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55화 (55/317)

# 55

푸른 바다 파티

나는 노폐물이 그 노폐물이 아니란 것을 설명해줘야만 했다. 정보 출처는 여전히 9층 던전. 정말 좋은 핑곗거리다.

그제서야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남은주가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 다시금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나는 지친 얼굴로 그냥 가라는 손짓을 했고, 남은주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여성 진에게 돌아간 남은주는 클리너를 보여주며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했고, 일행은 남은주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남은주는 내 지시대로 곧바로 클리너를 두 번 사용, 노폐물을 일부 줄이는 데 성공했다.

관리자의 눈동자로 확인하자, 남은주의 잠재력이 소폭 올라간 것이 보였다. '하' 등급이었던 잠재력이, '하상' 까지 올라간 것.

한 번으로는 부족했어도, 두 번 사용하니 효과가 있었던 듯했다.

애초에 '하'치고는 성장세도 제법이었던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5번을 다 썼다면 어쩌면 잠재력이 '중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하'등급이었다면 5번 다 써야 '하상'이 되었겠지만, 남은주는 현재 스텟 및 실력이 잠재력과는 엄청 동떨어져 있는 상황이기도 하니까.

그만큼 노력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어이없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휴식은 생각보다 잘 취했다. 컨디션을 제대로 회복할 수 있었고, 다음 날 무사히 함께 사냥을 나섰다.

그동안 한바다 파티와 나의 파티 사이에는 얇은 벽이 있었다. 주하연과 한바다는 그래도 14층에서 부딪치긴 했지만, 중간부터는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연도 미묘하게 한바다의 정의관이 마음에 들었는지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저들이 겪은 일이 일이다 보니 가까이 다가가기가 힘든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 파티의 사냥을 보고 한바다는 넋이 빠져버렸다.

"세상에. 미노타우로스를…."

"놀랍지? 나도 엊그제 식겁했다니까."

조연은은 지금 봐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 사냥이 계속 반복되고 자신들이 하는 것이 없자 이제는 허탈하다는 표정. 나는 사냥을 하면서도 이전에 말했던대로 남은주와 외뿔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을 1:1로 맞붙게 하였다.

처음에는 주하연에게 지시해 위기 상황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실드를 쓰라 지시했다.

"우선은 경험입니다. 힘들더라도 해 보세요. 위험하면 저도 있고 주하연 씨의 실드도 있으니 걱정은 마시고요."

"…이거 진짜 해야 하나요…."

"네. 해야 합니다."

남은주는 현재 실력이 일취월장하고는 있지만, 15층에서는 주춤한 경향이 있었다. 평균적으로 보면 현재도 충분히 놀랍지만 15층에서는 전투에 참가하는 경우가 사실상 없다 보니 긴장만 하고 실효는 없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꼭 해야만 한다. 마침 잠재력도 올랐겠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망설이는 남은주를 이끌고 외뿔 미노타우로스의 환영 앞으로 끌고 나갔다.

"무오오오!"

흠칫.

남은주는 떨리는 눈동자로 4m 크기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이, 이거 정말 이길 수 있는 건가요?"

솔직히 힘들긴 한데, 버티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남은주의 신체 스텟은 현재 평균 20이 넘은 상태. 잠재력 '하' 이제는 '하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믿기 어려운 수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은주는 직업도 전사고 방패술까지 존재한다. 보정이 두 배. 거기에 위험하면 주하연의 대지의 방패가 사용될 터. 못할 이유가 없었다.

"됩니다."

단호한 내 말에 남은주는 떨리는 눈동자임에도 결심한 듯 미노타우로스의 앞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두두두두.

기다려렸다는 듯한 돌진.

네 발은 아니지만, 두 발로 달려오는 미노타우로스도 충분히 두렵다. 아니, 오히려 보이는 면적은 더 커 보여 저게 더 무섭기도 하다.

"무어어어어!"

"이야아아앗!"

남은주는 맑은 기합성을 내며 달려오는 미노타우로스를 막아섰다.

"저, 저런!"

한바다는 경악성을 내뱉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안 된다. 그건 남은주보다 신체 능력이 높은 한바다도 불가능한 일.

하지만 남은주는 바보가 아니다.

능력치가 동등해도 달려오는 힘 때문에 제자리에서는 버틸 수 없다.

남은주는 달려오는 미노타우로스가 축구공 차듯 발을 휘둘러오자, 비스듬하게 피하며 반댓발을 향해 차징했다.

"이야아압!"

쿵!

"무어어!"

제법 큰 소리가 났지만, 미노타우로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몸을 돌리더니 남은주를 향해 주먹을 내리꽂는다.

쾅!

남은주는 제자리에서 방패를 들어올려 공격을 막아냈다.

마력이 깃든 방패는 미노타우로스의 공격을 충분히 버텨냈고, 비스듬하게 흘려낸 충격 덕분에 남은주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숙련된 움직임.

도저히 일행 중 가장 떨어지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곧이어 지루한 싸움이 이어졌다.

남은주에게는 한 방이 부족하고, 미노타우로스는 끈질기게 방어하는 남은주를 쉽게 꺾지 못했다.

쉽게 쓰러지지 않는 남은주의 모습에 분노한 미노타우로스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과 발길질을 이어갔고 남은주는 침착하게 막았다. 그러던 중 미묘하게 미노타우로스의 시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그로가 튈 경우를 대비해 가볍게 마력을 끌어 올렸다. 혹시라도 도발의 효과에 겁먹어 반응이 늦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눈동자가 슬슬 돌아간다는 사실을 눈치챈 남은주는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강력한 도발!"

"무오오오오!"

