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하층 진입
홉고블린 무리. 수는 스무 마리 남짓.
내 기억이 맞다면 20층 수준이라 놀처럼 둘에게 괴리감을 주지는 않을 거다.
애초에 홉고블린들은 던전 내에서도 지시에 따라 집단으로 움직이는 편이었으니까. 최근 보이는 놀들처럼 일사불란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완전히 20층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 일단 남은주의 근력이 떨어졌고, 후열이 없어 버티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형이 숲이다.
이건 아주 중요했다.
"키릭!"
일부 고블린들이 나무 뒤로 숨거나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직접 공격이 닿지 않는 곳. 궁수들이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일단 둘이서 싸워봐. 수준은 20층과 비슷하니, 쉽게 지지는 않을 거야."
"네, 형!"
"알겠습니다. 파티장 님."
단숨에 둘의 표정이 일변한다. 남은주도 호칭을 바꾸고는 장비를 꺼내 들었다. 의문은 있을 거다. 왜 나는 싸우지 않는가. 하지만 일행은 내 말에 의문을 표하거나 의아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유가 짐작이 간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파티 내에서, 그것도 전투 시에 내 영향력은 상당하기에 아마 이유를 몰랐더라도 상관 없었을 거다. 둘은 간단히 내 말에 복종했다.
"누나, 제가 먼저 궁수들 처리할게요. 일단 버텨 주세요."
"알겠어."
스륵-.
후열을 먼저 치겠다 선언한 하유진은 잠시 남은주 뒤로 숨는 듯하더니 곧바로 은신을 사용, 모습을 감춰버렸다.
흐릿해지는 모습. 은신 스킬의 힘이다.
일반 스킬은 주변과 동화되는 것이 다인데, 레어급이 되면 모습이 흐릿해지기까지 한다. 전설급 쯤 되면 아예 그림자에 숨거나 공간 틈새로 사라지는 등 마법 뺨 때리는 수준의 은신들이 존재한다.
"키릭?"
고블린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하유진의 모습에 의아한 소리를 내었지만, 곧바로 내가 뒤로 살짝 빠지자 남은주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궁수의 화살이었다.
기이익- 핑!
쉬익!
팅! 팅!
몇몇 궁수들의 화살이 남은주를 향해 날아왔고, 남은주는 화살을 방패로 막거나 옆으로 이동하며 화살을 피해냈다.
그리고 화살을 막고 피하는 틈에 접근한 전사들이 남은주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읍!"
텅!
평소처럼 방패를 들어 올린 남은주는 고블린의 공격이 생각 이상으로 묵직했는지, 가볍게 뒤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압!"
그러더나 그것도 잠시, 모든 마력을 근력으로 돌렸는지 곧바로 상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키릭?"
생각 이상의 근력. 이전보다는 못하다. 이전에는 마력을 사용했으면 저 정도 고블린들은 가볍게 떨쳐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고블린들은 첫 공격에 밀리던 이가 갑자기 잘 버티니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남은주는 고블린들의 공격에 밀리면서도 차근차근 막고, 방어하며 꾸준한 이동으로 포위를 피해낸다.
훙!
동시에 공격의 텀을 노린 위협으로 고블린들이 물러나게 만들었다.
쉬익!
팅!
그러나 쉴 틈은 많지 않았다.
고블린 궁수들 또한 꾸준하게 남은주를 노렸으니까.
그러면서도 궁수와 전사들은 사라진 하유진과 뒤에서 구경하는 나를 경계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때였다.
"키에엑!"
'호오.'
은신을 유지한 채 몰래 나무 위로 올라간 하유진은 주변을 둘러보는 고블린 궁수 하나의 목을 찌르고는 나무 아래로 밀어버렸다.
은신이 풀리길 잠시, 곧바로 나무 뒤로 숨어내며 재차 은신을 사용한 하유진은 다음 타깃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키에에! 키에에에!"
후열이 뚫렸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일부 고블린 전사들이 뒤로 빠진다. 궁수들은 남은주를 공격하는 대신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렇다고 한든 하유진이 들킬 리는 없었다. 지금 남은주도 하유진을 찾을 수 없다. 물론 내 눈에는 또렷이 보였지만.
두 번째.
긴장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궁수는, 자신의 뒤로 하유진이 접근하는데도 불구하고 활을 반쯤 장전한 채 주변을 둘러보기 바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목에 검 한번 꽂아주고는 즉시 후퇴. 재차 은신을 사용하려는 찰나.
흡!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발견한 하유진은 빠르게 바닥을 굴렀다.
도르르.
화살을 피한 상태로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빠르게 굴러 나무 뒤로 숨는다.
팍!팍!
