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푸른 바다 파티
푸른 바다 파티가 자리를 떠나자 주하연이 내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뭐 어쩌겠습니까. 저희가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아마 쉽지는 않을 거다. 15층은 특별한 층이라,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몬스터가 나오니까. 16층은 다시 홉 고블린과 더 강한 놀들이 나오지만.
"…쟤네 남자 넷, 걔들 마음에 안 들어."
나연은 불쾌한 표정이었다.
아마 나연은 한바다에게 조금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을까. 애들이나 다른 약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실로 보였으니까.
"오빠, 오빠! 방금 그거 뭐에요?"
나서윤은 그런 것보다는 내가 펼친 전음이 더 신기한 모양이었다. 대단하다. 특별히 은밀하게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눈치채다니. 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뭘 했다는 것 자체는 눈치챈 듯했다.
마력의 유동을 느꼈겠지.
딱히 숨길 것도 아니라 가볍게 밝혔다.
"얼마 전에 만든 기술이야."
"…네? 무슨…."
다른 일행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전음 이라고, 몰래 귓속말하는 기술이랄까?
"우와!"
나서윤은 이 특유의 마력 운용이 궁금한 듯했다.
나는 알려달라고 매달리는 나서윤에게 어렵지 않게 전음에 대해 알려주었다.
재능도 뛰어나고 전설급 마력 친화를 지닌 괴물답게 나서윤은 기초적인 전음을 단숨에 해내었다.
일행들은 뒤늦게 전음에 대해 알아채고는 하나같이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참 신기한 기술을 다 만드시네요."
"뭐, 그냥 어쩌다 보니 만들어졌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엄청난 천재로 보이겠지. 사실은 배운 기술이지만… 2회차에서는 내가 처음 쓰는 기술이다.
"일단 저희도 사냥을 계속하죠. 15층으로 가야 하긴 하니까요."
"그러게요. 경쟁자도 생겼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일행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냥 속도가 두 배는 넘게 차이 날 거다. 우리 쪽에는 정령사와 사제가 존재한다. 그에 비해 저쪽은 궁수 하나, 도적 하나에 전사만 다섯이다.
대량 학살은 불가능하고, 상처가 나면 회복도 힘들다. 아마 엄청 조심해서 안전 주의로 싸우겠지. 통로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어지간히 재수가 없지 않고서야 우리가 더 늦게 15층에 도착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재수가 실제로 없었다.
3일. 3일 동안 우리는 15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얻지 못했다.
덕분에 어처구니없게도 내 레벨이 15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와중, 푸른 바다 파티가 먼저 15층으로 향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정말 먼저 가버렸네요."
"…와, 이게 이렇게…."
주하연과 남은주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배는 더 청소를 했는데, 먼저 이동한 것은 저쪽 파티다.
통로는 일회용이라 우리가 이용할 수도 없었다.
같이 그 공동을 청소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 당황했다.
어차피 15층은 1-1공동이 고정 안전 구역이 아니다.
거긴 고정 안전 구역이 다른 장소에 존재한다.
고난의 신전. 15층에 소환되는 구역의 중심에 가까운 장소에 신전이 존재하며, 그 신전이 있는 장소의 바로 옆 공동이 고정 안전 구역이다.
그러니 한동안 한바다 파티는 뻘짓을 할 터. 그 사이에 15층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1-1 공동으로 가는 루트에 중앙을 한 번 거치면 의심 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내심 초조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5연속 고정 안전 구역 관리자라는, 그런 기록이 탐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걱정이 되는 거다.
현재 푸른 바다 파티의 수준으로는 15층에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
거기는 개개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또한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그도 그럴 게, 15층은 각 공동마다 한두 마리의 몬스터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의 정체는 20층 보스의 분신. 15층에 나타나는 몬스터는 '외뿔 미노타우로스의 환영'과 '쌍뿔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이다.
15층에서 16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쌍뿔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을 쓰러뜨리거나 '고난의 신전'을 10회 클리어해야 한다.
후발 주자 대부분은 이번 층을 빠르게 돌파하기 위해서 쌍뿔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을 단체로 잡아 탈출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고난의 신전은 효율이 극악이기 때문에 다들 회피하는 지경.
외뿔까지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쌍뿔의 환영을 만났다간 푸른 바다 파티는 전멸이다. 또 재수가 없으면 외뿔 둘이 존재하는 공동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물론 궁수와 도적이 있으니 둘이 존재하는 공동에 곧바로 갈 가능성은 낮았지만, 혹시 모르는 거다.
