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푸른 바다 파티
고정 안전 구역을 향해 복귀하는 과정에 큰 난관은 없었다.
우리 파티가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을 잡는 모습에 경악하는 두 명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냥이 더 느려지거나 빨라지지는 않았다.
저들이 놀라는 모습에 일행이 조금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파티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니 내심 두 명에게 더 감탄하라고 요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복귀하는 와중 한바다가 의식을 차렸지만, 곧바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걱정 마세요.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아마도 체력을 회복하려는 것 같습니다."
한걱정을 해대는 조연은에게 한바다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한 번 더 해줘야 했다.
외상이 다 회복되기는 했지만, 당했던 부상이 제법 크기에 곧바로 깨어나지는 못하는 듯했다.
애초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었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전투가 계속되고 전투 중에 방치하기도 모하다.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을 처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 아무 데나 한바다를 방치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전 층에서도 걱정했던, 타 공동에 존재하는 환영이 통로를 통해 갑자기 등장이라도 했다간 밟혀 죽을 수도 있었다.
하루가 지났을 때 우리는 고정 안전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최단 루트를 선택하기도 했고, 나연의 능력치가 조금 올라서 속도가 빨라진 것도 있었다.
고정 안전 구역에 도착해 한바다 파티 또한 우리 파티처럼 예외로 설정하고 한동안 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한바다는 고정 안전 구역에 도착한 이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어났다. 안전 구역이라 마력을 아끼지 않게 된 내가 꾸준히 힐을 써 준 것이 주효한 듯했다.
일행도 휴식을 하는 와중이었기에 한바다가 깨어났을 때는 우리 파티까지 모두 모일 수 있었다.
"어떻게…."
한바다는 깨어나서 현실을 인식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기절 직전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 자신들이 살아 남은데다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가 고정 안전 구역이라는 것에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을 요구했다. 조연은은 한바다의 의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바다 네가 쓰러지고 나서… 몇 시간 정도 지났었어. 언제 나올지 모를 미노타우로스 때문에 반쯤 체념 했었는데… 여기 유신후 님 파티가 구해 주셨어."
"…우리가 있는 장소를 어떻게 알고?"
"15층에 와 보니 우리의 실력과 상성으로는 미노타우로스를 이기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수색하셨데. 덕분에 살았어."
"…신세, 아니, 은혜를 입었네."
"그래서 당분간 도와주시기로 하셨어. 여기서도 다른 층과 다르게 계속 머물 수 있게 해 주셨고…."
"…여기?"
"여기 고정 안전 구역이야. 15층의 고정 안전 구역은 1-1구역이 아니래."
"…후우…."
하나부터 열까지 되는 것이 없었다. 한바다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진상수 일행은?"
갑작스러운 물음. 조연은은 침묵했다.
"도망쳤습니다. 아마 살아 있겠죠."
조연은을 대신해 이윤형이 대답했다.
"…연막탄…."
그대로 공동을 싸우지 않고 통과하면 뒤에서 미노타우로스가 쫓아온다. 그 연막탄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위치를 숨겨 싸우지 않고 공동을 돌파하는 모양이다.
역시 던전 보상이라는 걸까. 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좋은 듯했다.
한동안 상념에 잠겨있던 한바다는 곧 생각났다는 듯이 나와 내 일행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뭘요. 저희도 여유가 되서 도왔던 겁니다. 솔직히 15층에 간 것도 저희 영향이 있었던지라 이미 늦었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약간 겸손하게 말하자 한바다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내가 거만이라도 떨 줄 알았나? 오해는 14층에서 충분히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 남은 것 같았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신경 써 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사실 사제셨다고 들었습니다."
"뭐… 성기사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힐도 있기는 한데, 별로 효율은 좋지 못합니다. 본업은 여전히 전사죠."
"…대단, 하시네요."