한 고블린 궁수의 공격에 그쪽으로 화살이 집중되었고, 일어나지 않은 채 빠르게 주변 나무로 피한 덕분에 더 쉽게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재차 은신, 되려 나무 위로 올라가 다른 나무쪽으로 뛰어든다.
다행히 조금 가까운 나무가 있었기에 뛸 수는 있었지만,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다행히 은신이 풀릴 수준은 아니었지만,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고블린 궁수들의 사격이 저쪽으로 집중되었다.
하유진은 그런 상황을 예측했는지 나무가 흔들리자마자 앞으로 재차 이동, 나무줄기를 타고 빠르게 나무 아래로 내려와 다음 고블린의 사냥에 나섰다.
하유진의 활약으로 궁수의 공격이 끊기고 자신을 노리던 전사 수가 줄어들자 남은주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남은주는 신체적 재능도 부족했지만, 검술에 대한 재능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패술만큼은 자신과 제법 잘 맞았는지 곧잘 사용하곤 했었다. 그래서 스킬도 방패술을 익히도록 만들었고.
아마도 자신을 지킨다는 것에서 적성에 맞았던 듯했다.
그렇기에 남은주는 공격력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까지야 후열이 알아서 처리했기에 자신은 그냥 막기만 해도 되서 공격 자체를 잘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후열이 없다. 사실상 나 혼자고, 나는 도와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흐압!"
남은주는 방패를 이용해 앞 고블린을 밀치고는 검으로 넘어진 놈의 다리를 공격했다.
급소를 노리고 싶었겠지만, 다음 달려드는 놈이 있었기에 욕심을 버리고 즉시 공격할 수 있는 다리만 베어낸 뒤 다음 달려드는 놈을 막았다.
텅!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방패를 돌려 상대를 밀치고는 자신의 등이 보이자 곧바로 달려드는 다른 고블린을 향해 짐작했다는 듯이 방패를 있는 힘껏 뒤로 휘두른다.
콰직!
정확했다.
부족한 근력이라도 마력에 강화된 데다, 원심력으로 강하게 휘두른 방패는 상대의 머리를 그대로 부숴버렸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첫 번째 고블린이 절명했고, 이어 다리가 다친 고블린을 향해 돌진, 자신을 공격하는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방패 차징으로 일어나던 놈의 머리를 그대로 가격했다.
부드득!
목이 제대로 꺾였다. 아무래도 목이 부러진 듯했다.
단숨에 둘이 죽어버리자 자연스럽게 기세가 남은주에게 넘어왔다.
아직 전사 고블리의 수는 열 가까이 된다.
그러나 그사이에도 후열의 궁수들과 지원간 전사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급해진 고블린 전사들은 단번에 남은주에게 덤벼들었지만, 남은주는 꾸준한 방어와 견제를 통해 좀처럼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주가 셋을 더 처리했을 무렵, 하유진의 학살이 끝났다. 궁수와 지원간 전사의 전멸. 충분히 빠르지만, 현 상황에서는 조금 늦었다.
어느새 남은주의 마력이 바닥났고, 남은주는 위기에 몰려있었다.
터엉!
"크윽!"
마력이 떨어져 가는 남은주는 점차 힘이 부치는지 공격을 막을 때마다 균형이 흐트러졌고, 상황을 파악한 고블린들이 기쁨에 찬 괴성을 내며 남은주에게 덤벼들었다.
"키에에에에!"
"흐,아아앗!"
남은주는 죽을힘을 다해 버텼지만, 한계가 다가왔다.
아마 근력 20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하유진이 궁수를 전멸시키는 동안 모조리 죽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근력 20이 떨어진 현재는 불가능. 결국 남은주가 다음 공격에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키에에엑!"
바닥에 주저앉은 남은주를 향해 한 고블린이 무기를 치켜들고는 내리찍는다.
"흡!"
방패를 들어 올린 남은주가 고블린의 공격을 막았지만, 곧바로 그 공격을 막는 것이 한계였는지 가드가 내려간다.
완전한 무방비상태. 어떻게든 다시 방패를 들어 올려 보지만, 늦다. 다음 고블린의 공격이 머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사이 생존 본능 스킬이 발동했는지 몸을 뒤트는 것이 보였다.
촤악!
내가 관전을 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남은주를 노리는 고블린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리고 남은주를 끌어낸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도착한 하유진이 뒤쪽의 전사를 공격, 목을 찌르고는 다른 고블린들이 뒤를 돌기 전에 재차 은신, 다음 고블린을 죽이고 소리를 지른다.
"이쪽이야!"
고블린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단숨에 뒤로 빠져나가며 몇몇 고블린을 유인했다.
과연 일부 고블린은 하유진을 쫓았고, 나는 남은 이들을 순식간에 썰어버렸다.