내심 한바다라는, 정의로운 벽창호가 아까웠기 때문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1회차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을 터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등장함으로써 미래가 뒤틀린 결과니까.
'돌아 버리겠군.'
하지만 별 방법이 없었다.
계속해서 사냥을 하는 수밖에는.
일행은 추월당했다는 사실에 제법 충격을 먹었는지 다들 더 열심히 사냥하기 시작했다.
별로 선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았더라도, 막상 추월을 당하니 기분이 나쁜 듯했다.
그래도 그 보답은 있었다. 반나절 정도의 사냥 끝에, 우리도 다음 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와, 드디어! 드디어!"
나연은 한껏 기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
결국 나연과 나서윤마저 레벨 15를 찍었으니, 얼마나 열심히 사냥을 했는지 알만도 했다.
"오빠, 빨리, 빨리 가요! 이러다가 뺏기겠어요!"
나서윤은 한바다 파티에게 고정 안전 구역을 뺏길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자, 마음이 급해진 듯했다.
한바다 파티가 고정 안전 구역을 확보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애초에 쉴 수 있는 장소가 타인에게 넘어간다는, 그런 사실이 마음에 들 턱은 없지만.
"그래. 빨리 가자."
나는 곧바로 앞장서 15층으로 향했다.
[15층에 진입하였습니다.]
나는 곧바로 소환된 공동을 확인했다.
6-19
적당하다.
5-15 구역에 고난의 신전이 존재하니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일행의 생각은 달랐다.
"아, 6번이야…. 1번까지 한참 멀어…."
나서윤은 시무룩해졌다.
"그건 모르는 거지, 서윤아. 자, 어깨 펴고. 일단 가보자."
나는 나서윤에게 격려를 해준 뒤 일행을 향해 말했다.
"휴식 없이 바로 갈 생각인데, 다들 체력은 괜찮으신가요?"
"네. 문제없어요."
"괜찮아요 파티장 님."
"멀쩡해."
다들 꾸준한 성장 덕분에 아직 체력은 쌩쌩했다.
이제는 하루 이틀 정도는 날밤을 새도 컨디션에 문제는 없을 지경. 이전에는 버티긴 했어도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 실력이 떨어졌었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상당히 발전했다.
그래도 나흘을 넘어가면 컨디션에 지장이 가겠지만, 한 구역 돌파하는 데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자, 가자고."
우리가 공동으로 나아가자 곧바로 외뿔 미노타우로스의 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뭐야?"
"고블린도, 놀도 아니에요. 저건…."
덩치만 4m에 달하는 괴물.
그 모습에 일행은 압도된 듯했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는 이제껏 중대형 몬스터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중대형 몬스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위압감을 준다.
"도망칠 수 없는 것은 아시죠? 지나가려면 싸워야 합니다."
사실이다. 무시하고 도망쳤다간 끈질기게 쫓아오는 몬스터들 때문에 일대가 지옥으로 변한다. 안전 구역으로 들어오면 쫓아오지는 않지만, 꽤 오랜 시간 안전 구역 앞에서 진을 치기 때문에 답이 없다. 잘만 이용하면 의도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만들 수 있을 정도. 1회차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도망치는 놈들을 막고 죽여서 몬스터 웨이브가 커지는 것을 최대한 막은 채 다 같이 몰려들어 웨이브를 해체하곤 했었다.
토벌의 주도는 카르텔이 했었다. 자신들의 왕국이 무너지면 곤란하니까.
그나마 아래층에서는 고블린과 놀들이 서로 싸우기라도 하면 조금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여기는 아니다.
우르르 달려오는 소 떼를 볼 수 있다.
내가 몰이 사냥한다고 몇 번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일행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소 떼의 진격이 상상된 듯했다.
"…급해도 하나씩 해요. 하나씩."
"그, 그래. 그게 나을 것 같아."
끄덕끄덕.
나연과 남은주 또한 격하게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일단 먼저 들어갑니다. 처음은 늘 그랬듯 수비적으로. 잘하리라 믿습니다."
"네. 조심하세요. 덩치가 보통이 아니에요."
