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67화 (67/317)

# 67

하층 진입

미궁의 탈출. 곧바로 눈앞에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하층에 진입하였습니다.]

[하층은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35구역의 칼라드에게 자격을 증명하고 중층으로 향하세요.]

[특수 보상 획득 자격을 확인합니다. 특수 보상 지급을 위해 플로어 마스터를 소환합니다.]

'…특수 보상?'

앞의 내용은 짐작한 바였다. 이제부터는 '층'이 아닌, '구역'으로 나뉜다. 21층부터 35층을 각각 구역으로 표기해 21구역부터 35구역까지를 '하층', 36구역부터 59구역까지를 '중층'이라 부르고 이후 60층부터는 '상층'이라고 부른다. 그중 내가 죽었던 60층은 상층 - 거인의 구역 중 하나였다.

구역을 넘나들기 위한 조건은 레벨과 퀘스트. 레벨이 높으면 어느 구역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퀘스트가 있다면 레벨이 부족해도 다음 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냥 레벨 제한 걸린 필드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소환자들은 그 구역의 레벨 제한을 '최소 입장 조건'이라고 불렀었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입장 조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구역은 마치 자격이 없는 수련자가 함부로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오는 것처럼, 구역을 넘나들며 몬스터들의 수와 질이 빠르게 변화한다.

이번 층의 주요 몬스터는 놀, 코볼트, 리자드맨들로, 특히 놀은 미궁에서의 놀을 생각했다간 쉽사리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실제로 수련자들을 가장 많이 죽인 몬스터는 놀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번 층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적 역시 놀이다.

놀 영웅. 나는 그것의 부활을 저지해야만 한다.

한창 생각하는 와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하, 이런, 말도 안 돼. 정말 그 조건을 달성한 존재가 있다고?"

탁한 목소리. 한껏 긁힌 목소리의 주인은 남자 같기는 한데, 미묘하게 얇은 느낌도 있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힘든 목소리였다.

약간 지저분하고 펑퍼짐한 느낌의 후드를 둘러쓴 인형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형으로도 성별을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어둠이 가득한 후드 내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누구시죠?"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급하게 무기 위로 손을 올렸다.

일행들도 갑작스러운 등장에 한껏 놀란 표정을 지으며 진형을 갖추는 못습을 보였다.

"나는 미궁의 플로어 마스터. 아키밀리다."

미궁의 플로어 마스터.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1회차에서도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다고?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는 미궁을 빠져나와 하층으로 진입했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하층일 텐데요?"

마침 진입한 하층은 밝은 오후였다. 인간이 주로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길 위는 미궁 특유의 발광석이 아닌, 태양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저게 진짜 태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이곳은 하층이지. 그런데 너.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찾아와야 했단 말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전(全) 층의 관리자."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10개 층의 미궁. 그 모든 고정 안전 구역의 관리자. 뭔가 있지 않을까 했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없어서 내심 실망했었는데, 그 이름이 다시금 나왔다.

"그 상태를 유지하고 미궁을 빠져나가면 보상을 얻을 수 있지. 정확히는 8개 이상일 경우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너는 10개. 전 층의 관리자로군. 정말 희귀한 케이스지."

"…보상이라. 뭐 받으면 좋긴 하겠습니다만…."

본래 플로어 마스터와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내 방침. 그렇지만 저 아키밀리라는 자는 묘하게 짜증이 난 상태로 보이는 데다, 분위기마저 험악해 가까이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그럼 얼른 받고 꺼져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당신은 '경계의 미궁', '전 층 관리자'입니다. 보상, '미궁 조각'을 획득하셨습니다.]

내게 이상한 수정 하나를 던져준 아키밀리는 곧바로 몸을 돌렸고, 몸이 반투명해지는 듯하더니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한껏 긴장한 기색을 보이던 일행은 그가 진짜로 사라졌다고 확신이 들고 나서야 천천히 몸에서 힘을 풀었다.

"후우… 저거 뭐죠? 플로어 마스터라면… 에파토스 님과 같은 존재일 텐데… 저렇게까지 다르다니…."

주하연은 정말 십 년 감수했다는 표정이었다.

"그, 그러게요… 에파토스 님은 저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남은주도 정말 무서웠다는 듯이 말했다.

[정원을 사랑하는 열세 번째 꽃이 미치광이의 미궁을 빠져나온 계약자를 환영합니다.]

응?

'오랜만이네.'

[열세 번째 꽃이 자신도 반갑다고 말합니다.]

'난 별로 반갑지는 않다만?'

[열세 번째 꽃이 계약자의 답변에 너무 쌀쌀맞다고 시무룩해 합니다.]

그동안 안 보이더니 하층에 진입하자마자 간접 메시지를 보낸다.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 관리자 따위. 관심도 없다.

[열세 번째 꽃이 미치광이의 미궁은 함부로 들여다보면 큰일 난다고 말합니다.]

'…그 플로어 마스터가 뭔가 있긴 있나 보네?'

[열세 번째 꽃이 그 미궁은 본래 하나의 세계였다고 말합니다.]

'…하?'

[열세 번째 꽃이 침략당한 세계를 뺏길 위기에 처한 관리자가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부수고 일부만을 건져 탑에 포함시킨 것이 그 미궁이라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그 플로어 마스터가….'

