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63화 (63/317)

# 63

하유진

무시당하는 것. 물론 무시하는 사람들도 본의는 아니다. 그들이 약하기에 벌어지는 일일 뿐.

스킬의 특성이니, 어쩔 수 없다 하겠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다.

특히 그런 무시가 생존에 직결된다면 더더욱.

하유진은 어리고, 사랑은 몰라도 관심은 생존에 직결된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혼자서 사냥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파티? 내가 한바다에게 부탁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파티를 구하기는 힘들다.

"…지금 당장 대답하기는 힘들구나."

나는 일단 결정을 미루었다.

내 옆에서 쳐다보는 주하연도, 안타깝지만 내 결정을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고민할 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우리들이 가는 길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8살짜리 애를 데리고 다니기에는 많이 힘든 것이 사실.

나는 우선 파티원들과 상의를 해 봐야 한다는 말로 울상 짓는 아이를 달래었다.

별수 없다. 그만큼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정신을 회복하고 있기에 내일 이야기하기로 하고, 하루는 주하연과 함께 이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냥 보내기에는 양심에 찔렸고, 이 아이도 제법 아슬아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같이 지낸 하루 동안 나는 이 아이가 정말 손이 덜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눈치가 빠른 것도 사실이었고, 어떻게든 손이 덜 가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어른을 귀찮게 하는 법이 없었다.

그 이유를 아는 만큼, 나도 주하연도 슬프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확인 결과 이 아이를 제외하고는 내 기준에 합당하다고 판단되는 녀석은 사실상 없었다.

간간히 상급의 잠재력이 보이긴 했지만, 그리 특출나다 판단하긴 어려웠고.

게다가 하나같이 파티가 있기도 해서, 빼내기가 까다로웠다. 그나마 아쉬운 김에 하나 정도는 영입하려고 시도를 해 봤는데, 자신의 파티가 있어서 힘들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쉽긴 했지만, 무리해서라도 데려올 수준은 아니라 깔끔하게 포기했다.

하루가 지나고 나는 일행에게 아이를 소개했다.

자세한 사정을 듣자, 나연은 곧바로 찬성표를 던졌다.

"우리가 아니면 힘들다면서? 그렇다고 바다 씨에게 맡겼다간… 바다 씨는 바쁘니까. 그냥 우리가 맡는 것도 괜찮다고 봐."

착한 성격답게, 나연은 아이에게 약했다. 내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별말 하지 않았겠지만, 내가 의견을 묻자 잽싸게 찬성을 한다.

끄덕.

나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의견을 물을 때부터 나연은 이럴 것 같았다. 이전처럼 완전한 호구는 아니지만, 그 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내 말은 잘 들으니 상관없기도 하고.

곧바로 찬성하는 의견을 듣자 아이는 조금 기대감에 젖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남은주의 반대에 부딪혔다.

"…저는, 반대할게요."

"뭐? 왜?"

나연이 놀란 표정을 짓자, 남은주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이가 버티기 힘들 거에요. 저희 일행은… 제가 말하기 그렇지만 엄청 대단하니까요."

엄청 대단하다. 많은 뜻이 함축된 말이었다.

특히 그 대단한 일행들 사이에 껴 힘겹게 성장하는 남은주가 하는 말이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가볍게 듣기가 힘들었다. 아마 그녀가 새 동료 영입을 찬성하는 것은, 일정 수준을 이미 이룬 수련자여야 흔쾌히 찬성하지 않을까.

물론 남은주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아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해나갈 테니까.

그러면서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하유진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하는 것을 봐서는 남은주 성격이 모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도 그녀 나름의 생각이 있기에 저리 말하는 것일 터. 게다가 일리가 있는 게, 현재 안 그래도 전사 수가 애매한데, 후열이 하나 늘어났다간 부담이 가중된다. 다른 의미로도 일리 있는 의견이다.

주하연은 찬성했다.

하루 동안 같이 지내본 그녀는 하유진에게 보호자가 필요하고, 우리 말고는 사실상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흔들린 듯했다.

"솔직히 어제까지였다면 반대했을 거에요. 하지만… 미안해요.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네요. 저희 파티면 아이 하나는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몸뚱이 하나면 왜 감당 못하겠나. 단지 정신적인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할 뿐. 주하연도 그것은 알지만, 그건 아이가 견뎌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 어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매달리며 했던 말이 주하연을 뒤흔든 것 같았다.

