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하층 진입
두 명. 나는 남은주와 하유진을 선택했다.
하유진은 성장이 아직 더 필요했고, 남은주는 현재 근력이 부족하다.
그런 만큼 이번 정찰 및 사냥을 나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경험을 쌓아야 했고, 특히 하유진은 다양한 역할을 접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 아이의 특성을 생각해 전투보다는 척후, 함정 해제나 정찰 등의 역할을 주로 맡기고, 전투 자체는 서브 키퍼나 서브 딜러로 사용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언제까지 그런 역할을 맡길 수는 없다. 최종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적은 거인. 그런 만큼 나중에는 전투 기술 위주의 훈련이 필요한 때가 온다. 최우선은 전투 기술이 될 테니까.
그러나 당장은 다른 역할로 기여를 하면 되고, 무엇보다 저런 역할 또한 엄청나게 중요한 만큼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니다.
내가 둘을 선택하자 주하연이 말했다.
"그럼 저희들은 쉬면 되나요?"
"그래도 좋고 훈련을 더 해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휴식을 우선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최근 열심히 달려왔고, 계속 달리기만 한다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지금 주변 좀 알아보겠다고 의뢰 찾아 떠나는 신후 씨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아하하."
확실히 행동과 말이 정 반대긴 했다.
"알겠어요. 각자의 재량에 맡기도록 하죠. 그럼 몸조심히 다녀오세요."
"물론입니다. 저녁때 뵙죠."
"잘 다녀와."
"그래."
주하연과 나연은 조심히 다녀오라며 나와 두 명을 배웅했고, 나서윤 또한 다른 의미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오빠, 내일 약속 했어요!"
"그래. 걱정 마라. 안 잊어."
그래도 약속의 효력은 있는지 더는 잡지 않았다.
"와, 형이랑 같이 다니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미묘하게 느릿한, 아직 완성이 덜 된 발음. 나는 귀엽다는 듯이 하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네. 확실히 우리가 같이 다닐 일은 없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11층에서 영입했고, 다른 이들이 키워서 20층까지 끌고 올라갔다. 같이 다닐 일은 거의 없었다.
나를 보고 이 파티에 들여보내달라고 했으면서도, 하유진은 내게 매달리거나 같이 다니자며 조른 적이 없었다.
아이인데도 아이 같지 않다고나 할까.
탑으로 오고 나서 험한 꼴을 많이 봐서인지 이 아이는 조숙한 편이었다.
그나마 애 같은 것은 외모와 저 미숙한 발음 정도뿐. 나머지는 그냥 애보다는 수련자라는, 만들어진 존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린 만큼, 탑에 무서우리만치 빨리 물들어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신후 오빠랑 이렇게 다닌 것은 최근인 것 같아요. 보통은 다 같이 다녔었는데…. 하긴 떨어질 일도 없었지만."
"부럽네요 누나."
"부럽기는."
둘은 생각보다 친한 듯했다. 아니, 그냥 여성 진들이 하유진을 생각보다 잘 받아들였다. 11층에서의 어린아이답지 않은 갑작스러운 살인이나, 미묘하게 어긋난 도덕관, 그리고 내게 묘하게 맹목적인 듯한 모습이 꺼림칙할 만도 한데, 그런 티는 전혀 내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깝다는 듯, 환영한다는 듯한 모습으로 일행으로 받아들일 뿐.
나서윤이 생각보다 차갑게 반응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코지를 한다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사무적인 느낌을 조금 줄 뿐. 그 외에는 앞서 말한, 미묘하게 내게 맹목적인 거나, 아이답지 않은 단호한 손길 등은 꺼림칙해 하기는커녕, 되려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나서윤도 그리 정상은 아니지.'
8층에서의 일을 떠올려 본다면 확실히 미묘하긴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일행 중 가장 스텟이 떨어지는 둘의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상태 창]
-이름 : 남은주
-나이 : 22
-직업 : 전사(일반)
-LV. 21
-신체 능력
근력 : 9 민첩 : 26 체력 : 28 마력 : 18
-자유 : 1(100미만)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샘솟는 활력(일반)
스킬 목록
-생존 본능(일반)
-강력한 도발(레어)
-방패술(일반)
-없음
현재 미노타우로스의 수갑 때문에 아작난 근력이 시선을 잡아끈다. 그리고 비어있는 스킬 슬롯 또한.
능력치도 만약 근력 20이 깎이지 않았다면 남은주의 신체 능력은 잠재력에 비해 상당히, 상당히 우수한 상황이었다.