하유진은 자신에게 따라붙은 세 마리의 고블린을 어렵지 않게 상대했다.
하유진과 다르게 신체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고블린 각 개체의 능력치는 하유진의 평균보다 낮은 편. 은신이 없어도 하유진은 고블린들의 공격마다 빈틈을 노려 하나씩 고블린을 처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자 실망한 표정의 남은주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죽을 뻔했는데도 불구하고 되려 내 눈치를 본다.
쉽게 지지 않을 거라고,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전투는 아쉽게도 아슬아슬한 패배다.
남은주가 조금만 더 버텼다면 하유진의 지원으로 이길 수 있었을 거다.
하유진이 끼어들면 부담이 줄어들고, 적당히 방어만 한다면 하유진이 확실하게 마무리해 줄 테니까.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솔직히 같은 조건의 나서윤이었다면 이겼을 거다. 아마 근력이 9고 마력이 18이더라도 민첩이 26이나 된다면 전사들이 공격 해올 때마다 반격으로 최소 중상, 아니면 즉시 사망시켜버리면서 시간을 조금 끌다가 수가 줄어들거나 상대가 겁을 먹고 기세가 넘어오는 순간 전사들을 모조리 도륙했을 거다.
아마 하유진이 후열을 전멸시키는 것보다 되려 빨리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남은주가 못한 것은 아니다. 분명 잘했다. 단지, 비교 대상들이 좋지 못할 뿐. 그리고 이정도면 아슬아슬하지만, 기대치에 미치는 정도다. 잠재력을 생각하면 아주 잘 한 것. 이기는 게 베스트긴 했지만, 저 정도면 방어에 한해서는 훌륭했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부족한 점은 동료로 채우면 되니까.
단지, 남은주는 자신의 신체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남은주는 놀들과 싸우기가 힘들다. 아마 싸우려면 후열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할 거다.
나는 남은주의 능력을 개발할 훈련 플랜을 생각하며 말했다.
"고생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데도 잘 버텼어. 어디까지나 현재 어느 정도로 싸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충분해."
그사이 고블린들을 마무리한 하유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누나. 제가 더 빨리 처리했어야 했는데…."
아마 단검술이라도 있었으면 더 빨리 처리하지 않았을까. 일정 수 이하로 내려가면 정면으로 덤벼들어도 될 테니까. 은신이 없어도 전투 중에 하유진의 공격은 미묘한 은밀함을 자랑한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공격을 막기가 정말 힘들다. 25구역으로 간다면 우선 단검술부터 익히게 만들어야겠다.
"아냐,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래…. 서윤이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남은주가 침울해하는 사이에 우물쭈물 거리던 하유진이 어렵게 말했다.
"…형, 저, 레벨 올랐어요."
레벨 업. 그 말에 남은주가 더 움츠러듬을 느낀다. 이들도 미궁 지역을 지나며 공헌도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전투에서 레벨업을 한 하유진을 보며 자신의 공헌도가 하유진 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나는 자괴감을 느끼는 남은주를 제지하고는 곧바로 일행을 이끌고는 고블린의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나머지 의뢰였던 정찰을 지도 보는 것도 체득할 겸, 하유진을 앞세워 완료한 뒤 마을로 돌아왔다.
시리드는 우리가 돌아오자 반갑게 맞으며 말을 걸었다.
"늦지는 않았군. 그래, 어떻던가?"
"놀들이나 그들의 흔적은 딱히 없었습니다. 어제 습격 말고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게 없네요."
"그렇군. 다행이야. 한 번의 습격이 대대적인 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군."
그는 주머니에 은화를 30개 넣어주며 말했다.
"여기 보수일세. 정찰은 언제나 중요하지. 가능하면 다음에 또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게나."
나는 끝까지 예의바른 자세를 잊지 않았다. 예의바른 사람을 싫어하는 자는 없다. 평판을 노리는 거긴 하지만. 작은 것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법이다.
머물고 있는 마을 유일의 여관으로 들어가자 주하연이 마침 1층에 있었다.
"응? 일찍 오셨네요."
"어려운 의뢰는 아니었으니까요. 주변도 한 번 살펴봤고, 특이한 곳도 발견해서요."
"특이한 곳이요…? 근데 저 둘은 왜 저렇게 침울한가요?"
"…일단 일은 끝났으니 둘을 이거 받고 올라가서 쉬어. 고생했다. 너무 그렇게 땅 파지 말고. 못한 거 아니니까."
"네 형."
"…네 파티장 님."
아직까지 아까의 일을 잊지 못한 남은주는 전투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고, 의뢰마저 끝냈는데 아직까지 날 파티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둘에게 의뢰로 받은 돈의 일부를 건네고는 위층으로 올려보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나는 주하연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