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브리터스 마을
"드레너라고 합니다."
시리드의 말대로 브리터스 마을에서 온 남자는 무척이나 의욕적이었다. 자신의 마을을 아낀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약간 피곤해 보이는 남자는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이번에 마을에 오신 용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등급은 낮지만, 실력은 아니시라고."
그는 우리 일행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사제에 정령사에 마법사까지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법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전에 모너스 마을을 돕기 위해 싸웠을 때는 나서윤이 마법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 만큼 이들은 나연을 마법사로 생각하는 듯했다.
분명 정령사라고 말해줬는데,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정령사입니다."
"…네. 마법사가 아니라 정령사시군요."
그게 뭔 상관이냐는 듯한 모습. 하기사 저들 입장에서는 마법이든 정령 마법이든 큰 차이가 없기는 할 터다.
그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희 마을에 놀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몇 년 새 왜 이렇게 날뛰는지 모르겠지만, 마을 입장에서는 매번 올 때마다 사람들을 잡아가서 골치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실력이 뛰어나시다고 들었습니다."
"듣기로 그쪽에 지원간 용병과 자경단이 제법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하단 말입니까?"
"…몸을 너무 사리기도 하고, 상대 숫자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몸을 사려요?"
"그 놀 놈들은 우리를 습격해 식량이나 물자를 약탈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저희 마을을 무너뜨려 땅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아니고요. 현재까지 보인 패턴으로는 사람이 목적으로 보입니다."
"…사람을요? 뭐에 쓰려고…."
"저희도 알지는 못합니다. 이제껏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입혀도 어떻게든 살려서 끌고 가더군요. 한두 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몇 년 동안이나 그런 모습을 보이니, 이제는 자경단들도, 뒤늦게 합류해 정보를 획득한 용병들도 하나같이 몸을 사리더군요."
"그걸 그리 말해 줘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가시면 알게 될 것, 속여봐야 뭐 하겠습니까."
솔직하다. 마음에 든다. 슬쩍 일행을 확인하자, 겁을 먹었다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담담해 보였다.
그 모습에 드레너는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다.
"실력 있는 분들께 어차피 들킬 내용으로 속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보수는 충분히 지급하겠습니다. 부디 저희 마을을 도와주십시오."
드레너는 말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팍 숙여왔다.
"…조건을 들어 보고 괜찮다면 의뢰를 받겠습니다."
드레너는 급하게 허리를 펴더니 우리에게 줄 대가를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전리품은 당연히 이쪽에서 갖는다. 이건 거의 모든 용병 계약에서 받아 내는, 기본적인 대우다. 특정 개인을 호위하는 의뢰나 특정 물품을 목적으로 용병을 고용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이 의뢰는 아예 마을 방어전.
당연히 받아내야 하는 대가에 불과했다.
의뢰금은 우리를 C급에 준하는 용병으로 대우해 주었다.
C등급이면 베테랑 용병 수준.
현재 우리가 들고 있는 패가 F급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대우를 해 주는 거다.
"정령사와 사제가 포함된 파티에, 이정도 대우만 하시겠다고요?"
그러나 나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F급 패를 들고 있지만 대우는 C등급으로 해 주겠다? 분명 우리를 높게 평가해 주고는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우리 일행은 그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 나만 해도 B등급 용병 정도는 충분히 잡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C등급 대우? 성에 차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말했듯 사제와 정령사라는, 무척 희귀한 이들이 내 파티원이다.
특히 이런 대규모 방어전에서 둘의 가치는 C급 정도로 취급될 수준이 아니다.
정말 형편없는 놈들이라면 C급 판정에 불만이 없겠지만, 얘들은 내가 키운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병패가 F급인데 더이상의 대우는 힘듭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시고 방어전에서 활약을 하신다면 조건을 더 올려 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C급으로 부려먹겠다는 의미다.
확실히 우리를 언제 봤다고 실력을 평가하겠는가.
그걸 대신할 용병패가 F급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저 C급 평가도 소문만으로는 힘들고, 사제와 정령사가 있음으로 인해 가능한 대우일 터다.
그렇다면 조금 더 증명하면 그만.
나는 검을 꺼내 들고는 마력을 불어 넣었다.
최근 마력이 성장하고 육체를 길들임으로써 작은 성과가 나왔다.
"후."
곧바로 검에 검기가 삐죽 솟아오른다.
그 모습에 드레너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더니, 곧바로 저게 무엇인지 눈치채고는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검기…, 엑스퍼트(expert)?"
검기를 뽑는 용병은 B급에 해당하는 실력자다. 물론 나는 현재 육체가 길이 덜 들었고 마력도 많은 편이 아니라 검기를 펑펑쓰며 싸움을 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지금도 검기를 뽑을 수는 있지만, 검기를 펑펑 써대며 전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검기를 뽑는 것 자체가 일정 경지에 들었다는 증거.
저들은 간절한 만큼, 나를 홀대하지 못한다. 거기에 정령사와 사제까지. 나는 드레너의 다음 행동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B등급 용병 몸값에 걸맞는 금액을 지불하겠습니다. 그 외 요구하신 숙소나 식사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타 마을에서 용병을 구해가는 이들답게, 제법 권한이 있는 듯했다.