그녀는 내가 두 개 직업군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놀란 듯했다. 이것도 한때다. 나중 가면 이런 게 얼마나 어중간한지 알게 되니까.
물론 나와 나서윤은 예외겠지만.
내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고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되자 한바다는 조금 자괴감에 빠진 듯했다.
뭔가 쓰레기 인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 데다 능력까지 출중하다.
그에 비해 자신은 괜한 오기로 능력 이상의 일을 강행, 일행을 몽땅 사지로 몰아넣었고, 다른 파티에게 배신도 당해 정말 죽을 뻔했다.
자괴감이 들만하다.
"…저희를 한동안 도와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이대로라면 여기서 버티기가 힘드실 테니까요. 사실, 현재로써는 아래층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보니…."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염치 불구하고…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히든 클래스와 자신의 성장 속도를 과신한 대가다.
끄덕.
나는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이고, 내게도 이득이 될만한 일이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사냥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최대한 빨리 참가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오늘부터라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요. 내일부터 사냥에 동참하시면 됩니다. 식량은 나누어 드리고 쉴 장소도 제공해 드립니다만, 드롭되는 물품은 나눠드릴 수 없습니다."
"당연하죠. 이 이상 욕심낼 염치는 없습니다."
한바다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세를 진다며 다시 고개를 숙여왔다.
나는 과한 인사가 부담스럽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푹 쉬십시오. 내일 출발할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외의 다른 말은 없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 현재는 딱 그 정도다. 저쪽 성격을 봐서는 이 정도만 해 줘도 나중에 내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 거다. 특히 그 요구가 자신의 성격과 부합되면 금상첨화.
나는 하기 싫지만 한바다는 좋아할 만한 일을 시키면 된다. 20층까지 성장을 도와주고는 11층으로 돌아가 미궁 관리를 맡기면 오히려 더 감사하지 않을까.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고 싶으면 부리게 해 주면 된다. 내 목적에도 부합하고 저쪽 신념에도 꼭 맞으며 내 귀찮음도 덜어준다. 일석삼조다.
나는 한바다 파티와 헤어지고는 곧바로 남은주를 찾았다.
내가 부르자 남은주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찾아왔다.
"무슨 일이세요?"
"이번에 한바다 파티를 구하면서 얻은 물품이 있는데, 남은주 씨한테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네?"
나는 남은주에게 하급 신체 클리너를 쥐여 줘 정보를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남은주는 부담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요… 이런 건 하연 언니나 나연 언니가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도 솔직히 욕심은 나지만 그래도…."
남은주가 아닌 다른 파티원이 써서 효과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썼을 거다. 그러나 내 정보 레벨과 관리자의 눈동자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다른 파티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라 남은주에게 주는 것일 뿐.
[하급 신체 클리너]
나의 잠재력은 여전히 상이고 나서윤은 최상이다. 하급 신체 클리너가 아니라 최상급을 들고 와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나야 영약 덕분에 이미 청소 끝냈고 나서윤은 그거 얻을 때쯤이면 자력으로 청소를 끝냈을 테니까.
남은주는 잠재력이 최하가 아니라 잠재력 자체가 상승할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횟수가 2번이니 의미가 없지는 않을 거다.
한참 성장 중이기도 하니까 도움이 되면 됐지 악영향을 끼칠 일은 없을 테고.
그리고 이런 물건을 우리 파티가 아니면 누구에게 쓴다는 말인가? 앞으로 얻을 인재들은 남은주처럼 잠재력 떨어지는 이는 없을 터. 이런저런 이유로 남은주에게 제격인 물품이란 거다.
저 멀리서 한바다가 내 손에 든 하급 신체 클리너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조연은이 자신이 주었다며 어차피 우리에게 중요한 물품은 아니지 않냐고 말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어딘가 위로처럼 들리는 말들. 한바다는 무슨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느낄까.
나는 한바다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다시 남은주에게 집중했다.
"요새 남은주 씨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느끼고 계시죠?"
