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하유진
아무리 나라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나이가 잠재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2회차에 들어서 눈치채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8살짜리가 튜토리얼을 통과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어느 정도 도움을 받긴 했을 터다. 보호자와 함께 이동했거나, 아니면 괜찮은 어른을 만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은 혼자지만. 내가 이 아이를 구해낸 장소가 장소다 보니,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구출 이후로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긴 했지만, 이 아이를 찾아온 사람도, 이 아이가 찾아간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자유 연합에도 아이들은 제법 되지만, 그래도 10세 미만은 정말 찾기 힘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
[상태 창]
-이름 : 하유진
-나이 : 8
-직업 : 도적(일반)
-LV. 10
-신체 능력
근력 : 7 민첩 : 21 체력 : 9 마력 : 22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희미한 존재감(레어)
스킬 목록
-은신(레어)
-은밀한 발걸음(일반)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스킬 슬롯 9개. 최상급 잠재력답다.
게다가 스킬들의 구성을 보자, 이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생존만을 위해 살아왔겠지. 레벨은 튜토리얼에서는 공헌도에 상관없이 경험치를 먹으니 조금씩 획득했을 테고.
능력치는 근력과 체력이 정말 부실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초기 능력치도 부족했을 거다. 그래도 현재까지 저 수준이라는 것은 전투 자체에 그리 많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마력과 민첩이 높았는데, 마력은 아마 스킬을 자주 씀으로써 발전했을 테고, 민첩은 생존을 위해 감각이 극대화되어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잠재력이 최상급인 데 비해 가진 스킬들의 등급은 낮은 편이었지만, 잠재력이 잠재력인 이상 성장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키워주면 분명 빠르게 성장할 거고.
아이, 하유진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합에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이 아이 말고도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는 많다. 특히 어린 축에 속해 지원은 받지만, 다들 많이 바쁘다 보니 밥이야 얻어먹더라도 평소에는 방치되는 상황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자기들끼리 조금씩 뭉치기라도 하는데, 하유진은 특히 어린 축인 데다, 낯까지 가려서 친구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스킬도 저런 상태다보니, 직접 다가가지 않는 한 누구 하나 신경 써 주지도 않는다.
애초에 저 희미한 존재감은 패시브 스킬이라, 보여도 무시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하다못해 존재 자체라도 알면 이름이라도 부르지, 이 아이는 여기에서 친한 이가 없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는 고립된 상황이었다.
나는 탑을 올라야 하는데, 아무리 최상급 잠재력이라도, 저 아이가 나를 따라올 수 있을까?
육체적으로야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쓰레기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어린애까지 이용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주하연이 내게 다가왔다.
"뭘 그렇게 보세요?"
그녀는 남은주나 나연에 비해 조금 나은 상태라 그런지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왜 쉬지 않으시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충격적인 장면이긴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한 꼴도 볼 수 있는데, 벌써부터 무너질 수는 없죠."
그녀는 예상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렇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더러운 꼴을 많이 본다. 인간이 악해지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탑을 오르다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아까부터 가만히 뭘 보시던데… 음…."
그녀는 내가 보던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체 뭐를…. 어?"
한참을 쳐다본 이후에야 그녀는 하유진을 발견했다.
"…어딘가 익숙한데…."
"…저희가 갔던 그곳에서 구해온 아이입니다."
"…그렇군요. 정말 어리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 시선이 안 가지? 조금 이상하네요?"
"아무래도 스킬의 영향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됩니다. 의도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쉽게 시선이 가지 않아요."
하유진은 은신을 쓰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하연이 바로 발견하지 못할 정도. 은신까지 사용했다면, 나나 나서윤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는 힘들었을 거다. 스킬이 둘 다 레어인데다 시너지까지 좋은 상황이라 그렇다. 저런 이들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스킬이 없는 한, 일정 수준 이상의 민첩과 마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스킬까지 있는 거군요… 무섭네요."