[열세 번째 꽃이 그가 바로 그 세계의 관리자였던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튜토리얼의 2층부터 7층까지는 연속된 공간이었고, 던전도 각 층마다 구분되긴 했어도 비슷한 테마였다. 20층에 가면 고정 안전 구역을 통해 서로 이동도 가능했고.

하층과 중층에 이르러서는 아예 커다란 대륙이라고 봐도 될 정도. 단지 시스템에 의해 게임 마냥 제한된 것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본다면 거대한 대륙이었다.

실제로 하층과 중층은 NPC와 탑의 거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공간. 게다가 몇몇 포인트나 중요한 몇 군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탑의 거주민들이 인구를 차지한다.

나는 2회차에 들어서며 차원의 개념을 알고는 내심, 이 탑이라는 공간은 수련자들의 성장과 편의를 위해 층을 나눠 놓았을 뿐, 몇 개의 차원을 짜깁기한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럼 이 미궁 조각은….'

[미궁 조각]

-등급 : 준신화

-한 세계의 일부였던 조각 중 하나. 부서진 세계의 파편이다. 소유자는 자신만의 공간을 얻을 수 있다.

-경계의 미궁 전 층 관리자만이 사용 가능하며, 획득 시 귀속된다.

준신화. 전설 그 이상의 등급이다.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내가 한참 미궁 조각을 바라보고 있자, 일행이 내게 물었다.

"그게 뭐예요 오빠?"

"…나도 몰라."

나서윤의 물음에 해줄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나도 처음 보는 거다. 1회차에서도 듣도 보도 못했던 것. 실제로 1회차 미궁 관리자는 2층을 먹은 놈이 최고였다고 들었으니까.

"일단… 사용해 보는 게 좋긴 하겠는데…."

이걸 준 놈의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일행도 조금 꺼림칙한 듯했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러자 곧바로 눈앞에 이상한 균열이 나타나더니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

나는 멍청하게 눈앞의 균열을 바라보았다.

일행들 또한 허공에 나타난 균열의 모습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갈라진 균열의 내부는 이전 우리가 지냈던 미궁의 공동과 흡사했다. 차이점은 몬스터가 없었고, 다른 공동으로 이어지는 통로도 없었으며, 공간이 이전 공동의 1/10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달랐다.

그래도 지구의 어지간한 원룸보다는 더 큰 크기였지만.

나는 천천히 균열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미쳤군."

나만의 공간. 이런 것일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이 공간을 활용할 방법들이 몇 가지나 떠올랐다.

인벤토리 대용으로도 좋고, 야영 시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만약 타인을 데리고 올 수 있다면….

파직.

"꺅!"

갑자기 들려온 나연의 비명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손을 움켜쥔 채 균열로부터 떨어져 있는 나연의 모습이 보였다.

"@!%!^!"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균열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제서야 일행이 급하게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신후 씨! 괜찮아요?"

"언니!"

주하연은 균열 밖으로 튀어나온 나를 보며 물었고, 나서윤은 주하연이 내게 붙자 즉시 나연에게 달려갔다.

나연의 손에는 큰 이상은 없어 보였지만, 고통이 상당했었던 듯, 아직 손을 미미하게 떨고 있었다.

"갑자기 왜…."

"신후 씨를 제외하면 아무도 저 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으음…."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그런 뜻이었나? 타인을 초대할 수 없다면… 생각보다 사용 범위가 제한된다.

언제까지 확인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한 가지만 확인하고 '마을'로 향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럼 하나만 확인하죠. 제가 저 '미궁'으로 들어간 뒤 균열을 닫겠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확인 좀 해주 주세요."

"네. 알겠어요."

나는 곧바로 미궁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닫았고, 잠시 후에 나왔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내가 들어간 입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균열이 있던 장소를 지나다닐 수도 있었다. 즉,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 원래 균열이 있던 장소에 장애물이 생기면 장애물을 피해 허공에 입구가 생기거나, 그냥 그 장소에 생겨도 장애물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등, 상당히 유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단한 것을 얻으셨네요."

엄청난 물품이다. 괜히 준신화 등급이 아닌 셈.

[열세 번째 꽃이 미궁 조각의 유용함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나도 놀랐다.

기대지도 않았던 보상에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한껏 좋아진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일단, 여기를 '하층'이라고 하는 듯합니다."

"네. 저희도 메시지를 보았어요."

"이전처럼 층으로 표시되지 않고, 구역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이전처럼 한 층씩 올라가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하층, 다음은 중층으로 향하라고 했으니…."

"그다음은 상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5구역이라면, 35층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그게 맞다고 봅니다. 일단 겪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추측이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정보를 전달했다.

"그럼 일단, 뭐라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보이는 것이 길이니, 마을이라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낮이기는 한데, 마을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모르는 만큼,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겠습니다."

"네."

마침 인간이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길 한복판이다. 포장된 도로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번 주기적으로 이용됨으로써 생성된 길인 듯했다.

군데군데 흔적을 보면, 생각보다 많이 이용하는 길의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는 천천히 길을 따라 이동했다. 한 시간 남짓 길을 따라 움직였다. 주위를 경계하며 길을 걷던 와중, 우리는 멀리서부터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건…."

"싸움이 있는 것 같아."

나연은 즉시 정령을 이용,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마을."

"맞아. 마을이야."

나연은 즉시 내 말에 동의했다.

저 멀리, 제법 괜찮은 규모의 마을이 보인다.

훗날 도시로 발전하는 마을. 모너스 마을이 놀들에 의해 습격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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