마력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탱커로써 부족함이 없는 모습. 나는 이번 층에서도 그녀가 그 가파른 성장세를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미리 빼 온 것이고. 조금씩 기어를 올려볼 필요가 있었다.
다른 이들은 휴식을 취해도, 남은주는 안 된다고 본다. 그녀가 이 정도로 성장한 동력이 그 필사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어서 하유진의 상태 창을 살펴보았다.
[상태 창]
-이름 : 하유진
-나이 : 8
-직업 : 도적(일반)
-LV. 17
-신체 능력
근력 : 18 민첩 : 24 체력 : 16 마력 : 26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희미한 존재감(레어)
스킬 목록
-은신(레어)
-은밀한 발걸음(일반)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하유진은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한자리 수였던 근력과 체력이 두 자리수로, 근력은 두 배 이상, 체력은 두 배는 아니지만, 그에 가깝게 성장한 상태. 게다가 민첩과 마력 또한 꾸준히 상승했다.
남은주의 현재 스텟으로 익숙하게 하유진을 인식하는 것이 조금 신기할 정도.
아무래도 하유진이 이전과는 다르게 먼저 말을 하고, 가까이서 저리 행동하는 덕분에 희미한 존재감이 쉽게 일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최대한 자기 어필을 해야 한다고 봐야 하나? 게다가 하유진도 알게모르게 마력을 사용해 남은주를 자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시비를 건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어필하고 있다는 뜻이다.
확실히, 우수한 하유진은 일행 중 남은주가 가장 부족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듯했다.
둘의 상태 창 확인이 끝날 때까지 둘은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다행히 컨디션도 나빠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새 목표로 했던 용병 길드 사무소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사무소 겸 의뢰소라고 해야 하나?
문이 열려 있었이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용병들 아닌가? 어제 온 것으로 아는데, 벌써 여기에 오다니… 엄청 부지런한데?"
"아, 이번에 마을로 들어온 유신후라고 합니다. 한동안 마을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반갑네. 등급만 F급이라고?"
"하하. 아닙니다."
"나는 시리드라고 한다네. 이 모너스 마을 용병 길드의 총 책임자일세. 지부장이라고 해야 하나? 뭐, 지부장이라고 해봐야 이쪽 담당은 사실상 나 혼자지만 말이야."
클클.
자신을 시리드라 소개한 중년의 남성은 자신의 말이 조금 웃기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하기야 총 책임자라는, 지부장이 지부의 유일한 직원이면 조금 웃기긴 하겠다.
하지만 미래에는 다르다. 몇 년 뒤 나타나는 수련자들로 인해, 이쪽 지부는 상당히 활성화된다.
5개의 마을 중에서 가장 커질 정도니, 말 다 했다. 정확히는 다섯 개의 마을, 모든 지부는 이곳 모너스 마을처럼, 이름만 지부인, 지부장 혼자 담당하는 형태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이쪽에서 활동하는 용병의 수가 워낙 적어서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라 그렇다.
그래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면 가뭄에 콩 나듯 국가가 용병을 지원하기도 했고, 활동하는 용병이 완전히 제로는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 지부가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 의뢰를 하러 온 건가?"
"네. 맞습니다. 의뢰를 하러 왔습니다."
"용병치고는 엄청나게 부지런하구만."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들어온 의뢰가 있나요?"
피식.
"용병이 얼마나 있다고. 특별한 의뢰는 없네. 그냥 고정적으로 있는 의뢰뿐이야. 몬스터 퇴치나, 이쪽 지역 정찰. 그게 다일세. 보수도 짜고."
"확실히… 이 마을의 용병은 저희가 다인가요?"
"그렇지. 얼마 전까지 몇 명 있었는 데, 위쪽의 브리터스 마을로 가버렸다네. 그쪽에서 누런 놀 새끼들이 날뛴다고 용병 좀 보내 달라고 하더군."
브리터스 마을. 마을 중 가장 늦게 열리는 마을이다. 24구역에 속한 데다가, 그쪽은 황금 놀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럼 어차피 주변 지형도 익혀야 하니, 정찰 의뢰나 받겠습니다."
"좋네. 자 여기. 지도도 주지."
"…지도를요?"
나는 의도적으로 조금 놀랐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클클. 그럼 줘야지. 사실 이런 몬스터들과 싸우는 외곽 지역에서 지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네. 물론 불법이긴 한데, 어차피 거의 버려진 땅, 신경 쓰지는 않지. 게다가 어차피 몬스터들이라 우리 인간처럼 지도를 보고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라 유출도 상관없고 말이야."
또 하나, 주변에 적대 영지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쉽게 지도를 구할 수 있는 요인으로 보였다.