"정면 대결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나는 말을 마치고는 외뿔 미노타우로스 환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솔직히 근력은 내가 더 높을 거다. 아무리 미노타우로스라고 해도 외뿔 환영이다. 쌍뿔도 추정 근력이 40이 안 되니, 마력까지 쓰면 내가 압도적으로 우위다.
미노타우로스 덩치의 반도 채 안되는 내가 힘이 더 세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만큼 마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다.
"우움무어어어!"
소같기는 한데 뭔가 소가 아닌 듯한 괴성. 나를 발견한 외뿔 환영이 무척 거친 발걸음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직선상에 있는 일행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옆으로 돌며 외뿔 환영을 유인했다.
"무어어어어!"
과연 힘으로 대표되는 몬스터들 중 하나답게 땅을 박차는 발굽에서 느껴지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쾅쾅 울려대며 달려오는 외뿔 환영의 박력은 하층에서 보기 드문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 속도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두 발로 뛰던 외뿔 환영은 곧바로 자세를 바꿔 네 발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완전히 방향이 달라지자 나연은 곧바로 외뿔 환영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실프-! 윈드 커터!"
휘잉-
단숨에 날아가는 바람의 칼날.
투명한 바람의 칼날은 단숨에 미노타우로스의 왼쪽 발목을 스쳐 지나갔다.
"무어어어어?!"
고통에 찬 비명. 그러나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못했다.
두꺼운 근육을 제대로 끊어내지 못했다. 애초에 풍계 마법의 공격력은 좀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다리에 상처를 입은 외뿔 환영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에 발이 걸리자 관성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혹시 모를, 튈지도 모를 어그로를 잡기 위해 넘어진 외뿔 환영에게 접근, 시야의 사각을 노려 목덜미에 검을 쑤셔 박았다.
푸욱!
"무…어…."
단 일격. 내 일격에 외뿔 환영의 숨이 끊어진다. 피는 나오지 않았다. 이건 환영이니까.
"…엥?"
한참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던 나연이 허무하다는 듯이 말한다.
"이게 뭐야…."
"상성이 좋았네요."
주하연은 바로 눈치챈 듯했다.
맞다. 상성이 좋았다.
우리 쪽은 나연이라는, 달려드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엿을 먹일 수단이 존재했고, 미노타우로스로부터 충분히 도망칠 속도를 지닌 존재가 둘이나 있었다. 나와 나서윤. 나서윤도 충분히 미노타우로스로부터 도망칠 속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일격에 급소를 끊어버릴 수 있는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파티 입장에서는 다수의 자잘한 적보다 단신의 강력한 적이 비교적 상대하기 더 편하다. 물론 나연 덕분에 단체전도 푸른 바다 파티에 비하면 편하겠지만.
나는 1회차의 기억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그때는 저 돌격 한 번 한 번이 살 떨리게 무서웠는데.
나는 빛의 입자로 변해 사라지는 외뿔 환영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그 시체가 사라지자 외뿔 환영이 있던 자리에는 이상한 철 조각과 식량이 남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철 조각과 식량을 주워들었다.
이 철 조각. 엄청 중요한 거다. 몇 개나 모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와중, 주하연의 말이 상념을 깨웠다.
"…걱정이네요. 그 바다 파티, 전사만 다섯이었는데…."
확실히 상성이 좋지 않다. 정면에서 저딴 공격을 당했다간 내가 아닌 이상 그대로 치명상 내지는 사망이다.
충분한 가속도까지 받으면 주하연의 굳건한 대지의 방패도 아슬아슬할 터. 신성력의 수준이 부족하다.
"그러면 우리가 고정 안전 구역 가질 수도 있는 거예요?"
나서윤은 그쪽 파티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연과 주하연은 그런 나서윤의 반응에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우리 파티가 더 소중하다. 그게 당연한 거다. 내가 그간 늘 말해왔던 얘기다.
푸른 바다 파티가 조금 위험할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뭐, 한바다 스펙을 생각하면 그렇게 빨리 죽지는 않겠지. 잠재력 상급 궁수도 있으니까.'
진상수 일행이 어지간히 트롤링을 하지 않는 이상, 하루 이틀 만에 죽지는 않을 거다. 우리가 하루나 이틀이 더 걸려 15층에 왔다면 그들을 바로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반나절 만에 따라붙었으니 고정 안전 구역을 확보한 후에 찾아다녀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마침 멀지 않은 장소인 데다 상성도 좋다. 나는 안전 구역의 확보를 우선하기로 결정했다.