무섭다. 그렇다. 저런 스킬을 가진 자는 훗날 레벨을 올려 다음 전직 때 암살자를 선택하면 정말 무서운 존재가 된다.
특히 사제나 마법사의 경우, 어지간히 수준이 높지 않은 이상 암살자는 말 그대로 천적이다.
단숨에 후열을 공격하고, 유유히 살아 돌아간다. 공포스러운 존재다. 문제는 저 애가 8살이라는 거지만.
"스킬의 영향인지 다들 저 아이를 발견하기 힘들어 보이더군요. 다행히 배식 덕에 배는 곯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외에는 먼저 다가가지 않으니 친구도 없고 저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 같습니다."
"…보호자는… 역시…."
끄덕.
그 상황에 제대로 살아남은 인간이 거의 없다. 생존자도 드물었고.
"…바다 씨에게 말해둬야 할까요?"
"고민입니다. 재능은 있어 보이는데, 탑에서 버틸 수…."
말을 하던 와중, 하유진과 눈을 마주쳤다.
깜빡깜빡.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이상하다는 듯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더니, 곧바로 놀란 듯 눈동자가 커진다.
벌떡.
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일어섰다.
내가 말을 멈추자 주하연은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하유진에게 시선을 주었다.
스킬이 거슬리긴 하지만, 주하연도 마력(신성력)이 높은 편. 일단 내 파티의 일원인 이상 현재 최상위권에 속하는 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하유진의 모습을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유진이 일어서서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기울인다.
"어라. 일어났네요?"
아이는 주하연까지 자신을 바라보자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참 고민하듯 시선을 돌리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아이가 다가오자 주하연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저 아이가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고 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거다. 내 말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 뭔가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챘겠지.
어느새 우리 앞까지 다가온 아이는 내 앞에 서서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한국인 특유의 갈색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 한동안 씻지 못해 꾀죄죄하고, 그리 많은 음식을 먹지 못했는지 야윈 모습. 아이의 눈동자는 맑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엿보였다.
"…아, 아저씨…."
"…왜 그러니?"
"저, 저 구해준 아저씨… 맞으세요?"
"그래. 기억하는구나."
끄덕.
아이는 조금 어두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아저씨… 저 잘 보여요?"
"…보인다만?"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절 그냥 지나쳐요?"
그거야 스킬 때문이지….
"글쎄… 아마도 네가 얻은 '스킬'때문이 아닐까?"
"…스킬… 희미한, 존재감."
그래. 그거다. 마력을 보면 은신 스킬도 쓸 수 있겠지. 갈수록 마력이 높아지면서 스킬의 효율도 올라가니, 이제 점점 사람들이 자신을 찾길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지금 한 말을 들어 보면, 자신이 투명 인간인 줄 아나 보다.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실제로 잡혀 있던 곳에서도 탐지 스킬을 지닌 놈이 없었다면, 아니 있었어도 혼자서 탈출하는 것 자체는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일단 아이의 보호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잡혀 있었고, 혼자서는 무엇을 하기 힘든 아이이기 때문에 탈출은 하지 못한 듯했다.
이 능력 때문에 이 아이는 탐지 스킬을 가진 놈의 전속 심부름꾼 신세였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때문일 거다. 실력이 부족하면 널 찾기가 힘들어."
그게 문제다.
패시브 스킬을 끄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근데, 난이도가 무척이나 높다. 단적으로 말해서, 최상위 길드의 1군 수준은 되어야 해제가 가능할 정도. 그마저도 상당한 심력을 소모한다. 패시브 스킬은 항시 적용이고, 그걸 억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마력 컨트롤과 의지가 필요하다.
그게 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 아이는 최상급 잠재력을 가진 만큼 가능이야 하겠다만, 지금은 안 된다. 최소 5년. 최상급 잠재력도 성장 시간은 필요한 법. 그 정도는 되어야 이 아이가 저 스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다. 그마저도 하루 종일 끄는 것은 불가능. 이 아이에게 있어서 이 스킬은 일종의 굴레다. 동시에 가능성이고.