본디 지도는 전략 물자라서 이렇게 쉽게 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필요에 의해 지도를 다수 제작, 제공하는 듯했다.
내가 받은 지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제법 상세한 모습이었다.
"마을이 여기일세.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원래 놀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니, 한 번씩 확인만 해 주면 될게야. 어제 일부가 쳐들어오기도 했었으니, 아마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확인 좀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보수는 개인당 10실버. 그리 좋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돈 보고 하는 일은 아니라 보수는 상관없었다.
나는 둘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지도를 하유진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쪽 부분을 전부 돌 거야. 지도 보는 법 아니?"
"아니오. 잘 몰라요."
"그것부터 알려 주어야겠구나. 우선 이건 방위를 뜻하고, 이건…."
나는 기본적인 지도 보는 방법을 하유진에게 가르쳤다.
다행히 지도가 제법 상세하긴 했지만, 애초에 지구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지도 보는 방법도 엄청나게 까다로운 것은 아니고, 기초만 알려준 뒤 결국에는 몸으로 체득한다.
그래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대충은 알 것 같아요. 형."
"그러면 일단 처음은 내가 하마. 도적은 척후를 보는 경우가 많으니, 나중에는 네가 해야 할 거다. 잘 보고 배우도록."
"네 형."
우리는 마을 밖으로 향했다.
살펴볼 포인트는 세 군데.
한 군데는 숲이었고, 두 군데는 다른 마을로 향하는 길에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셋 다 21구역에 속하는 지역이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으니, 점심이 좀 지나면 대충 끝날 듯했다.
특히 저 숲은 내가 과거 많이 신세를 졌던 곳이다.
나는 우선 일행을 이끌고 숲 주변을 확인한 뒤, 숲으로 접근하자 과거에 많이 보았던, 익숙한 메시지가 눈앞을 가렸다.
[사냥터, 고블린의 숲에 진입하셨습니다.]
사냥터.
탑이 정한 특별한 구역이다.
일종의 시스템이 관리하는 던전 같은 장소다.
던전과 다른 점은 리젠이 엄청 빠르다는 것. 그리고 보상이 거지 같다는 것이었다. 사냥터 내부의 몬스터들은 일정 개체 수를 꾸준히 유지한다.
몬스터가 사망하면 빛의 입자가 되어서 사라지며, 보상을 주는 놈이 드물다. 경험치는 나쁘지 않게 주는 편.
이 고블린의 숲 같은 경우, 하층에 존재하는 사냥터다. 각 마을마다 주변에 하나씩 존재하고, 수준은 각 구역에 맞는 수준의 홉고블린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 사냥터의 존재가 없었다면, 수준 미달의 수련자들은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기가 정말 힘들었을 터다.
가끔 쳐들어오는 놀들을 막는 방어전이나 가능하고 직접 뭉쳐서 사냥을 다니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들었을 터.
일정 수 이상의 수련자가 뭉쳐 다니면, 놀들은 그들을 상대하는 대신 동료를 불러모은다.
수준 낮은 수련자들은 그렇게 뭉쳐버린 놀들을 상대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소수로 다니면, 개개가 놀보다 약해 사냥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사냥터의 홉고블린들은 하층의 놀들과는 다르게 수준이 좀 떨어져, 실력이 부족한 수련자들이라도 파티만 맺는다면 능력치와 최소한의 레벨을 맞출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니 결국, 이 사냥터는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이며, 일행 중 현재 실력이 부족한 이 둘이 한동안 성장해야 할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둘을 선택해 정찰을 온 것이기도 하고.
"사냥…터요?"
"이게 뭐에요 신후 오빠?"
"나도 처음 보는걸?"
나는 시스템 메시지의 설명을 읽는 척하며 둘에게 말했다. 남은주는 전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인지 아직 나를 오빠라 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필드 던전 같은 거 같은데…."
"필드… 던전이요?"
"응. 일반 몬스터들과 던전의 몬스터들은 다르잖아? 죽어도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던가."
"아, 네. 맞아요. 미궁에서는 시체가 사라지는데, 어제 잡은 놀들은 그대로 시체가 남아 있었죠."
"여기는 아무래도 던전 처럼 몬스터들의 시체가 사라지는, 그런 공간인 것 같다. 이름을 보면 몬스터도 고블린인 것 같고."
"…왜 이런 것이 존재하는 걸까요?"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필요해서 있겠지?"
"키리릭!"
"형! 몬스터에요!"
고블린. 마침 잘 됐다.
"전투 준비해."
하유진과 남은주.
특히 남은주의 근력이 작살난, 현재 실력을 확인할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