 피하고 싶은지 내 눈초리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이건 좀 낫군.'
이쪽 이들은 제 몸 사리는 성격이라 그런지, 크게 시비를 걸거나 달라붙지는 않았다.
애초에 여기까지 온 용병들은 뻔하다.
외곽, 국경 지역이라도 격이 있다. 여기처럼 돈도 안 되고, 애매한 이들만 있는 장소는 기피 해당.
B급 이상의 용병들이 하나도 없는 것만 봐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경범죄자이거나, 잦은 의뢰 실패 등으로 신뢰가 떨어져서 제국에서 일거리를 얻기 힘들기에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온 이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적당한 수준에 적당한 돈벌이나 찾다 보니 온 케이스일 가능성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제대로 된 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방금 그 브리컬 3형제라는 놈들 말대로, 그 정도면 제법 쓸만한 이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보기에 용병들은 대부분이 D랭크의, 가장 흔하고 평범한 수준의 이들로 보였고, 자경단도 그정도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가 날뛰기 정말 좋은 환경인 거다.
내 능력은 용병으로 따지면 B랭크 수준은 될 테니까.
검기를 쓰지 못해도 양민 학살은 검기를 쓰는 B랭크 용병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양민 학살의 대명사인 정령사와 마법사까지.
솔직히 활약 못 하는 것이 이상한 조합이다.
브리컬 3형제를 제외하고도 우리 쪽에 사제와 마법사가 있다는 소문 때문인지 몇몇 파티가 더 접근했지만, 나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자경단 쪽에서도 같이 행동하자는 듯한 모션이 있었지만, 그쪽도 정중하게 거절해 둔 상태.
애초에 그쪽은 내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권한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간섭하기 힘들어했다.
사방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로 일행과 함께 수련을 반복하길 이틀째.
한참 수련을 하던 와중,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땡땡땡땡!
"습격이다! 놀 놈들이 쳐들어왔다!"
습격을 알리는 종소리와 경계병의 외침.
우리는 즉시 무기를 챙겨 들고 마을 입구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