"그럼… 이제 저는 점점 잊혀지는 거에요?"
하유진의 눈동자는 불안과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말하는 거라면… 아마도. 하지만 뛰어난 이들은 널 발견 할 거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하다못해 하유진의 잠재력이 중 정도만 되었어도 이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거다.
그냥 튜토리얼에서 죽었거나, 아니면 힘겹게 생존해도 이렇게 눈앞에서 무시당하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이 아이는 최상급 잠재력. 8살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데려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 존재다.
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리고 가는 것은 좋다. 어차피 지난 회차에서 대다수의 인원이 미궁을 빠져나오는 데는 5년이 걸렸고, 하층을 클리어하는데도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중층은 더 걸렸고.
하지만 그건 한국이 느린 것일 뿐이지, 타 국가는 훨씬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해결했다.
나는 5년이 아닌, 2~3년 안에 한국 출신 수련자들이 미궁을 나가 하층에 도달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한바다를 이곳에 묶으려 하는 이유도 미래의 쓰레기화를 막고 미궁 내부 질서 확립을 위해서니까.
그건 하층도 마찬가지. 중층에 도달하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생각 따윈 없었다. 한국 출신 길드들이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게 중층에 자리를 잡게 만들 생각이었다.
물론 저건 대다수의 수련자들의 기준이고, 나와 같은 선두들은 그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위층으로 올라간다.
나만 해도 이미 하층으로 갈 자격을 갖추지 않았던가? 나는 하층에서 빼먹을 것을 다 빼먹고, 동시에 수련자들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놓을 생각이었다.
이리하면, 최상위권 이들의 실력은 좀 줄어들고, 평균 수준 자체는 상승한다.
물론 재능 빨로 성장하면 일반 수련자들보다야 강해지겠지만.
"이저씨는… 강하죠."
"…그래."
"아저씨는 날 못 보지 않겠죠?"
"아마도."
"옆에 누나도 절 봤어요. 그렇죠?"
"널 구할 때 갔던 우리 파티라면, 지금의 너는 놓치지 않겠지. 하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나 나서윤은 확실히 놓칠 일은 없을 거다. 나연도… 아마 평소라면 어떻게 가능할지도. 부족하면 정령의 힘을 빌리면 가능할 거라 본다. 하지만 주하연부터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최상급 잠재력을 지닌 이 아이의 성장 가능성은 높았다.
"데려가 주세요."
"……."
"저, 저를 같은 파티에 넣어 주세요."
중간부터 예상하기는 했다. 이런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아이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능력이 원인이 되어 무시당하고 있는 상태였고, 이 상태에서는 발전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한바다에게 부탁하면 돌봐주기는 할 거다. 그녀는 착하니 이 아이의 사정을 알면 차마 거절하지 못하겠지. 게다가 미래에 강해지는 만큼 궁극적으로 한바다에게 도움이 될 거다. 한바다 파티에는 이윤형도 있으니 도적으로써 싸우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 거고.
하지만 그리한다면 이 아이는 한동안 여기서 정체된다. 잠재력이 잠재력이니 후반에 성장한다고 한들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직접 키우는 것에는 비할 수 없다. 그리고 한바다는 바쁘다. 이 아이의 특성 때문에 어지간한 강자들이 아닌 이상 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한다.
한바다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존재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아이는 자신의 장점을 하나씩 어필하기 시작했다.
"저, 밥도 별로 안 먹구요, 조금만 먹어도 배불러요. 그리고 심부름도 잘해요. 몸도 빠른 편이에요. 눈치도 빠르다는 소리 많이 들었구, 또, 정, 정찰도 잘해요. 제가 투명 인간이라서, 몬스터들도 저를 잘 못 봐요. 싸우는 건, 가,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배울게요. 네?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 네?"
나는 두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