잔인하지만, 탑은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주기에는 너무 가혹한 장소다.

"그리고, 여기에 두고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이 될 수가 있어요. 아이의 정서 발달이요? 보고 배울 사람이 하나같이 매일 몬스터와 싸우는 사람들이고, 학교도 없어요. 게다가 일정 수준 이하는 이 아이를 인지조차 못 하죠. 정신적인 쪽은 우리와 가나 여기 남나 큰 차이는 없다고 봐요."

요는 책임을 우리가 지느냐, 책임을 피하느냐의 차이다.

솔직히 피한다고 누가 욕하지도 않는다.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일 뿐이니.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지구에 쳐들어온 거인들, 뚜렷한 의지 없이 일정 이상의 재능만 있다면 무작위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탑 정도일까.

그 재능이라는 것이 최소한의 마력 적성에 관한 것이라 실제 재능은 바닥을 기는 이들이 많기는 하다만.

그리고 마지막, 나서윤이 말했다.

"실제 데리고 가 보죠."

"…뭐?"

"서윤아?"

"저도 어려요. 저 아이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덕분에 하나 아는 것은 있죠. 여기선 어린 것이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거. 한동안 데리고 다녀 보고,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찬성할게요."

합리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잔혹하다.

우리가 오늘부터 할 일은, 인간 사냥이다.

그런 장소에 8살짜리 애를 데리고 가자는 거다.

현실은 냉혹하고, 잔인하다.

인간 사냥을 해야 하니 데리고 가지 말자는 말은 힘들다. 우리와 함께 다니면 다 겪을 일이고, 미성년자인 나서윤도 지금 하는 일이다.

나이를 두 배는 먹었다고 하지만, 일단 나서윤도 미성년자. 나서윤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가 볼테냐?"

"네! 따라 갈게요! 전 괜찮아요!"

그렇겠지. 우리가 구할 당시, 그리고 탑을 생각하면 사람 죽는 거 한둘 본게 아닐 거다. 그리고 이 아이는 어떤 의미로는 우리 일행보다 정신력이 좋겠지.

아이가 잡혀 있던 곳의 꼴을 보고 나연과 남은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 동안 쉬어야만 했다. 나서윤은 내가 최대한 가려 주었고.

그러나 이 아이는 거기서 한 달 이상 생활했다고 들었다. 직접 본 것이 한둘이 아닐 터다.

이런 쪽의 내구성은 이 아이가 더 낫다.

'생각해 보면, 나를 제외하면 이 아이가 정신력이 제일 강한 거 아닐까?'

아니, 정신력이라고 보기는 힘들 거다. 그냥, 익숙한 거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제대로 가치관이 학습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에 다른 의미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별수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게 되뇌어도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못 할 짓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는 이러이러했으니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일행이 이 아이의 반응을 직접 본 것이 아니다. 의구심을 가질 터. 결국 아이와 함께 인간 사냥을 나간다는, 현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생겨버렸다.

이런 상황이면 결국 이 아이는 파티에 받아들여질 것 같았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

어찌 되었건 이 아이는 최상급 잠재력을 지닌 아이니까. 당장은 도움이 안 되도, 미래를 생각하면 받는 것이 맞기도 하고.

나는 고심 끝에 나서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임시 합류.

아이는 그마저도 기쁜 표정이었다.

"열심히 할게요!"

아니, 아무것도 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이 아닌, 미래를 보고 데려간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마저도 오래지 않아 하나의 전력으로 성장할 테지만. 상태 창의 보정은 이런 어린 아이마저도 재능만 있다면 성인보다 강력한 육체를 갖도록 만드니까.

그리고 누누이 말했듯, 우리는 최선두다. 성장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결국 아이를 데리고 인간 사냥에 나섰다. 한바다는 우리가 웬 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하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느껴지네요. 제대로 쳐다보기가 거북스러워요. 제가 이 정도면…."

한바다의 신체 능력은 나와 한바다 파티를 통틀어도 3번째다. 그런데도 쳐다보기가 거북스럽다? 한바다는 다른 사람들이 이 아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금방 납득했다.

"그래도 그런 곳에 8살짜리를 데리고 가다니…."

"저, 저는 갈 거예요."