움찔.
남은주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서윤에게는 비빌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스킬 슬롯 개수나 이제껏 보여 주셨던 성장세를 생각하면 지금의 성장세가 끊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스킬 슬롯 개수, 지금까지의 성장세.
남은주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금세 알아들었다. 재능.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남은주에게는… 재능이 부족하다.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남은주는 천천히 탑을 겪으며 체감한 사실일 터다.
그러니 지금의 성장세가 엄청나게 중요하다. 이때를 놓치면 좋지 않다. 아마 남은주도 알고 있을 테고, 그러니 내 앞에서 평소에는 빈말로도 하지 않던, 욕심이 난다는 말을 했겠지.
"…네."
"물론 재능이 부족하다고 남은주 씨를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반대로 계속 같이 다니기 위해서 저와 서윤이에게 가야 할 자원까지 투자할 수도 없어요. 이유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탑은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수련자들 간의 실력 평균을 맞추겠다고 모든 자원을 남은주에게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은 둘째치고, 그렇게 아무리 투자를 해줘도 결국 현재 남은주 수준으로는 나서윤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 투자를 하고 몰아 줘봤자 차이는 점점 벌어질 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지금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남은주에게 뭘 해주기가 상당히 어렵다.
"지금은 남은주 씨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금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더 오랜 시간 전투원으로서 활약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성장세가 꺾이면… 다시 말씀드리지만 버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더는 전투원으로서 함께하기는 힘드시겠죠. 그러니 부디 줄 때 받으세요. 사양하지 마시고."
"……네, 감,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끄덕.
나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남은주를 바라보았다.
남은주는 정말 복잡한 표정이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다른 일행은 받지 못한 물품을 혼자 받다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심정이 뒤섞인 듯했다.
"이거 두 번 쓸 수 있는 물품입니다. 두 번 다 혼자 쓰세요. 설명에도 효과가 부족하다는데, 나눠서 쓸 필요는 없을 겁니다."
"네. 근데… 진지한 얼굴로 말씀하셔서 듣기는 했는데… 이게 제 성장과 관련이 있을까요? 노폐물 제거면… 피부 미용… 같은 거 아닌가요?"
"응?"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뭐지?
나는 클리너의 정보 창을 불러왔다.
[하급 신체 클리너]
-과거 먼 시대, 건강 관리 차원에서 사용된 신체 클리너. 몸속의 노폐물을 일부 제거할 수 있다. 본래 질이 좋지 못했던 물품인 데다 오래된 물품이라 효과가 미미하다.
-사용 가능 횟수 2/5
-정보 추가 : 일부 마력 회로와 신체의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관리자의 눈동자와 연계됩니다.]
-정보 추가 : 잠재력 '중하' 이상의 존재에게는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잠재력이 '최하'인 존재에게 사용 시 잠재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이거…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용 가능 횟수 아랫부분의 정보 추가 부분은 나만 볼 수 있다.
즉, 그냥 위쪽 설명만 보면 건강 관리 물품, 아직 신체 내부의 노폐물 개념이 크게 없는 초기 수련자들은 이게 뭔 말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조연은도 효과가 적지만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만 했지, 어디에 쓰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음…."
이거… 상황이 이상한데? 깨닫고 보니 상황이 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뜬금없이 최근 잘 성장하는 남은주를 불러서 피부 미용에 좋다는 물품을 억지로 떠넘기며 요새 성장세가 어쩌구하는 이야기를… 혼란에 빠진 남은주의 표정이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처음에 나연이나 주하연을 주라고 한 이유도….
'자신은 나이가 그래도 조금 어리니, 아니면 언니 둘 먼저 챙기라고 그렇게 말한 건가?'
기껏 구하기 힘든 물품을 줬더니 피부 미용으로 알아들었다. 아니, 여자들한테 그런 게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이런 시발.'
한껏 분위기 잡고 말했는데, 이게 이렇게 되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