우리는 곧장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독립 작전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차피 커다란 군대도 아니고 저 독립 작전권이라는 것은 그냥 이름만 거창할 뿐 단순히 개인행동을 해도 막지 말라는 뜻에 불과하다.
나는 이게 반드시 필요함을 밝혔다. 물론 저런 것을 준다고 해서 마을 방비에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작성해야 했지만, 의견을 관철할 수는 있었다. 실력을 보인 덕택에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진 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계약에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에 진입하였습니다!]
메인 퀘스트. 나는 메시지 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도착한 브리터스 마을은 진짜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마을의 외형이나 처한 상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 자체의 방벽은 단단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분위기. 분위기가 정말 좋지 못했다. 얼마 전에도 습격이 있었는지 문지기는 무척이나 예민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드레너는 우선 우리에게 숙소를 배정해 주었고, 나는 일행에게 우선 쉬고 있으라고 말한 뒤 드레너를 따라 곧장 마을의 촌장을 찾아갔다. 마을의 대표는 그이기에 우선 만나는 봐야 한다.
촌장, 마을의 대표. 그는 순박한 외형과는 다르게 분위기는 제법 단단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마을의 자경단과 지원받은 병력, 거기에 얼마 되지 않는 용병들을 이끌고 몇 년을 꾸준히 버틴 이다. 무능한 자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익스퍼트에, 정령사, 거기에 사제라…. 예상 이상의 전력이로군. 고생했다. 드레너."
"아뇨, 마을을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이정도 전력이면 다음 습격은 더 수월하게 막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지원은 없었나?"
"죄송합니다. 그쪽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는 곧바로 최근 모너스 마을이 습격받았음을 알렸다.
"그런가…. 아니. 괜찮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군. 고생했다. 들어가 쉬도록."
촌장이라 불린 남성은 곧바로 드레너에게 손짓해 그를 밖으로 내보냈다.
"반갑습니다. 이런 꼴로 맞게 되어 유감입니다. 브리터스 마을의 촌장, 루셀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신후입니다."
"저희 마을이 별로 좋지 못한데도 의뢰를 받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뇨, 그만큼 저희를 대우해 주셨으니까요."
"실력이 확실하시다면 보상은 충분히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 마을이 재정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서…. 게다가 드레너에게 전권을 준 것은 저니까요. 그쪽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다행히 멍청하지 않았다.
게다가 드레너를 상당히 신뢰하는 듯, 뜬금없이 이런 실력자라는 용병을, 그것도 F급 용병패를 지닌 이들을 환대한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라 우리를 광고에 이용해 먹으려는 수일 수도 있지만, 우리 실력이 엉망으로 밝혀지면 그 자신도 타격을 입는다.
우리 실력을 확인한 사람은 드레너 뿐이니, 그만큼 그를 믿고 우리를 쓴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우선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상황을 보니, 또다시 습격을 받으신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용병 중 두 명과 자경단 한 명이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저번 습격에 이어, 이번에도 결국…."
"매번 그렇게 사람을 잡아갑니까?"
"예. 보통 한 번 공격 해 올 때마다 최소 다섯 명의 사람을 납치하더군요. 몇 번은 버텼지만, 이번에 결국 셋이 잡혔습니다. 아마 두어 명을 더 납치하면 다시 물러가겠죠."
루셀은 슬프다는 듯이 말했다.
"이 꼴이 몇 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역으로 공격하려 해도 전력을 집중했다간 다른 마을이 위험하고, 그렇다고 마을을 이전할 수도 없습니다. 저희 마을, 그리고 이 주변이 성에 약초를 공급하는 곳입니다."
마을을 이전할 수 없다. 아마 이 주변 땅이 약초 재배에 최적화된 곳인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마을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매번 자경단과 용병 쪽에서 희생이 나왔죠.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그는 얼굴을 쓸며 말했다.
"도대체 저 빌어먹을 놈들이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계속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막고 쳐들어온 놈들의 수를 줄이다 보면 결국 납치를 못 해도 물러가긴 하더군요. 대신 습격의 텀이 좀 짧아집니다. 납치에 성공했을 때에 비해 훨씬 빨리 쳐들어오죠."
그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또 오면 또 죽여버리면 되니까요. 그러니 부디, 이번 습격에서는 더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약초고 뭐고 저희 마을은…."
일그러지는 루셀의 표정.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시에 나는 메인 퀘스트의 정보를 떠 올렸다.
[메인 퀘스트]
-놀 영웅의 부활을 저지하라.
-현재 황금 놀 부족은 봉인된 놀 영웅의 힘을 꺼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그 작업을 저지하라.
-목표 : 황금 놀 부족의 전멸 또는 놀 영웅의 심장 파괴
-보상 : ???
메인 퀘스트. 그것은 내 목적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인간을 납치해 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한 행동이 놀 영웅의 부활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메인 퀘스트의 정보라는, 확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1회차의 경험도 한몫을 담당했다.
분명 황금 놀들은 놀 영웅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 일대의 패권을 쥔다.
그 방법까지는 모르지만, 시기는 대충 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며, 몇 년 뒤의 일이다.
즉, 이 행동들은 아직까지 놀 영웅을 부활시키기 위한 과정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이 짓을 했으니, 어느 정도 진척은 되었을 터. 늑장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나는 곧바로 행동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봐야 기다리는 거긴 하지만.
첫 번째 목표, 그것은 쳐들어오는 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