한바다의 말 때문에 일행에서 쫓겨날까 두려운 하유진은 자신이 가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바다는 그런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했다. 탑은, 스스로 자신을 챙기는 곳이니까. 설령 그게 8살짜리라고 해도 자신의 거취와 관련되어 있다면 그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우리 파티다. 안전 자체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더는 뭐라 하지 않을게요."

뭐라 할 자격도 없다. 저 아이를 완전히 책임져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한바다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한바다 씨 탓은 아닙니다."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알지만…."

한바다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씁쓸한 눈동자. 현실의 벽이다.

"오늘은 이곳과 이곳에 가볼 생각입니다."

내가 세력도를 짚어가며 오늘 갈 곳을 확인시켰다.

"오시는 대로 사람들을 투입해서 확보할게요."

처음에는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지만, 이틀째부터는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이쪽이 효율적이었고, 한바다의 권위를 세워 주기도 할 수 있었으니까.

최근 자유 연합의 대표는 최중헌이 아닌, 한바다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일행과 함께 내가 지정한 구역으로 이동했다.

미궁파의 주둔 인원은 예상보다 적은 수였다. 분명 경계에 가까운 곳이라 인원이 더 투입됬을 텐데도.

아무래도 자유 연합과 가까운 장소다 보니, 최근 내 습격 때문에 겁먹고 일부가 빠져나간 듯했다.

아마 사냥을 하며 다음 층으로 이동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겠지.

"생각보다 적네요."

"그래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이번에는 유진이도 후열에 있으니까요."

"…그래요."

나는 일행에게 전음을 이용, 아이의 반응을 잘 살피라는 말을 전했다.

그걸 위해 온 거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3일 내내 했던 습격이다. 우리는 익숙하게 경비 서는 인원을 확인, 나연의 실프를 이용해 제거하고는 단숨에 공동 내부를 급습했다.

이전의 경험 때문일까. 노예로 부리는 사람은 몇 없고 대부분이 미궁파의 전투원들이었다.

그래봐야 수준은 낮았지만.

"유신후다! 유신후가 쳐들어왔어!"

"젠장! 나간 애들 불러와!"

내부는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보통 수가 많으면 후열을 지키며 하나씩 처리하고는 했지만, 삼 일째부터는 도망치는 이들이 너무 많아져 나와 나서윤이 전방을 휘젓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유진도 있어서 나 혼자 상대 진형을 휘젓고 있었다.

내게 집중되는 화살과 무기들.

의미는 없었다.

근력을 마력으로 보충하고 날아오는 화살들은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피해낸다.

내게 휘둘러오는 무기를 피하거나 역으로 베어내고 공포에 젖은 이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쾅!

콰앙!

게다가 뒤에서 이어지는 나연 자매의 마법 폭격.

상대가 안 된다.

"젠장, 젠장, 젠장! 왜 하필 여기로…!"

"어제는 쉬었다더니, 도대체 왜…."

하루 쉬었더니 12층으로 향할 줄 알았나 보다. 확실히 3일 사이에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기는 했으니까.

한바다만 있어도 충분하긴 했다.

그때였다.

"젠장! 유신후?"

"좆됬… 응?"

마침 사냥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는지, 일부 인원이 우리 파티 후열이 존재하던 장소 근처에 나타났다.

그들의 판단은 빨랐다.

"유신후랑 멀리 떨어져 있어!"

"유신후만 없으면…!"

확실히 나 없이 후열이 이처럼 위험에 노출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은 되지 않는다.

내가 없다고 해도, 전력의 차이는 명백하니까.

"죽여! 빨리 죽여! 유신후가 오기 전에…!"

휙.

"하아아압!"

달려드는 전사들을 향해 남은주가 달려든다.

"대지의 방패!"

곧바로 씌워지는 방어막.

남은주는 후열을 노리는 이들에게 용서를 베풀지 않았다.

쿵!

단숨에 달려든 남은주의 차징.

건장한 남성 두셋을 단숨에 날려버리고는 곧바로 자신을 지나치려는 이들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조금 거리가 있는 남자를 향해 외친다.

"도발!"

"…큭!"

마력 능력치의 차이. 그 덕에 가장 후열에 근접했던 남자의 시선이 남은주에게로 빠르게 돌아간다.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휙. 푹!

"헉! 안 돼!"

"…어?"

언제 달려들었던 걸까.

분명 후열에서 보호받고 있던 하유진. 하유진이 도발에 걸려 시선이 완전히 돌아간 남자의 목덜미에 단검을 꽂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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