곧바로 돌아가던 시선이 남은주에게로 고정되며 이전보다 더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방어를 완전히 도외시하는 공격들. 덕분에 남은주는 버티기 힘들어했지만, 동시에 드러나는 빈틈에 끊임없이 무기를 꽂아 넣었다.

수십 분에 해당하는 전투.

쿵!

하지만 승자는 하나였다.

남은주는 서 있었고, 온몸이 벌집이 된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은 천천히 부서져 갔다.

"학, 학."

"봐요. 이긴다니까요?"

솔직히 한 번에 이길 줄은 몰랐지만.

"업, 업적, 업적이 생겼어요."

"…뭐요?"

"호, 홀로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렸다고… 업적을…."

"…보상, 보상이 뭡니까?"

"스, 스킬 슬롯 확장이요. 하나 늘어났어요."

미친?

곧바로 확인해본 결과 실제로 스킬 슬롯이 하나 늘어났다.

빈 슬롯 하나 추가. 그녀의 스킬 슬롯은 4개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준다고는 하지만… 고작 미노타우로스, 그것도 외뿔 환영 하나를 죽였다고 보상을 줘? 그것도 스킬 슬롯 확장을? 미친 거 아냐?'

하지만 좋기는 하다. 이 정도 전과에 받기에는 보상이 무척 크지만, 내 일행이 강해지는 거다. 그리고 애초에 남은주의 슬롯은 하나 추가 돼도 4개. 다른 일행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그만큼 남은주 정도의 잠재력이 이 시점에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을 홀로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바다 파티는-지친 상황에 배신까지 당해서이긴 했지만- 미노타우로스 때문에 죽을 뻔했다. 만약 나나 나서윤이 미노타우로스 100마리를 혼자서 때려 잡아도 저런 보상은 주지 않을 터.

남은주의 장비가 전설급 장비도 아니고, 평범한 장비에 스킬도 평범. 그나마 도발 스킬이 레어일 뿐. 주하연의 실드 또한 받지 않았다. 말 그대로 혼자 스스로 키운 능력으로 승리한 셈. 그러니 탑이 보상을 준 거겠지.

'이게 이렇게 되나?'

나는 정말 신기한 장면을 본 기분이었다. 실제로 업적을 쌓는 것을 보는 경우는 무척 희귀하기도 하고.

이 전과에 한바다 파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파티에는… 괴물만 존재하는구나."

이제는 허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실제로 괴물은 나서윤 하나지만. 나도 포함인가?

그 뒤로는 간간히 남은주가 미노타우로스를 1:1로 상대해 성장세를 이어 가게끔 만들었고, 꾸준한 사냥을 통해 한바다 파티와도 합을 맞추었다.

그러자 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몰이 사냥을 해야겠어."

"힉!"

"안, 안돼!"

남은주는 겁먹은 소리를, 나연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왜? 이제 충분히 가능할걸?"

"미, 미노타우로스 떼라니! 그런 건 못 이겨!"

"그, 그래요 신후 씨. 너무 위험해요."

하지만 이런 방법을 쓰지 않으면 언제 이상한 철조각을 다 모을지 모르겠다.

필요한 개수가 수백 개다. 어느새 몰려온 파티들이 12층 고정 안전 구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지금, 하루라도 빨리 다음 층으로 가는 것이 좋다.

"충분히 가능해. 내가 못 하는 거 하자고 한 적 있어? 안 그래요?"

나연과 주하연에게 차분하게 말을 하자, 둘은 확실히 그건 그렇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안 된다는 의사를 계속해서 표명했다.

"…몰이 사냥을 한다고요? 미노타우로스를 상대로?"

한바다는 그게 말이 되냐는 듯이 묻는다.

"실제로 아래층에서도 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두 세 마리씩 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그 정도는 혼자서도 이깁니다."

단호한 내 말에 한바다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발언권은 최하 수준이니까.

"하루라도 빨리 성장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담스러워하는 한바다를 미묘하게 압박하는 한마디. 결국 한바다는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 못했다.

나서윤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은 하나같이 반대하고 있었지만, 결국 내 의견이 가장 강했기에 몰이 사냥은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층에서야 개개가 강력한 몬스터가 아니다 보니 수가 조금 많아도 어떻게든 됐었다. 애초에 통로만 이용하면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몬스터는 한정되니, 그 뒤로는 체력 싸움이다. 덕분에 체력 올리기가 편했다.

하지만 미노타우로스는 개체 하나하나가 강력한 몬스터. 이들이 뭉치면 다른 고블린이나 놀이 뭉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다.

일행은 그것에 겁을 먹은 거다.

처음 두셋은 별것 없었다.

"봐요, 된다니까요?"

나는 일행이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처음에는 둘, 다음에는 셋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유인하며 전투를 치렀다. 일행이 조금씩 불안해하면서도 적응할 무렵. 나는 점점 속도를 올렸다.

"신후 씨, 신후 씨! 이건 너무 많잖아요! 이번에는 조금만…!"

다섯, 여섯, 여덟!

"미쳤어! 이 파티는 미쳤다고!"

한바다 파티의 누군가가 외쳤다. 남자 목소리인 것을 보면 이윤형 같았다.

15층의 미노타우로스들을 통해 올릴 수 있는 레벨은 17이다. 이는 17층에서의 한계와 같으며, 15층이 특별한 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증표다.

나는 여기서 17레벨을 달성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20층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17레벨까지 올리고 능력치를 성장시켜 둔다면 20층에서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거기는 보스만 미노타우로스고 고블린과 놀들도 많으니, 그곳에서 성장하는 것이 더 빠르다. 16층부터 19층까지는 고정 안전 구역만 확보하고 지나칠 생각이었다.

오래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하루라도 빨리 미궁을 내 관리하에 두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까운 재능을 가진 인재가 죽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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